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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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방 안의 모든 것을 삼킬 때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문학, 음악, 미술... 하다 못해 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마저도 시대의 소음에 빠져 침몰했을 때, 개인은 무엇으로 숨 쉴 수 있을까?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은 알았지만 그가 어떤 음악을 만들었고, 어떤 생을 살다 갔는지는 하나도 몰랐다. 나는 [시대의 소음]이 한 음악가의 생애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첫 장을 읽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의 최극단이었던 소련의 정치권력은 집요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아이러니라는 무대를 그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라는 인간은 사람과 예술을 모두 지키기 위하여 살아있는 죽음을 감수했다. 이 책은 개인의 의식 속에서 끊어질 듯 말 듯 팽팽히 이어져온 생존과 죽음, 시대와 개인, 정치와 예술, 정의와 도리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를 세밀하게 그렸다.

 

인간이 타인의 의식 속을 이렇게까지 끈질기고 섬세하게, 그러니까 기억의 밑바닥에 남겨진 오래된 흔적까지도 추적하여 그것이 어떤 얼룩인지, 누가 흘렸고, 왜 거기 흔적이 남겨졌는지까지 낱낱이 묘사할 수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소설이기에 가능한 일.

 

소설은 끝났지만, 아직도 소설의 주인공이 온 생애를 걸고 애통해 했던 아이러니는 끝나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때로 냉소하고, 때로 부끄러워하고, 때로 울었다가 결국은 노인이 되었다. 모든 것을 그저 관망하는, 죽어가듯이 바라보고만 있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끝에서, 이 음악가는 그리고 작가는 묻는다. 음악은, 예술은 나아가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그래서 소설은 끝났지만, 아직도 물음은 계속된다. 우리 삶의 무대에는 여전히 시대의 소음을 깔고 아이러니가 주연으로 서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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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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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세계는 현실보다 생생했다. 저스티스맨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의 풍경은, 어떤 이슈가 되었든 으레 개판이 되고 주제 따위 산으로 보내버리는 인터넷 게시판들의 난잡한 표정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소설 속에서, 인터넷 카페에 모여 익명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이들을, 나는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도 보았고 어느 인기 블로거의 포스팅 댓글에서도 보았으며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서도 보았다. 도선우의 소설 [저스티스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설 속의 사람들이 아니다. 이게 우리 현실이고 우리 자신이고 나인 것이다.

 

유교 문화권이어서 그런 것일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덕이니, 윤리니, 정의니 이런 것을 논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가 아니라 익명으로. 동시에 익명이라는 우산 아래 숨어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나아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맨 정신으로 뱉기 힘든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늘어놓기를 즐겨한다. 그저 나의 관점이나 취향 정도를 표출하는 정도면 그래도 양반이다. 인터넷에 흥건한 오만가지 말들 속에 단연 손꼽히는 오만함은 이것 같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만 옳다는 이 오만함은 대체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 걸까? 어떤 대단한 정의를 지녔기에 저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모두가 다 자신만의 정의를 주장하면서 벌어지는 혼돈의 아비규환은 역설적으로 여기에 진짜 정의는 없음을 증명한다.

 

도선우 작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자처해 온 혼란과 역설을 소설로 옮겼다. 이 세계에서 죄 없는 자는 누구도 없다. 모두가 죄인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다. [저스티스맨]이라는 작품 속에서 누군가는 응징하는 자로, 또 다른 누군가는 징벌을 받는 자로 등장하지만응징 하는 자조차 정의가 아니며 죄 없는 자라거나 절대적 피해자라고 규정하기 애매하다. 작품 속의 모든 인물들이 서로 간에 이 애매한 관계, 한 쪽이 일방적 가해자이고 다른 쪽이 일방적 피해자라고만 할 수는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 심지어 모두가 악인이다. 선한 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익명의 누리꾼들은 누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괘념치 않는다. 물고 뜯고 씹고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만 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 몰지각한 행태는 또 다른 혼돈을 낳고 이 혼돈 속에서 정의롭지 못한 저스티스맨이 잉태되고 탄생한다.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정의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아닐지 모른다. 나에게 정의는 누군가에겐 불의가 되는 것이 세상임을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나. 불의의 세상을 타파하려는 사람들은 정의구현을 외치지만 정의가 있어야 정의구현이 될 일이다. 이제는 정의가 아니라 합의를 구해야 할 때 아닌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면 적어도 너와 내가 같은 인간인 이상 한 마음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접점은 분명 존재할 테니까. [저스티스맨]이 정의는 없는 현실을 아프게 꼬집어 준 이후, 정말로 우리 사회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내 떠나질 않는다

심금을 울리는 기사 몇 줄이면 보잘것없는 그들의 영혼 따위 헐값에 손아귀에 움켜쥘 수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진실 여부는 사실 판단의 대상도 아니었다. 천박한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은 풍족한 것 같았으므로 진짜 삶을 바라보는 무게 있는 시선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 속하지 못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지혜 자체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므로, 무엇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도 그들에겐 없었다. 그저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맹목적으로 타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배척했다. 그러니 그것은 이중적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양면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잣대라는 자체가 아예 사라진 시대를 마치 허우적거리듯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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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요 -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케리 이건 지음, 이나경 옮김 / 부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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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나 감옥 혹은 병원 등의 기관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역할로 일하는 성직자들을 채플런이라고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성직자가 있다는 건 전에 들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살아요]를 통해 처음 알았다.

 

채플런으로 일하고 있는 케리 이건은 그가 만났던 다양한 환자들과의 대화와 기억을 책으로 엮어 냈다. 환자들은 저마다 살아온 방식, 배경, 과정이 너무나 다르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한결같이 그러니 그대는 삶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 지엄한 명제 앞에는 어떤 부정도, 의심도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은 이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관문을 진지하게 혹은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그런 것 같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통장을 비우겠다거나, 어차피 죽을 때 죽을테니 오늘은 후회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지인들을 보면 죽음이란 도리어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희화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이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면 족할 것 같다.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여기서 이야기하는 '삶에 충실하다'는 내용이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살것 같아 덧붙이자면, 삶에 충실함은 절대 오늘만 살고 죽겠다와 같은 뜻은 아니다.

 

케리 이건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삶에 충실함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약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는 더 많이 춤을 췄을 것이라고.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나는 더 건강한 몸을 누리고 지켰을 것이라고.

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그 당시에는 나를 죽고싶게 만들었던 그 고통들이 변이하는 시간들을 좀더 여유롭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것이 달든 쓰든,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겸허하게 시간과 생을 성찰해보고 거기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이 책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꼈다.

 

성직자가 쓴 책이다보니 중간중간 영적인 이야기나 기독교 신학적인 저자의 의견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부분들은 사족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환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저자 본인이 겪었던 정신병과 그 고통에 대한 생생한 증언 그리고 성찰은 환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겸손함과 겸허함이라는 삶의 자세를 배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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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탱고클럽
안드레아스 이즈퀴에르도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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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촌스러웠다. 거기에 홍보용으로 소개되는 줄거리는 진부했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놓칠 뻔 했다.

썩 내키지 않는 제목에 썩 궁금하지 않은 줄거리였지만 이 책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와 울림을 주었다.

 

[꿈꾸는 탱고클럽]의 주인공 가버는 잘나가는 기업 컨설턴트다. 눈치가 빠르고 명민하며 신중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배팅을 할줄도 아는, 성공한 사회인 되시겠다.

거기에 잘생긴 얼굴에 춤으로 다져진 몸매까지. 회사에서도, 탱고클럽에서도 어디에서나 그는 시선을 사로잡는 잘난 인간이다.

우리 시대에 이런 종류의 인간은 보통 자기와 급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든다.

 

유명한 가수의 세련되고 현란한 뮤직비디오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화려한 외모와 의상의 사람들, 더 대단한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더 어마어마한 부를 위하여 갖가지 트릭과 속임수를 사용하면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 가버 그 자신이 그랬고 가버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다.

 

탱고클럽에 화려한 조명처럼 삐까뻔쩍하게 흘러가던 가버의 삶에 사고가 일어난다. 운전 중에 일어난 단순한 접촉사고인 줄 알았던 이 사고는 그의 인생의 근간을 아예 바꿔버리는 엄청난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학습장애를 가졌다고 판단되어 특수학교에 모인 아이들에게 탱고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단 몇 개월만의 그의 가치관, 그의 인생관, 그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린다.

 

냉철한 기업 컨설턴트로서의 그의 생은 모자른 것, 우스워 보이는 것, 누추해 보이거나 약해 보이는 것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약하고 모자른 아이들과의 격렬하고 짜릿한 조우는 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의 유년기의 아픔을 건드리고, 친절하게도 그 상처에 새살 돋는 약을 발랐다.

 

이 책은 정말 너무나 재미있다. 언뜻 진부하고 뻔해 보였던 줄거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큐 85의 아이들과 잘나가는 어른의 만남은 당연히 아이와 어른의 동반 성장 이야기로 흐르리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으례 그러려니, 하는 쪽으로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아이들 각자의 상황과 어려움이 너무나 선명하고 그런 상황에 대응하며 변화하는 가버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작가의 글도 경쾌하고 편안하게 잘 읽힌다. 글마다 생생한 장면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펼쳐져,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는 작가의 전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한 중간중간 작가가 전하는 존중과 양심에 대한 메시지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탱고를 대하기 시작하는 그 날, 가버는 아이들에게 탱고의 가장 기본인 파트너를 존중하는 '매너'에 대해서 알려준다. 아이들이 그런 매너는 촌스럽지 않냐고 항변하자 가버의 입을 빌어 작가는 말한다. '매너는 절대 구식이 아니야. 매너는 너 자신이야.' 그리고 성장하는 아이들과 가버의 모습을 통하여 존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내는지 보여준다. 이뿐 아니라 작가는 어른들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속임수나 의료 윤리 등 우리 생활 곳곳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들을 짚어낸다. 진지한 훈수가 아니라 '이게 과연 맞을까?'라는 경쾌한 질문으로.

 

작가가 독일인이라 한국인 독자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조금 있었지만, 전혀 아쉬움은 없다.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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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핏 - 건강하고 마른 여자들의 기적의 작은 습관
카비타 데브간 지음, 양희경 옮김 / 스토리3.0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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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귀찮고, 굶는 건 더 싫다!

그래 이 맘이 내 맘이다.

 

길고 가늘고 탄탄한 모델의 몸매가 시선을 사로 잡는 표지의 이 책, [미라클핏]은 건강하게 마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탄생한 책이다.

 

저자 카비타 데브간은 영양학자이자 체중 관리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년 간의 축적한 연구 결과와 사례, 경험들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마를 수 있는 비법들을 정리했다.

 

여기서는 비법이라고 소개하지만 사실 비법이라기보다는 생활 습관에 대한 가이드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떤 다이어트 방법을 추천하는 대신 사소한 군것질, 출퇴근이나 업무 중 몸을 움직이는 형식, 다이어트를 돕는 마음가짐 등 건강하게 마르는 데에 필요한 습관들을 정리했다.

 

마인드부터 점검하라, 날씬함을 유지하는 식습관, 일상이 운동이 되는 생활습관. 저자의 가이드는 마인드-식습관-생활습관의 흐름으로 크게 마음, 먹는 것, 움직이는 것의 세 가지 단계로 이어진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는 3개월 단위로 월별, 주별, 일별 각각에 따른 다이어트 팁을 실었다. 이 외에도 균형 잡힌 마른 몸매를 위한 꿀팁, 건강하게 마른 몸이 즐길 수 있는 레시피와 매일 먹은 음식이나 마인드를 기록하여 정비할 수 있는 다이어리 페이지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그동안 누구도 몰랐던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이라든지, 전혀 아무도 몰랐던 몸 말리는 비기들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고 몸매 관리에 열심인 사람들이라면 인터넷에서든 책에서든 어디서든 한번쯤은 봤을 것 같은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새롭고 재미있는 포인트는 이 책의 주제에 있다. 저자는 얼마나 몸을 말리든, 살을 얼마나 빼든 간에 '건강'을 잃지 말것을 내내 강조했다. 그리고 건강을 지키는 다이어트를 위하여 마인드부터 정비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했다

 

저자는 단순히 적게 먹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다이어트 수칙보다는 마음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다이어트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500g을 빼기 위하여 고통을 참고 운동을 하기보다는 조금 시간을 걸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기를 권하고, 원푸드 다이어트나 혹독하게 식이를 제한하는 다이어트보다는 지방, 단백질, 무기질 등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먹을거리를 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자세히 설명해준다.

 

[미라클핏]의 표지처럼 길고 마른 몸매는 일단, 타고나야 한다. 타고난 체형이 하늘하늘 마른 타입이 아니기에 나는 저런 몸매가 내 몸에서 나오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내 몸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늘고 탄탄한 느낌을 내보는 게 지금의 현실적인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이나 전략적인 식이요법도 필요하겠지만 습관도 매우 중요하다.

 

고칼로리 간식을 무심코 먹는 습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만 있는 습관, 무기질 섭취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습관 등이 있다면 아무리 효율적인 운동을 하고 식단을 정확하게 지켰다고 해도 그 다이어트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라클핏은 건강하게 마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인만큼 건강해지고 예뻐지는 몸. 그런 몸을 만들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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