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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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 순간. 그 순간을 지내본 사람은 평생을 살아갈 어떤 의지 같은 것을 얻게 되나 보다.

 

글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기분이 참 이상했다. 마음도,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아서 어딘가 불안했다. 유명한 소설 작가들이 이 책의 추천사로 쓴 내용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의 저자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데에는 공감한다. 아마 다른 많은 독자들이 그럴 거라 예상되는데, 나 역시 이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어냈다. 육봉1호의 난데없는 여정에 빨려들어가, 커피의 마지막 한 방울을 빨대로 훑어내듯 그 여정의 끝 문장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모모야, 너의 페퍼랜드는 어디니?’라고, 작품의 마지막을 아련하게 매듭지은 문장은 나의 생각의 매듭까지 말끔하게 지어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참 묘하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 순간이 없는 사람은 그럼,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어디에서 얻게 되는 걸까? 막막한 처지를 견디고 지옥보다 못한 현실이,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서운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그런 꿈같은 추억의 존재에서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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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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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마 상,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나라는 현실의 그릇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태어나서부터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어. 오히려 나는 그것을 줄곧 증오해 왔어요. 내 얼굴이나, 내 두 손이나, 내 피나, 내 유전자나..... 어쨌든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것이 저주스러웠어요.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집을 나온 것처럼.”

275-76

 

생각해 보니까 그 가운데서도 제일 이상한 것은 누가 뭐래도 아저씨야. 그래, 나카타 상이라구. 왜 아저씨가 이상하냐 하면 음, 아저씨는 나라는 인간을 바꿔버렸기 때문이지. 불과 열흘 동안에 나는 엄청나게 변했어.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로 주위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냥 대충 보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구. 지금까지 조금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악이 묵직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거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누군가, 비슷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야. 그래서 말인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내가 줄곧 나카타 상 옆에 있었기 때문인 거야. 그리고 나카타 상 눈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구.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나카타 상의 눈을 통해 본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극히 자연스럽게 나는 아저씨의 눈을 통해서 여러 가지 것을 보고 있었던 거야.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아저씨의 세계를 보는 자세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호시노는 여기까지 아저씨를 계속 따라온 게 아닐까? 아저씨와 헤어질 수가 없었어. 그것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서 제일 알맹이가 있는 일이야.”

2342-343

 

오시마 상은 연필의 지우개 부분으로 관자놀이를 몇 번이가 가볍게 누른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무시한다.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전화벨이 그친 다음에 그는 말한다.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나는 오시마 상이 손에 쥐고 있는 연필을 보고 있다. 그것은 나를 무척 마음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좀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으로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어 폐를 공기로 가득 채우고,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든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2449-450

 

누구나 몸의 성장기를 겪듯 누구나 자기 혐오를 겪는다.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함께 흘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텅빈, 알맹이가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루키는 15살이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에게 이 격변의 시기를 투영시켰던 것일까. 자기 혐오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알맹이를 가진 인간으로 거듭나는지를.

 

조니 워커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부정해야 하고 그리고 진실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확인했을 때에 인간은 현실에 뿌리를 내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 어느 독자가 그랬다고 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그래서 전 세계인에게 인상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나이가 좀 든 후에 읽으니 진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 이러다가 하루키 역주행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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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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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하고 조니 워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도 규칙일세. 눈을 감아서는 안 되네. 눈을 감아도 사태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으니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아니, 오히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을 거라네.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걸세, 나카타 상. 눈을 똑바로 떠야 하네. 눈을 감는 것은 약자가 하는 짓이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비겁한 자가 하는 짓이란 말일세. 자네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단 말이야, 똑딱똑딱하고.”

나카타 상은 시키는 대로 눈을 떴다. 조니 워커는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여봐란 듯이 가와무라 상의 심장을 먹었다. 아까보다도 더 천천히, 맛있다는 듯이 그것을 먹었다.

1285

   

 

누구나 몸의 성장기를 겪듯 누구나 자기 혐오를 겪는다.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함께 흘러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텅빈, 알맹이가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하루키는 15살이라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주인공에게 이 격변의 시기를 투영시켰던 것일까. 자기 혐오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알맹이를 가진 인간으로 거듭나는지를.

 

조니 워커를 죽여야 하고, 어머니를 부정해야 하고 그리고 진실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확인했을 때에 인간은 현실에 뿌리를 내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고 어느 독자가 그랬다고 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그래서 전 세계인에게 인상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어린왕자가 그랬듯이 이 작품 역시, 나이가 좀 든 후에 읽으니 진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 이러다가 하루키 역주행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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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습관이 운명이다 - 관상학의 고전, <상법수신록> 다시 읽기
미즈노 남보쿠 지음, 화성네트웍스 옮김, 안준범 감수 / 유아이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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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인들은 하늘에 녹이 없는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사람에 따라 누구라도 하늘에서 정한 일정한 음식의 양이 있는데 이것을 이라 하였다. 따라서 녹이 없는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는다 하였고 또 태어나는 것을 일컬어 천록을 얻었다고 하였다. 이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욕심내어 먹는 사람은 하늘이 정해놓은 규율을 어기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는 하늘에서 베푸는 식사량이 정해져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식이 있어야 한다. 즉 생명이 있으면 음식이 있다. 음식이 있으면 생명도 있다. 이를 통해 생명은 음식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으로 생애의 길흉이 그것을 통해 결정되니 두려워해야 할 것도 음식이고 신중해야 할 것도 음식이다. 이러니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다 하겠는가.

21-22쪽 식사량을 보면 미래가 보인다 중에서

 

미즈노 남보쿠는 일본 에도시대의 관상가다.

300여년 전의 관상가의 말이 오늘날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을 엿보게 하는 관상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인간들의 관심사다. 몇 년 전에는 관상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나왔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얼굴에 비치는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궁금히 여긴다. 하지만 그때의 관상법이 지금 우리에게도 통할까?

순전히 얼굴의 상을 살펴 미래를 점치는 방법이라면 아마 흥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미즈노 남보쿠는 얼굴의 상 그 자체보다 그가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더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음식을 먹는 자세,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그의 관상 나아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대단히 강조했다.

먹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언뜻 읽으면 이상한 논리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미즈노 남보쿠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은 절제. 인간에게 식욕이란 살고자 하는 본능과 통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식욕을 절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란, 자신이 타고난 운명조차 바꿀 수 있는 심지가 강한 사람이다. 미즈노 남보쿠가 개인이 지닌 식습관을 눈여겨 보고 그와 관련하여 그의 운명을 점치는 근거는 바로 그가 절제하는 인간인지의 여부였다. 그리고 이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타당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거듭 거듭, 식습관을 절제하고 다스리라는 이야기만 해서 너무 아쉽다. 그러나 그런 덕에 한 권의 책을 한 시간도 안 되어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시선을 사로잡는 이런 유익한 이야기도 등장하니, 어쩌면 효율성 높은 책이라고 해야 할지도....

 

Q. 저는 대붕(상상 속의 큰 새)와 같은 새입니다. 어찌 제비나 참새들이 먹는 음식으로 목숨을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A. 대붕과 같은 큰 새나 참새와 같은 작은 새도 그 나름의 음식이 있다. 당신은 작은 새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큰 새는 음식을 많이 먹지도 함부로 먹지도 않는다. 봉황은 물 외에는 다른 것을 먹지 않는다. 작은 새들은 곡식이며 열매는 물론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까지 무엇이든 먹는다. 당신과 같이 음식을,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의 구분 없이 함부로 먹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다. 입으로는 큰 새를 말하면서도 마음도, 먹는 것도 모두 참새와 같다. 어찌 참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78

 

 

 

Q. 저는 대붕(상상 속의 큰 새)와 같은 새입니다. 어찌 제비나 참새들이 먹는 음식으로 목숨을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A. 대붕과 같은 큰 새나 참새와 같은 작은 새도 그 나름의 음식이 있다. 당신은 작은 새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큰 새는 음식을 많이 먹지도 함부로 먹지도 않는다. 봉황은 물 외에는 다른 것을 먹지 않는다. 작은 새들은 곡식이며 열매는 물론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까지 무엇이든 먹는다. 당신과 같이 음식을,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의 구분 없이 함부로 먹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다. 입으로는 큰 새를 말하면서도 마음도, 먹는 것도 모두 참새와 같다. 어찌 참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알겠는가.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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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편이야 -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해온 심상정 이야기
심상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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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에 들어간 데에는 또 다른 깨달음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않은 사람의 삶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각자의 집안 형편이 다르긴 해도 십 대 시절까지는 다들 비슷하게 자란다. 그런데 대학을 간 이들이 겪게 될 사회와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는 너무 달랐다. 이 정도로 불평등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때 만해도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이 강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사회를 막상 내 눈으로 마주하고 보니 너무 끔찍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어떻게 나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창피했다. 아무리 고급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왜 저리 낮은가. 그들의 망가진 삶 위에 이 사회가 서 있고, 내가 그 사회의 수혜를 입고 있었다. 이건 공정하지 못했다.

20쪽 프롤로그 중에서

 

 

내 어머니의 나이와 비슷한, 하지만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정치인.

 

내 어머니는 미싱을 돌려서 나를 키웠다. 나는 미싱이 돌아가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 미싱용 기름 냄새에 익숙하다. 밤늦도록 미싱을 돌리고 온 엄마에게서 나던 옷감 냄새와 정전기는 내 유년의 일부다.

 

내 어머니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노동으로 어린 것들을 먹이려고 일을 하셨다. 어린 것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살림이 아니라 노동에 빚져 있다. 노동하는 어머니의 고단함이 오래된 꽃갈피처럼 기억 사이에 남아 있어서인가, 나는 노동만큼 순수하고 대단하고 강력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람을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고 살게 한다.

 

지난 대선 중에 나의 마음을 가장 흔들었던 이는 언니 같은 그 사람, 심상정이었다.

 

인간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그 어떤 인간도 불평등과 혐오에서 자유롭도록, 우리의 사회가 그래서 인간답고 건전한 세상으로 변화하도록.

그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지를 제시한 몇 명의 정치인 중 하나였다. 적어도 정치를 하려면 이 정도의 소양과 이 수준의 식견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바로미터를 보여준 정치인.

 

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냐고, 개인적으로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거니와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인사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안다고 할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 책에 있다. 심상정 의원이 쓴 자서전, [나는 네 편이야].

 

이 책을 뭐라고 해야 할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나는 눈물이 많이 났다. 대선운동 시절 거리에서 청년들을 만나면 그렇게 자기를 붙잡고 울었다고, 저자가 썼는데 내가 꼭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가 맞다고,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권리 역시 옳다고, 저자와 나는 서로 고개를 같이 끄덕이며 책장을 넘어갔다.

꽃 같은 여대생에서 운동가로 나선 그는 수배자로 도망도 다녀보았고 임신한 몸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어린 아들이 엄마는 나보다 금속연맹을 더 좋아해?’라고 물을 정도로 고단한 워킹맘으로 살아왔고 대선운동 중에는 부친상을 치루면서도 유세를 다녀야 했다. 노동운동 출신의 정치가로서도 그는 주목할만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성 노동운동가로서도, 일하는 여성으로서도 그는 선구적인 길을 개척하며 달려왔다. 여자 대 여자로 나는 그를 존경하고 인생의 선배로 나는 그를 참 좋아한다.

물론 심상정 의원의 모든 정치적 입장과 발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는 나는 주저 없이 나의 표를 그에게 주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그는 참으로 가치 있는 정치인이다.

 

    

공단에 들어간 데에는 또 다른 깨달음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않은 사람의 삶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시골이든 도시든 각자의 집안 형편이 다르긴 해도 십 대 시절까지는 다들 비슷하게 자란다. 그런데 대학을 간 이들이 겪게 될 사회와 대학에 가지 못한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는 너무 달랐다. 이 정도로 불평등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때 만해도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이 강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사회를 막상 내 눈으로 마주하고 보니 너무 끔찍했다. 이런 세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어떻게 나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창피했다. 아무리 고급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왜 저리 낮은가. 그들의 망가진 삶 위에 이 사회가 서 있고, 내가 그 사회의 수혜를 입고 있었다. 이건 공정하지 못했다.
20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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