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감동이다 - 미래 청년 외교관들을 위한 전문 가이드, 개정판
유복근 지음 / 하다(HadA)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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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회의장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여 안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현장에서, 나는 무척이나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지구촌이라는 세계가 비로소 현실로 실감나고,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내 삶 어느 구석의 장식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기가 된 것 같았다. 내가 거기서 한 건 크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계에 뭔가 공헌하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한국을 어디 변방의 소국이 아니라 문화의 강국이자 국제관계의 주요 허브로 알리는, 그런 굉장한 걸 해내고 있는 것 같은 성취감까지 들었다. 국제무대를 누비는 외교관에 대한 선망과 환상은 아마 이런 기분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

 

 내가 어릴 때 외교관은 굉장히 스마트하고 역동적인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요 근래에는 여기에 더 보태서, 이 시대에 가장 어울리면서도 가장 필요한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국가 간 장벽이 낮아지고 국가 간 영향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요즘, 관계를 개설하거나 개선하는 외교관의 역할은 그 중요도가 크게 높아졌다. 더구나 외교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니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국적·통합정책단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복근 저자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진로 가이드에 많은 관심을 두고 관련한 저서들을 출간해왔다. 95년에 외무고시 합격 후 외교무대에서 활동해 온 저자는 국제법, 국제조세법 등과 관련한 책들을 출간했고 2015년에는 [외교는 감동이다] 초판을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 우리 민족 외교사에 대한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외교관 혹은 재외공관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를 더욱 충실하게 보완하여 [외교는 감동이다] 개정판을 출간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해외를 다닌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출장 기회를 가졌던 외교관들은 길도 변변치 않고, 차도 없는 여정을 힘겹게 걸었다. 길도 없는 황무지를, 진흙길로 뒤덮인 벌판을, 칼바람이 불고 눈 날리며 꽁꽁 얼어붙은 만주벌판을, 인마가 지나기도 힘든 천길 낭떠러지를, 도적과 적군들로 우글거리는 전장을 뚫고 지나갔다. (중략) 그리고 이 사행단에는 정사, 부사, 서장관 등 사대부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역관, 군관, 화원, 의관 등 중인계급, 마부와 뱃사공, 말먹이꾼, 짐꾼, 심부름꾼 등 당시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 함께 참여했다.
53-54쪽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 신장으로 인해 오늘날 국제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과 참여를 요청하는 분야는 너무나 다양하다. 전세계를 관할하는 보편적인 국제기구인 UN의 개혁문제에서부터 후진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논의하는 회의, 핵문제, 인권문제, 국제사회에서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한 국제법 회의 등 오늘날 제반 의제영역에서 한국의 참여를 기다리고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는 높다. 과거 우리의 국력이 현재보다 미진했을 때는 우리의 외교가 주변 4대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안보 및 경제통상외교에 집중되었으나, 이제는 우리 외교의 영역이 국제공동체의 발전과 전인류의 보편적 복지 증진을 위한 기여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국익도 안보, 경제 통상 등 전통적 외교영역을 넘어 보편적 인권, 인간개발, 민주주의 확산, 여성의 역할확대 등 다양한 가치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134쪽

 

 

 [외교는 감동이다]는 크게 한국의 외교사 그리고 현재 외교의 역할과 영역, 이 두 가지 부문에 대한 내용으로 읽힌다. 책의 전반부에 실려 있는 한국의 외교사는 마치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다. 가야 시절부터 한반도와 주변국의 외교는 아주 긴밀하고 복잡했다. 이런 외교 역사를 주제로 한 사극이 나오면 진짜 재밌겠다, 이런 생각하면서 마치 드라마를 보듯이 외교사의 과정들을 읽었다. 외교라는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나처럼 이 책이 흥미진진하게 읽힐 것 같다.

 책의 후반부는 현재 외교관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아주 실무적이고 실질적인 가이드가 담겨 있다. 외교라는 게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모든 분야의 모든 업무를 수행해야 하다보니 외교관의 업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궂은 일까지도 외교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내 나라의 이미지에 실추가 없도록 품격도 놓칠 수 없다. 진짜 팔방미인도 이런 팔방미인이 또 없지. 그만큼 중요한 인재들이 필요한 분야고 다양한 사람들이 양성되어야 하는 분야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게 아닌가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 뿐 아니라 관련한 재능과 경륜을 가진 사람들이 유능한 외교관으로 이 세계에 뛰어 들어와주기를 바라면서.

 교양서로도, 실무적인 진로안내서로도 참 좋다.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 신장으로 인해 오늘날 국제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적극적 역할과 참여를 요청하는 분야는 너무나 다양하다. 전세계를 관할하는 보편적인 국제기구인 UN의 개혁문제에서부터 후진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논의하는 회의, 핵문제, 인권문제, 국제사회에서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한 국제법 회의 등 오늘날 제반 의제영역에서 한국의 참여를 기다리고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는 높다. 과거 우리의 국력이 현재보다 미진했을 때는 우리의 외교가 주변 4대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안보 및 경제통상외교에 집중되었으나, 이제는 우리 외교의 영역이 국제공동체의 발전과 전인류의 보편적 복지 증진을 위한 기여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국익도 안보, 경제 통상 등 전통적 외교영역을 넘어 보편적 인권, 인간개발, 민주주의 확산, 여성의 역할확대 등 다양한 가치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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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힘 - 유튜브에 빠진 우리 아이 유튜브로 핵인싸 되기 부모되는 철학 시리즈 14
김윤수 외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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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로 세상을 배우는 세대들을 위한 교육 실용서가 나왔다. ‘유튜브에 중독된 아이들, 어쩌나?’ 라든지 ‘인터넷에 빠진 난독시대, 이대로 괜찮나?’라고 걱정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유튜브가 없는 세상으로 회귀할 수 없는 한, 유튜브를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

 

 씽크스마트 출판사에서 내는 <부모되는 철학 시리즈> 열네 번째로 나온 [유튜브의 힘]은 저자가 자그마치 4명이다. 자녀 교육, 읽기와 쓰기, 유튜브 제작, 스피치 등 유튜브 콘텐츠 제작과 직결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노하우를 이 책 한 권에 담았다. 성공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서? 아니,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자녀의 교육과 미래 대비용으로 ‘잘’ 활용하기 위해서!

 

 [유튜브의 힘]의 목적은 ‘교육용’이다. 유튜브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콘텐츠 소비자에서 콘텐츠 생산자(크리에이터)로 도약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는 책이다. 이 다리를 놓는 주체는 아이지만 함께 놓는 역할은 부모다. 이 책은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어디까지나 ‘아이’를 중심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고려하고 제작과정을 안내한다. 그저 구독자가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취지가 아닌 것이다. 내 아이가 잘하는 부분, 내 아이에게 적합한 분야,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차원에서 유튜브 콘텐츠 제작 과정을 안내한다. 소비용이 아닌 교육용으로 유튜브 제작 과정을 안내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모든 부모님들이 한번쯤은 읽어볼만하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제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로 이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책은 초보 유튜버를 꿈꾸는 누구나에게 또한 유용하다. 나 역시 유튜버를 꿈꾸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영상편집, 저작권 등의 문제였는데 이 책은 간략하지만 이런 고민되는 점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나 뿐만 아니라 아마 유튜버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분명히 메모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유익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대다수 성공한 유튜버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매주 1~2편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손수 편집까지 했다면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검증된다.
책 47쪽

 

 그래서 올해는 유튜브에 발 담궈 보는 건가? 유튜브가 단순한 대세가 아니라 이미 이 세계를 이루는 공기의 일부가 아닌가, 싶은 시점에서 이런 책이라니. 참 적절하다.



대다수 성공한 유튜버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매주 1~2편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손수 편집까지 했다면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검증된다.
책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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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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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부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인 김초엽 작가는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상기한 두 개의 단편과 함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의 5개 단편이 하나로 묶여 이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되었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읽기도 전에 많은 질문이 들었던 작품이다. 이 책을 들고 독서모임에 갔던 날 다른 회원들도 물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가정법이에요 아니면 질문이에요, 아니면 다른 뭐예요?”
 나는 슬픔이지 않겠냐고 답했다.
“아직 다 못 읽어서 속단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면, 내년이 오지 않는다면. 이 말들의 뒤에 꼬리처럼 달리는 것들 아닐까요?”
 표지가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더욱 슬펐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다른 속도로 가자!‘고 외치면 그건 청춘만화다. 이미 제목에서 우리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상상도 못할 애를 써도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한 염원이 보였다. 꿈은 간절히 바라도 꿈일 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의 공식을 아마 안나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안나는 과학자다. 그는 장거리 우주비행이나 의료계에 필요한, 완벽한 냉동수면 기술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남편과 아들이 먼저 행성 슬렌포니아로 이민을 떠났고 그녀 역시 연구를 마치는 대로 슬렌포니아로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슬렌포니아로 가는 항로가 폐쇄되고 더 이상 지구에서 슬렌포니아로 우주선이 뜨지 않았다. 우주 항법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전의 항로들과 항법은 경제성을 이유로 사장되고야 만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빚은 생이별의 세월에 안나는 자신이 계발한 냉동수면 기술로 맞섰다.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면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온 것이다. 이미 남편과 아들은 죽고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안나는 노인이 되었다. 이제 ‘운이 좋다면 같은 곳에 묻힐 수도 있겠지’라는 아련한 기대뿐인 안나에게 기술의 진보란 무엇일까?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거실에 무심코 켜둔 텔레비전의 독백이 심상치 않다. 안나에게 아니, 나에게 마치 반박을 하듯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떠든다. 5분마다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는 이 시대에 인간의 삶은 이전과 다르게 얼마나 윤택해졌는지를 돌아보라고 나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래? 그렇다면 왜 릴리는 지구를 떠나 낙원을 만들어야 했을까? 왜 데이지는 시초지로 떠났을까? 왜 그 많은 순례자들은 낙원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을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작품이자 나로 하여금 단박에 이 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주인공인 데이지는 친구 소피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사는 세계의 탄생 비밀을 들려준다. 
 

 


 데이지와 소피가 태어나 성장한 마을은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온하고 안전하다. 갈등이나 혐오, 전쟁 같은 것들이 거기에는 없다. 그 마을에 어른은 적고 아이들은 많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열여덟 살이 된 아이들은 순례자가 되어 이동선을 타고 떠났다가 1년 후, 귀환하여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데이지는 이 성인식의 기이한 점을 발견한다.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이 있다는 것. 심지어 돌아온 순례자 중 하나가 ‘그곳에 두고 온 것’ 때문에 절망하듯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한 후 데이지의 의문은 증폭된다. 대체 순례자들이 어디로 떠나는지,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왜 순례자들은 그곳으로 떠나야 하며 어떤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지. 데이지는 세계의 진실을 알기 위하여 가장 금지된 공간, 금서 구역으로 들어가 이 마을을 만든 릴리와 올리브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릴리 다우드나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유전병 사전 진단이 일반화된 2035년의 지구에서, 그러나 릴리의 부모는 가난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유전병을 그대로 가진 채 태어나 멸시와 혐오를 감수해야 했던 릴리는 성공한 과학자로서의 삶을 접고 잠적했다가 인간배아를 조작하는 바이오해커가 되어 나타났다. 릴리는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인간배아를 개조하여 병도 없고 결점도 없는 명석한 인간을 배출했다. 아마 그것이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을 지우는 길이라고 그녀는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릴리의 행위는 세상을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완벽한 개조인간들은 도심에, 개조되지 못한 인간들은 외곽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를 갖고 싶어진 릴리는 그녀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지성과 아름다움과 매력을 모두 유전자에 새겨 넣어 딸을 배양했다. 그러나 릴리의 아이에게도 릴리와 같은 유전병이 발견되었다. 그때 릴리는 결정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을 만들기로. 그건 얼굴의 흉터나 얕은 경제력이 멸시와 혐오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세계, 데이지와 소피의 마을이었다.
 릴리는 딸 올리브에게 무균의 낙원을 선사했으나 올리브의 선택은 엄마의 마을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엄마가 마을을 만든 이유를 알게 된 올리브는, 마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반드시 떠나 시초지인 지구를 순례하도록 순례의 관습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녀는 마을을 완전히 떠나 지구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엄마인 릴리는 무균의 낙원을 꿈꾸었으나 딸 올리브는 사랑과 연대가 없다면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이라는 거, 살기 좋다는 건 무엇일까? 몸이 편안해지고 안전해지고 윤택해지면 우리는 행복한 걸까? 만약 그것을 행복이라고 규정한다면 아마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이 소설과 같은 현실을 살게 되고야 말 것이다. 모든 결점을 제거한 신인류가 태어나 신처럼 군림하는 동안, 경제 논리에 밀린 사람들은 쓰레기로 취급을 받고 이 세계는 분열되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별이 되고야 말리라. 그래서 올리브는 보호가 보장된 마을이 아닌, 지구로 돌아와 투쟁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을 위하여 이 지구를 바꾸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마을의 다른 아이들 역시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연대하는 아름다운 생을 보내기를 바랐으리라. 비록 그것이 단단한 벽을 두드리고 거대한 파도에 맞서고 까마득한 벼랑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격동이라고 해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작품들의 배경은 미래이고 우주이지만 이 소설만큼 우리의 현실을, 사람의 본성을 절묘하게 그린 작품들이 또 있을까.
 4차산업혁명으로 우리의 삶은 점점 현란해진다. 대신 빈부격차와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급증한다. 김초엽 작가가 책에서 쓴 ‘지성의 황금기를 보는 것 같은’, 마치 과학이 치트키가 되고 기술의 진보가 핑크빛 미래의 보장책으로 등극한 지금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기술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이 편의 속에 인간성이 매몰되어 버리면 우리는 불행해진다.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하여 우리가 띄워야 할 것은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이 아니다. 불통과 억압, 차별과 외면이 도사리고 기술의 진보가 이것들을 심화할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서로로부터 분실되고 분리되지 않기 위하여 시선이 필요하다. 공존하고 공생하기 위하여 보듬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SF소설을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너머 도전까지 받는 것인가 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온기와 시선으로, 김초엽은 굉장한 소설을 완성했다.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책 181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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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그림 -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가만히 나를 붙잡아 준 것들
김한들 지음 / 원더박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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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작품에 집중하는 시종여일한 생활을 한다. 성실함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손에 익은 움직임만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연스러움에 나는 곧, 잘 반한다. 톨스토이도 진실하며 필요 불가결한 것들은 언제나 오랜 시일에 걸친 꾸준한 노력으로 얻어진다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만들어 내기에 ‘소중한’ 이라는 형용사는 그 앞에서 떼어 낼 수가 없다.
책 153쪽

 

 

 삶은 꾸준한 것이라고 여긴다. 작은 물방울 몇 개가 산 바위틈에서 시작하여 바다로, 바다로 다다르기 위하여 계속 움직이듯이. 다다르려는 길에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잠시 머무르긴 해도,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산책하듯이 삶은 꾸준히 간다. 저자가 인용한 톨스토이의 말대로 진실한 것들의 재료가 꾸준함이라면 우리 삶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꾸준함의 속성은 ‘연결’이다. 꾸준함 속에서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고,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연결된다. 점과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선들이 맞닿아 면이 되어 하나의 차원을 이루고 세계가 직조된다. 이렇게 탄생하는 세계, 이렇게 만들어진 나라는 생生. 


 그림 보는 일은 마치 나라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일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큐레이터로 일하는 김한들 저자는 ‘미술’과 함께 평생을 살아왔다. 40년이 채 안 되는 그의 생은 그를 지탱해 주는 것들과 연결되는 꾸준한 노력들로 직조되었다. 

 

 

 

 


 혼자 보는 그림이지만 홀로 있지 않다. 그림과 함께 있고, 그림을 그린 작가와 함께 있다. 그곳에서 저자는 점과 점 사이의 선을 연결하듯 그림과 자신 사이를 의미로 연결한다. 저자는 그림에게만 연결되지 않는다. 세상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문학, 음악, 풍경에게도 조곤조곤 의미를 걸어 자신과 연결한다. 이 의미는 온기가 되어 저자의 삶을 견고하게 직조한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를 읽은 독자는 저자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건 누구에게나 자신의 몫이다.’ 나를 발견하고 대상을 탐구하고 결국 그 사이에 의미로 선을 놓아야 하는 주체는 나다. 이렇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삶은 누구의 것이라도 정처 없이 부유하기 쉽다.

 이 책은 그림 보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림을 보는 방법을 지도하거나 어떻게 예술을 읽어야 하는지를 교육하는 책은 아니나, 그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 그림이 달리 보이는 만화경 같은 수필이다. 저자는 학창시절의 공부, 진로, 직장 생활, 연애, 휴식까지의 생애를 담백하게 들려준다. 전병구, 박광수, 팀 아이텔, 알렉스 카츠의 그림과 함께 저자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그림에 담긴 이야기와 그림을 보는 시선 그리고 그림과 연결되는 생의 면면이 절묘하다. 

 


 
 사람의 온도는 36.5도. 이 따듯한 기운이 꾸준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저자는 그림과 나, 사람과 나 사이에서 온기를 충전하는 플라뇌르다. 플라뇌르는 19세기에 등장한 프랑스 단어로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을 가리킨다(책 177쪽). 저자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따라 꾸준히 거닐면서 온기를 채운다. 이 책에서 ‘온다, 다다른다, 머무른다’ 등의 표현들이 눈에 자주 띄는 것은 아마 플라뇌르인 저자의 표정이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과 사는 일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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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 불확실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확신의 놀라운 힘
울리히 슈나벨 지음, 이지윤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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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특성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불확실성’.
삶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기대한 바로도 흘러가지 않는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성'. 이 불확실성이란, 나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는 의미도 되고 좋은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는 의미도 된다. 이 앞에 오는 게 가시밭길일지 꽃길일지 알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두 갈래로 나뉜다. 가시밭길이 주는 위협이 꽃길이 주는 안심보다 훨씬 커서 비관주의 혹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경우, 어떤 보장이나 근거는 없지만 막연히 꽃길일거라고 기대하며 느긋하게 여유만만하게 구는 낙천주의자의 태도도 있다.
낙천주의자의 입장에 반대를 표하는 대부분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인생은 위험투성이이고 세상은 적자생존의 도가니이므로 단순히 '잘될거야'라는 마인드 하나로 온 우주가 너를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동감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겠다. 비관주의와 현실주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인생은 위험투성이가 아니라 불확실성투성이이고 세상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공생터전이다.

 

이제 불확실성이라는 개념부터 바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불확실성을 비관 혹은 비극하고만 연관지어버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이 분명히 안 풀릴거야'라거나 '뭘 해도 소용없다'라는 비관이 내재되어 있다면 사람은 절대 어떤 것도 하지 않게 된다.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불러오고 이 감정들이 또 다른 비관을 불러오는 사이클이 반복되고야 만다.
그래서 울리히 슈나벨은 이 책을 썼다. 불확실성이 비극과 동의어가 아니며, 설령 비극이 내게 닥친다 해도 삶은 계속 나아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내일 죽을지 다음 달에 죽을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불확실성이라면, 그 순간까지 명백하게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건 확실하다. 언제든 나는 죽을 예정인데 어차피 죽을 거니까 모두 부질없다는 식의 태도는 삶이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결국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일을 당할 때 내 생애가 꺾이지 않도록 움직여 가는 건 '확신'이다. 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도망가거나 부인하고 싶을 정도로 험한 상황이 나를 덮치기 전에 (혹은 이미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확신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 말이다.

 

 저자는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삶과 인류의 역사 속 사례들을 분석하여 확신이 삶의 에너지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이 확신은 어떻게 생기며, 이 확신을 강화하는 방법까지도 제안한다. 확신이란 물질적으로 손에 잡히거나 측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신중하게 ‘낙관주이와 확신주의의 차이’를 설명하고 확신이 왜 삶의 에너지인지를 각종 사례를 근거로 증명하며, 확신의 중추인 ‘의미’를 경험하는 일이 현대인 초미의 관심사인 행복이나 만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시켜준다.

 

(위에서는 비관주의에 대해 위험하다고 썼는데) 낙천주의 역시 비관주의만큼 위험하다. 확증이 없는데 밑도 끝도 없이 '다 잘될거야'라는 식은 망함의 지름길이다. 내가 지금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여기는 건 더 큰 화를 부른다. 현실 부정이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 1도 없다. 희망이나 확신은 이런 자기 최면 같은 게 아니다. 이 책은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한 인물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빅터 프랭클, 율리아네 쾨프케, 야쿠바 사와도고 등 고도의 역경을 이겨낸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이런 험한 일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표본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의 생애는 몇 개의 표본으로 특정되지 않는다. 70억의 인류는 70억 개의 생을 산다. 그 속에서 각각이 크고 작은 성취나 어려움,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한다. 특히 무한경쟁에 아무런 방비도 없이 내몰린 현대인은 한 두번의 실패나 어려움에도 곧잘 절망과 무기력, 자기혐오와 우울감에 쉽게 빠진다. 경쟁에서 진 실패자, 낙오자, 루저라는 프레임에 갇히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은 야산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법도 아니고 어차피 흙수저로 태어난 이번 생은 틀렸으니 탕진하며 살겠다는 정신승리도 아니다. 실패 몇 번으로 인생을 루저로 낙인찍기에는 이르다. 부정의 순간이 더 오래 그리고 강하게 기억에 남기에 실패가 더 크게 느껴질 뿐이지, 나는 성공과 만족, 성취의 순간 역시 경험해왔다. 이 경험들을 모두 돌이켜 보고 그 의미를 단단히 새기는 게 확신이다. 삶의 불확실성을 적대하기보다 수용하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병을 이기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을 장착해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인생이므로 나만이 할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이나 빅터 프랭클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지의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혹독한 삶 속에서 단단한 뿌리가 되었던 그 '확신'이 오늘 내 삶에도 필요하기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지옥 속을 걷고 있다면 계속 가라'. 끝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그 끝에 무언가가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다. 삶은 불확실하니까. 그러나 살아 있는 한 계속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확신 자체가 길이 된다. 확신이라는 길이 없는 사람은 멈춘다. 길을 잃었거나 힘을 잃었으므로. 지옥 속을 걷는 모두에게 확신이 길이요 빛이 되어주기를 응원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의 과제는 기술적 문제와 현실적 위험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곳곳에 확산된 공포감, 자포자기, 의욕 상실을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미국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우울증을 ‘미래를 구성하는 능력의 상실‘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지금 마음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석연료의 고갈만이 에너지 위기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확신이라는 동력과 이로부터 삶의 기본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준비하고 나아갈 수 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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