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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 어른이 되어서도 너를 지켜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
김진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2월
평점 :
입맛은 정말 개인의 취향이다. 유전도 아니고, 학습도 아니다. 순전히 개인의 마음 혹은 몸상태에 달린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초콜릿을 정말 싫어했다. 짜장면도 정말 싫어했고, 피자는 학을 떼었다. 사과는 좋아했는데 포도는 냄새도 싫어했고 무생채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먹어도 배추김치는 또 싫어했다. 배추김치 중에 특히 막 담근 김치는 매우 싫어했다. 잘 익은 김치만 그나마 먹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아마 내 혀가 느낀 그 음식 혹은 식재료의 첫 맛이 대단히 이상했거나, 그 음식을 먹고 체하거나 몸이 불편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인듯하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음식과 과일을 지금은 다 잘 먹는다. 어떤 건 심지어 즐겨 먹는다. 이를 테면 막 담근 김치는 무생채보다 더 좋아한다.
짜장면도 마찬가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어쩌다 중국음식집에 가거나 시켜먹을 때면 나는 항상 우동을 먹었다. 짜장면은 입에 대기도 싫었고 짬뽕은 너무 매웠고 볶음밥은 너무 퍽퍽했다. 우동이 나의 베스트였다. 부드럽고 담백한 국물이 최고였다. 그거 외엔 다른 메뉴를 몰랐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짜장면의 진득하고 밀도 높은 감칠맛을 알아버렸다. 그 일은 정말 어느 날 난데없이 일어났다. 나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 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짜장면을 먹기 위해 노력했던 적 역시도 한번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먹어본 짜장면 한 젓가락이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나는 우동과 작별했다. 지금도 우동은 별로다. 짜장면이 질리면 차라리 짬뽕을 먹는다.
초콜릿도, 피자도 비슷했다. 냄새만 맡아도 멀미를 하곤 했던 음식이나 식재료를,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가면서 좋아하거나 즐기게 되었다.
내가 못 먹겠다고 밀어내는 음식을, 부모님은 강요하지 않으셨다.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도, 못 먹겠다고 밥그릇 밖으로 꺼내버려도 그대로 놔두셨다. 한번은 아버지와 순대국을 먹으러갔는데, 내가 도저히 국물 속에 잠겨 있는 순대를 먹지 못하자 아버지는 따로 순대만 한 접시 시켜주신 적도 있다. 부모님의 배려로 나는 입에서 안 받는 음식, 식도에 받아들이기를 몸이 거부하는 식재료는 억지로 먹어야 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밥상이 아주 편안하고 모든 것이 풀어지는 방종한 자리는 아니었다. 반찬 앞에서 투정이라도 하거나 되도 않는 억지로 식탐을 부리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혼이 났다. 어른들 앞에서 갖춰야 하는 식사 예절은 물론이고 음식과 그것을 만든 이에 대한 존중을 안 지켜도 혼이 났다.
입맛은 개인의 취향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태도와 그 음식을 준비해준 이에 대한 존중은 개인의 취향이면 안 된다. 후자는 취향이 아니라 도리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을 읽으면서 입맛과 태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매우 격렬하게 부딪혀, 솔직히 말하면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위에 길게 쓴 이야기는 내 안에서 부딪혔던 이런 저런 입장들을 정리하다 보니 풀어져 나온 글이다.
이 책은 식품MD 김진영 씨가 딸에게 만들어준 요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은 요리 에세이다.
딸의 입맛이 대단히 까다로워, 그 딸의 입에 맞춘 요리를 만드는 아빠의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참 사랑스러운 책이다. 종종 아침에 내 도시락을 싸두시는 우리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는 책이고.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입장만 담겨 있다면 그저그런 에세이로 남았겠지만, 이 책 최고의 매력은 식품MD답게 풀어내는 다채로운 식재료 이야기다. 집에서도 숙성육을 만들어먹는 방법, 최고의 굴이 나는 지역, 좋은 사과를 오래 먹을 수 있는 팁 등등 따로 메모해두면 분명히 식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책 맨 뒤에는 저자가 딸에게 해주었던 요리의 레시피까지 실려 있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섬세한 자료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숙성육은 진짜 집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