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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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다. 창조할 때에 자기 자신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루어냈을 때 사람이 느끼는 희열보다 더 강한 건 없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증폭되어온 사회 전반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신 소비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과 구조에 있다. 이에 대한 미약한 돌파구로,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 생활에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요리나 미술(그리기), 수공예 등 행위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활동도 있지만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도 있다. 독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언가를 ‘읽기’의 행위는 소비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그리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칠 수 있지만) 읽기는 분명한 창조다. 이승우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은 왜 읽기가 창조 행위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문장을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 이제까지의 전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현재의 상태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략) 우울할 때와 명랑할 때 읽는 책이 같은 감상을 줄 리 없고, 열여섯 살 때와 쉰아홉 살에 읽는 책 역시 그럴 것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55쪽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56쪽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그 해석과 감상의 결과는 제각기 다르다. 작가가 쓴 책에 담긴 문장들이 독자라는 렌즈를 거쳐 각 개인의 고유한 결과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이승우 소설가가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쓴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문장의 속성(책 54쪽)’은 언어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읽기가 창조 행위라는 걸 어떻게 말로 입증(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던 나에게 이 책은 근사한 증거가 된 셈이다.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승우 소설가의 신간이다. 소설 쓰기에 40년을 매진해 온 이승우 작가가 바라본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하여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작가의 삶 등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년에 [모르는 사람들]을 읽은 뒤로부터 이승우 작가의 완전한 팬으로 노선을 정한 나는 그의 신간 [소설가의 귓속말] 앞에서도 내내 팬심을 숨기지 못했다. ‘이승우’라는 이름 만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첫 꼭지부터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 책을을 읽을만한 가치를 쏠쏠하게 보여준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첫 장부터 재밌다.

 

 

 

 최근에 책쓰기 카페를 통해서 만나게 된 예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해부하여 글자로 드러내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승우 소설가 역시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소설 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로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쓰기를 언급한다. 이런 소설 쓰기의 생리를 글쓰기의 특징 전체로도 확장해 보면 ‘글을 쓰면서 힐링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이해가 된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소설가로서의 철학이나 의식들을 담았는데 그 중에는 토마스 만, 허먼 멜빌 등 국내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언급도 많다.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수히 고민한 주인공이 이승우 소설가 자신이기에 책 속의 글들이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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