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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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린 지 10년째다. 홈베이킹에 빠져서 순전히 레시피 기록, 공정 기록을 남기려던 목적으로 시작한 블로그에 책 이야기를 쓰게 된 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블로그는 아주 사적인 공간이다. 이 ‘사적’이라는 단어의 뜻은 ‘비밀스럽다’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뜻이다. 온라인에 내가 쓴 포스팅을 오픈한다는 건 불특정 다수에게 ‘나 자신’을 공개한다는 거다. 블로그를 한다는 건 나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니 블로그에는 자연스럽게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만 모인다. 내 블로그의 경우, 베이킹과 책 그리고 공연이나 전시나 뭐 그런 문화예술 활동들이 그런 것들이다. 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다른 말로 내가 무척이나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 블로그 =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그렇게 10년 정도 책 리뷰를 써오면서 내가 올린 리뷰의 형태는 여러 번 바뀌었다. 내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바뀌어온 것이리라. 처음에는 단순히 ‘이 책 읽고 이런 걸 느꼈다.’ 정도였던 소소한 리뷰가 소위 ‘짬’이 늘면서 점점 허세가 짙어지고 덩치를 부풀리기도 했다. 어떤 시기에는 정말 대충 읽고 썼구나 싶은 리뷰들이 떡하니 포스팅되어 있기도 하고 읽은 책에 대한 애정이 1도 없어 보이는 리뷰들도 여럿 있다. 물론, 모든 책 리뷰가 잘 쓴 리뷰이기는 어렵고 모든 책을 애정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사족이지만, ‘요즘은 진짜 왜 만들었지?’ 싶은 책들이 적지 않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해도 책 리뷰를 10년 정도 쓴 블로거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는 책 리뷰가 블로그에 있다는 건 참 불편한 일이다. 흑역사를 지우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내 독서기록을 훼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옘병... 일단은 그냥 둔다. 대신 돌파구를 찾아본다. 그래서 작년부터 대체 서평이란 걸 어떻게 써야 좋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거다.

 

 [서평 글쓰기 특강]은 숭례문학당의 김민영, 한겨례교육문화센터에서 서평 입문을 가르치는 황선애 강사 둘이 서평쓰기의 기초에 대하여 쓴 책이다. 서평쓰기는 읽기와 쓰기가 병행되는 활동이다. 서평쓰기를 위한 읽기부터 서평의 얼개와 완성까지 단계별 특징들을 간추렸다. 해당 문학당과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평이란 무엇이냐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인터뷰 내용까지 책 뒤에 실려 있다.

 두 명의 저자가 각각 쓰고 싶은 목차 부분을 맡아서 집필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중복되는 부분도 보이고, ‘이런 내용이 왜 이 꼭지에 들어가 있지?’ 싶은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을 좀더 정리하고 책을 냈으면 요점이 확실하고 책도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책은 유익하고 재미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읽기부터 달라야한다는 지적과 서평이라는 글의 구조를 짜는 방법, 얼개에 살을 붙이기 위하여 던져볼만한 질문 등 독후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조언들이 쏠쏠하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든가, 책을 읽고 감상을 쓰기는 하는데 좀 더 수준 높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모두 좋을 책이다. 즉, 기초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기초는 있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사다리를 타고 싶은 사람 모두가 읽어도 좋다.

 ‘서평은 결국 자신을 위하여 쓰는 것’이라는 제목에 공감한다. 읽기와 쓰기는 무척이나 사적인 활동이다. 블로그가 개인의 취향을 집합한 사적인 공간이듯, 읽기와 쓰기 역시 서평이 어떤 영향을 불러오든 간에 애초부터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읽기와 쓰기가 나에게 무엇을 주기에 그러냐고? 이 책의 부제는 그런 면에서 참 잘 지었다. '생각 정리의 기술' 서평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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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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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다. 창조할 때에 자기 자신을,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루어냈을 때 사람이 느끼는 희열보다 더 강한 건 없다. 밀레니엄을 넘어서면서 증폭되어온 사회 전반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창조하는 대신 소비에만 몰입하도록 만드는 환경과 구조에 있다. 이에 대한 미약한 돌파구로,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 생활에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다.

 

 요리나 미술(그리기), 수공예 등 행위의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활동도 있지만 결과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도 있다. 독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언가를 ‘읽기’의 행위는 소비라고 여겨지기 쉽지만 (그리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칠 수 있지만) 읽기는 분명한 창조다. 이승우 소설가가 쓴 에세이 [소설가의 귓속말]은 왜 읽기가 창조 행위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문장을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 이제까지의 전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현재의 상태 역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략) 우울할 때와 명랑할 때 읽는 책이 같은 감상을 줄 리 없고, 열여섯 살 때와 쉰아홉 살에 읽는 책 역시 그럴 것이다. 독자의 처지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문자 텍스트의 숙명이다.
55쪽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56쪽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그 해석과 감상의 결과는 제각기 다르다. 작가가 쓴 책에 담긴 문장들이 독자라는 렌즈를 거쳐 각 개인의 고유한 결과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이승우 소설가가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쓴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문장의 속성(책 54쪽)’은 언어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읽기가 창조 행위라는 걸 어떻게 말로 입증(정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오던 나에게 이 책은 근사한 증거가 된 셈이다.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승우 소설가의 신간이다. 소설 쓰기에 40년을 매진해 온 이승우 작가가 바라본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하여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작가의 삶 등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년에 [모르는 사람들]을 읽은 뒤로부터 이승우 작가의 완전한 팬으로 노선을 정한 나는 그의 신간 [소설가의 귓속말] 앞에서도 내내 팬심을 숨기지 못했다. ‘이승우’라는 이름 만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첫 꼭지부터 [소설가의 귓속말]은 이 책을을 읽을만한 가치를 쏠쏠하게 보여준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첫 장부터 재밌다.

 

 

 

 최근에 책쓰기 카페를 통해서 만나게 된 예비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건,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해부하여 글자로 드러내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승우 소설가 역시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소설 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로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쓰기를 언급한다. 이런 소설 쓰기의 생리를 글쓰기의 특징 전체로도 확장해 보면 ‘글을 쓰면서 힐링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고백이 이해가 된다.

 [소설가의 귓속말]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소설가로서의 철학이나 의식들을 담았는데 그 중에는 토마스 만, 허먼 멜빌 등 국내외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언급도 많다. 영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치열하게 고민했고 무수히 고민한 주인공이 이승우 소설가 자신이기에 책 속의 글들이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객석의 조건과 도서 환경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망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쪽, 그리고 내 눈 앞의 기둥 앞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르게 문장을 번역해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이 세상을 읽는 독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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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라이팅 훈련 : 스토리 라이팅 - 2nd Edition 영어 라이팅 훈련
한일 지음 / 사람in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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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피디 중에 수학과를 나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취미는 수학 문제집 풀기다. 일을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문제집을 푸는 걸로 힐링을 삼는다고 한다. 누군가는 레고를 조립하고 누군가는 프라모델을 만들어서 진열하듯 자기에게는 수학 문제들을 한 장, 한 장 풀어 다 푼 문제집들을 쌓아 두는 게 비슷한 느낌의 취미 생활이라고.

 뭔 별난 취미도 다 있다.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맙소사 이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취미로 삼기에 딱 좋은 영어 쓰기 훈련 교재다. 영어 문제집이라고 하기엔 적당하지 않다. 이 책은 영어 문제를 맞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영어 쓰기 기술을 기르는 게 목적으로 탄생한 책이니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에 대한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 이 책이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의 장점은 단연 ‘재미’다. 정말 재밌다. 아주 쉬운 단계서부터 서서히, 영어 문장 구조에 따라 표현을 늘려가며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쓰기 훈련을 하게 만드는 책인데 확장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고 이해가 쉬워서 자꾸만 다음 장으로 진도를 빼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5개 챕터에서 문장 훈련을 하고, 거기서 쌓인 표현들을 한데 모아 스토리 라이팅 훈련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반복되는데, 단연 가장 재미있는 건 스토리 라이팅 부분이다.

 

 

 

 

 

 영어로 쓰기 훈련을 위한 책이지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다 풀어보면 쓰기만 아니라 읽기에도 상당히 좋은 작용을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으로 쓰기 훈련을 한 후에 영문 소설을 읽어보니 문장 구조가 더욱 빠른 시간 내에, 더 매끄럽게 파악이 된다.

 어릴 때 영어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거 진짜 재미 없다’고 느꼈던 게 표현의 한계 때문이었다. 한국어로 머리를 맴도는 말들을 속 시원하게 영어로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결국 안 쓰게 되더라. 그때 받았던 조언이 일기쓰기부터 하지 말고 표현 가능한 범위를 확장한 다음에 일기를 써보면 재미있어질 수 있다는 거였는데, 지금 이 책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풀고 나서야 그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단 걸 느낀다.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전략 없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부터 해버리면 영어로 쓰기에 흥미만 잃고 나가떨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영어 문장을 전략적으로 해체하여, 뼈대를 잡은 후 살을 붙여나가는 확장 방식으로 쓰기를 훈련하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어 쓰기를 체계적이면서도 쉽게 익힐 수 있게 해준다. 안 그래도 방콕으로 몸살을 앓는 많은 분들에게 [영어 라이팅 훈련 스토리 라이팅 STORY WRITING] 2nd Edition을 추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어 쓰기 공부에 빠져들거라고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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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들 창비세계문학 2
리처드 라이트 지음, 김영희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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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미국 독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공 비거 토마스가 ‘살인까지 하도록 만든 건 나 자신’이라고 소리치는 결말에 이르러 그를 변호하던 맥스조차 말을 잇지 못했는데, 아마 그 때의 맥스의 표정이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의 표정이었으리라. 백인 여성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낸 걸로도 모자라 그 사체를 난로에 넣어 태워버린 후, 그 여성의 집에 납치범을 가장하여 편지를 보내기까지 한 스무살 흑인 남성의 대범하고도 파격적인 범죄 행각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한 충격은 그 사건의 이면에 도사린 증오의 면면을 파고드는 저자의 묘사에서 온다.

 

 

 [미국의 아들]은 아주 깊고 예리한, 가혹한 인종차별의 실태와 그 결과를 그렸다. 리처드 라이트가 발견한 인종차별의 가장 파괴적인 본질은 현대사회 특히 현대 산업사회의 특성에 있다. 찰리 채플린이 1914년 <모던 타임스>에서 풍자한 인간의 도구화, 사물화는 리처드 라이트가 [미국의 아들]을 발표한 1940년에는 더욱 심화된 상태였다. 리처드 라이트는 ‘비거는 어떻게 태어났는가?’라는 글에서 비거 토마스는 흑인일 뿐 아니라 백인이기도 하고, 세상 어디에나 있다고 썼다. 미국 뿐 아니라 나치 독일과 제정러시아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살고 있는 ‘비거 토마스’의 감정 상태, 그 감정을 촉발한 사회 요소와 구조, 이 모든 것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며 촉발되는 피해자들과 범죄자들을 예리하게 관찰한 리처드 라이트는 그 관찰의 결과인 [미국의 아들]이라는 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인종의 문제를 다룬 작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의 아들]은 곧 산업사회의 아들이다. 인간을 철저하게 소외시켜 처절한 고립감과 열등감에 파묻고 결국 분노에 사무쳐 비윤리적이고 변태적인 일탈 행위에 이르게 만드는 우리들의 사회.

 

 


이 청년의 운명을 결정할 때 이 법정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청년의 범행이 우발적으로 행해지긴 했지만 터져나온 감정은 이미 존재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청년의 생활 방식이 곧 범죄였다는 점, 이번 범죄는 메리 돌턴을 살해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는 점, 이번 범죄의 우발적 성격은 이 청년이 베일 뒤에 숨어 살다가 그 베일을 갑자기 확 찢어버리는 식으로, 그리하여 원한과 소외감이 폭발하여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식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미국의 아들] (큰글자)책 2권 176쪽

 

 비거 토마스는 변변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조차 익히지 못했다. 가정 내에서조차 그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주변인들과 그 어떤 소통과 교류도 나누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소외된 채 살아왔다. 그런 비거 토마스가 인간다운 대화를 나눈 유일한 인물은 맥스였다. 그를 변호하는 데에 지원한 유태인 변호사 맥스와의 대화를 통하여 비거는 비로소 자기가 살인까지 하게 만든 자기 안의 자신을 입밖으로 꺼내는 데에 이른다. 맥스와의 마지막 대화를 나누면서 비거는 ‘살인까지 하게 만든 그것이 나다’라고 선포하듯 말하고 사형대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말로 보여주어야만 자기가 한 것들이 무가치한 것들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살인은 자신이 선택한 행위였고 그것을 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인정 없이는 도저히 죽을 수도 없었던 비거 토마스의 정체성은 이토록 빈곤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하여 일말의 후회나 죄책감조차 없는 절대 악인. 그 악의 동기는 악감정이었고 그 악감정은 꽃 같은 생명을 앗아갔다. 자기 정체성을 알고 찾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공급받지 못했고 그럴 기회조차 박탈당한 비거 토마스를 통해 작가 리처드 라이트는 악인의 행위 자체도 흉악하지만 그런 악인을 배양하는 사회는 얼마나 더 흉악한 것인지를 묻는다.
 
 최근에 한국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을 기함시키는 범죄들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이춘재나 오원춘 같은 연쇄살인범들이나 n번방의 박사들, 그리고 혐오범죄나 분노범죄가 번갈아가면서 뉴스가 되었다. 속된 말로 별 거지같은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제 웬만한 범죄들은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 그런 시국에 [미국의 아들]은 특정 인종이 받은 사회적, 국가적 핍박과 탄압이 아니라 인간을 착취하는 거대한 착즙기 같은 산업사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으로 읽힌다. 맥스가 비거 토마스의 변호를 맡은 이유는 그의 우발적 범행에 참작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비거 토마스와 같은 범죄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그 범죄 동기를 낱낱이 해부하여 범죄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둔다면 두 번째 메리 돌턴이나 베시(비거가 죽인 두 여성)는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그 또래의 대부분의 소년보다 어립니다. 깊고 폭넓은 삶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에게 감정의 분출구는 일과 성, 단 두 가지였습니다. 이것들마저도 피고인은 가장 나쁘고 천한 형태로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큰글자) 2권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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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그릇 -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나 얻은 비움의 힘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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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4월은 신기하고 묘하다. 날카로운 바람, 단단한 흙. 햇빛이 비추는 곳마저도 따듯하기보다 건조해서 봄은 대체 어디쯤 오는지 애를 태우던 게 3월이었다. 그런 산이 홀연히 변한다. 꽃나무의 이파리들이 말 없는 새의 부리 마냥 유순하게 돋고, 바람은 오늘 처음 태어난 것처럼 소나무의 손바닥에 뺨을 맞대어 온다. 그러면 산 전체가 소리들로 가득 찬다. 굵은 가지들이 저들끼리 부딪히며 깨어나느라, 새들이 바지런하게 먹이를 구하느라, 봄꽃을 보겠다고 줄줄이 찾아온 등산객들이 산의 어깨를 밟고 오르느라 시끄럽다. 방학을 끝낸 학교마냥 별안간 소란해지지만 끝내 산 자체는 고요하다. 척박한 겨울을 간직하고 있기에 산은 봄볕의 너그러움을 차분하게 받을 줄도,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품을 줄도 안다. 이렇게 받고 품어서 다음 계절로 향하는 순리를 아는 덕이다. 어느 여름에는 태풍으로, 어느 겨울에는 큰 불로 몸살을 겪었으므로 산은 태연하다. 천지의 이치를 경외하고 곤핍한 시기를 두려워할 줄 알기에 4월의 생장生長에 감사하면서 담담히 다음 계절을 예감할 뿐이다.
 몰라보게 변한 산의 4월을 바라보면서 왜 그 옛날 선비들이 산수화를 아꼈는지 알게 된다. 대나무를 닮고 싶어서 대나무를 그리고, 난초처럼 살고 싶어 난을 그렸던 그들의 시선은 산에 닿아서 저 산과 같은 그릇이 되고자 했으리라. 그들은 가고 없으나 산은 남아서 옛사람에게 보여주었던 모습 그대로 지금 나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산을 찾는 걸까?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하여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를 고민할 때 우리가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산은 저 산만이 아니다. 짧게는 몇 백년, 길게는 몇 천년을 거쳐 우리에게 산이 된 책들이 있다. 책을 쓴 저자들마저 지금 없는데도 책은 남아서 우리와 만난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고전이 된 책들 중에 명나라 최고 정치가인 여곤의 사상을 집대성한 『신음어(呻吟語)』가 있다. 


 여곤과  『신음어』를 알게 된 건 일본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인 나카지마 다카시가 쓴 [리더의 그릇]이라는 책 덕분이다.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난 나카지마 다카시는 성공하는 삶과 기업 경영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비결은 오늘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노하우가 아니었다. 여곤이 30여 년을 써서 펴낸  『신음어』의 많은 부분이 이미 조직 경영과 가치 있는 삶의 정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 년에 2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는 다독가로도 유명한 나카지마 다카시는 500년 전 탄생한 명나라 최고 고전인 『신음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내 우리 시대가 절박하게 찾고 있는 진짜 리더, 21세기 성인聖人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리더의 그릇]에서 저자 나카지마 다카시와 여곤은 시종일관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을 갖자고 피력한다. 감정 과잉, 감동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래서 모든 것이 과잉된 나머지 무력해지고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진 우리에게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이란 대체 무언지, 감을 잡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은 17장에 달하는 작은 주제와 그보다 더 세밀한 주제들로 촘촘하게 구성을 짜고 독자를 이끈다. 1장 성명편으로부터 17장 사장편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여곤의 목소리가 번갈아 말을 건다. 생각은 깊게 하되 행동은 과감하게,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마음으로 상대와 세상을 살피고, 명예와 사리사욕 보다 덕을 구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장, 한 장을 넘어가면서 처음에는 모호했던 인물의 이미지가 점차로 구체화되고 선명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내가 이 책을 만나, 이 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인연에 탄복한다.

 

 

 여곤은 공자나 맹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대중적인 인물이다. 『신음어』 역시 사람을 성인과 현인 등으로 구분하고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로만 보면 그 이전의 동양 사상들과 비교해 큰 특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지만 지키기 힘든 것들을 지키라고 강조하는(책 36쪽) 철학자다. 공기와 햇빛을 잊고 살 듯 너무 중요한데 놓치고 사는 것들의 진짜 의미를 일러준다. 특히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더욱 그렇다. 삶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며 살아낸 순간들의 총합이다. 여곤 그리고 『신음어』를 설명하는 나카지마 다카시의 목소리는 ‘사람과 삶에 대한 메타인지’로 귀결된다. 

 

 

 


 삶은 거대한 곡선이다. 너무나 커서, 이 곡선의 궤적을 걷는 자에게 그건 직선으로 보인다. 마치 우리가 사는 공간은 평지이지만 지구는 둥근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곡선은 언제나 직선으로 보인다. 눈 앞의 것에만 매달리고, 얽매이고, 당장의 이익만을 좇는 건 직선의 삶이다. [리더의 그릇]의 두 저자는 그래서 생각하기를 권한다, 깊게 생각하기를. 당장 앞에 있는 것과 표면으로 드러난 것만을 바라보는 대신 멀리 보고, 이면으로 들어가 살피는 눈을 갖기를 권한다. 멀리 보기에 위기와 기회 모두에 흔들리지 않고, 이면을 살피기에 위선이나 쭉정이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렇게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으로 빚어진다.

 

 [리더의 그릇]을 읽으면서 넉넉한 산길을 걷는 듯이 마음이 흡족했다. 여곤과 나카지마 다카시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인물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이 부끄럽지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지난날의 내 실수들이 민망하지도 않았다. 꾸짖고 야단치듯 꼬집는 게 아니라, 침착하고 진실 되게 이상형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정말로 그렇게 살아야 되겠구나.’를 느끼게 하니 “교육이란,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심어주는 행위(책 50쪽)”라고 쓴 나카지마 다카시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독서의 목표임을 강조했던(책 111쪽) 여곤의 집필 목적이 충분히 이뤄지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 그 깊은 곳을 살피는 세밀한 시선에 기대하지 못한 위로까지 건넨다.

 

 

 

 

 

 이 책에는 신의도 없고, 실속도 없고, 그저 권력만 쫓을 뿐인 정치가들을 경계하는 구절이 무척이나 많다. 코로나19가 집콕독서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준 지금은 대한민국의 선거철이기도 하다. 자기 성찰과 삶의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하여 [리더의 그릇] 보다 더 적합한 책이 많지 않을텐데, 심지어 이 책은 쭉정이 후보를 골라내는 돋보기까지 되어준다. 여곤은 타락한 정치가와 정치계에 실망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여 그 치열한 성찰의 결과로  『신음어』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리더의 그릇]이 들려주는 여곤의 목소리에는 참되고 깊이 있는 인물과 그런 인물들이 경영해 가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 그득하다. 아마 이 갈망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우리들이 지닌 소망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인물이 정재계에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지금, 어쩌면 이런 인물은 아주 작은 곳으로부터, [리더의 그릇]과 같은 책을 보며 성찰하고 공부하는 작은 리더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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