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 케이크 - 일상을 특별하게
이채리(쳐리) 지음 / 경향BP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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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단 몇 년 사이의 변화인 것 같다. 눈으로만 봐도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케이크샵들이 부쩍 늘었다. 어릴 때 미국이나 유럽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에서나 등장했던 사랑스러운 컬러와 장식의 케이크들을 한국의 케이크샵에서 보게 되다니.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케이크 위에 크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레터링케이크나 크림으로 꽃을 짜 만든 케이크도 예쁘지만 그래도 제일 내 취향은 빈티지케이크 쪽이다. 다양한 모양의 깍지로 갖가지 장식을 짜 넣은 것도 예쁘고 과일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장식을 올린 것도 넘 예쁘다. 빈티지케이크는 특히 드레스에서 옮겨온 것 같은 리본이나 프릴 장식을 케이크에 넣어 여성스럽고 화려해보인다. 아마 이런 포인트가 빈티지케이크 매니아를 만드는 게 아닐지.


빈티지케이크의 제작 기법이나 디자인을 참고하고 싶다면 보기 좋을 책이 나왔다. [일상을 특별하게, 러블리케이크]는 14만 팔로워의 인플루언서, 쳐리의 케이크 레시피 및 디자인북이다. 유튜브와 인스타에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공유하고 문구브랜드 런칭, 케이크 팝업 운영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콘텐츠 제작을 넘어서 온오프에서 복합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저자와 같은 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주인공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고 의미있다. 문구와 케이크라니, 너무 신선하잖아.




러블리케이크 책 안에는 기본적인 베이킹 안내와 크림 제조와 장식짜기, 케이크 완성 디자인까지가 안내되어 있다. 케이크 시트 제조법이나 크림 깍지 모양 안내, 케이크 제작시 주의해야 할 부분이나 팁과 저자만의 노하우 등이 들어있으니 예쁘고 완성도 높은 케이크를 제작하길 원한다면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과일케이크는 뭐든지 다 맛있겠지만 멜론케이크는 너무 기대가 되는거지. 멜론은 위에 장식으로 얹어진 것만 먹어봤지 속에 멜론만 채운 케이크는 아직 먹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멜론케이크를 봤을 때 예쁘기도 예쁘지만 무엇보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로투스케이크나 라즈베리케이크도 언젠가 꼭 한 번 만들어서 맛을 봐야지 싶었다. 라즈베리잼은 원래도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생크림하고 같이 먹으면 훨씬 더 맛있어지더라고. 라즈베리케이크 색이 워낙 예쁘기도 예뻐서 친구 생일선물로 찜해두었다.


여름이라 빵인 케이크보다는 아이스크림케이크가 더 인기라고 하는 계절이지만, 차가운 아메리카노에 시원한 케이크 한 입을 같이 먹어본 사람들은 이 맛을 알지.


일상을 행복하게 하는 예쁜 케이크를 가득 담은 책 덕에 눈도, 마음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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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후드 -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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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나비는 과연 몇 살일까? 영아기, 유아기, 유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 그리고 노년으로. 모든 생물체의 생애 경로가 있다. 그렇다면 이 나비는? 수심을 모르는 바다를 청무우밭이라고 보고 뛰어든, 무모하고 무지하고 미숙한 이 나비야말로 '와일드후드' 그 자체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청소년기를 종합해서 분석한 [와일드후드]라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청소년기 생물의 특징과 잠재력을 단 몇 개의 단어로 꿰뚫은 이 시를 떠올렸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다시 읽어도 너무 좋잖아. 누구도 흰나비에게 바다의 수심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배운 적이 없는 흰나비는 바다의 광포함을 직접 경험하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덕에 흰나비는 바다를 배웠다. 생존! 만약 흰나비가 날개가 물결에 절은 정도가 아니라 익사해버렸다면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을 얻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와일드후드]는 왜 청소년기의 생물들은 무모하고 저돌적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와, 위험해 보이는 곳에 냅다 뛰어드는 건 인간 청소년들만이 아니구나.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는 위대한 멍청이는 바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스릴을 즐기는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거듭났다.

13쪽


성인이 된 이후의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우리는 대부분 위험을 피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마치 고생을 사서하려 하는 건 미련하고 무모하고 무지한 태도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그러나 [와일드후드]의 저자들은 10대 해달들이나 하는 죽음의 삼각지대로 돌진하는 멍청한 짓은, 생존하기만 한다면 성장과 성숙의 바탕이 된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어제와 다르기를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독설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큰 위험을 무릅쓰면 큰 결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청소년 시기는 바로 이와 같은 정설과 이론을 체험으로 학습하는 시기인 것이다. 특히 그 전까지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가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도전과 여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청소년 본인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에 놓이지만 생존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값진 결실을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된다. 실제로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연에서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목적은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25쪽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단어는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물론 관련어이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다르다. 사춘기는 생물학적 과정을 뜻한다. 호르몬에 의해 시작되며 동물이 생식 능력을 갖추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신체적 발달만을 포함한다. (중략)


동물 종마다 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사춘기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순서는 놀랍도록 닮았다. 벌새와 타조, 큰개미핥기, 미니어처포니는 모두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달팽이와 민달팽이, 바닷가재와 굴 그리고 조개, 진주담치(홍합), 새우는 거의 똑같은 호르몬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다.

23쪽



지구의 청소년들이 걸어온 그리고 걷고 있는 성장의 역사를 추적한 두 저자는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개념을 분리하여 정리한다. 청소년기는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시기, 사춘기는 신체의 특정한 발달을 말한다.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동물들의 사춘기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동물들의 사춘기를 결정하는 호르몬이 서로 닮아있거나 같다는 건 지구의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유사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여러 동물들의 사춘기, 그들 각기의 질풍노도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질풍노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의 시작이자 이 책이 품은 진주다.



와일드후드에 나타나는 4가지 주요 어려움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중략)


-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

-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28쪽



생물학자들은 생존하고 번식해 있는 새끼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펭귄, 하이에나, 고래, 늑대의 성숙을 측정한다. 이 기준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번식으로 성숙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사회적 위계질서에 적응하고 성에 대해 정중하게 의사 소통하고 자립의 성취감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이와 같은 중요한 와일드후드 생존 기술 4가지를 습득하면 더욱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전문적, 일반적 성공은 물로 개인적, 사적 성공까지 이룰 수 있다.


모든 와일드후드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얻곤 한다. 그러나 수억년 동안 다양한 동물 종이 공통적인 4가지 어려움이 겪어온 만큼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는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분야를 ‘생물열감’이나 ‘생물모방’이라고 하는데, 진화의 세월 동안 지구상의 동물 종이 근본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지식을 전제로 한다.

386-387쪽



이 책은 4종류의 청소년 동물들을 추적한다. 남극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난 킹펭귄 우르술라, 탄자니아 응고롱고로산에서 살던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 도미니카공화국 근처에서 태어난 북대서양혹등고래 솔트, 유럽 늑대 슬라브츠. 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대면한 적 없는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고 무리 내의 지위에 적응하고 원만한 성적 소통 기술을 익혀가며 청년이 된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저자들은 청소년 인간들이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겪는 각종 위험과 위협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교차점에서 우리는 포식자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확보하는 법,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과 몫을 확보하고 그를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법, 마침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는 법의 비결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청소년기가 단순히 신체적인 발달에 따른 시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특히 인간, 번식으로 그 성숙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종인 인간에게 있어 청소년기란 신체의 나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무엇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숙달해 나갈 때,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시작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때, 즉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과 위협이 밀려들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그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생존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애쓰는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청소년기를 통하여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들을 얻어보고자, 나는 이 책을 공들여 읽었다.

책 표지에는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참 좋다. 날것들은 위험과 도전을 경험한 후에야 성장한다. 지금도 내 안의 어느 부분, 내 일상의 어느 부분인 청소년기가 이 책에서 얻은 비결 덕분에 그 성장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다 원만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와일드후드의 보편성은 신체적, 정신적 발달 너머까지 적용된다. ‘청소년기’란 생명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는 탄생에서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 단계라는 게 있다. 이 시간 단계에서는 시작의 무한한 가능성이 성숙에 이르기 위해 현실과 책임으로 대체된다. 기업이나 창의적 프로젝트, 인간관계, 직장, 학업, 정치 운동, 정부, 국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려우며 고통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시작이 제일 쉬운 단계다. 출생이나 출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성공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진짜 결과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몸이 힘들어지거나 경쟁 상대를 가늠하고 앞서나가기 위해 다툴 때 결정된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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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평화 - 진짜 핵심 진짜 재미 진짜 이해, 단어로 논술까지 짜짜짜 101개 단어로 배우는 짜짜짜
서의동.이지선 지음 / 푸른들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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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관련한 101개의 키워드를 엮은 책이 나왔다. 평화에 대한 개념적인 정리보다는 평화와 관련한 정치적, 사회적 현상, 상황 등을 모아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평화는 참 아이러니하다.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평화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데 평소 우리는 그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잃어봐야 느끼는 소중함이랄까. 어떤 위협이나 위험이 닥쳤을 때, 그 혼돈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야 비로소 평화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몸으로 배워야 아는 거겠지.



이 책의 표지에는 '단어로 논술까지'라는 부제도 적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논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물론 전쟁과 평화에 대한 현세를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책 한 권으로 손쉽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나 좋다. 중학생 이상 나이의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한다면 이 책의 한 꼭지에서 주제를 골라 함께 읽고 관련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등 함께 공부한 다음에 토론을 나눠도 엄청 재미있겠다. (이걸 쓰면서 그런 토론 모임을 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책의 꼭지는 총 101개로 흥미로운 키워드가 여러 개 눈에 띈다. 겨레말큰사전, 그린데탕트, 능라도경기장 등 남북이 공존과 번영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혹은 노력해 온) 것들도 있고 메카시즘, 청일/러일전쟁, 베르사유조약 등 전쟁의 세계사 주제도 여럿이 있다. 아무래도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빈번한 무력 위협 등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돈주, 삐라 등 북한과 관련한 주제가 무척 많다. 무력 전쟁 뿐 아니라 혐오 정서 역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 책의 100번째 주제로 '헤이트 스피치'는 다른 주제들 이상으로 깊이 생각해볼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평화는 뭘까? 아무런 위협이나 위험이 없는 상황, 그러니까 안정 혹은 안전의 상태를 평화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력 충돌이 없는, 정치적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혐오 발언이나 환경 파괴, 인권 문제 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란 근본적으로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의식과 마음에 존중과 존엄이 올바르게 잡혀 있는 때 완성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평화는 국가가 주도하거나 정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뿐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병행될 때 비로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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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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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짐바르도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다. '깨진 유리창 이론',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의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교도소 실험이나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 실험 등의 내용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에 트렁크가 열린 채 방치된 자동차가 있을 때, 누구도 그 자동차를 훔치거나 부수지는 않지만 방치된 자동차의 유리가 깨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물건을 훔쳐갔고 훔쳐갈 게 없어지자 마침내는 차를 부수기까지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정해져 있거나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선과 악 중 한 가지 편향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사람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선택을 하게 된다. 자기 안의 악을 꺼내서 사용할 지 말지, 선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그런 선택의 순간은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때문에 촉발되는 게 아니다. 상황이다. 그 상황에 처해보기 전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아주 솔직하고 직관적인 제목의 책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은 필립 짐바르도와 스탠포드 역사학회의 구술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제목만큼 내용도 솔직하다. 짐바르도는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악명 높은 실험의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자신의 생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그는 그의 연구와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가 했던 실수들도 이야기하는데, 이런 실수마저도 집단 내부의 역학 관계, 집단 즉 3명 이상이 모인 상황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관계에 따라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대한 그의 이론의 당위성을 증명한다.



밀그램은 제가 자신감 없는 남학생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으로 변한 건지, 아니면 상황이 바뀐 건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바뀐 거라는 데 동의했죠.

신기한 것은 그때가 1948년이었다는 거예요. 밀그램이 ‘상황이 개인적 성향에 미치는 힘’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때는 1960년대 초반이었고요. 몇 년 뒤 저도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죠. 밀그램과 달리 제 실험은 개인의 권위보다 개인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상황에 더 주목했지만요. 상황에서 비롯된 힘을 지배적이고 물리적이고 학대적으로 쓰게 된다는 내용이었죠.

32-33쪽


이 과정에서 제가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조사관에서 교도소 감독관으로 역할을 바꿔버린 거예요. 또 다른 실수도 있었는데, 사무실에 ‘교도소 감독관’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거죠. 수감자를 면회 온 부모는 항상 교도소장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돌아가기 전에는 감독관을 만나야 했고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교도소 감독관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고, 저 역시 교도소 감독관으로 그들을 대해야 했죠.

136쪽



탁월한 학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특히 4번이나 다른 인종으로 오해를 받았다는 이야기. 유대인, 흑인, 시칠리아인, 프에르토리코인. 근데 나도 이 인종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스탠리 밀그램과의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환경, 유산을 받아 지금의 놀라운 성과를 이룬 연구자가 된 게 아니라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으로 사회심리학계의 장인이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놀랍다. 빈곤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기억하는 순간과 상황들 속에서 그는 남다른 시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했다. 단순히 관찰력이 좋다기 보단 메타인지가 뛰어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린 필립 짐바르도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과 자기 자신의 입장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영화를 들여다보듯 상황 전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힘이 정말 대단했다. 이것은 필요에 의하여 생긴 능력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만약 타고난 재능이라고 해도 본인이 이것을 학구적으로 발전시켜 뛰어난 연구가로 인생의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쓸데 없는 곳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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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거대 위협 - 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
누리엘 루비니 지음, 박슬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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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 쓰다. 분야와 맥락, 주제에 상관없이 항상 그렇다.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이 모두 약이 되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들어서 약이 되는 말 중에 쓰지 않은 말은 없다. 왜냐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재의 내 처지와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주봐야하기 때문이다.

[초거대위협]은 책 표지와 띠지가 한결같이 무섭다. 아마 여느 때 같았다면 이런 무서운 책은 연초에, 그것도 이것저것으로 한창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에는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른 물가 상승과 반비례하여 곤두박질하는 소비지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 와중에 국내 정치에나 국제면에서도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정말 암울한 시기라는 걸 함께 감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다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또한 겪어 나가야 하는 이 위기에 대하여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왜냐면 지금 우리를 덮친 위협과 아직 다가오지 않았지만 이미 가까이에서 드릉드릉 시동을 걸고 있는 위협들은 개인의 선택이나 한두 국가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집단 대응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이라면 어려운 책이다. 2006년 미국 부동산붕괴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 등 여러가지 국제적인 경제이슈의 인과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위기를 진단 및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평소 이 분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경제 분야에 해박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만한 이야기들이라 어렵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굉장히 많은 양을 한 책에 다 넣어 현재를 진단하다보니 독자가 소화해야 할 양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은 무척 좋다. 번역자의 감각 덕분일수도 있고 저자의 박식하면서도 명석한 전개 덕분일수도 있다. 여튼 어려운 내용이나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


실은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책이라고 해도, 아마 감기약 먹듯이 꾸역꾸역 읽어냈을 것이다. 지금 지구촌을 사는 사람 특히 고물가, 부채, 인구감소, 기후위기 등 묵직한 이슈들을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 세계 소득증가율이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에서 국가과 기업, 은행과 가계가 상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27쪽


성장을 달성하기 어려운 오늘날, 우리는 사회보장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미적립 청구서의 무게에 무참히 짓눌리는 중이다.

78쪽


국민 소득 중 점점 더 큰 비율이 젊은 노동자가 아닌 은퇴자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급여와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노령 연금이 급증하면서 이 편향 현상은 매년 더 심화되고 있다. 만일 청년 노동자들이 은퇴자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이 문제에 아직 분개하지 않고 있다면,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84쪽


[초거대 위협]은 그도안 평범한 개인이 여러 기사와 지표들을 통하여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함, 이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을 명확한 분석으로 구체화한다. 이게 불안한데 왜 불안한 지 알수 없었던 문제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답을 얻는다. 가계와 국가가 지고 있는 상환 능력을 뛰어 넘는 부채의 문제라든가 당장 오늘도 기사가 났던 출산율 폭락의 문제 등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위기가 될 것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더더 불안해진다. 저자가 예측한 우리의 미래는 아주 아주 좋지 않다. 이 비관적 예측은 그냥 대충 두드려 본 눈대중이 아니라 수많은 낙관적 전문가들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으면서도 비관적인 예측을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가 최근 100년 동안 지구촌에서 벌어진 국제 경제와 정치, 미국의 정책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한 폭넓은 데이터, 그에 관한 자신의 식견과 경험을 총망라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다소 슬프고 원통하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가 어쩌다 모두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리라 기대했던 핑크빛 미래, 지난 75년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촌의 국가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 흥청망청 쓰고 버리고 두려움 없이 투자하고 소유했던 지난 나날들에 대한 향수.


낙관주의자들은 아직도 기술 혁신을 통해 긍정적인 총공급 충격을 촉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플레이션 완화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선진경제에 관한 데이터에서 기술 변화가 총 생산성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불분명하다.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 성장이 정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172쪽


내가 그보다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초거대 위협은 경제, 금융, 정치, 지정학, 무역, 첨단기술, 건강, 기후 등 광범위한 문제들이다. 지정학적 위협처럼 그중 일부는 냉전을 거쳐 종내에는 열전, 즉 본격적인 무력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우리가 매우 긴급하고 거대한 규모의 10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비전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고, 이런 위협이 우리를 파멸시키지 않도록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11쪽


하나같이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이 초거대 위협들이 한 점으로 수렴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정도로 파괴적이리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상 모든 사람을 위한 세세한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 다음번 변곡점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410-411쪽


저자는 '가공할 만한' '끔찍한'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분석과 예측에서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계속 끝까지 읽어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필요한 건 낙관주의도, 희망도, 호재도, 긍정적인 지표도 아니고 냉철한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초거대 위협]의 저자 누리엘 루비니가 불안을 야기하는 비관론자로 보이겠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는 냉철하다 못해 냉혹한 현실주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길을 찾으려면 냉혹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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