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그릇 -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나 얻은 비움의 힘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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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4월은 신기하고 묘하다. 날카로운 바람, 단단한 흙. 햇빛이 비추는 곳마저도 따듯하기보다 건조해서 봄은 대체 어디쯤 오는지 애를 태우던 게 3월이었다. 그런 산이 홀연히 변한다. 꽃나무의 이파리들이 말 없는 새의 부리 마냥 유순하게 돋고, 바람은 오늘 처음 태어난 것처럼 소나무의 손바닥에 뺨을 맞대어 온다. 그러면 산 전체가 소리들로 가득 찬다. 굵은 가지들이 저들끼리 부딪히며 깨어나느라, 새들이 바지런하게 먹이를 구하느라, 봄꽃을 보겠다고 줄줄이 찾아온 등산객들이 산의 어깨를 밟고 오르느라 시끄럽다. 방학을 끝낸 학교마냥 별안간 소란해지지만 끝내 산 자체는 고요하다. 척박한 겨울을 간직하고 있기에 산은 봄볕의 너그러움을 차분하게 받을 줄도,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품을 줄도 안다. 이렇게 받고 품어서 다음 계절로 향하는 순리를 아는 덕이다. 어느 여름에는 태풍으로, 어느 겨울에는 큰 불로 몸살을 겪었으므로 산은 태연하다. 천지의 이치를 경외하고 곤핍한 시기를 두려워할 줄 알기에 4월의 생장生長에 감사하면서 담담히 다음 계절을 예감할 뿐이다.
 몰라보게 변한 산의 4월을 바라보면서 왜 그 옛날 선비들이 산수화를 아꼈는지 알게 된다. 대나무를 닮고 싶어서 대나무를 그리고, 난초처럼 살고 싶어 난을 그렸던 그들의 시선은 산에 닿아서 저 산과 같은 그릇이 되고자 했으리라. 그들은 가고 없으나 산은 남아서 옛사람에게 보여주었던 모습 그대로 지금 나에게,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산을 찾는 걸까? 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삶의 해답을 찾기 위하여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를 고민할 때 우리가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산은 저 산만이 아니다. 짧게는 몇 백년, 길게는 몇 천년을 거쳐 우리에게 산이 된 책들이 있다. 책을 쓴 저자들마저 지금 없는데도 책은 남아서 우리와 만난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고전이 된 책들 중에 명나라 최고 정치가인 여곤의 사상을 집대성한 『신음어(呻吟語)』가 있다. 


 여곤과  『신음어』를 알게 된 건 일본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인 나카지마 다카시가 쓴 [리더의 그릇]이라는 책 덕분이다.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난 나카지마 다카시는 성공하는 삶과 기업 경영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비결은 오늘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노하우가 아니었다. 여곤이 30여 년을 써서 펴낸  『신음어』의 많은 부분이 이미 조직 경영과 가치 있는 삶의 정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 년에 2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는 다독가로도 유명한 나카지마 다카시는 500년 전 탄생한 명나라 최고 고전인 『신음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내 우리 시대가 절박하게 찾고 있는 진짜 리더, 21세기 성인聖人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리더의 그릇]에서 저자 나카지마 다카시와 여곤은 시종일관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을 갖자고 피력한다. 감정 과잉, 감동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래서 모든 것이 과잉된 나머지 무력해지고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진 우리에게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이란 대체 무언지, 감을 잡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은 17장에 달하는 작은 주제와 그보다 더 세밀한 주제들로 촘촘하게 구성을 짜고 독자를 이끈다. 1장 성명편으로부터 17장 사장편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여곤의 목소리가 번갈아 말을 건다. 생각은 깊게 하되 행동은 과감하게,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마음으로 상대와 세상을 살피고, 명예와 사리사욕 보다 덕을 구하는 일이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장, 한 장을 넘어가면서 처음에는 모호했던 인물의 이미지가 점차로 구체화되고 선명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내가 이 책을 만나, 이 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인연에 탄복한다.

 

 

 여곤은 공자나 맹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덜 대중적인 인물이다. 『신음어』 역시 사람을 성인과 현인 등으로 구분하고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로만 보면 그 이전의 동양 사상들과 비교해 큰 특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여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지만 지키기 힘든 것들을 지키라고 강조하는(책 36쪽) 철학자다. 공기와 햇빛을 잊고 살 듯 너무 중요한데 놓치고 사는 것들의 진짜 의미를 일러준다. 특히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더욱 그렇다. 삶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며 살아낸 순간들의 총합이다. 여곤 그리고 『신음어』를 설명하는 나카지마 다카시의 목소리는 ‘사람과 삶에 대한 메타인지’로 귀결된다. 

 

 

 


 삶은 거대한 곡선이다. 너무나 커서, 이 곡선의 궤적을 걷는 자에게 그건 직선으로 보인다. 마치 우리가 사는 공간은 평지이지만 지구는 둥근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곡선은 언제나 직선으로 보인다. 눈 앞의 것에만 매달리고, 얽매이고, 당장의 이익만을 좇는 건 직선의 삶이다. [리더의 그릇]의 두 저자는 그래서 생각하기를 권한다, 깊게 생각하기를. 당장 앞에 있는 것과 표면으로 드러난 것만을 바라보는 대신 멀리 보고, 이면으로 들어가 살피는 눈을 갖기를 권한다. 멀리 보기에 위기와 기회 모두에 흔들리지 않고, 이면을 살피기에 위선이나 쭉정이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렇게 ‘침착하고 깊이 있는 마음’으로 빚어진다.

 

 [리더의 그릇]을 읽으면서 넉넉한 산길을 걷는 듯이 마음이 흡족했다. 여곤과 나카지마 다카시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인물에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이 부끄럽지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지난날의 내 실수들이 민망하지도 않았다. 꾸짖고 야단치듯 꼬집는 게 아니라, 침착하고 진실 되게 이상형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독자로 하여금 ‘정말로 그렇게 살아야 되겠구나.’를 느끼게 하니 “교육이란,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심어주는 행위(책 50쪽)”라고 쓴 나카지마 다카시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독서의 목표임을 강조했던(책 111쪽) 여곤의 집필 목적이 충분히 이뤄지고도 남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 그 깊은 곳을 살피는 세밀한 시선에 기대하지 못한 위로까지 건넨다.

 

 

 

 

 

 이 책에는 신의도 없고, 실속도 없고, 그저 권력만 쫓을 뿐인 정치가들을 경계하는 구절이 무척이나 많다. 코로나19가 집콕독서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준 지금은 대한민국의 선거철이기도 하다. 자기 성찰과 삶의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하여 [리더의 그릇] 보다 더 적합한 책이 많지 않을텐데, 심지어 이 책은 쭉정이 후보를 골라내는 돋보기까지 되어준다. 여곤은 타락한 정치가와 정치계에 실망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여 그 치열한 성찰의 결과로  『신음어』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리더의 그릇]이 들려주는 여곤의 목소리에는 참되고 깊이 있는 인물과 그런 인물들이 경영해 가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 그득하다. 아마 이 갈망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우리들이 지닌 소망과 다르지 않으리라. 그런 인물이 정재계에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지금, 어쩌면 이런 인물은 아주 작은 곳으로부터, [리더의 그릇]과 같은 책을 보며 성찰하고 공부하는 작은 리더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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