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 관찰학자 최재천의 경영 십계명
최재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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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생명 그 자체다. 살아있다는 것. 호흡을 하고 변화하고 반응하는, 살아있다는 것. 나의 생명이든, 다른 존재의 생명이든 생명의 가치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다. 생명은 단 하나라서 한 번 꺼져버리면 어떤 것으로도 되살릴 수 없으니까.

 

삶이 피폐해지는 순간은 이 생명의 무게와 가치에 대해 희미해지거나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내 존재가 귀한 것은 내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라거나, 내가 어떤 잘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무게를 그런대로 짊어지고 생명의 가치를 부질없이 소비하지 않고 어쨌든 오늘 하루 호흡하고 변화하고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귀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생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학문을 하건, 어떤 일을 하건 간에 빛이 되는 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공식적으로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소개되고, 방송에도 많이 나오셨다는 최재천 교수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국립생태원의 존재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첫눈에 본 사람한테는 호감을 잘 못 느끼는데, 첫눈에 본 국립생태원에게는 단번에 호감을 느꼈다. , 내년에 꼭 여기를 가보고 말리라.

 

생태원이라는 장소 자체에 대한 동경과 선망 때문에 저런 목표를 세우긴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국립생태원을 가보고 싶게 만든 또 다른 매력은, 이 생태원을 이끈 최재천 교수의 가치관과 경영관이다. 모든 생명에게서 배운다, 남보다 너무 많이 가진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세상은 군림君臨이 아니라 군림群臨으로 유지된다, 두뇌 하나가 두뇌 열 또는 백을 능가할 수는 없다 등등 그의 경영 철학 혹은 삶의 철학은 정말 매력적이고 배울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존중, 아니 사랑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든, 경영을 하든, 연구를 하든 결국 옳은 일을 한다는 내 가치관에 확신이라는 무게를 실어주었다.

 

이런 경영자가 더 많아진다면 우리나라는 적어도 불의와 부패 그리고 부조리 때문에 몸살을 앓는 일이 점차로 줄어들다 결국 사라지지 않을까.

 

개미처럼 작은 곤충 하나도 존중하고, 숲 어귀에 싯구와 함께 낭만을 새겨 넣는 멋이 있는 학자 그리고 경영자.

 

여러 가지로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한 책이다.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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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 어른이 되어서도 너를 지켜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
김진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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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은 정말 개인의 취향이다. 유전도 아니고, 학습도 아니다. 순전히 개인의 마음 혹은 몸상태에 달린 일이다.

나는 어릴 때 초콜릿을 정말 싫어했다. 짜장면도 정말 싫어했고, 피자는 학을 떼었다. 사과는 좋아했는데 포도는 냄새도 싫어했고 무생채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먹어도 배추김치는 또 싫어했다. 배추김치 중에 특히 막 담근 김치는 매우 싫어했다. 잘 익은 김치만 그나마 먹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아마 내 혀가 느낀 그 음식 혹은 식재료의 첫 맛이 대단히 이상했거나, 그 음식을 먹고 체하거나 몸이 불편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인듯하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음식과 과일을 지금은 다 잘 먹는다. 어떤 건 심지어 즐겨 먹는다. 이를 테면 막 담근 김치는 무생채보다 더 좋아한다.

 

짜장면도 마찬가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어쩌다 중국음식집에 가거나 시켜먹을 때면 나는 항상 우동을 먹었다. 짜장면은 입에 대기도 싫었고 짬뽕은 너무 매웠고 볶음밥은 너무 퍽퍽했다. 우동이 나의 베스트였다. 부드럽고 담백한 국물이 최고였다. 그거 외엔 다른 메뉴를 몰랐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짜장면의 진득하고 밀도 높은 감칠맛을 알아버렸다. 그 일은 정말 어느 날 난데없이 일어났다. 나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 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짜장면을 먹기 위해 노력했던 적 역시도 한번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먹어본 짜장면 한 젓가락이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나는 우동과 작별했다. 지금도 우동은 별로다. 짜장면이 질리면 차라리 짬뽕을 먹는다.

초콜릿도, 피자도 비슷했다. 냄새만 맡아도 멀미를 하곤 했던 음식이나 식재료를,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가면서 좋아하거나 즐기게 되었다.

 

내가 못 먹겠다고 밀어내는 음식을, 부모님은 강요하지 않으셨다.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도, 못 먹겠다고 밥그릇 밖으로 꺼내버려도 그대로 놔두셨다. 한번은 아버지와 순대국을 먹으러갔는데, 내가 도저히 국물 속에 잠겨 있는 순대를 먹지 못하자 아버지는 따로 순대만 한 접시 시켜주신 적도 있다. 부모님의 배려로 나는 입에서 안 받는 음식, 식도에 받아들이기를 몸이 거부하는 식재료는 억지로 먹어야 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밥상이 아주 편안하고 모든 것이 풀어지는 방종한 자리는 아니었다. 반찬 앞에서 투정이라도 하거나 되도 않는 억지로 식탐을 부리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혼이 났다. 어른들 앞에서 갖춰야 하는 식사 예절은 물론이고 음식과 그것을 만든 이에 대한 존중을 안 지켜도 혼이 났다.

 

입맛은 개인의 취향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태도와 그 음식을 준비해준 이에 대한 존중은 개인의 취향이면 안 된다. 후자는 취향이 아니라 도리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을 읽으면서 입맛과 태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매우 격렬하게 부딪혀, 솔직히 말하면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위에 길게 쓴 이야기는 내 안에서 부딪혔던 이런 저런 입장들을 정리하다 보니 풀어져 나온 글이다.

 

이 책은 식품MD 김진영 씨가 딸에게 만들어준 요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은 요리 에세이다.

딸의 입맛이 대단히 까다로워, 그 딸의 입에 맞춘 요리를 만드는 아빠의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참 사랑스러운 책이다. 종종 아침에 내 도시락을 싸두시는 우리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는 책이고.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입장만 담겨 있다면 그저그런 에세이로 남았겠지만, 이 책 최고의 매력은 식품MD답게 풀어내는 다채로운 식재료 이야기다. 집에서도 숙성육을 만들어먹는 방법, 최고의 굴이 나는 지역, 좋은 사과를 오래 먹을 수 있는 팁 등등 따로 메모해두면 분명히 식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책 맨 뒤에는 저자가 딸에게 해주었던 요리의 레시피까지 실려 있다.

아빠와 딸의 이야기,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섬세한 자료들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숙성육은 진짜 집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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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네가 힘들까 셀프 테라피북 - 가깝지만 상처를 주고받는 이들을 위한 100개의 질문 나는 왜 네가 힘들까
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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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나는 왜 네가 힘들까]라는 책이 나왔다. 크리스탤 프티콜랭이라는 프랑스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다. 저자는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유형을 분류하고 각 유형이 취하는 입장을 피해자, 박해자, 구원자라고 명명했다. 약한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이라며 징징대는 타입, 너의 행동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비난을 쏟아내는 타입, 내가 다 도와줄테니 나한테 기대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라는 타입.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이런 타입일 수 있고, 내가 이런 타입 중 하나일 수 있다.

 

올해는 나는 어떤 유형일까를 혼자 분석해보는 '셀프 테라피북'이 나왔다. 피해자인가 박해자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 세 가지 유형이 쏟아내는 공격을 받고 휘청대고 있는 사람인가?

 

[나는 왜 네가 힘들까 _ 셀프 테라피북]은 세 가지 유형의 특징과 행동에 대한 요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지를 함께 실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자 유형의 전형적인 멘트로 나를 물고 늘어질 때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만약 적합한 대답이나 대응을 할 수 없다면, 그렇게 만드는 내 안의 약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작년에 나왔던 책과 함께 세트로 읽고 생각하고 쓰고 그리고 이것들을 실천에 옮겨보는 단계까지 같이해본다면 생각보다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인간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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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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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은 어렵다.

원글을 쓴 이의 의도와 목적을 가능한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문장을 고치는 일은 참 어렵다.

나는 글쓴이의 뉘앙스가 잘 전달만 된다면 문장에 좀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교정을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 입장에서 보자면 나같은 문법파괴자 혹은 파괴소비자가 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국어 문법과 어휘의 쓰임이 정확한 좋은 문장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쪽은 절대 아니다.

 

잘 고른 흙에 열을 맞추어 고랑을 파고 가지런히 씨를 뿌려 놓은 초봄의 밭은 아름답다. 잘 벼린 문장은 조화롭고 짜임새 있는 한글의 수려함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의 생각과 마음에서 고개를 내밀 새싹까지 잉태하고 있다.

 

교정만으로 어렵고 난해한 분야인데, 이 책의 구성도 나에겐 참 난해했다.

 

저자는 이 구성을 선호하는가 보다. 나는 별로다.

 

교정 실제와 함께 곁들인 한 편의 긴 이야기에서, 저자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손에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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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대통령 문재인 - 대통령에게 배우는 리더십
유일윤 지음, 윤지원 그림 / 글뿌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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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신 분에게 어떤 호감도 비호감도 없다.

이 책은 순전히, 근래 나온 그림책 특히 지금 살아있는 인물을 다룬 책 중에 상당히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책이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림과 글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런 류의 책은, 글자만으로 모든 것을 묘사하는 일반 소설만큼이나 쓰기도, 만들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글자 수나 페이지 수가 적다고 해서 만만히 볼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림으로 전달하는 부분이 큰, 그림동화의 경우 기본적으로 그림이 잘 빠지지 않으면 아무리 글이 청산유수로 수려해도 눈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그림은 대단히 훌륭한데 글이 쫄깃하지 않으면 그림의 이미지 외에 그 어떤 것도 더 전달하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면에서, 이 책을 여러 번 살펴보니 '정말 잘 만든 책이구나' 싶다.

그림이 편안하고 단정하고 예쁜데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도 원만하다. 시사성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어필하고 싶은 부분을 적당히 드러내는데 독자로 하여금 그런 점들을 부담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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