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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
김학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정말 그래?
펭귄이 나타난 이후로, 생각은 펭귄이 한다는 말. 진짜야?
이거 참, 남동생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버지께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제목만으로는 도저히 이 작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펭귄이라니... 이건 뭐지?
호기심 반, 의구심 반. 반반무마니의 심정으로 첫 꼭지를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이 소설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와 내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인가, 주인공의 성장기가 나의 그것과 많이 겹쳤다.
화자는 남자의 시점에서 남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데도 여자인 내가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신선했다. 이게 남자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느껴지고 읽히는 구나.
2차 성징은 단순히 신체적 변화와 특성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신적, 정서적 변화와 무게를 함께 가져온다.
2차 성징과 함께 여자는 비로소 여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하고 남자는 비로소 남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한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펭귄은 남성으로서의 욕망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적 욕망을 함께 품은 화자 그 자체다.
저자는 펭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욕망의 시작과 종말을 버라이어티하게 그려냈다. 겨울 한밤의 운동장에서 했던 첫 악수로, 욕망의 세계에 첫 발을 시작한 소년은 IMF와 대학입시, 군대, 취업 등 사춘기와 청년기에 걸쳐 욕망의 절망과 몸살을 온몸으로 겪는다. 욕망은 때로는 핍박당하고 때로는 자기를 혐오하다 결국 스스로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남성의 성을 펭귄과 북극곰으로 유쾌하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낸 작가는 핍박 당하다 그대로 꽃러럼 스러진 욕망,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나이에 당연히 지녀야 할 욕망의 스러짐의 과정을 그리는 데에도 많은 웃음을 동원했다. 가능한 재미있게, 진지하지 않게 풀어내려 노력하는 저자의 노력은 병맛 돋는 문장들 사이에 꼼꼼히 스며있다. 주인공의 성스러운 고백과 회고를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다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성의식이 인간의 정체성과 얼마나 긴밀하게 닿아있으며, 건강한 성 그리고 건강한 욕망(성욕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펭귄은 아닐지.
대한민국의 오늘에 현실이 무겁지 않은 이 어디 있으랴. 비정규직, 88세대, 오포세대, 성대립 문제. 또한 이 문제들이 어디 젊은 세대의 문제랴마는....
한국의 2030이 건강한 의미에서의 욕망마저 시들어 버린 채로, 우리 각자의 펭귄을 영영 다시 못 올 곳으로 보내 버린 채로 콘크리트처럼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다. 야동 취향만큼 당신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고르고 골라, 나누고 나눈, 구분과 정리를 반복해둔 컬렉션이 당신 자신이다. 혈액형 테스트보다 믿을 만하며, 미국 어덜트 코리아 주립대학에서 만든 심리테스트보다 정확하다. 당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은 하드디스크가 알고 있다. 지우지 않고 고이 보관해둔 자료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야동이 당신의 내면이며, 새로운 야동을 거부하면서까지 지켜온 야동이 당신의 본질이다. 숨겨둔 폴더는 당신의 쌍둥이다. 한 번이라도 더 반복해서 보는 야동은 당신의 무의식이 바라는 판타지다. 야동 속에 당신이 있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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