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신랄하다. 정말.

어쩜 이렇게 노골적이고 가혹할 수 있을까. 독자는 독자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사정없이 잘근잘근 다져 '그런 식으로 책을 읽지도, 쓰지도 마.'라며 매몰차게 등짝 스매싱을 갈기는 이 책은 참 야무지다. 20대의 당돌함과 천재 작가의 명철함이 치열하게 공존하는 [살인자의 건강법], 이 한 권으로 저자는 그녀와 같은 당돌함과 명철함을 가진 20~30대 독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름도 무지하게 길고 어려운 특이병으로 얼마 있다 숨이 넘어갈 예정이신 고령의 작가 선생은 그의 비서를 통해 일부러 기자 인터뷰를 하겠다고 판을 벌려놓고는 기자를 한명씩 그의 앞으로 끌어들인다. 흡사 한니발 교수가 그를 면회하러 온 프로파일러들을 가지고 놀며 따분함을 달래는 섬뜩한 영화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자들 집단 능욕' 대목에서는 일단, 이 고령의 작가 선생이 대체 어떤 작자인지를 알게 된다. 치과에 신경치료일을 예약해 놓고 차례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마냥, 이 작가 선생님은 기자를 한명씩 그야말로 '멘붕'시키며 매우 큰 만족감을 얻는다.

 

 

“그럴 수밖에. 중상 모략가들한테 책잡힐 거리를 제공하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기자 양반은 상상도 못하실 거요.”

“아하! 그렇다면 그건 친절이 아닙니다, 타슈 선생님. 마조히즘과 과대망상증의 어정쩡한 결합일 뿐이지요.”

“됐소, 됐다고! 뜻도 모르는 말 좀 그만 쓰시오. 문제는 순수한 선의란 말이오, 젊은 양반! 당신 생각으로는 어떤 책들이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을 것 같소? 톰 아저씨네 오두막? 레미제라블? 물론 아니지. 그 책들은 말이오,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작가의 야심을 담고 있소. 암, 정말이지 순수한 선의를 담고 있는 책은 극히 드물다오. 그런 책들은 말이오, 고독과 비천함 속에서 탄생한다오. 작가는 잘 알고 있지. 그것들을 세상에 던져놓고 나면 더 외로워지고 더 비천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럴 수밖에. 사심 없는 친절의 본질은 알아보기 힘들다든가 알아볼 수 없다든가 보이지 않는다든가 예상할 수 없다든가 하는 것이거든... 드러내놓고 베푸는 선행은 사심 없는 선행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 방금 하신 말씀에서 모순이 보이는데요. 진정한 친절이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선생님께선 자신이 친절하다고 목청껏 외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허어, 난 내 맘대로 해도 되오. 어쨌든 아무도 날 믿지 않을테니까.”

p65

 

“사실대로 말씀 드릴까? 정말로 지적이고 총명한 사람들은 이 이렇게 설명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소. 변변찮은 자들이 뭐든 설명해주길 바라지. 설명되지 않는 것까지도. 어차피 설명해봐야 멍청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영리한 사람들은 설명해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내가 뭐하러 설명 같은 걸 하겠소?”

“저더러 못나고 둔하고 어리석다고 하시더니, 이젠 변변찮다고까지 하시는 겁니까?”

“이 양반한테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니까.”

p68

 

 

좋은 말로 괴팍한 할아버지고 나쁜 말로는 그냥 미친 영감이다. 나는 처음에 이 작가 선생께서 인생의 지루함을 달래시느라 일부러 그러시는 줄 알았다. 일부러 기자들의 말끝마다 꼬투리를 잡고 놀려주는 것 아닌가 했다. 아, 그런데 이 분은 진심이셨다. 진심으로 기자들 나아가 독자들의 가식과 위선을 요기조기 쪽쪽 후벼판 것이다. 뭐, 작가 선생님이시니 무지한 독자들을 사정없이 꼬집는 거야 그렇군, 할 수도 있는데, 작가들도 깐다. 대놓고 깐다. 어느새 나도 기자의 입장이 되어 뭐 이런 노인네가 다 있어, 할 즈음에 (나의 약점을 이렇게 대놓고 꼬집는데 기분이 산뜻하고 경쾌할리 없다) 내 또래의 여기자 하나가 그를 방문한다. 5번째 인터뷰어, 니나. 헐, 이 기자는 초반부터 그 남다른 아우라를 서슴없이 풀어놓고는 차츰차츰 이 노작가를 압박한다. "이봐요,. 당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짓들을 나는 알고 있단 말이요." 꼬장꼬장하고 성질 사나운 노작가가 칭찬할 정도의 명철함으로 그를 압박한 결과, 5번째 인터뷰는 니나의 승리....... 인 듯 보였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엔딩에 가서 승자는 불분명해 진다. 니나를 그의 화신으로 삼고 운명한 노작가를 최후 승리자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지.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오, 니나.”

“제발 사랑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살인 충동이 치밀어 오르거든요.”

“그럴 리가? 그것 보시오, 니나, 그건 그렇세 시작되는 거라오.”

“그건 이라니요?”

“사랑 말이오. 내가 당신한테 그 황홀경을 일깨워주었단 말이오. 나 자신이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구려, 니나. 그 살인 충동은 나로 죽어 다시 당신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욕구라오. 당신은 이제 막 살기 시작한 거요. 그게 느껴지오?”

“지금 느껴지는 거라곤 엄청난 분노뿐입니다.”

“난 지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있소. 나도 여느 평범한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부활이란 사후에나 일어나는 현상인 줄 알았소. 그런데 내가 살아서 두 눈을 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당신이 내가 되어 가다니!”

“그렇게 심한 욕은 처음 듣습니다.”

“그렇게 격분하는 것 자체가 당신이 살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오, 니나. 이제부터 당신은 계속해서 격노하게 될 거요. 예전의 나처럼 말이오. 허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저주를 퍼부으며 황홀경에 빠지겠지. 당신은 분노의 귀재가 될 거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라오.”

p247

 

 

이토록 다정하게 '니나'라고 부르고 있지만, 본래 이 양반 누군가를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는 법이 없다. 그냥 기자양반, 비서, 당신 뭐 이런 식이었지. 마치 첫사랑 레오폴딘을 대하는 것 마냥 말랑말랑한 태도로 니나를 대하는 작가 선생을 보고 있자니 또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양반, 자기 소설 완성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냐? 아닌가? 죽음을 앞두고 이 미련하고 무지하고 파렴치한 세상에 자신의 분신으로 두고 가기에 딱 적합한 인재가 나타난 상황에서 작가 선생님은 그의 죽음을 자처함으로써 니나를 타슈화시키기에 성공한다. BBC 드라마 셜록의 2시즌 마지막 편에서, 셜록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리아티가 셜록의 눈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해 그의 범죄를 완벽한 성공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이 던진 충격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엔딩. 그러니까 최후 승리자는 결국 이 작가 선생이라고.

 

어쩌면 최후 승리자는 레오폴딘일 수 있다. 일평생 이 작가를 지배하면서 작가 머릿속에서 내내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니나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 속에서 살아 있을 테니. 어쩌면 독자들일수 있다. 여전히 공기하나 통하지 않는 우주복을 입고 피칠갑의 책장 사이를 공기처럼 날아가며 '아, 다 읽었다. 이 책도 재밌네.'하고 잊어버릴 수 있다면. 뭐 승리자가 누구인들 어떠랴. 이것은 책의 일인 것을.

다만, 저자가 책의 인물들 특히 작가 선생의 입을 빌어 독자와 작가들에게 던진 대포같은 일침들이 무척이나 따갑다. 이 따끔함을 우리에게 선사한 저자 아멜리 노통브만이 유일한 승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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