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후드 -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
바버라 내터슨-호러위츠.캐스린 바워스 지음, 김은지 옮김 / 쌤앤파커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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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이 시를 배울 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나비는 과연 몇 살일까? 영아기, 유아기, 유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거쳐 장년 그리고 노년으로. 모든 생물체의 생애 경로가 있다. 그렇다면 이 나비는? 수심을 모르는 바다를 청무우밭이라고 보고 뛰어든, 무모하고 무지하고 미숙한 이 나비야말로 '와일드후드' 그 자체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청소년기를 종합해서 분석한 [와일드후드]라는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청소년기 생물의 특징과 잠재력을 단 몇 개의 단어로 꿰뚫은 이 시를 떠올렸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어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다시 읽어도 너무 좋잖아. 누구도 흰나비에게 바다의 수심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를 배운 적이 없는 흰나비는 바다의 광포함을 직접 경험하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덕에 흰나비는 바다를 배웠다. 생존! 만약 흰나비가 날개가 물결에 절은 정도가 아니라 익사해버렸다면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을 얻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와일드후드]는 왜 청소년기의 생물들은 무모하고 저돌적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와, 위험해 보이는 곳에 냅다 뛰어드는 건 인간 청소년들만이 아니구나.


수백 마리의 백상아리가 헤엄치는 차갑고 삭막한 죽음의 삼각지대 안으로 돌진하는 위대한 멍청이는 바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달이었다. 물론 무시무시한 상어 이빨이 순식간에 지나가면 피의 소용돌이와 함께 목숨을 잃는 해달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대개 스릴을 즐기는 ‘10대’ 해달들은 죽음의 삼각지대를 무사히 건너 피가 되고 살이 될 값진 경험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바다 물정에 밝은 독립적인 청년기 해달로 거듭났다.

13쪽


성인이 된 이후의 사람들이라서 그럴까. 우리는 대부분 위험을 피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마치 고생을 사서하려 하는 건 미련하고 무모하고 무지한 태도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그러나 [와일드후드]의 저자들은 10대 해달들이나 하는 죽음의 삼각지대로 돌진하는 멍청한 짓은, 생존하기만 한다면 성장과 성숙의 바탕이 된다는 걸 말한다. 그렇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어제와 다르기를 바라는 건 정신병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독설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큰 위험을 무릅쓰면 큰 결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청소년 시기는 바로 이와 같은 정설과 이론을 체험으로 학습하는 시기인 것이다. 특히 그 전까지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가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도전과 여정에 뛰어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청소년 본인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에 놓이지만 생존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값진 결실을 얻는 시기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된다. 실제로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 되려면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하다. 자연에서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목적은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것이다.

25쪽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단어는 흔히 같은 뜻으로 쓰인다. 물론 관련어이긴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다르다. 사춘기는 생물학적 과정을 뜻한다. 호르몬에 의해 시작되며 동물이 생식 능력을 갖추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신체적 발달만을 포함한다. (중략)


동물 종마다 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사춘기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순서는 놀랍도록 닮았다. 벌새와 타조, 큰개미핥기, 미니어처포니는 모두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달팽이와 민달팽이, 바닷가재와 굴 그리고 조개, 진주담치(홍합), 새우는 거의 똑같은 호르몬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다.

23쪽



지구의 청소년들이 걸어온 그리고 걷고 있는 성장의 역사를 추적한 두 저자는 청소년기와 사춘기라는 개념을 분리하여 정리한다. 청소년기는 경험을 통해 성숙을 추구하는 시기, 사춘기는 신체의 특정한 발달을 말한다.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동물들의 사춘기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점이다. 동물들의 사춘기를 결정하는 호르몬이 서로 닮아있거나 같다는 건 지구의 동물들이 신체적으로 유사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여러 동물들의 사춘기, 그들 각기의 질풍노도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질풍노도를 보다 효율적이고 가치있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이 책의 시작이자 이 책이 품은 진주다.



와일드후드에 나타나는 4가지 주요 어려움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중략)


-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 어떻게 성적 소통을 할 것인가

-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28쪽



생물학자들은 생존하고 번식해 있는 새끼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펭귄, 하이에나, 고래, 늑대의 성숙을 측정한다. 이 기준을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번식으로 성숙을 가늠할 수 없다.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사회적 위계질서에 적응하고 성에 대해 정중하게 의사 소통하고 자립의 성취감을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다. 이와 같은 중요한 와일드후드 생존 기술 4가지를 습득하면 더욱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전문적, 일반적 성공은 물로 개인적, 사적 성공까지 이룰 수 있다.


모든 와일드후드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얻곤 한다. 그러나 수억년 동안 다양한 동물 종이 공통적인 4가지 어려움이 겪어온 만큼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는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인간이 마주한 난제의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분야를 ‘생물열감’이나 ‘생물모방’이라고 하는데, 진화의 세월 동안 지구상의 동물 종이 근본적으로 같은 압박을 받아왔다는 지식을 전제로 한다.

386-387쪽



이 책은 4종류의 청소년 동물들을 추적한다. 남극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난 킹펭귄 우르술라, 탄자니아 응고롱고로산에서 살던 점박이하이에나 슈링크, 도미니카공화국 근처에서 태어난 북대서양혹등고래 솔트, 유럽 늑대 슬라브츠. 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대면한 적 없는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고 무리 내의 지위에 적응하고 원만한 성적 소통 기술을 익혀가며 청년이 된다.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저자들은 청소년 인간들이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겪는 각종 위험과 위협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 교차점에서 우리는 포식자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확보하는 법,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법, 이 사회에서 나의 역할과 몫을 확보하고 그를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법, 마침내는 진짜 어른이 되어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는 법의 비결을 엿보게 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들은 청소년기가 단순히 신체적인 발달에 따른 시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특히 인간, 번식으로 그 성숙을 가늠할 수 없는 동물종인 인간에게 있어 청소년기란 신체의 나이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한다. 무엇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숙달해 나갈 때,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시작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를 때, 즉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과 위협이 밀려들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그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청소년기란 멈추지도, 끝나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생존하고 성숙하기 위하여 애쓰는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내 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청소년기를 통하여 내가 얻을 수 있는 힌트들을 얻어보고자, 나는 이 책을 공들여 읽었다.

책 표지에는 '세상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는데 이 말이 참 좋다. 날것들은 위험과 도전을 경험한 후에야 성장한다. 지금도 내 안의 어느 부분, 내 일상의 어느 부분인 청소년기가 이 책에서 얻은 비결 덕분에 그 성장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다 원만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와일드후드의 보편성은 신체적, 정신적 발달 너머까지 적용된다. ‘청소년기’란 생명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에는 탄생에서부터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 단계라는 게 있다. 이 시간 단계에서는 시작의 무한한 가능성이 성숙에 이르기 위해 현실과 책임으로 대체된다. 기업이나 창의적 프로젝트, 인간관계, 직장, 학업, 정치 운동, 정부, 국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려우며 고통스럽고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 시작이 제일 쉬운 단계다. 출생이나 출시,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성공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넘치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진짜 결과는 달리기를 시작한 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몸이 힘들어지거나 경쟁 상대를 가늠하고 앞서나가기 위해 다툴 때 결정된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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