한젬마의 아트 콜라보 수업 - 초가치를 만드는 아트×비즈니스의 힘
한젬마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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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그랬지?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라고.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것들이 결합하여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고, 서로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것들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매력과 가치를 발산하는 시대, 지금 우리들의 시대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한젬마는 그의 신간에서 이 융합의 미학이 빚은 명품들을 낱낱이 분석한다. [아트콜라보]라고 명명한 이 책은 대한민국 1호 아트 콜라보 디렉터라고 불리는 한젬마가 예술과 결합한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과들을 올린 사례들을 열거하여 소개하는 책이다.

 

 이제 비즈니스와 아트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굳이 앤디 워홀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계가 탁월한 융합을 통하여 무한한 시장성을 자랑하게 된 것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키스 해링 정도의 수준에서 ‘아트 콜라보’를 논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최근에 시장에서 만난, 그러니까 인터넷이든 거리에서든 어딘가에서든 반드시 한 번은 마주쳤을 그런 제품과 프로젝트, 사례들을 모으고 모아 집대성한 책이다.

 

 백남준, 제프 쿤스, 이상봉, 키스 해링 등 콜라보의 명장들을 가장 먼저 소개하면서 책을 시작한 저자는 드가와 칸딘스키와 같은 근대 화가들이 어떻게 예술을 다른 소재 혹은 장르와 콜라보하였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는 의미 있는 콜라보를 성사시킬 여러 노하우들을 정리한 다음 실제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성공한 콜라보 사례와 제품들을 보여주며 ‘콜라보 파워’를 톡톡하게 확인시켜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콜라보에 능한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보와 비빔밥 등 여러 가지 소재나 재료들을 한데 버무려 어울리게 만드는 일은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오는 그런 일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책의 두툼한 두께만큼 재미도 두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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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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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정운 박사의 책을 좋아해서 즐겨 읽는다. 아마 요 몇 년 사이에 그가 냈던 책들은 거의 다 읽어왔던 것 같다. 실은 꼭 저자의 책이라서 찾아 읽었다기 보다는, 관심 있어서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서 읽은 후에 ‘어, 이 책 꽤 괜찮구나!’하는 인상 깊은 책들 중에 그가 지은 책들이 있었다. 저자의 이름이 눈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 다음 수순으로는 아주 당연하게도, 어쩌다 신간이 나오고 그 신간의 제목이 마음에 들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살펴보면 ‘아, 그 사람이구나!’라고 반가워하며 그 책을 읽게 되는,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한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독일에서 대학 강사를, 한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갑자기 일본의 예대에 학생으로 들어가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강사도, 교수도 아니고 그냥 바다에서 눈먼 꼬기 잡다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란다. 꽤나 고달픈 젊은 시절을 보냈으리라 추측되는 저자의 현재는 아마 신선놀음에 가까운 무엇 아닐까 싶다. 과거야 어땠는지 간에. 


 여수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에 있는 어느 미역창고를 작업실로 개조하면서 쓴 에세이들이 이렇게 책으로 엮였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긴 제목(이 지점에서 정말 왜 제목을 이걸로 지었냐고 묻고 싶다. 왜 이렇게 제목이 길어요? 짧고 간단한 제목으로 바닷가에서의 홀로 사색하는 복잡미묘한 시간을 다 아우를 수 없었던 것인가요?) 을 기억하려면, 이렇게 하면 쉽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여수 거기, 김정운 박사의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더 어려운 모양새가 되었네.

 

 위에서 잠시 제목에 딴지를 걸어는데, 사실 표지도 별로다. 표지만 보면 세상의 오만가지문제를 혼자 짊어진 어느 늙은 학자의 독백이 책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다. 넘 어둡고 칙칙하단 뜻이다. 책 내용은 이렇게 재미있는데 표지가 먼지색깔 바닷물결이라니... 혹시라도 표지만 보고 이 책이 매우 어둡고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해서 재미없을 거라고 오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썰이 길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여수라는 바닷마을, 거기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에서 비로소 ‘슈필라움(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차린 아저씨가 그 안에서 건져 올린 갖가지 이야기들을 읽는 것은 참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의 작업실은 여수라는, 내가 있는 곳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저자의 시선은 모든 시간과 공간에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왕래하고 베를린과 서울과 여수 사이도 수없이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때때로 여수앞바다의 운치, 그곳의 풀과 나무와 길과 사람, 그 사이에서 화가의 눈으로 발견한 풍경을 캔버스로 옮긴 저자의 작품들이 페이지 사이사이로 등장한다. 저자가 인용한 안도현의 시처럼 ‘천천히 늙어가리라’가 아니라 정말 아예 안 죽을 것 같은 저자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아주 시덥지 않고, 별 것 없는 잡스러운 이야기도 아닌데) 큭큭큭 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책이 그런 책이다. 저자와 독자가 대화를 할 수 있는 책. 저자의 썰을 따라 내 썰도 같이 풀거나 혹은 들이 받거나 혹은 이어 받아서 전혀 새로운 썰로 박차고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너무 좋다. 날씨까지 좋으니 더 좋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삶이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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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와 주판 - 일본 자본주의 기틀을 만든 시부사와 에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지음, 최예은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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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렴함’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곧장 ‘빈곤함’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된다. 왜일까?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지 않는 사람 혹은 돈의 이익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쩐지 다 빈곤함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인가? 인(仁)의 가치로 사람과 사회, 나라와 세계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공자는 청렴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그의 저서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도리에 맞는’ 사상과 행실들은 결국 다 허구가 될 게 아닌가. 그래서 내 머릿속 공자는 주머니에 동전 하나 넣어다니지 않는 빈곤한 인물로 그려진다. 소크라테스 외의 다른 모든 성인들은 내 머릿속에서 그렇다. 빈곤하고 가냘프고 뭐 그런...

 그런데 이 책은 잔잔한 호수 같은 나의 인식에 돌을 던져 파문을 그렸다. 공자는 빈곤함을 추구했던 사람이 아니란다. 정당한 도리를 지켜서 부를 얻는다면 부를 쌓으라고 권고했던 사람이란다. 말하자면 도리에 맞으면 얼마든지 주판을 튕겨보라는 얘기다. 아마 이 책의 제목인 [논어와 주판]은 그런 의미로 통하는가보다. 


 사람들은 부유함과 고귀함, 넉넉함와 청렴함이 공존할 수 없다고들 생각한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유함과 고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거기에 연연하지 마라. 빈곤함과 천박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렇게 되었더라도 억지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책 중 140쪽)”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저서를 읽고 이 부분을 읽으며 ‘공자는 돈을 싫어해~’라고 생각할 동안 이 책의 저자 시부사와 에이치는 좀 다르게 해석했다.

 

 부귀함을 경시하고 빈천함을 중시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이 문장을 올바르게 해석하려면 ‘도리를 지켜서 얻은’에 주의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논어>에 앞서 간략히 언급한 “만약 부가 추구할 만한 것이라면 집편지사일지라도 나는 그리할 것이다. 하지만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이것도 부귀를 천하게 여긴 말처럼 해석돼왔지만, 지금 다시 정확하게 해석하면 이 문장 속에도 부귀를 경시하는 구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본문 140쪽

 

 그간 공자의 글 속에서 내가 읽은 메시지는 돈을 좋아하면 고귀한 사람이 될 수 없다거나 돈을 멀리해야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맥락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저자의 해석은 많이 다르다. 공자는 돈을 멀리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얻는 것을 경계하였던 것이지, 공정하고 도리에 맞는 방법으로 돈을 얻는 것은 오히려 권고했다는 것이 저자의 공자를 해석하는 관점이다. 그런 시선으로 공자와 논어를 다시 읽으면 세계가 조금 달라진다. 돈방석 위에 앉은 사람도 군자가 될 수 있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것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경제 대국 일본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직접 본 선진국의 문물을 접한 후 그는 메이지 정부의 관료가 되어 일본 경제계를 이끌었다. 그런 사람이 그가 해석한 공자의 사상과 그 자신의 가치관에 대하여 담화로 남긴 게 이 책이다.

 

 저자의 관점 역시, 공자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해석 중 하나일 뿐이고 정답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바라보는 공자와 논어 그리고 돈에 대한 관점이 정답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과 천박한 돈이라는, 연결짓기 어려워 보이는 이 관계가 저자가 해석하는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백년 전의 시대를 살았던 저자로부터, 돈이 나쁜 게 아니라 그걸 대하는 사람의 자세와 사상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배워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공자에 대한 저자의 해석 뿐 아니라, 경제 대국으로서의 일본의 바탕을 닦은 주역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삶의 태도와 철학 역시 배워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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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 - 구글, 아마존, 애플, 테슬라가 그리는 10년 후 미래
W. 데이비드 스티븐슨 지음, 김정아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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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봤던 영화 데몰리션맨은 당시 나에겐 여러 가지 의미에서 파격적인 영화였다. 쥐고기를 먹는 지하 계층민들이나 냉동인간이야 여러 SF 소설에서 등장했던 아이템들이야 그다지 신박할 게 없었는데 영화 속에 등장했던 첨단 기기들은 너무나 신선했고 새로웠다. 영화 속에 나온 화상회의, 목소리로 켜지는 전등, VR 연애 등은 그때로선 ‘와, 저런 세상이 진짜 몇 십년 뒤에 올까?’ 싶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몇 십 년은 무슨, 몇 년 뒤에 영화 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것들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저 영화를 다시 보면 너무나 웃기겠지.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들을 저때는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상상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말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그 시간보다 더 빠르게 확장되고 변형되고 공유되고 발전하는 기계들을 보는 건 좀 무서운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해하던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은데,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몇 십 년의 나이를 훌쩍 먹어버린 기분이랄까. 그래서 미래학자인 데이비드 스티븐슨이 쓴 [초연결]의 제목도, 다루는 내용도 나에게는 썩 기분 좋고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무한 공유, 무한 연결이 되는 세상 속에 나라는 개인은 완전히 잠식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얼마 전 5G가 세계최초로 개통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5G, 사물인터넷, AI 등 4차 산업혁명의 최전방 구도로 완전히 뛰어든 느낌이다. (벌써부터 자율주행 자동차로 출퇴근할 그날을 기다리는 지인도 있다. 내 주변만 그런 건 아니겠지?) 여러 현장에서 5G, IoT, 빅데이터 등을 주시하며 적용점을 연구하고 있고 기업들은 위의 기술들을 이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을 구상 중이라 한다. 이렇게 떠들썩한 세상 속에서 그럼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나? 이 질문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만든 동기였다.

 이 책 추천의 글에도 언급되지만 초연결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미 TV 광고에 나오질 않는가. 설거지 하면서 주문을 하면, 그걸 장바구니에 그대로 담아 쇼핑해준다거나 스마트폰으로 자동차키가 들어간다거나. 하루는 고사하고 한 시간이 다르게 모양을 바꾸어갈 것 같은 이 뜨거운 세상은 이미 막을 열었고 나는 그 속에 있다. 무인도에 가서 평생 살 게 아니라면 숙명적인 초연결을 수용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이용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자는 이 책 [초연결]에서 초연결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구글, 아마존, 애플, 테슬라, 지멘스 등)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관련한 사례를 설명하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현황을 점검할 수 있는 자가진단 매뉴얼까지 실었다. 그래서 교과서같은 느낌이 든다. 초연결시대를 준비하는 세계시민 지침서, 뭐 이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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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리커버 에디션)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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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스마트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접속된 일상과 스마트폰 밖에서의 일상이 밸런스를 이루지 못하는 게 나쁘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죄다 손바닥 만한 기계로 얼굴을 향하고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공연이나 콘서트를 가면 사람들은 열창하는 가수나 퍼포먼스를 하는 공연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대신 휴대폰을 들이대고 그 안의 스크린을 통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일에 더 열중한다. 무한 접속, 초연결시대니 어쩌니 하지만 실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무한 접속되거나 초연결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혹은 사람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무한 접속하고 초연결되는 시대가 지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초연결에 반기를 든다. ‘내가 접속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는다. 커넥팅은 좋으며 디스커넥팅은 나쁘다는 명제는 오늘날 우리를 스마트폰의 작은 스크린 앞에 붙잡아 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잠시 눈을 돌려 일부러 접속을 끊는 인터넷 안식일을 시도해보라.’

 

 

 영상 통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카톡이나 각종 메신져로 가족 대화창이 여기저기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말의 늦은 밤에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서 지나간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을 즐긴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어떤 통신 수단이나 기계적인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오직 면대면으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은 아주 편안하고 즐겁다. 그 시간이면 나는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이나 메신져 알람을 확인하는 일도 멈춘다.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려고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으레 그 시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티비 앞으로 모여들었고, 주말에 일정이 너무 바빠서 피곤한 날에도 나는 자정까지 부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티비를 보다가 잠들곤 한다. 그건 마치 내가 초등학교 때로 되돌아간 경험과 같았다. 그 옛날 조그만 티비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 우리 가족의 시간을 공유하고, 정서적 유대를 지어갔던 시절을 이 시간으로 끌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딱히 특별한 힐링의 시도가 없더라도 그 시간 자체가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 되는 듯하다.

 

 

 윌리엄 파워스가 쓴 [속도에서 깊이로]라는 책을 읽고, 이런 시도나 행위가 우리 가족만의 특이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말 이틀을 오롯이 인터넷 안식일(모든 네트워크를 일체 차단하는 주말 48시간. 네트워크 모뎀 자체를 끄고 모든 네트워크나 기계적인 알림으로부터 디스커넥팅 한다.)로 지키고 있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는 남일 같지 않았다.

 

 

 저자는 디지털이 우리 생활에 마법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 마법에 너무나 의존한 결과 우리는 각 객체로서, 존엄체로서 지켜야 하는 내면을 상실한 채(혹은 내면이 퇴색되어 버린 채) 무한 접속의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피로와 복잡함을 느끼는 현실을 지적했다. 구구절절 너무나 맞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 자신이 ‘커넥팅’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란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이불 속에 누운 채로 간밤에 온 이메일과 메신져를 확인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니까.

 

 

 사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는 건, 모든 커넥팅으로부터 잠시 탈출한다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바로 일어나서 월든 숲으로 찾아가서 잠시 머물다 이내 곧 돌아오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걸 무지무지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커넥팅의 마법’인 것 같다. 이 마법이 좋은 의미에서의 마법이 될지, 나쁜 의미에서의 악마적 마법이 될지 결정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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