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돌 - 라틴아메리카 현대대표시선 ㅣ 창비세계문학 15
옥타비오 파스 외 지음, 민용태 엮고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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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시인 비센테 우이도브로는 ‘위대한 시인들은 일체의 유파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 안에 존재한다. 위대한 시인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 나와 백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저 시인의 말을 꾸어다 여기에 벌여두어야겠다. 모든 시대 안에는 시인과 시어詩語가 존재하므로.
 시를 잘 모르는 나는 위대한 시인, 덜 위대한 시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말 시, 진짜로 시, 제대로 시라는 결실을 짜낸 모든 시인은 다 위대하다고 여긴다. 한데 시인詩人이 위대하려면 시를 보는 시인視人이 있어야 한다. 시는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는다. 위대한 시인이 존재하려면 위대한 시를 보는 위대한 시인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한철을 살다 지는 존재라, 위대한 시인(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은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결코 죽지 않는 것은 오직 시어 뿐이며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위대하다. 그러므로 비센테 우이도브로의 말을 나는 이렇게 다시 써본다.
 시어詩語들은 모든 시대 안에 존재한다. 시어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사족이 분명하나 하나를 더 붙이자면 ‘시어는 모든 나라 안에 존재한다’라고도 하고 싶다. 시어가 없는 나라는 없다. 언어와 문화는 제각각이어도 어느 나라에나 문화에나 시어가 있다. 시어는 말(글)이라기 보다 차라리 공기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미국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호흡만은 같은 공기로 한다. 여기 공기나 거기 공기나 똑같다. 시어는 공기다. 라틴아메리카의 시에서 들이마신 공기가 비슷한 시대의 우리나라 시에서 들이마시는 공기와 통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공용어는 시어, 하나뿐이리라.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무는 시어의 경이를, 그 멋진 무형의 세계를 체험하는 우리나라 독자가 많지 않다는 점은 안타깝다. 시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여러 세계의 시를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립한림원 종신위원인 민용태 시인은 라틴아메리카 현대대표시들을 한 권으로 엮은 [태양의 돌]에서 ‘우리 예술에서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 심지어 연극보다 세계성이 약하다.(9쪽)’는 말로 이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외국의 시가 한국의 시보다 훌륭하니 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위에도 썼지만 위대한 시도, 덜 위대한 시도 없다. 거기엔 그저 시詩가 태어났을 뿐. 그 시는 태어난 토양과 거기의 햇살과 디딘 지경만큼의 기운을 흠뻑 품고 자기를 볼 존재를 찾아 나선다. 바다를 건너와 우리의 눈앞으로 다가온 라틴아메리카의 시들을 읽는 일은 쓴 자의 세상과 읽는 자의 세상이 만나 융화되는 일이다. 이 융화의 작용 속에서 우리 고유의 색은 더 날렵하게 벼려지고, 바다 건너의 읽는 자들에게 향하는 우리 시의 항로도 넓어진다. 세계의 문학을 읽는 일이란 이런 ‘세계성’의 토대를 닦는 일일 것이다.

 

 

 

 민용태 시인이 직접 엮고 번역한 [태양의 돌]은 라틴아메리카 대표시인 24인의 시선집이다. 옥따비오 빠스, 니까노르 빠라,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로베르또 후아로스,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 하이메 싸비네스, 오메로 아리드히스, 엘사 끄로스, 라울 아세베스, 비센떼 끼라르떼, 호세 후안 따블라다, 라몬 로빼스 벨라르데,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마리아노 브룰, 세사르 바예호, 비센떼 우이도브로, 리까르도 몰리나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니꼴라스 기옌, 하비에르 비야우루띠아, 에우헤니오 플로리뜨, 빠블로 네루다, 루벤 다리오, 호세 마르띠. 이르게는 1800년대 후반에 태어나 1900년대 초중반을 활동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빛나는 도약과 궤적을 그린 시인들이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니까라과,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 국내외의 정치적 격변을 겪은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민용태 시인과 창비 출판사는 이들의 시 150여 편을 엮어 [태양의 돌]로 출간하면서 독자들을 위하여 각 시인에 대한 소개를 각 꼭지 첫 장에 붙이고 시에 대한 해설을 각주로 달아 이해를 도왔다. 덕분에 낯선 시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작품을 읽는 일이 훨씬 재미있고 시어의 의미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후아로스는 말한다. “시인은 다른 세상을 창조하거나 만들어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사람이다. 시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을 창조한다. 나는 시가 참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능력 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진실이다. 왜냐하면 시가 영원의 참다운 의식을 되찾는 길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돌] 책 84쪽

 

 그(하비에르 비야우루띠아)는 “시의 가장 큰 관심은 인간이라는 드라마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진실해야 한다. 모든 시는 인간에 대한 앎의 시도일 뿐”이라고 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함께 비야우루띠아에게도 시는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불가피한 필요성의 산물이었다.
[태양의 돌] 책 275쪽

 

 

‘나에게 주어진 능력 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진실’이라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 ‘인간에 대한 앎의 시도’로서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기와 겹치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의 시 역시 절박하고 치열했음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쓰인 우리의 시와 정서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많다.
 [태양의 돌]을 읽으면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점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 시인 중에 노자, 이백이나 하이쿠에 심취하여 동양적인 정서나 구상으로 시를 남긴 작가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불교나 힌두교 사상에도 큰 영향을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시들을 읽는 건 굉장히 특이한 일이었다. ‘죽음’이나 ‘성’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쓴 세계 각국의 시인들은 많겠으나, 라틴아메리카의 정서로 노자나 불교의 철학을 담아 생명과 죽음에 대하여 쓴 시는 여기에만 있다.

 


<확실한 것> - 옥따비오 빠스

 

지금 이 램프가 실제 있는 것이고
이 하얀 불빛이 실제 있는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손이 실제 있다면, 이 쓴 것을
바라보는 눈은 진짜 있는 것인가?

말과 말 사이
내가 하는 말은 사라진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뿐
두 괄호 사이에서.

 

([태양의 돌] 책 19쪽)

 

 

사랑한다는 것은 이름을 벗고 벌거숭이가 되는 것([태양의 돌]), 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내 소리를 들어다오([비가 오는 소리를 듣듯이]) 라고 인생의 본질을 품은 사랑을 속삭이는 옥따비오 빠스의 시와
돌아올 적마다 맨 처음 하는 짓이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묻는 일이다([의식들])라고 쓴 나까노르 빠라, (진실을 담은) 시는 깨어진다 해가 돌아오도록([제7의 수직의 시 5])이라고 쓴 로베르또 후아로스의 시들은 나의 시 역시 깨어져 또 다른 통일성의 회복으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세계는 계속 변하고 사람 역시 바뀐다.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여 관념 밖으로 건져내는 시인들의 작업이란 대단하구나, 감탄에 감탄이 더한다. 

 

 


 이런 시인의 시쓰기를 [곰의 이론1]으로 풀어낸 비센때 끼라르떼의 시는, 곰이 말없음표를 트림처럼 내뱉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접스럽기는커녕 너무나 우아하다. 시대를 초월해 지금 우리들에게도 분명한 한 방을 안기는 시인은 세사르 바에호였는데, [검은 사자들]은 내가 절망의 진창에 그러니까 추락에 추락에 더한 추락을 하고 있을 때에 꺼내보아야 할 작품이다. 혼자 먹는 밥의 분위기를 그린 [시28]은 혼밥시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그 무엇을 탁월하게 그려두었다.

 [태양의 돌] 역자 후기에서 민용태 시인은 “여기 번역한 시들 혹은 시인들은 내가 반세기 동안 읽고 또 읽고 사랑해온 시들이다. 우리말 번역에서 원시의 맛과 여운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번역이라도 우리말로 시가 아니면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책 357쪽)”라고 했다. 원작에 대한 뜨거운 애정, 원시의 맛과 여운을 살려 시를 시로서 번역하기 위하여 들인 노력이 이 몇 줄에 드러나 있다. 이런 역자의 혼이 원작 시인들이 남긴 위대한 시어를, 그 호흡 하나마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시를 공들여 빚듯이, 책도 공들여 만들면 이런 품격이 있다는 걸, 15번째 창비세계문학 [태양의 돌]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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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윌슨 ㅣ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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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간이 윌슨]은 189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작품 발표 후 100년이 넘게 흘러오면서 그간 [얼간이 윌슨, 이야기]라든가 [얼간이 윌슨의 비극]이라든가 이런저런 제목들이 붙어 왔지만 창비는 세계문학 시리즈를 내면서 [얼간이 윌슨]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출간했다. 


 작품 속에서 타이틀롤인 ‘윌슨’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축이긴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다. 캐릭터 면에서 윌슨을 압도하는 록시도 있고, 작품의 위기와 그 결말에서 뺄 수 없는 시선강탈자인 톰도 있다.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 등을 읽다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 따로 노트를 하면서 읽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소설도 독자에게 그런 정성을 요구한다. 인물이 무척 많으므로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때문에 이 작품에는 부제가 필요하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윌슨을 위풍당당하게 얼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노예 아가와 백인 아가의 신분을 바꿔치기 하는 대범한 여자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동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에 담자면 바로 작품의 장소 ‘도슨스랜딩’이 되리라. [얼간이 윌슨]에는 ‘얼간이들의 도시, 도슨스랜딩’이라는 부제가 붙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이 인종차별 자체만을 두고 이 작품을 썼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얼간이 윌슨]의 작품해설에도 실려 있지만, 링컨 대통령만 해도 인간 존엄의 차원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에서 노예제 폐지에 선 인물이었고 남북전쟁 후 미국사회는 노예제가 폐지되고 인종에 대한 국민 의식이 양화되는 방향으로는 결코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중에 하나인 [미국의 아들]이 발표된 1940년까지도 아주 집요하고 완고한 인종차별 의식이 미국의 뿌리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얼간이 윌슨]이 발표된 1894년의 상황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그런 상황에서 인종분리에 대한 진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은 적어도 백인들 사이에선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본다. [헬프]가 영화화되었을 때 어느 흑인 비평가가 노예제의 참상을 백인의 시선으로 그린 망작이라고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 자체가 맞는 말이라기보다 피해자의 심정을 가해자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한계의 측면에서 저 비판에 일부 공감했다. 노예제를 바라보는 백인의 시선이 아무리 민첩해도 그 아이러니를 고발하는 날렵함은 흑인 작가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건 [빌러비드]나 [미국의 아들] 같은 작품까지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얼간이 윌슨]은 더구나 그 속에서 흑인을 가리키는 표현들로 논란의 소지까지 있었다고 하니(작품 해설 참조) 마크 트웨인이 인종문제만을 주제로 [얼간이 윌슨]을 썼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이 작품은 아주 순전히 당대 미국 사회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묘사한 소설이다. ‘도슨스랜딩’은 미국이 가진 모순들을 축약한 도시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순이 바로 인종에 대한 문제다. 노예인 록시는 십육분의 일이 흑인 혈통인 백인이다. 그러니까 신체는 백인이나 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노예인 것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삼십이분의 일만이 흑인이다. 같은 날에 태어난 주인집 아들과 다른 점은 외형상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록시는 좋은 옷을 입은 주인집 아들 옆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자기 아들이 훗날 다른 곳으로 팔려가게 될, 가슴 치는 슬픔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마크 트웨인은 인종분리 의식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당대에 과감하게 백인이지만 흑인 노예인 ‘록시’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마크 트웨인이니까 가능했던 작품 발표였다. 이름 없는 작가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일.

 

 록시 그리고 그녀의 아들 톰(록시가 바꿔치기 해서 백인이 되었다가 윌슨의 증명으로 다시 노예 신분이 되는 비운의 사나이)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종 아이러니의 핵심은 ‘돈과 체면’이다. 현재도 천민 자본주의가 ‘생각의 정전停電’을 불러오고 덕분에 (창비 출판사가 쓴대로) 문학은 날로 날로 변방으로 밀려가는 중이다. 행복하게 혹은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입을 모으면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의 탄생은 아마 마크 트웨인이 [얼간이 윌슨]을 집필하던 그때부터 시작되었나보다. 마크 트웨인이 [얼간이 윌슨]에 그린 도슨스랜딩을 비롯한 미국의 도시들은 품위, 명예, 재산 등으로부터 비롯된 블랙코미디의 주인공들이 사는 세상이다.

 

 

 문학은 사료로서 읽힐 수 없다. 문학은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은 때로 역사 기록보다 치밀하고 본질적으로 시대를 기록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생각과 동감의 확장이라는 수확을 거두는 게 문학의 기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은 지나간 시대를 생생히 고발하는 목소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짧게는 수십 년 전에 발표된 소설들을 찾아 읽는다. 사료가 채 담지 못한 그때의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은 소설의 다른 이름이다.

 

 초중반부는 막장극, 중후반부는 추리극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나간 [얼간이 윌슨]은 어떻게 보면 참 시시한 작품이다. 중간 중간, 이야기의 맥이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최첨단 과학 수사니 심리 수사니 하는 추리물, 수사물이 드라마와 영화로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지문으로 범인을 증명하는 윌슨의 변호는 퍽 유치하게도 보인다. 도슨스랜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따라서 읽어나가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인물들의 특징과 선택을 따라 읽어나가면 무대 극본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 뭐 하나라도 괜찮게 볼만한 그런 인물은 하나도 없고 다들 저마다의 약점과 악점을 적당히 감추거나 드러낸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있는데 이걸 패러디해서 도슨스랜딩을 표현하자면 ‘약한 놈, 나쁜 놈, 비열한 놈’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가 이십년 이상을 얼간이라고 불러온 사람이야. 그는 이제 그 지위를 사직했네, 친구들.”
 “그래, 그렇지만 얼간이 자리는 공석이 아니야 – 우리가 선출되지 않았나.”
 책 249쪽

 

 [얼간이 윌슨]은 참 희한한 소설이다. 아, 풍자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소설이지.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가 이십년 이상을 얼간이라고 불러온 사람이야. 그는 이제 그 지위를 사직했네, 친구들."
"그래, 그렇지만 얼간이 자리는 공석이 아니야 – 우리가 선출되지 않았나."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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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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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린 지 10년째다. 홈베이킹에 빠져서 순전히 레시피 기록, 공정 기록을 남기려던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에 책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블로그는 아주 사적인 공간이다. 이 ‘사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비밀스럽다’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뜻이다. 온라인에 내가 쓴 포스팅을 오픈한다는 건 불특정 다수에게 ‘나 자신’을 공개한다는 거다. 블로그를 한다는 건 나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니 블로그에는 자연스럽게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만 모인다. 내 블로그의 경우, 베이킹과 책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나 뭐 그런 문화예술 활동들이 그런 것들이다. 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다른 말로 내가 무척이나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 블로그 =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그렇게 10년 정도 책 리뷰를 써오면서 내가 올린 리뷰의 형태는 여러 번 바뀌었다. 내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바뀌어온 것이리라. 처음에는 단순히 ‘이 책 읽고 이런 걸 느꼈다.’ 정도였던 소소한 리뷰가 소위 ‘짬’이 늘면서 점점 허세가 짙어지고 덩치를 부풀리기도 했다. 어떤 시기에는 정말 대충 읽고 썼구나 싶은 리뷰들이 떡하니 포스팅되어 있기도 하고 읽은 책에 대한 애정이 1도 없어 보이는 리뷰들도 여럿 있다. 물론, 모든 책 리뷰가 잘 쓴 리뷰이기는 어렵고 모든 책을 애정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사족이지만, ‘요즘은 진짜 왜 만들었지?’ 싶은 책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해도 책 리뷰를 10년 정도 쓴 블로거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는 책 리뷰가 블로그에 있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흑역사를 지우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내 독서기록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옘병... 일단은 그냥 둔다. 대신 돌파구를 찾아본다. 그래서 작년부터 대체 서평이란 걸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거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숭례문학당의 김민영, 한겨례교육문화센터에서 서평 입문을 가르치는 황선애 강사 둘이 서평쓰기의 기초에 대하여 쓴 책이다. 서평쓰기는 읽기와 쓰기가 병행되는 활동이다. 서평쓰기를 위한 읽기부터 서평의 얼개와 완성까지 단계별 특징들을 간추렸다. 해당 문학당과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평이란 무엇이냐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인터뷰 내용까지 책 뒤에 실려 있다.

 두 명의 저자가 각각 쓰고 싶은 목차 부분을 맡아서 집필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중복되는 부분도 보이고, ‘이런 내용이 왜 이 꼭지에 들어가 있지?’ 싶은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을 좀더 정리하고 책을 냈으면 요점이 확실하고 책도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책은 유익하고 재미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읽기부터 달라야한다는 지적과 서평이라는 글의 구조를 짜는 방법, 얼개에 살을 붙이기 위하여 던져볼만한 질문 등 독후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언들이 쏠쏠하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든가, 책을 읽고 감상을 쓰기는 하는데 좀 더 수준 높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모두 좋을 책이다. 즉, 기초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기초는 있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사다리를 타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읽어도 좋다.

 ‘서평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쓰는 것’이라는 제목에 공감한다. 읽기와 쓰기는 무척이나 사적인 활동이다. 블로그가 개인의 취향을 집합한 사적인 공간이듯, 읽기와 쓰기 역시 서평이 어떤 영향을 불러오든 간에 애초부터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가 나에게 무엇을 주기에 그러냐고? 이 책의 부제는 그런 면에서 참 잘 지었다. '생각 정리의 기술' 서평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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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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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다. 창조할 때에 자기 자신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루어냈을 때 사람이 느끼는 희열보다 더 강한 건 없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증폭되어온 사회 전반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신 소비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과 구조에 있다. 이에 대한 미약한 돌파구로,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 생활에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요리나 미술(그리기), 수공예 등 행위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활동도 있지만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도 있다. 독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언가를 ‘읽기’의 행위는 소비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그리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칠 수 있지만) 읽기는 분명한 창조다. 이승우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은 왜 읽기가 창조 행위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문장을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 이제까지의 전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현재의 상태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략) 우울할 때와 명랑할 때 읽는 책이 같은 감상을 줄 리 없고, 열여섯 살 때와 쉰아홉 살에 읽는 책 역시 그럴 것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55쪽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56쪽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그 해석과 감상의 결과는 제각기 다르다. 작가가 쓴 책에 담긴 문장들이 독자라는 렌즈를 거쳐 각 개인의 고유한 결과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이승우 소설가가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쓴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문장의 속성(책 54쪽)’은 언어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읽기가 창조 행위라는 걸 어떻게 말로 입증(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던 나에게 이 책은 근사한 증거가 된 셈이다.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승우 소설가의 신간이다. 소설 쓰기에 40년을 매진해 온 이승우 작가가 바라본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하여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작가의 삶 등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년에 [모르는 사람들]을 읽은 뒤로부터 이승우 작가의 완전한 팬으로 노선을 정한 나는 그의 신간 [소설가의 귓속말] 앞에서도 내내 팬심을 숨기지 못했다. ‘이승우’라는 이름 만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첫 꼭지부터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 책을을 읽을만한 가치를 쏠쏠하게 보여준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첫 장부터 재밌다.

 

 

 

 최근에 책쓰기 카페를 통해서 만나게 된 예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해부하여 글자로 드러내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승우 소설가 역시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소설 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로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쓰기를 언급한다. 이런 소설 쓰기의 생리를 글쓰기의 특징 전체로도 확장해 보면 ‘글을 쓰면서 힐링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이해가 된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소설가로서의 철학이나 의식들을 담았는데 그 중에는 토마스 만, 허먼 멜빌 등 국내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언급도 많다.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수히 고민한 주인공이 이승우 소설가 자신이기에 책 속의 글들이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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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라이팅 훈련 : 스토리 라이팅 - 2nd Edition ㅣ 영어 라이팅 훈련
한일 지음 / 사람in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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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피디 중에 수학과를 나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취미는 수학 문제집 풀기다. 일을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로 힐링을 삼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레고를 조립하고 누군가는 프라모델을 만들어서 진열하듯 자기에게는 수학 문제들을 한 장, 한 장 풀어 다 푼 문제집들을 쌓아 두는 게 비슷한 느낌의 취미 생활이라고.

 뭔 별난 취미도 다 있다.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맙소사 이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취미로 삼기에 딱 좋은 영어 쓰기 훈련 교재다. 영어 문제집이라고 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이 책은 영어 문제를 맞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영어 쓰기 기술을 기르는 게 목적으로 탄생한 책이니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에 대한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의 장점은 단연 ‘재미’다. 정말 재밌다. 아주 쉬운 단계서부터 서서히, 영어 문장 구조에 따라 표현을 늘려가며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쓰기 훈련을 하게 만드는 책인데 확장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고 이해가 쉬워서 자꾸만 다음 장으로 진도를 빼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5개 챕터에서 문장 훈련을 하고, 거기서 쌓인 표현들을 한데 모아 스토리 라이팅 훈련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반복되는데, 단연 가장 재미있는 건 스토리 라이팅 부분이다.

 

 

 

 

 

 영어로 쓰기 훈련을 위한 책이지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다 풀어보면 쓰기만 아니라 읽기에도 상당히 좋은 작용을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으로 쓰기 훈련을 한 후에 영문 소설을 읽어보니 문장 구조가 더욱 빠른 시간 내에, 더 매끄럽게 파악이 된다.

 어릴 때 영어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거 진짜 재미 없다’고 느꼈던 게 표현의 한계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머리를 맴도는 말들을 속 시원하게 영어로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결국 안 쓰게 되더라. 그때 받았던 조언이 일기쓰기부터 하지 말고 표현 가능한 범위를 확장한 다음에 일기를 써보면 재미있어질 수 있다는 거였는데, 지금 이 책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풀고 나서야 그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단 걸 느낀다.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전략 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부터 해버리면 영어로 쓰기에 흥미만 잃고 나가떨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영어 문장을 전략적으로 해체하여, 뼈대를 잡은 후 살을 붙여나가는 확장 방식으로 쓰기를 훈련하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어 쓰기를 체계적이면서도 쉽게 익힐 수 있게 해준다. 안 그래도 방콕으로 몸살을 앓는 많은 분들에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추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어 쓰기 공부에 빠져들거라고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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