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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ㅣ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평점 :
그래서 어쩌라고?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는 어차피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안 할거라 출산율이 마이너스를 찍어도 별 상관 없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이 책을 적어도 3번 이상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이 살고 있지만 초저출산율을 걱정 하고 있는 사람 역시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출산율이 왜 공포인지, 이 출산율이 알려주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과 실패를 이 책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은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위기를 기회라고 말한다. 정부의 태도, 복지 정책,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회인 것이다. 복지, 교육, 노동 등 개인의 일생의 변곡점마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없다면 출산율 반등도 없다. 0.6 출산율은 단순히 청년들의 결혼, 출산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개인이 만족하고 안심하며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나라라는, 사회 전반의 총체적 부실의 결과가 출산율 0.6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초저출산의 원인들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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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 시대에서 아이는 자산이었다.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였고, 여성이 목숨을 걸고 낳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사회에서 아이는 투자의 대상이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양육 부담을 지지만 아이는 노인이 된 부모의 여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늘었는데 그 비용은 회수가 안 된다. 여기서 돈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돈 하나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니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맞벌이로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다. 여기서 교육(돌봄)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매우 긴 나라다. 무려 OECD 주요국 중 1위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긴 나라. 그러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는 현실이 더욱 치명적이다. 엄마의 독박육아를 해결하고 아빠의 정당한 육아휴직이 사회의 당연한 문화가 되려면 노동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그간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더이상 정부를 신뢰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정부가 '출산은 좋은 일이니 이렇게 하시오.'라고 이끈다고 해서 개인이 정부의 리드에 따르는 시대는 갔다. 개인은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정부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 체제를 펼쳐놓지 않으면 개인은 절대로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도전도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비용, 교육, 노동문제가 절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근데 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비용 부담이, 교육 과정이,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도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출산의 주체는 여성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현재의 인식이 계속된다면 제아무리 제도와 정책 지원이 쏟아져도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남성들의 주도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갔다는 의미에서 신모계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신모계사회는 독박 육아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선택하는 현실적 대안일 뿐 부계 혈통주의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부계혈통주의는 공고하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내 성을 주지 못하는 이 생활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것, 그만큼 가부장적 사회, 남자 중심 사회, 부계혈통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책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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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을 불러온 여러가지 원인 중에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것을 '비용 문제'와 '성평등'을 짚어낸 저자는 이 책에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출산율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사회 전반의 개혁과 변혁을 통하여 출산율 반등을 달성한 서유럽 국가들의 선행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복지 지원을 혼인 중심 가족이 아닌 아이 중심 가족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혼한 부부를 기준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미 있는 집, 아이가 몇 개월 뒤에 태어날 집 등 아이를 기준으로 복지 지원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아와 초등학생 돌봄을 통합하는 일이나 아빠의 돌봄 참여 확대 등도 함께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국가들은 짧게는 70여 년, 길게는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서야 막, 문제 해결에 나선 입장이다. 어떤 뉴스들은 '저출산 해결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정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뭐 대단하게 쏟아부은 건 또 아니라고 실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진짜 쏟아부어야 하는 건 지금부터인 것이다. 복지 정책에, 교육과 노동 환경 개선에, 성평등 인식 개선에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들여야 하는 건 이제부터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쏟아야 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 기관만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개개인도 저마다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가장 시급한 두 가지 중 하나인 '성평등'은 정부의 시책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혼이자 미혼인 내가, 출산과 육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가 이 책을 굳이 애써 읽고 공부하는 이유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전체의 일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터와 사회, 내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바꿔놓을 일이다. 그러니 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려면 구성원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맞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개인은 개인의 역할을 다하면 바꿀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그 역할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시행하였다. 기본계획에 기반하여 도입한 정책들이 소용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가족정책 영역을 돈, 시간, 서비스로 나눠 세 영역에서 모두 예전에는 없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한 복지제도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서유럽 복지국가가 짧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길게는 19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100여 년 넘게 구축해온 복지제도를 우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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