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 불확실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확신의 놀라운 힘
울리히 슈나벨 지음, 이지윤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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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특성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불확실성’.
삶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기대한 바로도 흘러가지 않는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성'. 이 불확실성이란, 나쁜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는 의미도 되고 좋은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다는 의미도 된다. 이 앞에 오는 게 가시밭길일지 꽃길일지 알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두 갈래로 나뉜다. 가시밭길이 주는 위협이 꽃길이 주는 안심보다 훨씬 커서 비관주의 혹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경우, 어떤 보장이나 근거는 없지만 막연히 꽃길일거라고 기대하며 느긋하게 여유만만하게 구는 낙천주의자의 태도도 있다.
낙천주의자의 입장에 반대를 표하는 대부분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인생은 위험투성이이고 세상은 적자생존의 도가니이므로 단순히 '잘될거야'라는 마인드 하나로 온 우주가 너를 도와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동감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겠다. 비관주의와 현실주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인생은 위험투성이가 아니라 불확실성투성이이고 세상은 적자생존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공생터전이다.

 

이제 불확실성이라는 개념부터 바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불확실성을 비관 혹은 비극하고만 연관지어버린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이 분명히 안 풀릴거야'라거나 '뭘 해도 소용없다'라는 비관이 내재되어 있다면 사람은 절대 어떤 것도 하지 않게 된다.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불러오고 이 감정들이 또 다른 비관을 불러오는 사이클이 반복되고야 만다.
그래서 울리히 슈나벨은 이 책을 썼다. 불확실성이 비극과 동의어가 아니며, 설령 비극이 내게 닥친다 해도 삶은 계속 나아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내일 죽을지 다음 달에 죽을지,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불확실성이라면, 그 순간까지 명백하게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건 확실하다. 언제든 나는 죽을 예정인데 어차피 죽을 거니까 모두 부질없다는 식의 태도는 삶이 불확실해서가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다. 결국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일을 당할 때 내 생애가 꺾이지 않도록 움직여 가는 건 '확신'이다. 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도망가거나 부인하고 싶을 정도로 험한 상황이 나를 덮치기 전에 (혹은 이미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우리는 확신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확신 말이다.

 

 저자는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삶과 인류의 역사 속 사례들을 분석하여 확신이 삶의 에너지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이 확신은 어떻게 생기며, 이 확신을 강화하는 방법까지도 제안한다. 확신이란 물질적으로 손에 잡히거나 측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신중하게 ‘낙관주이와 확신주의의 차이’를 설명하고 확신이 왜 삶의 에너지인지를 각종 사례를 근거로 증명하며, 확신의 중추인 ‘의미’를 경험하는 일이 현대인 초미의 관심사인 행복이나 만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이해시켜준다.

 

(위에서는 비관주의에 대해 위험하다고 썼는데) 낙천주의 역시 비관주의만큼 위험하다. 확증이 없는데 밑도 끝도 없이 '다 잘될거야'라는 식은 망함의 지름길이다. 내가 지금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여기는 건 더 큰 화를 부른다. 현실 부정이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건 1도 없다. 희망이나 확신은 이런 자기 최면 같은 게 아니다. 이 책은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저자가 이 책에서 인용한 인물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빅터 프랭클, 율리아네 쾨프케, 야쿠바 사와도고 등 고도의 역경을 이겨낸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통해 저자는 '이런 험한 일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표본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의 생애는 몇 개의 표본으로 특정되지 않는다. 70억의 인류는 70억 개의 생을 산다. 그 속에서 각각이 크고 작은 성취나 어려움,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한다. 특히 무한경쟁에 아무런 방비도 없이 내몰린 현대인은 한 두번의 실패나 어려움에도 곧잘 절망과 무기력, 자기혐오와 우울감에 쉽게 빠진다. 경쟁에서 진 실패자, 낙오자, 루저라는 프레임에 갇히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은 야산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법도 아니고 어차피 흙수저로 태어난 이번 생은 틀렸으니 탕진하며 살겠다는 정신승리도 아니다. 실패 몇 번으로 인생을 루저로 낙인찍기에는 이르다. 부정의 순간이 더 오래 그리고 강하게 기억에 남기에 실패가 더 크게 느껴질 뿐이지, 나는 성공과 만족, 성취의 순간 역시 경험해왔다. 이 경험들을 모두 돌이켜 보고 그 의미를 단단히 새기는 게 확신이다. 삶의 불확실성을 적대하기보다 수용하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병을 이기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을 장착해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내 인생이므로 나만이 할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이나 빅터 프랭클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지의 정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혹독한 삶 속에서 단단한 뿌리가 되었던 그 '확신'이 오늘 내 삶에도 필요하기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지옥 속을 걷고 있다면 계속 가라'. 끝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그 끝에 무언가가 있을지 역시 알 수 없다. 삶은 불확실하니까. 그러나 살아 있는 한 계속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확신 자체가 길이 된다. 확신이라는 길이 없는 사람은 멈춘다. 길을 잃었거나 힘을 잃었으므로. 지옥 속을 걷는 모두에게 확신이 길이요 빛이 되어주기를 응원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의 과제는 기술적 문제와 현실적 위험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곳곳에 확산된 공포감, 자포자기, 의욕 상실을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미국의 심리학자 롤로 메이는 우울증을 ‘미래를 구성하는 능력의 상실‘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지금 마음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석연료의 고갈만이 에너지 위기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확신이라는 동력과 이로부터 삶의 기본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준비하고 나아갈 수 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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