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윌슨 창비세계문학 31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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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간이 윌슨]은 189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작품 발표 후 100년이 넘게 흘러오면서 그간 [얼간이 윌슨, 이야기]라든가 [얼간이 윌슨의 비극]이라든가 이런저런 제목들이 붙어 왔지만 창비는 세계문학 시리즈를 내면서 [얼간이 윌슨]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출간했다. 


 작품 속에서 타이틀롤인 ‘윌슨’은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축이긴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하다. 캐릭터 면에서 윌슨을 압도하는 록시도 있고, 작품의 위기와 그 결말에서 뺄 수 없는 시선강탈자인 톰도 있다.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 등을 읽다보면 등장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 따로 노트를 하면서 읽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소설도 독자에게 그런 정성을 요구한다. 인물이 무척 많으므로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때문에 이 작품에는 부제가 필요하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윌슨을 위풍당당하게 얼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노예 아가와 백인 아가의 신분을 바꿔치기 하는 대범한 여자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동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에 담자면 바로 작품의 장소 ‘도슨스랜딩’이 되리라. [얼간이 윌슨]에는 ‘얼간이들의 도시, 도슨스랜딩’이라는 부제가 붙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이 인종차별 자체만을 두고 이 작품을 썼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얼간이 윌슨]의 작품해설에도 실려 있지만, 링컨 대통령만 해도 인간 존엄의 차원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에서 노예제 폐지에 선 인물이었고 남북전쟁 후 미국사회는 노예제가 폐지되고 인종에 대한 국민 의식이 양화되는 방향으로는 결코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중에 하나인 [미국의 아들]이 발표된 1940년까지도 아주 집요하고 완고한 인종차별 의식이 미국의 뿌리를 지배하고 있었으니, [얼간이 윌슨]이 발표된 1894년의 상황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그런 상황에서 인종분리에 대한 진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은 적어도 백인들 사이에선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본다. [헬프]가 영화화되었을 때 어느 흑인 비평가가 노예제의 참상을 백인의 시선으로 그린 망작이라고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 자체가 맞는 말이라기보다 피해자의 심정을 가해자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한계의 측면에서 저 비판에 일부 공감했다. 노예제를 바라보는 백인의 시선이 아무리 민첩해도 그 아이러니를 고발하는 날렵함은 흑인 작가를 능가할 수 없다는 건 [빌러비드]나 [미국의 아들] 같은 작품까지 예로 들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얼간이 윌슨]은 더구나 그 속에서 흑인을 가리키는 표현들로 논란의 소지까지 있었다고 하니(작품 해설 참조) 마크 트웨인이 인종문제만을 주제로 [얼간이 윌슨]을 썼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이 작품은 아주 순전히 당대 미국 사회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묘사한 소설이다. ‘도슨스랜딩’은 미국이 가진 모순들을 축약한 도시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순이 바로 인종에 대한 문제다. 노예인 록시는 십육분의 일이 흑인 혈통인 백인이다. 그러니까 신체는 백인이나 흑인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노예인 것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은 삼십이분의 일만이 흑인이다. 같은 날에 태어난 주인집 아들과 다른 점은 외형상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록시는 좋은 옷을 입은 주인집 아들 옆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자기 아들이 훗날 다른 곳으로 팔려가게 될, 가슴 치는 슬픔을 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마크 트웨인은 인종분리 의식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당대에 과감하게 백인이지만 흑인 노예인 ‘록시’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발표했다. 마크 트웨인이니까 가능했던 작품 발표였다. 이름 없는 작가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일.

 

 록시 그리고 그녀의 아들 톰(록시가 바꿔치기 해서 백인이 되었다가 윌슨의 증명으로 다시 노예 신분이 되는 비운의 사나이)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종 아이러니의 핵심은 ‘돈과 체면’이다. 현재도 천민 자본주의가 ‘생각의 정전停電’을 불러오고 덕분에 (창비 출판사가 쓴대로) 문학은 날로 날로 변방으로 밀려가는 중이다. 행복하게 혹은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입을 모으면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의 탄생은 아마 마크 트웨인이 [얼간이 윌슨]을 집필하던 그때부터 시작되었나보다. 마크 트웨인이 [얼간이 윌슨]에 그린 도슨스랜딩을 비롯한 미국의 도시들은 품위, 명예, 재산 등으로부터 비롯된 블랙코미디의 주인공들이 사는 세상이다.

 

 

 문학은 사료로서 읽힐 수 없다. 문학은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은 때로 역사 기록보다 치밀하고 본질적으로 시대를 기록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 생각과 동감의 확장이라는 수확을 거두는 게 문학의 기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은 지나간 시대를 생생히 고발하는 목소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짧게는 수십 년 전에 발표된 소설들을 찾아 읽는다. 사료가 채 담지 못한 그때의 공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은 소설의 다른 이름이다.

 

 초중반부는 막장극, 중후반부는 추리극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나간 [얼간이 윌슨]은 어떻게 보면 참 시시한 작품이다. 중간 중간, 이야기의 맥이 끊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최첨단 과학 수사니 심리 수사니 하는 추리물, 수사물이 드라마와 영화로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지문으로 범인을 증명하는 윌슨의 변호는 퍽 유치하게도 보인다. 도슨스랜딩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따라서 읽어나가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인물들의 특징과 선택을 따라 읽어나가면 무대 극본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선하고 정의로운 인물, 뭐 하나라도 괜찮게 볼만한 그런 인물은 하나도 없고 다들 저마다의 약점과 악점을 적당히 감추거나 드러낸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가 있는데 이걸 패러디해서 도슨스랜딩을 표현하자면 ‘약한 놈, 나쁜 놈, 비열한 놈’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가 이십년 이상을 얼간이라고 불러온 사람이야. 그는 이제 그 지위를 사직했네, 친구들.”
 “그래, 그렇지만 얼간이 자리는 공석이 아니야 – 우리가 선출되지 않았나.”
 책 249쪽

 

 [얼간이 윌슨]은 참 희한한 소설이다. 아, 풍자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소설이지.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가 이십년 이상을 얼간이라고 불러온 사람이야. 그는 이제 그 지위를 사직했네, 친구들."
"그래, 그렇지만 얼간이 자리는 공석이 아니야 – 우리가 선출되지 않았나."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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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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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린 지 10년째다. 홈베이킹에 빠져서 순전히 레시피 기록, 공정 기록을 남기려던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에 책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블로그는 아주 사적인 공간이다. 이 ‘사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비밀스럽다’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뜻이다. 온라인에 내가 쓴 포스팅을 오픈한다는 건 불특정 다수에게 ‘나 자신’을 공개한다는 거다. 블로그를 한다는 건 나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니 블로그에는 자연스럽게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만 모인다. 내 블로그의 경우, 베이킹과 책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나 뭐 그런 문화예술 활동들이 그런 것들이다. 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다른 말로 내가 무척이나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 블로그 =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그렇게 10년 정도 책 리뷰를 써오면서 내가 올린 리뷰의 형태는 여러 번 바뀌었다. 내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바뀌어온 것이리라. 처음에는 단순히 ‘이 책 읽고 이런 걸 느꼈다.’ 정도였던 소소한 리뷰가 소위 ‘짬’이 늘면서 점점 허세가 짙어지고 덩치를 부풀리기도 했다. 어떤 시기에는 정말 대충 읽고 썼구나 싶은 리뷰들이 떡하니 포스팅되어 있기도 하고 읽은 책에 대한 애정이 1도 없어 보이는 리뷰들도 여럿 있다. 물론, 모든 책 리뷰가 잘 쓴 리뷰이기는 어렵고 모든 책을 애정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사족이지만, ‘요즘은 진짜 왜 만들었지?’ 싶은 책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해도 책 리뷰를 10년 정도 쓴 블로거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는 책 리뷰가 블로그에 있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흑역사를 지우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내 독서기록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옘병... 일단은 그냥 둔다. 대신 돌파구를 찾아본다. 그래서 작년부터 대체 서평이란 걸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거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숭례문학당의 김민영, 한겨례교육문화센터에서 서평 입문을 가르치는 황선애 강사 둘이 서평쓰기의 기초에 대하여 쓴 책이다. 서평쓰기는 읽기와 쓰기가 병행되는 활동이다. 서평쓰기를 위한 읽기부터 서평의 얼개와 완성까지 단계별 특징들을 간추렸다. 해당 문학당과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평이란 무엇이냐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인터뷰 내용까지 책 뒤에 실려 있다.

 두 명의 저자가 각각 쓰고 싶은 목차 부분을 맡아서 집필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중복되는 부분도 보이고, ‘이런 내용이 왜 이 꼭지에 들어가 있지?’ 싶은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을 좀더 정리하고 책을 냈으면 요점이 확실하고 책도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책은 유익하고 재미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읽기부터 달라야한다는 지적과 서평이라는 글의 구조를 짜는 방법, 얼개에 살을 붙이기 위하여 던져볼만한 질문 등 독후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언들이 쏠쏠하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든가, 책을 읽고 감상을 쓰기는 하는데 좀 더 수준 높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모두 좋을 책이다. 즉, 기초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기초는 있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사다리를 타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읽어도 좋다.

 ‘서평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쓰는 것’이라는 제목에 공감한다. 읽기와 쓰기는 무척이나 사적인 활동이다. 블로그가 개인의 취향을 집합한 사적인 공간이듯, 읽기와 쓰기 역시 서평이 어떤 영향을 불러오든 간에 애초부터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가 나에게 무엇을 주기에 그러냐고? 이 책의 부제는 그런 면에서 참 잘 지었다. '생각 정리의 기술' 서평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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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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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다. 창조할 때에 자기 자신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루어냈을 때 사람이 느끼는 희열보다 더 강한 건 없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증폭되어온 사회 전반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신 소비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과 구조에 있다. 이에 대한 미약한 돌파구로,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 생활에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요리나 미술(그리기), 수공예 등 행위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활동도 있지만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도 있다. 독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언가를 ‘읽기’의 행위는 소비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그리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칠 수 있지만) 읽기는 분명한 창조다. 이승우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은 왜 읽기가 창조 행위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문장을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 이제까지의 전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현재의 상태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략) 우울할 때와 명랑할 때 읽는 책이 같은 감상을 줄 리 없고, 열여섯 살 때와 쉰아홉 살에 읽는 책 역시 그럴 것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55쪽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56쪽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그 해석과 감상의 결과는 제각기 다르다. 작가가 쓴 책에 담긴 문장들이 독자라는 렌즈를 거쳐 각 개인의 고유한 결과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이승우 소설가가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쓴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문장의 속성(책 54쪽)’은 언어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읽기가 창조 행위라는 걸 어떻게 말로 입증(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던 나에게 이 책은 근사한 증거가 된 셈이다.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승우 소설가의 신간이다. 소설 쓰기에 40년을 매진해 온 이승우 작가가 바라본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하여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작가의 삶 등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년에 [모르는 사람들]을 읽은 뒤로부터 이승우 작가의 완전한 팬으로 노선을 정한 나는 그의 신간 [소설가의 귓속말] 앞에서도 내내 팬심을 숨기지 못했다. ‘이승우’라는 이름 만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첫 꼭지부터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 책을을 읽을만한 가치를 쏠쏠하게 보여준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첫 장부터 재밌다.

 

 

 

 최근에 책쓰기 카페를 통해서 만나게 된 예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해부하여 글자로 드러내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승우 소설가 역시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소설 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로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쓰기를 언급한다. 이런 소설 쓰기의 생리를 글쓰기의 특징 전체로도 확장해 보면 ‘글을 쓰면서 힐링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이해가 된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소설가로서의 철학이나 의식들을 담았는데 그 중에는 토마스 만, 허먼 멜빌 등 국내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언급도 많다.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수히 고민한 주인공이 이승우 소설가 자신이기에 책 속의 글들이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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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라이팅 훈련 : 스토리 라이팅 - 2nd Edition 영어 라이팅 훈련
한일 지음 / 사람in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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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피디 중에 수학과를 나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취미는 수학 문제집 풀기다. 일을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로 힐링을 삼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레고를 조립하고 누군가는 프라모델을 만들어서 진열하듯 자기에게는 수학 문제들을 한 장, 한 장 풀어 다 푼 문제집들을 쌓아 두는 게 비슷한 느낌의 취미 생활이라고.

 뭔 별난 취미도 다 있다.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맙소사 이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취미로 삼기에 딱 좋은 영어 쓰기 훈련 교재다. 영어 문제집이라고 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이 책은 영어 문제를 맞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영어 쓰기 기술을 기르는 게 목적으로 탄생한 책이니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에 대한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의 장점은 단연 ‘재미’다. 정말 재밌다. 아주 쉬운 단계서부터 서서히, 영어 문장 구조에 따라 표현을 늘려가며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쓰기 훈련을 하게 만드는 책인데 확장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고 이해가 쉬워서 자꾸만 다음 장으로 진도를 빼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5개 챕터에서 문장 훈련을 하고, 거기서 쌓인 표현들을 한데 모아 스토리 라이팅 훈련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반복되는데, 단연 가장 재미있는 건 스토리 라이팅 부분이다.

 

 

 

 

 

 영어로 쓰기 훈련을 위한 책이지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다 풀어보면 쓰기만 아니라 읽기에도 상당히 좋은 작용을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으로 쓰기 훈련을 한 후에 영문 소설을 읽어보니 문장 구조가 더욱 빠른 시간 내에, 더 매끄럽게 파악이 된다.

 어릴 때 영어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거 진짜 재미 없다’고 느꼈던 게 표현의 한계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머리를 맴도는 말들을 속 시원하게 영어로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결국 안 쓰게 되더라. 그때 받았던 조언이 일기쓰기부터 하지 말고 표현 가능한 범위를 확장한 다음에 일기를 써보면 재미있어질 수 있다는 거였는데, 지금 이 책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풀고 나서야 그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단 걸 느낀다.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전략 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부터 해버리면 영어로 쓰기에 흥미만 잃고 나가떨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영어 문장을 전략적으로 해체하여, 뼈대를 잡은 후 살을 붙여나가는 확장 방식으로 쓰기를 훈련하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어 쓰기를 체계적이면서도 쉽게 익힐 수 있게 해준다. 안 그래도 방콕으로 몸살을 앓는 많은 분들에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추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어 쓰기 공부에 빠져들거라고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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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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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미국 독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공 비거 토마스가 ‘살인까지 하도록 만든 건 나 자신’이라고 소리치는 결말에 이르러 그를 변호하던 맥스조차 말을 잇지 못했는데, 아마 그 때의 맥스의 표정이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의 표정이었으리라. 백인 여성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낸 걸로도 모자라 그 사체를 난로에 넣어 태워버린 후, 그 여성의 집에 납치범을 가장하여 편지를 보내기까지 한 스무살 흑인 남성의 대범하고도 파격적인 범죄 행각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충격은 그 사건의 이면에 도사린 증오의 면면을 파고드는 저자의 묘사에서 온다.

 

 

 [미국의 아들]은 아주 깊고 예리한, 가혹한 인종차별의 실태와 그 결과를 그렸다. 리처드 라이트가 발견한 인종차별의 가장 파괴적인 본질은 현대사회 특히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에 있다. 찰리 채플린이 1914년 <모던 타임스>에서 풍자한 인간의 도구화, 사물화는 리처드 라이트가 [미국의 아들]을 발표한 1940년에는 더욱 심화된 상태였다. 리처드 라이트는 ‘비거는 어떻게 태어났는가?’라는 글에서 비거 토마스는 흑인일 뿐 아니라 백인이기도 하고, 세상 어디에나 있다고 썼다. 미국 뿐 아니라 나치 독일과 제정러시아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비거 토마스’의 감정 상태, 그 감정을 촉발한 사회 요소와 구조, 이 모든 것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며 촉발되는 피해자들과 범죄자들을 예리하게 관찰한 리처드 라이트는 그 관찰의 결과인 [미국의 아들]이라는 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인종의 문제를 다룬 작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의 아들]은 곧 산업사회의 아들이다. 인간을 철저하게 소외시켜 처절한 고립감과 열등감에 파묻고 결국 분노에 사무쳐 비윤리적이고 변태적인 일탈 행위에 이르게 만드는 우리들의 사회.

 

 


이 청년의 운명을 결정할 때 이 법정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청년의 범행이 우발적으로 행해지긴 했지만 터져나온 감정은 이미 존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청년의 생활 방식이 곧 범죄였다는 점, 이번 범죄는 메리 돌턴을 살해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는 점, 이번 범죄의 우발적 성격은 이 청년이 베일 뒤에 숨어 살다가 그 베일을 갑자기 확 찢어버리는 식으로, 그리하여 원한과 소외감이 폭발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식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의 아들] (큰글자)책 2권 176쪽

 

 비거 토마스는 변변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조차 익히지 못했다. 가정 내에서조차 그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주변인들과 그 어떤 소통과 교류도 나누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소외된 채 살아왔다. 그런 비거 토마스가 인간다운 대화를 나눈 유일한 인물은 맥스였다. 그를 변호하는 데에 지원한 유태인 변호사 맥스와의 대화를 통하여 비거는 비로소 자기가 살인까지 하게 만든 자기 안의 자신을 입밖으로 꺼내는 데에 이른다. 맥스와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면서 비거는 ‘살인까지 하게 만든 그것이 나다’라고 선포하듯 말하고 사형대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말로 보여주어야만 자기가 한 것들이 무가치한 것들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살인은 자신이 선택한 행위였고 그것을 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인정 없이는 도저히 죽을 수도 없었던 비거 토마스의 정체성은 이토록 빈곤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하여 일말의 후회나 죄책감조차 없는 절대 악인. 그 악의 동기는 악감정이었고 그 악감정은 꽃 같은 생명을 앗아갔다. 자기 정체성을 알고 찾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공급받지 못했고 그럴 기회조차 박탈당한 비거 토마스를 통해 작가 리처드 라이트는 악인의 행위 자체도 흉악하지만 그런 악인을 배양하는 사회는 얼마나 더 흉악한 것인지를 묻는다.
 
 최근에 한국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을 기함시키는 범죄들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이춘재나 오원춘 같은 연쇄살인범들이나 n번방의 박사들, 그리고 혐오범죄나 분노범죄가 번갈아가면서 뉴스가 되었다. 속된 말로 별 거지같은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제 웬만한 범죄들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 그런 시국에 [미국의 아들]은 특정 인종이 받은 사회적, 국가적 핍박과 탄압이 아니라 인간을 착취하는 거대한 착즙기 같은 산업사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읽힌다. 맥스가 비거 토마스의 변호를 맡은 이유는 그의 우발적 범행에 참작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거 토마스와 같은 범죄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그 범죄 동기를 낱낱이 해부하여 범죄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둔다면 두 번째 메리 돌턴이나 베시(비거가 죽인 두 여성)는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그 또래의 대부분의 소년보다 어립니다. 깊고 폭넓은 삶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에게 감정의 분출구는 일과 성, 단 두 가지였습니다. 이것들마저도 피고인은 가장 나쁘고 천한 형태로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큰글자) 2권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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