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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리커버 에디션)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이 책의 요지는 간단하다. 스마트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접속된 일상과 스마트폰 밖에서의 일상이 밸런스를 이루지 못하는 게 나쁘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죄다 손바닥 만한 기계로 얼굴을 향하고 시선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공연이나 콘서트를 가면 사람들은 열창하는 가수나 퍼포먼스를 하는 공연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대신 휴대폰을 들이대고 그 안의 스크린을 통하여 그들을 바라보는 일에 더 열중한다. 무한 접속, 초연결시대니 어쩌니 하지만 실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무한 접속되거나 초연결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혹은 사람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무한 접속하고 초연결되는 시대가 지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초연결에 반기를 든다. ‘내가 접속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는다. 커넥팅은 좋으며 디스커넥팅은 나쁘다는 명제는 오늘날 우리를 스마트폰의 작은 스크린 앞에 붙잡아 두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잠시 눈을 돌려 일부러 접속을 끊는 인터넷 안식일을 시도해보라.’
영상 통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카톡이나 각종 메신져로 가족 대화창이 여기저기 열려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말의 늦은 밤에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서 지나간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을 즐긴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어떤 통신 수단이나 기계적인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오직 면대면으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은 아주 편안하고 즐겁다. 그 시간이면 나는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이나 메신져 알람을 확인하는 일도 멈춘다.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려고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으레 그 시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티비 앞으로 모여들었고, 주말에 일정이 너무 바빠서 피곤한 날에도 나는 자정까지 부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티비를 보다가 잠들곤 한다. 그건 마치 내가 초등학교 때로 되돌아간 경험과 같았다. 그 옛날 조그만 티비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 우리 가족의 시간을 공유하고, 정서적 유대를 지어갔던 시절을 이 시간으로 끌어온 것 같은 느낌이다. 딱히 특별한 힐링의 시도가 없더라도 그 시간 자체가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 되는 듯하다.
윌리엄 파워스가 쓴 [속도에서 깊이로]라는 책을 읽고, 이런 시도나 행위가 우리 가족만의 특이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말 이틀을 오롯이 인터넷 안식일(모든 네트워크를 일체 차단하는 주말 48시간. 네트워크 모뎀 자체를 끄고 모든 네트워크나 기계적인 알림으로부터 디스커넥팅 한다.)로 지키고 있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는 남일 같지 않았다.
저자는 디지털이 우리 생활에 마법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그 마법에 너무나 의존한 결과 우리는 각 객체로서, 존엄체로서 지켜야 하는 내면을 상실한 채(혹은 내면이 퇴색되어 버린 채) 무한 접속의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피로와 복잡함을 느끼는 현실을 지적했다. 구구절절 너무나 맞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 자신이 ‘커넥팅’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란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이불 속에 누운 채로 간밤에 온 이메일과 메신져를 확인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니까.
사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는 건, 모든 커넥팅으로부터 잠시 탈출한다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바로 일어나서 월든 숲으로 찾아가서 잠시 머물다 이내 곧 돌아오는 일과 같은 것이다. 그걸 무지무지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커넥팅의 마법’인 것 같다. 이 마법이 좋은 의미에서의 마법이 될지, 나쁜 의미에서의 악마적 마법이 될지 결정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