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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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랄하다. 정말.

어쩜 이렇게 노골적이고 가혹할 수 있을까. 독자는 독자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사정없이 잘근잘근 다져 '그런 식으로 책을 읽지도, 쓰지도 마.'라며 매몰차게 등짝 스매싱을 갈기는 이 책은 참 야무지다. 20대의 당돌함과 천재 작가의 명철함이 치열하게 공존하는 [살인자의 건강법], 이 한 권으로 저자는 그녀와 같은 당돌함과 명철함을 가진 20~30대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름도 무지하게 길고 어려운 특이병으로 얼마 있다 숨이 넘어갈 예정이신 고령의 작가 선생은 그의 비서를 통해 일부러 기자 인터뷰를 하겠다고 판을 벌려놓고는 기자를 한명씩 그의 앞으로 끌어들인다. 흡사 한니발 교수가 그를 면회하러 온 프로파일러들을 가지고 놀며 따분함을 달래는 섬뜩한 영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자들 집단 능욕' 대목에서는 일단, 이 고령의 작가 선생이 대체 어떤 작자인지를 알게 된다. 치과에 신경치료일을 예약해 놓고 차례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마냥, 이 작가 선생님은 기자를 한명씩 그야말로 '멘붕'시키며 매우 큰 만족감을 얻는다.

 

 

“그럴 수밖에. 중상 모략가들한테 책잡힐 거리를 제공하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기자 양반은 상상도 못하실 거요.”

“아하! 그렇다면 그건 친절이 아닙니다, 타슈 선생님. 마조히즘과 과대망상증의 어정쩡한 결합일 뿐이지요.”

“됐소, 됐다고! 뜻도 모르는 말 좀 그만 쓰시오. 문제는 순수한 선의란 말이오, 젊은 양반! 당신 생각으로는 어떤 책들이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을 것 같소? 톰 아저씨네 오두막? 레미제라블? 물론 아니지. 그 책들은 말이오,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야심을 담고 있소. 암, 정말이지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는 책은 극히 드물다오. 그런 책들은 말이오, 고독과 비천함 속에서 탄생한다오. 작가는 잘 알고 있지. 그것들을 세상에 던져놓고 나면 더 외로워지고 더 비천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럴 수밖에. 사심 없는 친절의 본질은 알아보기 힘들다든가 알아볼 수 없다든가 보이지 않는다든가 예상할 수 없다든가 하는 것이거든... 드러내놓고 베푸는 선행은 사심 없는 선행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 방금 하신 말씀에서 모순이 보이는데요. 진정한 친절이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선생님께선 자신이 친절하다고 목청껏 외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허어, 난 내 맘대로 해도 되오. 어쨌든 아무도 날 믿지 않을테니까.”

p65

 

“사실대로 말씀 드릴까? 정말로 지적이고 총명한 사람들은 이 이렇게 설명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소. 변변찮은 자들이 뭐든 설명해주길 바라지. 설명되지 않는 것까지도. 어차피 설명해봐야 멍청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설명해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내가 뭐하러 설명 같은 걸 하겠소?”

“저더러 못나고 둔하고 어리석다고 하시더니, 이젠 변변찮다고까지 하시는 겁니까?”

“이 양반한테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니까.”

p68

 

 

좋은 말로 괴팍한 할아버지고 나쁜 말로는 그냥 미친 영감이다. 나는 처음에 이 작가 선생께서 인생의 지루함을 달래시느라 일부러 그러시는 줄 알았다. 일부러 기자들의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놀려주는 것 아닌가 했다. 아, 그런데 이 분은 진심이셨다. 진심으로 기자들 나아가 독자들의 가식과 위선을 요기조기 쪽쪽 후벼판 것이다. 뭐, 작가 선생님이시니 무지한 독자들을 사정없이 꼬집는 거야 그렇군, 할 수도 있는데, 작가들도 깐다. 대놓고 깐다. 어느새 나도 기자의 입장이 되어 뭐 이런 노인네가 다 있어, 할 즈음에 (나의 약점을 이렇게 대놓고 꼬집는데 기분이 산뜻하고 경쾌할리 없다) 내 또래의 여기자 하나가 그를 방문한다. 5번째 인터뷰어, 니나. 헐, 이 기자는 초반부터 그 남다른 아우라를 서슴없이 풀어놓고는 차츰차츰 이 노작가를 압박한다. "이봐요,. 당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짓들을 나는 알고 있단 말이요." 꼬장꼬장하고 성질 사나운 노작가가 칭찬할 정도의 명철함으로 그를 압박한 결과, 5번째 인터뷰는 니나의 승리....... 인 듯 보였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엔딩에 가서 승자는 불분명해 진다. 니나를 그의 화신으로 삼고 운명한 노작가를 최후 승리자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지.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오, 니나.”

“제발 사랑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살인 충동이 치밀어 오르거든요.”

“그럴 리가? 그것 보시오, 니나, 그건 그렇세 시작되는 거라오.”

“그건 이라니요?”

“사랑 말이오. 내가 당신한테 그 황홀경을 일깨워주었단 말이오.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구려, 니나. 그 살인 충동은 나로 죽어 다시 당신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라오. 당신은 이제 막 살기 시작한 거요. 그게 느껴지오?”

“지금 느껴지는 거라곤 엄청난 분노뿐입니다.”

“난 지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있소. 나도 여느 평범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부활이란 사후에나 일어나는 현상인 줄 알았소. 그런데 내가 살아서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당신이 내가 되어 가다니!”

“그렇게 심한 욕은 처음 듣습니다.”

“그렇게 격분하는 것 자체가 당신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오, 니나. 이제부터 당신은 계속해서 격노하게 될 거요. 예전의 나처럼 말이오. 허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저주를 퍼부으며 황홀경에 빠지겠지. 당신은 분노의 귀재가 될 거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라오.”

p247

 

 

이토록 다정하게 '니나'라고 부르고 있지만, 본래 이 양반 누군가를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는 법이 없다. 그냥 기자양반, 비서, 당신 뭐 이런 식이었지. 마치 첫사랑 레오폴딘을 대하는 것 마냥 말랑말랑한 태도로 니나를 대하는 작가 선생을 보고 있자니 또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양반, 자기 소설 완성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냐? 아닌가? 죽음을 앞두고 이 미련하고 무지하고 파렴치한 세상에 자신의 분신으로 두고 가기에 딱 적합한 인재가 나타난 상황에서 작가 선생님은 그의 죽음을 자처함으로써 니나를 타슈화시키기에 성공한다. BBC 드라마 셜록의 2시즌 마지막 편에서, 셜록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리아티가 셜록의 눈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해 그의 범죄를 완벽한 성공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던진 충격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엔딩. 그러니까 최후 승리자는 결국 이 작가 선생이라고.

 

어쩌면 최후 승리자는 레오폴딘일 수 있다. 일평생 이 작가를 지배하면서 작가 머릿속에서 내내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니나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 속에서 살아 있을 테니. 어쩌면 독자들일수 있다. 여전히 공기하나 통하지 않는 우주복을 입고 피칠갑의 책장 사이를 공기처럼 날아가며 '아, 다 읽었다. 이 책도 재밌네.'하고 잊어버릴 수 있다면. 뭐 승리자가 누구인들 어떠랴. 이것은 책의 일인 것을.

다만, 저자가 책의 인물들 특히 작가 선생의 입을 빌어 독자와 작가들에게 던진 대포같은 일침들이 무척이나 따갑다. 이 따끔함을 우리에게 선사한 저자 아멜리 노통브만이 유일한 승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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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 필맥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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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박문출판사에서 보완하여 새로 내고, 저자가 원고를 집필한 것은 1939~1940년이라고 하니 이 책의 나이는 태동부터 치면 대략 70살쯤 된다. 그간 수많은 출판사에서 연이은 교정본을 낸 이 책은 아직도 서점 어딘가에서 정정한 기력을 떨치며 하얗게 쇤 수염을 가다듬고 있을거다. 이 책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워낙 오래전에 세상에 나온 책이라 나는 딱히 흥미가 가지 않았다. [문장강화]라고 제목을 달고 있는데 문장에도 유행이 있고 나이가 있고 시대가 있어서 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걸맞는 문장이 있고 그에 따라 문장을 강화하는 방법 또한 달라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권두에서부터 시대마다 문장이 다르다고 분명하게 써놓았으니. 그러나 백년전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가 빛깔은 다르지만 그 말을 뱉을 때 혹은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따스함은 여전한 것처럼 (물론, 이 역시 사람마다 다르리라 생각한다) 문장에도 그러한 법칙이 있다. 이 책은 시대를 불문하고 글(장르를 불문하고) 을 쓰는 이가 가져야 할 좋은 글에의 시도 방법와 접근로를 안내하고 있다.

 

 

문장작법에 대한 설명을 가장 기본으로 두고 문장의 종류로 쪼개서 들어갔다가 그 문장이 집결해 완성하는 글의 종류로 커졌다가 글의 완성도와 매력을 좌우하는 문체까지 두루 다듬어보는 이 책을 읽고나면 왜 이 책이 이렇게 유명한지, 이 나이가 되도록 도포 자락 나부끼며 그 운중한 기운을 유지하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70년이라는 간극 때문에, 설명을 위한 인용글이나 문장에서 혹은 설명 스타일 자체에서 오래된 책방의 삭은 종이냄새가 어쩔 수 없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은 책이다. 올해 초까지 유독 많이 출간되던 여타의 '글쓰기 안내서'에서는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글쓰기의 품격'을 지키며 글쓰기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전통마을 서당에 가면 뵐 수 있는 위엄있으면서도 자상한 서당 선생님같은 느낌이랄까.

 

 

 어려운 한자어나 복잡하고 현란하고 무진장 긴 문장을 구사했기 때문에 '품격'이 느껴진다고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글의 품격은 얼마나적법한 어휘와 표현을 구사했는지와 독창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문장과 내용을 담았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이 인용한 글과 문장 그리고 이 책 자체가 품격있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근데, 아무래도 옛 글이 많이 인용되다 보니 엄청난 한자어, 생전 처음 읽는 한자어도 종종 등장했다. 친절한 각주가 없었으면 이 책의 품격을 이해하는 데 머리 꽤나 굴려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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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청소년 모던 클래식 1
빅토르 위고 지음, 박아르마.이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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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는 이 비극의 주인공이 콰지모도라고 생각했다. 에스메랄다가 베푼 단 한번의 호의에 구원을 얻은 불쌍한 꼽추, 콰지모도. 괴팍하고 사납지만 순수하고 강인한 영혼을 가진 이 생명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라고만 여겼다. 에스메랄다는 허영에 눈이 먼 멍청한 여자였고 클로드 부주교는 비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변태 아저씨로만 생각했다. 아... 그러나! 명작이 왜 명작이던가. 언제 읽어도 그 시대의 것인양 생생하고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것인양 새로운 작품이 명작아닌가. 콰지모도의 비애에 흠뻑 취해보자 싶어 다시 읽게 된 노트르담 드 파리(노틀담의 꼽추가 아니다!)는 역시 명작이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번역본이 대부분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 작품의 처음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콰지모도다. 첫 씬부터 병신 교황으로 등장해 비장한 엔딩까지 장식하는 인물인만큼 당연히 그 주목을 안 받을 수 없겠다. 하지만 이 콰지모도의 등장에 앞서 콰지모도가 노트르담의 영혼 중 하나가 되도록 포석을 깐 이가 있었으니 바로 클로드 부주교다. 콰지모도가 노트르담에 살 수 있도록 거둔 사람이며 에스메랄다를 향해 뒤틀린 연정을 품고 결국 그녀와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중하다못해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부주교야말로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비극의 시작이자 중추다.

 

 

콰지모도나 에스메랄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부주교는 당연히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식의 경악할만한 인물이겠지만, 부주교의 성장과정과 그의 환경을 생각해볼때 이 부주교가 에스메랄다에게 펼친 잘못된 방식의 사랑과 그의 선택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남들보다 비상한 머리, 혈육에 대한 엄격한 애정(여기에는 콰지모도까지 포함), 진지하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그에게 '신부'라는 직업은 최선인 동시에 최악이었던 것 같다. 몸의 욕망조차 학문의 힘으로 이겨내는 타입의 천상 학자인 이 사람에게 '신부'는 최선의 직업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겠지만 정서적으로는 최악의 환경에 그를 가뒀다. 사람들과 접촉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그의 환경은 그의 폐쇄성을 더욱 강화했고 신부라는 직업에 받는 경외는 자연스럽게 그의 고압적이고 오만한 성품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진 '혈육에 대한 엄격한 애정'이 내재한 그의 깊은 고독은 어떤 출구도 만나지 못한 채 35년을 갇혀있었다. 그 자신도 몰랐던 이 깊은 고독이 에스메랄다를 향해 폭발하면서 노트르담 드 파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에스메랄다는 (당연하게도) 그의 애정을 거부했고 난생 처음 뼈아픈 거절을 경험한 이 부주교는 결국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야 만다. 그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족 - 동생과 콰지모도-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소유하려고 했으나 이런 방식의 연모가 끝이 좋을리가 없다. 난생처음 겪는 애정과 애증(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해 본적도, 증오해 본적도 처음이리라) 속에 이 불쌍한 총각은 결국 사고를 친다. 그래서 사람이 책만 보면 안된다. (만일 클로드 부주교가 시장의 상인이나 하다못해 거리의 악사였다면 아마 그는 에스메랄다에게 이토록 기형적인 연정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선택은 구구절절 틀린 것이었고 에스메랄다는 그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나는 노트르담 구석구석 서린 그의 고독함에 연민을 느꼈다. 이 불쌍한 사람. 자신의 외로움을 자신마저 알아주지 못했던 가여운 사람. 당신도 노트르담의 가련한 영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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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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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본드라마(만화 원작)의 주인공 호타루는 연애세포가 죽은 직장녀다. 퇴근 후 남자를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보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아무거나 대충 걸친 채 마루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키는 게 더 좋은 여자다.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감정소모도 귀찮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쁘게 차려 입는 데에도 취미가 없다. 혼자라도 세상은 살만하고 곁에 누가 있으면 신경 쓰이는 일 투성이라 끈적한 관계는 이쪽에서 먼저 사양이다. 세상은 이 여자를 건어물녀라 부른다. 비쩍 마른 거란 말이지.

 

17년하고도 11개월 동안 레나의 세계가 그랬다. 바짝 마른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혼자다. 밥을 주는 누군가는 있어도 정서적으로 먹이고 입히는 누군가는 없다. 남편이나 친구도 없다. 함께 살고 대화를 나누고 종종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함께 웃지만 그들은 동거인이나 직장 동료 혹은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세계가 그렇다. 부모는 아이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절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해리포터의 세계에서 ‘볼드모트’라는 이름이 가진 극한의 공포 -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는 레나의 세계에서 ‘사랑’이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세계의 사람들은 18살이 되면 반드시 ‘치료’를 거친다. 정부는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랑‘을 인간의 중추신경에서 거세해 버린다.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질병 ‘아모르 델리아 너보사’의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삶의 모든 것이 통제되는 그 곳, 포틀랜드. 건어물녀 건어물남의 천국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 건조하고 삭막한 포틀랜드가 있다.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의 작가 로렌 올리버는 이미 사춘기 소녀의 애잔한 성장기 속에 사랑과 선택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적이 있다. 두 번째 작품인 [딜러리엄]에서는 그 고민의 폭이 보다 광활해졌다. ‘사랑은 무엇일까’ 단순히 호흡이 가빠지고 극심한 망상과 정체성 혼란을 비롯한 각종 정신질환 및 식욕부진과 불면증을 동반해 결국 사람을 망치고 마는 어떤 것일까. ‘사랑이 없다면 인류는 안정한가’, 사랑이라는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인류는 합리적이고 완전하고 안정한 세계를 구현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진실 속에서 살고 있는가.’ 내가 믿는 모든 사람은 과연 믿을만한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은 어디까지가 완전한 진실인가.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알 수 없는 공포와 고독함에 시달리는 나는, 나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이 겨우 17년하고도 11개월을 살았을 뿐인 외로운 여자아이 레나에게 쏟아진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독자는 레나와 더불어 이 막막한 질문 세례 속을 바짝 긴장한 채 달려간다.

 

그러나 옹골찬 책 두께와 진지한 질문 폭격에 미리 질려 책의 첫 페이지를 열지 못할 정도로 겁먹는 이는 없어야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랑’이야기다. 남들의 타박과 멸시에도 아랑곳없이 딸에게 전적인 애정을 쏟은 엄마의 사랑이야기이자,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절대 겪게 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려는 청년의 사랑이야기다. 그 사랑이 결코 질병이 아님을, 오히려 또 다른 세계, 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완전한 세계로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여자(더 이상 여자아이가 아니다)의 사랑이야기다. 그러니 일단 책을 펴자. 레나가 알렉스를 만나는 장면부터는 아마 책을 놓으라고 옆에서 누가 사정해도 놓지 못할 것이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병은 나를 죽일 거다. 이게 나를 죽일 거다. 나를 죽일 것이다. 죽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다.

P255

한밤중에, 알렉스와 키스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온 레나의 독백 중에서

 

 

그렇다. 사랑은 우리를 죽인다. 20년을 살아온 사람은 20년의 시간이 죽고 30년을 살아온 사람은 30년의 시간이 죽는다. 내 머릿속의 이성이 죽고 상식이 죽는다. ‘사랑’이 나를 덮치기 전까지 내게 소중했던 모든 것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죽는다. 사랑은 끝내 우리를 다 죽일 것이다. 그리고 곧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무언가로, 생기 있게 빛나는 누군가로.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 없던 적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내가 모르는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이제 겨우 시리즈의 첫 권, 레나는 이 ‘사랑’을 발견하고 깨달았다.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의 길이 끝날 즈음, 레나는 그녀를 괴롭히던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이고 사랑 안에서 전혀 새로운 생명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인 관점에서든, 단순히 스펙타클한 연애소설의 관점에서든 우리는 그녀의 세계를 그린 이 시리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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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우) -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여름
김용택 지음, 주명덕 사진 / 늘푸른소나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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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끔 나는 그렇다.

비가 그야말로 콸콸콸콸 쏟아지는 그런 까만 날이면 샤워를 하듯 비를 맞고 싶어진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주 그랬는데, 특히 여름방학 때 그랬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을 하다가, 모래밭에서 철봉을 타다가, 학교 뒤뜰 잔디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았다.

달아오른 뺨이 식고 온몸을 세차게 부딪혀오는 빗방울이 내 귓속에 잔뜩 들어와 앉는다.

그렇게 잠시 비를 맞는 동안 어디 냇물에라도 뛰어들었다가 나온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는다. 그리고 날이 갠다.

어둑어둑한 그늘이 저만치 날아가고 햇살이 축축해진 옷 위에 닿으면 나는 마치 부활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와 햇살이 뒤섞인, 야생의 동물이라도 된 듯한 그 살아있는 냄새.

번데기를 벗어던진 나비가 젖은 날개를 말릴 때 이런 느낌일까. 껍질을 깨고 막 볕을 만난 병아리가 이런 느낌일까.

김용택 시인의 강연회를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여름이 뭔가요? '여름은 000다' 라고 써주세요"

이 책을 들이밀었다.

선생님은 아주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적고 웃으셨다.

'여름은 눈이 안온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여름엔 비가 온다. 그래서 기쁘다. 얼마든지 비에 젖고 야생의 동물처럼 폭삭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릴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이 기쁜 '비'라는 제목의 에세이에는 그러나 자연이 주는 기쁨, 계절이 주는 뿌듯함만 있지 않다.

'미쳐 버린 매미', '많이 굽은 소나무' 등 경고와 교훈의 메시지가 함께 있다.

물론 봄, 가을, 겨울의 다른 시리즈도 그랬긴 하지만 (미쳐 버린 매미 때문인지) 유독 이 에세이에서는 열광하는 햇살아래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다.

이 책이 좋은 건 그 때문이다. '비' 때문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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