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독서 - 마음이 바닥에 떨어질 때, 곁에 다가온 문장들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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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어야겠다, 이 결심을 세우고 나서 나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갈가리 찢겨진 나는 참혹했고, 나 자신조차 그런 내가 싫었다. 바닥의 부스러기들이 쓰레받기에 담겨져 버려지듯, 내가 부서졌기 때문에 절망의 구덩이로 빠졌던 것인가. 책상에서 바닥으로 낙하한 유리잔이 박살이 나듯, 절망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박살이 났던 것일까. 그건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나는 그때 낙심했고, 절망했고, 그대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절망에 빠졌을 때나 지금이나 나는 절망하기 싫고, 고통스럽기 싫고, 죽기 싫기 때문이다. 긴 시간, 많은 트라우마와 공포와 분노와 싸우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내가 겪은 것들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그러니까 살면서 진심으로 죽어야겠다고, 다른 방법이 없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 그 순전하고 난만한 표정과 삶의 태도가 부럽다. ‘다 잘될거야, 괜찮을 거야낙관이 부럽다. 살기 위해 분투해야 했던 시간을 겪어내고 나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귀한 것들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을 겪지 않는 길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절망을 겪더라도 귀한 것들을 얻는 길을 택할 것이냐고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그대로 활자로 옮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얻었다. 수많은 시간동안 내가 나 스스로를 많이 위로해주고 격려해준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위로는 더 받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절망독서]를 쓴 저자는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절망하고 있는 그리고 절망을 아는 당신. 실례일수 있지만,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라는 글을 써서 세상에 냈다.

 

구원은 공감에서 온다’ (본문 48)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그렇구나. 나와 같은 아픔을 아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래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가슴 바닥이 뜨거워지며 전율이 일었구나. 그 순간이 지난 후에 흉터에 앉은 딱지를 떼듯, 나를 싸고 있던 장막을 치우고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구나.

 

이 책은 진짜 절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 흉악한 대상을 겪어본 사람이 썼다. 그래서 책 어디에서도 당신도 힘내라고 감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 불치병을 이겨낸 것은 저자의 일일 뿐이다. 저자가 이겨내고 힘을 냈으니 독자도 힘을 내라고 조언하는 것이야말로 절망을 모르는 자의 폭력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충분히 울고, 글귀에 많이 공감하고, 저자와 이토록 수월하게 교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하는 자들이여 이 책을 읽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도 썼지만, 태풍의 눈 같은 절망의 중심에서는 책이고 음악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에게 이토록 좋은 책이라고 해서 다른 누군가에게도 꼭 좋은 책이라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낸 글을 읽을 때에, 사람은 누구라도 위안을 얻는다.

구원은 공감에서 오는 법이니까.

그러니 절망을 아는 사람의 공감이, 같이 울어줄 글자들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그때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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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닥치고 영어 - 영포자가 하버드를 가게 된 기적의 독학 훈련
모토야마 가쓰히로 지음, 이지현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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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어는 재미있는 언어다.

학창시절 내내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지내야 했던 애증의 언어이기도 하고, 덕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야 하는 언어이기도 해서 저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 (아니리라 믿고 있다.)

영어는 재미있는 언어가 맞다. 분명히 그렇다. 성조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도저히 애정을 가질 수 없었던 중국어와도 아픈 이별을 겪어야 했고, 가타카나와 히라가나의 더블어택에 물러나고 말았던 일어와의 가슴 저린 기억도 있는 나에게, 영어는 정말 쉽고 즐거운 언어란 말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영어를 원하는만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해서 나는 고민을 하고 있을까?

1년만 닥치고 영어라는 책을 들고 처음 한 생각은 그거였다. , 1년만 영어로만 이야기하고 영어만 듣고 영어만 읽고 영어만 쓴다면 진짜 영어 잘할 수 있겠지. 책 내용도 딱 이거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아, 영어가 도저히 안되어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아, 영어만 듣고 영어만 쓰고 영어만 읽어보라고. ! 치밀하고 체계적인 전략을 먼저 세워야 한다.

 

이 책은, 실제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다 순전히 독학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쌓은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영어 공부법을 안내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야구선수로 운동만 하던 저자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투철하게 공부하여 도쿄대를 들어갔다는 저자의 배경은 그 자체로도 눈길을 끈다. 이건 노력의 문제만이 아니다. 공부 자체를 열심히도 했겠지만, 용의주도한 전략으로 잘 공부한 덕택이기도 하리라.

이러한 저자의 배경 덕에 이 책에는 더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공부 전략에 특출한 사람이 쓰는 영어 공부 전략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책 속에 즐겁게,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틈새까지 꽉 채운 효율성 200%의 영어 공부 전략을 제시했다.

 

저자가 서두에 이야기하듯 영어는 수많은 언어 중 하나일 뿐이며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접하게 되는 가장 친숙한 언어이자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하게 되는 교과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영어를 학습하려고만 한다. 영어를 친숙하게 느끼는 국가에 이토록 많은 영포자들이 있다는 아이러니는 저기서 출발하는 것 같다. 이제는 학습이 아니라 영어를 즐겨보라는 수많은 서적과 비법들이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 이 책은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과 노하우 덕에 다른 안내서보다는 좀더 즐겁고 특히 유투브를 활용한 공부법을 수록하고 있어 일상에 빠르게 도입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영어를 잘 하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 중에 특히 덕질에 익숙하고 능숙한 이들에게는 특히 이 책이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덕질의 도구를 영어로만 바꾸면 덕질이 순식간에 영어 공부로 전이되는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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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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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에 관한 소설 중에 다시 읽고 싶은 작품을 찾기란 참 어렵다.

 작별이라는 행위란 항상 어느 정도 아픔을 수반하기에 작별에 관한 글을 읽을 때 마음이 아픈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여 작별에 관한 소설 그러니까, 아픔을 느끼게 하는 소설임에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작품을 만나기란 매우 어렵다. 작별에 관한 소설은 많아도 한 번 더 읽고 싶은 마음에 곁에 두게 되는 작별 이야기는 아주 적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제목부터 대놓고 슬픔을 암시한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읖조리는 어느 가요를 부를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허전함과 상실감을 제목에 걸어 두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날마다 멀어져'라는 원제보다 이 제목이 훨씬 좋은 것 같다. 더 직접적이어서, 더 쉬워서 좋다. (원제는 길을 읽고 나서야만 이해가 되는 제목일 것 같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서정적인 문장들로 꾸며진 이 짧은 소설은 어느 노인과 그의 아들과 그의 손자의 작별을 그렸다.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노인의 환상 속에서 대부분 흘러간다. 노인과 손자가 다정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는 원형 공원은 햇살 같은 기억, 향기로운 그리움, 노인의 생애 동안 간직하고 품어온 평범한 비밀들로 채워져 있다. 노인은 거기서 날마다 좁아지는 공원을 느끼며, 멀리 바람에 날려 한 장씩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을 바라보며 손자와 대화를 나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좁아지고 날아가 다 사라질 것을 예감하고 그것에 두려워하며, 그리하여 손자만큼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할수 있는 한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싶어 아이의 작은 손을 꽉 붙든 채로.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마침내 아이가 묻는다.

노인은 턱을 긁으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다.

그래, 노아노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작별은 힘든 것 같아요.”

아이가 실토한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지만, 손끝이 마른 가죽처럼 거칠기 짝이 없다.

74

 

예감하지 못한 작별과 준비된 작별 중에 무엇이 더 슬프고 아픈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작별을 마주하고 그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힘들다.

노인의 환상 속에서 노인은 손자와 그들이 풀어야 하는 숙제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하지만 이야기 내내 그들은 조금씩 작별해왔다. 텐트에서의 기억과 선실에서의 기억, 아내와의 기억. 이미 조금씩 조금씩 작별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배우고 싶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하루하루가 작별을 배우는 이별의 날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 소설은 슬프고 아련하기만 한 소설은 아니다.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상상력으로 즐거운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의 매력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작별을 배우는 동안 내내 이어지는 노인과 손자의 대화는 이 작품을, 곁에 가까이 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자 언젠가 작별의 아픔으로 마음이 고단할 때 기댈 곳이 되어줄 이야기로 만든다.

 

선생님께서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은지 쓰라고 하셨어요.”

노아가 얘기한다.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먼저 어린아이로 사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썼어요.”

아주 훌륭한 답변이로구나.”

그렇죠? 저는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화만 내고, 웃는 건 어린애들이랑 노인들뿐이잖아요.”

그 얘기도 썼니?”

.”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던?”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니?”

선생님이 제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했어요.”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가까스로 말한다.

71-72

 

너무너무 예쁘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손자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이, 노인을 올려다보는 손자의 얼굴이 빛이 난다. 그들 주변에 떠다니는 공기까지 향기롭다. 이렇게 아름답고 어여쁜 작별이라니.

노인은 아들마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늙고 쇠약해지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만 마음은 결코 슬픔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작별의 기록은 내 삶에 나누어온 대화들, 내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작별들을 좀더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내 작별의 세계도 저렇게 아름답기를.

내 작별의 기록들도 저토록 빛날 수 있기를.

"선생님께서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은지 쓰라고 하셨어요."

노아가 얘기한다.

"그래서 뭐라고 썼는데?"

"먼저 어린아이로 사는 데 집중하고 싶다고 썼어요."

"아주 훌륭한 답변이로구나."

"그렇죠? 저는 어른이 아니라 노인이 되고 싶어요. 어른들은 화만 내고, 웃는 건 어린애들이랑 노인들뿐이잖아요."

"그 얘기도 썼니?"

"네."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시던?"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니?"

"선생님이 제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했어요."

"사랑한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가까스로 말한다.

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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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 욕망의 바이러스인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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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사피엔스는 욕망의 바이러스인가?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인간이 현재 지구에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치고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인간을 지구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로 표현했다. 그런 인간 존재가,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황량해지는 우리 인간들의 문화와 이 세계가 잊고 사는 것들을 제시하고자 이 책을 출간한 저자의 의도와 심정이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집필의 동기에는 정말 크게 공감하고 동감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책장과 함께 의문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기독교인이었다가 지금은 아닌 저자가,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이 맞다고 주장하기 위해 책을 펴 낸 것인지. 호모사피엔스의 가치와 나아갈 바를 제시하려는 내용이 아니라 저자의 아픈 과거를 자가치유하기 위한 차원에서 원고를 집필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의 철학 세계를 알리고자 한 것인지. 너무 많은 내용들을 한 권에서 담아내려고 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물음표만 준 것은 아니다. 몸 신, 새로운 신, 신 신 등 호모사피엔스의 존재와 그 세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여러 가지 신을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부분들은 참 좋았다. 또한 인간 이외에 이 물질계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생물체들에 대해서 저자가 갖는 존중이 책 곳곳에 잘 녹아 있던 점도 좋았다.

 

내가 듣고 싶었던, 읽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얻지 못해서 의문이 쌓인 것인지,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읽어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책에는 무질서 속에서 우연이 겹치면서 지금과 같은 질서 잡힌 생명체들과 질서 잡힌 세계가 생겼다고 했다. 저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했다. 하지만 열역학 제2법칙에서 분명한 것은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규칙을 지닌 것에서 시작해서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로 변화된다는 것 하나다. 무질서에서 질서가 탄생한다는 것은 이 법칙이 증명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열역학 제2법칙이 물질계의 그 어떤 것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면 무질서에서 질서가 창조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류의 주장들은 항상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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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브닝, 펭귄
김학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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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

펭귄이 나타난 이후로, 생각은 펭귄이 한다는 말. 진짜야?

이거 참, 남동생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아버지께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제목만으로는 도저히 이 작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펭귄이라니... 이건 뭐지?

 

호기심 반, 의구심 반. 반반무마니의 심정으로 첫 꼭지를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이 소설에 푹 빠져버렸다.

저자와 내가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인가, 주인공의 성장기가 나의 그것과 많이 겹쳤다.

화자는 남자의 시점에서 남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데도 여자인 내가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신선했다. 이게 남자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느껴지고 읽히는 구나.

 

2차 성징은 단순히 신체적 변화와 특성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신적, 정서적 변화와 무게를 함께 가져온다.

2차 성징과 함께 여자는 비로소 여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하고 남자는 비로소 남성으로서의 삶을 인지한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성취하고 싶고.

펭귄은 남성으로서의 욕망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적 욕망을 함께 품은 화자 그 자체다.

 

저자는 펭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욕망의 시작과 종말을 버라이어티하게 그려냈다. 겨울 한밤의 운동장에서 했던 첫 악수로, 욕망의 세계에 첫 발을 시작한 소년은 IMF와 대학입시, 군대, 취업 등 사춘기와 청년기에 걸쳐 욕망의 절망과 몸살을 온몸으로 겪는다. 욕망은 때로는 핍박당하고 때로는 자기를 혐오하다 결국 스스로 사라지는 쪽을 택했다.

 

남성의 성을 펭귄과 북극곰으로 유쾌하면서도 재치있게 풀어낸 작가는 핍박 당하다 그대로 꽃러럼 스러진 욕망,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나이에 당연히 지녀야 할 욕망의 스러짐의 과정을 그리는 데에도 많은 웃음을 동원했다. 가능한 재미있게, 진지하지 않게 풀어내려 노력하는 저자의 노력은 병맛 돋는 문장들 사이에 꼼꼼히 스며있다. 주인공의 성스러운 고백과 회고를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다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성의식이 인간의 정체성과 얼마나 긴밀하게 닿아있으며, 건강한 성 그리고 건강한 욕망(성욕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펭귄은 아닐지.

 

대한민국의 오늘에 현실이 무겁지 않은 이 어디 있으랴. 비정규직, 88세대, 오포세대, 성대립 문제. 또한 이 문제들이 어디 젊은 세대의 문제랴마는....

 

한국의 2030이 건강한 의미에서의 욕망마저 시들어 버린 채로, 우리 각자의 펭귄을 영영 다시 못 올 곳으로 보내 버린 채로 콘크리트처럼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다.
야동 취향만큼 당신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고르고 골라, 나누고 나눈, 구분과 정리를 반복해둔 컬렉션이 당신 자신이다. 혈액형 테스트보다 믿을 만하며, 미국 어덜트 코리아 주립대학에서 만든 심리테스트보다 정확하다. 당신의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은 하드디스크가 알고 있다. 지우지 않고 고이 보관해둔 자료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야동이 당신의 내면이며, 새로운 야동을 거부하면서까지 지켜온 야동이 당신의 본질이다. 숨겨둔 폴더는 당신의 쌍둥이다. 한 번이라도 더 반복해서 보는 야동은 당신의 무의식이 바라는 판타지다.
야동 속에 당신이 있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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