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를 읽다 - 법정 스님으로부터
고수유 지음 / 씽크스마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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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욕심이 별로 없다. 책은 내 서재에 꽂혀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두루 지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아니면 굳이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서재에는 나한테만큼은 꼭 필요한 책들이 조금 있다. 거기에는 삽화가 아주 아름다워서 종종 들여다보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도 있고 매년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열어봐야 하는 동화도 있다. 나와 주파수를 잘 맞춰주는 아니, 내가 주파수를 맞추기에 아깝지 않은 그런 책들 중에 법정스님의 책들이 몇 권 있다. 언젠가, 다른 이에게 줘야겠다 싶어 정리하기 전에 잠시 열어보았다가 그렇게 앉은 채로 한 권을 다 읽어버렸던 적이 있은 뒤로, 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내 책장에서 치워버리는 일을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읽어도 이 책은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구나, 확인한 이후로 말이다.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어떤 깨끗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어깨를 때리는 죽비처럼, 이것은 마땅히 맞아야 할 이야기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 있다. 물론 삶을 조망하는 건전한 가치관과 세계관, 이해와 박애와 포용의 정신 뭐 이런 모습들에서도 배울 점을 많이 보지만 나는 그보다 진정한 ()’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표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법정스님의 삶에 놀란다. 개인주의의 탈을 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생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 내 밥그릇, 내 가족 등 내 것을 초월한 법정스님이 참 멋있다.

 

인간이란 자궁 밖으로 나와 호흡을 얻어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의 굴레에 묶인다. (사실 자궁 안에서부터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관계 아래 속박당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와의 관계. 누군가는 인간이란 이 관계 속에서 진짜 가 되고자 나아가는 존재라고도 했다. 그러나 진짜 나가 되려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나를 초월해야만 한다. 이 단계가 참 알쏭달쏭하고 때로 버겁고 가끔 무섭다.

 

종교의 진수를 체험하려면 종교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모든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말씀은 누구나 명심해둘 가르침이다.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야지, 종교의 노예가 되어서는 진정한 종교인도 사람도 되기 어렵다.

184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성직자로서, 본인이 귀의해 있는 종교와 종단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이라는 말에서 나는 소유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소유를 넘어설 수 있다는, 나라는 존재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나를 초월할 수 있다는,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읽는다. 입으로만 저렇게 살았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저런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구도자였기 때문에 나는 2016년 오늘도 법정스님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무소유를 읽다]는 지은이(고수유)가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가르침들을 모아 정리하고 각 주제에 대한 해설(단상)을 곁들인 책이다. 법정스님의 말 뿐만 아니라 그를 되새기며 존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또다른 구도자의 성찰까지 곁들여 있다. 이게 좋은 사람도 있겠고, 별로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겠으니 일단 관심이 생긴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꿈결 같은 봄날의 한 때, 눈은 꽃에 두고 발은 진흙탕 위에 둔채 구도(求道)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스님은 극락에 가도록 복 빌어주고 시주나 거둬들이는 기생충으로, 절간은 관광 수입이나 노리는 호텔로, 불교인은 역사의식을 상실한 허약자로 돼버렸다. 이처럼 한국 불교가 변질된 것은 사회의 안녕보다 교단의 안녕을 희구해온 사이비 불교 성직자 때문이다.

81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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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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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재미있다!

 

앞표지가 주는 음산한 느낌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손에 들고 소녀의 얼굴 생김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녀가 움직일 것 같다.

책 뒤표지에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코 미스터리'라고 소개했는데 이 책에 아주 어울리는 표현이다.

 

3월과 다르게, 부쩍 따듯해진 햇빛을 받고 내 집 앞 공원에는 봄꽃이 만개했다. 공기마저 '지금은 화사한 봄'이라고, 미스터리소설에 몰입이 될만한 계절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오후에 나는 이 책을 폈다. 약속 때문에 시내로 나가기 전에 잠시 짬이 나서 책 앞 부분만 조금 읽어보자고,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두 시간 후에 나는 약속에 늦었고 지하철 안에서 지인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결말을 보고 싶어서. 이삼일 동안 천천히 읽자고 생각했던 이 책을, 나는 책이 도착한 그 날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 가장 강력한 힘은 '일상성'이었다. 주인공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일상. 그 부분에서 주인공이 겪는 혼란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된다. 나도 내 옆집에, 윗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어쩌다 계단에서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그뿐이다. 더 멀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가가지도 않는다. 어느 날, 윗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낯선 남자와 계단에서 마주 섰다. '이 건물에는 여성 혹은 노년의 부부만 사는 줄 알았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나도 모르게,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공포, 위협 이런 것들이 속에서 올라왔다. 화들짝 놀란 나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는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나중에 엄마에게 '위층에 살던 부부가 이사가고 어제 누가 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안심했다. ~ 그랬어?

 

그런데 여기, 바로 이 심리가 참 기묘하다. 나는 왜? 안심을 했는가?

 

저자는 이 미묘한 간극을 파고 든다. '누가 새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위층에 젊은 남자가 이사를 왔다는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 어디에도, 위층에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이사왔다는 정보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새로 이사를 들어온 사람 = 내가 어제 계단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 라고 연상해버렸다. 그 남자가 위층에 새로 이사를 들어온 남자라는 어떤 정황도 증거도 없는 상태였는데? 이런 잘못된 연상이 그저 이웃간 사소한 오해나 나만 아는 헤프닝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성급한 연상 혹은 인식의 오류가 미끼가 되어 나는 사건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크리피]가 잘 쓴, 좋은 소설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이 때문이다. 범죄심리학 교수인 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따라가면서 저자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연상과 인식의 오류를 보여준다. 가끔 인사를 나누는, 세련된 인상의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웃 사람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고 누군가는 범인이다. 이 책이 집중하는 것은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사이코의 심리다. 참혹한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대부분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부녀자를 납치하여 살해하는 인물은 얼굴에 흉터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험상궂고 덩치 좋은 남성이 아니라 넘어진 어린아이를 일으켜 주는 친절한 이웃일 수 있다고. 사람은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자극과 관계에 따라 판단하는 존재다. [크리피]는 이러한 사람의 심리적인 특성을 탁월하게 악용하는 살인마를 등장시키는데 내 주위에도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위에 적은 '일상성'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몰입감을 더해주는 것은 주인공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러 사례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범죄자들의 심리에 나름대로 정통해 있는 인물임에도 정작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자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는 선택들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형편없이 대처했다고 자책할 정도로. 그런데 그런 미숙한 대처들이 오히려 평범한 사람인 '(독자)'와 동일시되어 주인공의 혼란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된다. 더불어 주인공의 시점에서 사건을 따라가게 되다보니 주인공의 전문성을 십분 살려 사람들의 심리를 읽게 되는데, 심리를 잘 보여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사건이 진행되는 흐름이 아주 꿀잼이다.

 

만약 이 책이 미국이나 유럽에 출간되었다면 독자와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수도 있겠다, 생각도 든다.

[크리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동양권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가족의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운 문화적 특성을 띠는 사회의 일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이외에도 가족간 단절이라든가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매스컴 등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하게 제기하려고 애를 쓴다.

 

아쉬운 건 결말이다.

결말의 쫀득한 긴장감이 실망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재미는 결말까지 충분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결말이 나는데, 이 방향 자체가 아쉽다. 내가 가진 윤리관으로는 조금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결말부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 이런 물음들이 떠올랐고 책을 덮고 나서는 '에이... 그래도....' 이런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하지만, 만약 너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고 누가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 역시 저자가 쓴 결말과 크게 다른 선택과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국 범죄심리학의 전문가라고 떠들지만 어차피 탁상공론일 뿐, 실제로는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매스컴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171쪽 3장 가면

나도 모르게 사진 찍힌 상황을 적당히 바꾸었다. 실제로는 대학 근처의 술집이 아니라 호텔 안의 엘리베이터였다. 더구나 학생들과 같이 있었던 게 아니라 린코와 단둘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백하다. 이럴 때는 솔직히 말해서 오해를 사기보다 적당히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나으리라.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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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은 상식사전
이대영 지음 / 별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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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은 상식사전!

 

아름 그대로 상식사전이다. 편안하게 토막상식을 습득하는 책.

모든 토막상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아! 이게 이런 유래가 있었구나~ 무릎을 탁 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얼마 전에 라이팅 북을 리뷰했는데 같은 저자였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담은 줄이고 흥미와 재미를 키우는 그런 책들을 쓰시는 게 목표인가보다. 이전 책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은 상식사전]은 우리말, 고사성어, 시사용어 등 다양한 분야의 ''에 주목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살면서 내뱉은 모든 말의 유래와 근거만 제대로 알아도 그 사람은 성공한 참 지식인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 오래 살았던 나 조차 서울이라는 말의 유래에 그런 기묘한 뜻이 담겨 있는 줄 몰랐으니까.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

 

고사성어 꼭지는 개인적인 흥미가 없는 부분이라 가볍게 읽었지만 그외 다른 부분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깊고 심오한 경지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기 보다, 출근길에 부담없이 술술 눈으로 읽어가면 적당할 책이다. 그런 점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재미있을 내용이다.

 

'건강하세요'라든가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런 표현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잘못 사용하고 있어서 이런 책을 통해 올바른 쓰임새가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우리말 꼭지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우리말 표현들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우리말사전을 찾아 읽어야 겠다는 계획이 섰으니, 이건 이 책이 준 선물의 한 가지다.

 

 

 

결혼을 더 많이 쓰지만 혼인이 올바른 우리말이다. 결혼은 일본식 표현이 정착된 것으로 결은 맺는다는 뜻이고 혼은 장가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남자가 장가가는 데 여자가 따라오는 남존여비식 사고를 반영한 말이다. 반면 혼인은 장가들 혼, 시집갈 인으로 남녀가 동등하게 맺어지는 것을 상징하며 남녀평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민법에서도 남녀가 하나 되는 일을 혼인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업소명도 혼인예식장, 혼인상담소가 공식 명칭이다.

131

 

건강하다는 몸과 마음이 다부지고 굳세다는 뜻을 지닌 형용사, 형용사에는 명령형 어미나 청유형 어미, 의도형 어미를 붙일 수 없다. , ‘-세요/-시어요를 붙이는 것은 틀린 말. “건강하게 지내십시오건강하길 바랍니다가 맞는 말이다. 건강하세요?”라고 상태를 묻는 말로는 가능하다.

136-137

 

긍정적인 순우리말

 

가래다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 구순하다-말썽 없이 의좋게 잘 지내다, 끌끌하다 마음이 맑고 바르다, 금쑥하다-사람의 됨됨이가 가볍지 않고 속이 깊다, 마뜩하다-제법 마음에 들다, 오달지다-허술한 데가 없이 야무지고 알차다, 천세나다-쓰이는 데가 많아서 퍽 귀해지다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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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용기 -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청춘 사용법
혼자 걷는 고양이 지음, 김미경 옮김 / 다온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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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청춘에세이를 읽은 후,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청춘에게 위로니 격언이니 뭐니 늘어놓는 책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런 책들은 물론,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다. 누군가 댓글로 '청춘이 왜 아파야 합니까? 청춘은 벅차야 합니다'라고 적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막막함, 절박함, 소외감을 오롯이 감당해야만, 그러면서 끊임없이 아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만 청춘이라고, 희망과 소망 뿐 아니라 실망과 절망과 통한까지도 나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도 서점에는 비슷한 류의 청춘 에세이들이 계속 출간된다. 장사가 되서 출간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저자의 뚝심 혹은 출판사의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 알 바도 아니고.

 

그런 내가, 처음 이 책의 출판사 소개글을 읽고 나서 진지하게 궁금했다.

 

한국인 저자가 지은 청춘 에세이가 넘쳐나는 판국에 중국에서까지 이런 류의 책이 번역되어 넘어올 필요가 있나?

 

그랬다. 이 책은 혼자 걷는 고양이라는 중국인 블로거의 에세이를 엮어낸 책이다. 어떤 전문분야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고 순전히 청춘들에게 하는 말을 엮은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고, 회사 생활을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적합한 이야기들. 나의 주책맞은 선입견은 본문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이 뻔한 내용을 늘어놓는 별볼일 없는 책이라고 판단을 내려버렸다.

 

참으로 저자와 출판사에 죄송하게도 솔직히 책을 실제로 읽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업수이 여기고 있었다는 걸 털어놓아야 겠다.

 

인생의 비장한 진리가 아롱아롱 꿰어져 있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제 막 30대가 된 사람이다. 아직 그런 이야기를 쓸만큼의 연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저자가 우리 또래라는 것.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길을 걸어온 흔녀라는 것.

 

이렇게 적으면 또 이런 의문이 들겠지? 흔녀가 내놓은 조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냐는?

 

글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적어도 다른 독자들은 나와 같은 (위에 적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생각보다 꽤 재밌고 기대보다 유익하다.

 

저자는 아파도 견뎌라! 뭐 이런 조언을 하지 않는다. 저자 자신조차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걸어가야 할 길이 많다고 털어놓는 사람이니 애초부터 '어른이 하사하는 조언'같은 게 이 책에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권위자로서 무게감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는 쪽이 아니다. 혹한의 어느 밤, 소주 한잔을 사이에 두고 단소리 쓴소리를 번갈아 건네는 대학 선배 쪽이다. 바라는 게 너무 많다거나 쉬운 건 하나도 없으니 기대하지 말라거나 하는 돌직구를 서슴없이 날린다. 인생에 어려운 일을 당장은 요리조리 피해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니 직면하라고, 네가 부모님한테 뭘 받았느니 어쩌니 한탄하기 전에 20살을 넘긴 이후 네가 부모님한테 해드린 건 뭐가 있냐고 물어온다.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가 얄밉거나 불쾌하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어려움의 과정을 저자 본인이 걸어왔고 또 동시대를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친구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또 너무 가볍지 않게, 뻔한 이야기 같지만 뻔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목차만 주르륵 읽어보아도 저자의 건전한 가치관과 노력이 우러난다.

 

출판사에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중간 중간 주요 메시지들에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골라읽거나 본문을 읽으면서 하이라이트 된 부분을 집중해서 읽는다면 어렵지 않게 책 전체를 금방 읽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의 고민이란,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 곳은 매 한가지. 우리 또래의 고민이란 결국 진로와 직업, 연애와 결혼 그리고 마침내는 나 자신, 이런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10대에 겪었어야 할 사춘기를 겪지 못하고 20살을 맞았다. 아이의 정신과 성인의 신체라는 불협화음은 결국 뒤늦은 그래서 더 험난하고 고달팠던 사춘기를 겪게 만들었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를 매 해 매 달 고민했던 20대를 보내고 나니 그래도 20대보다는 조금 자란 정신으로 30대를 맞았다. 그런 후에 지난 십 년을 돌아보니, 나는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색하고 분석하면서 20대를 보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감사했다.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의문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여전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되는 나이라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가꾸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20대를 보내는 저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우리는 박수 받아도 된다. 그리고 이 내용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도 박수 받기를.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20대들이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고, 머리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탐구하고 가꾸기를 응원한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격려와 채찍을 보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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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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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마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포인트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편차가 있더라도, 추리소설을 읽을 때 독자가 기대하는 것은 '스릴' 아닐까.

 

사건이 시작되는 그때부터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은 어떤 과정으로 범죄를 완성했는지, 동기는 무엇인지 등등 사건의 줄기를 이루는 내용에 대한 궁금함을 붙잡고 책 전체를 지나가게 된다.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독자를 몸이 닳게 했던 궁금함이 하나씩 풀릴 때, 그때 느끼는 통쾌함, 해소감 이런 것들이 추리소설을 읽을 때만 느끼는 희열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이 작품에서 그런 희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런 류의 소설은 개인별 기호를 많이 탄다. 남들이 재밌다는 작품이 나한테는 재미 없을수도 있고 남이 재미 없다고 한 작품이 나에게는 꿀잼 핵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건지 어째서인지..... 독일에서 상까지 받은 작품이 나한테는 이렇게 노잼일수가..... ㅠㅠ 없었다.

 

책 뒷편에 적힌 시놉만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60년 만에 나타난, 오페라 거장의 미출간 친필 악보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실종 및 죽음....

 

독일 형사 마탈러는 이 사건을 수사해나간다. 수백만 유로에 달하는 오펜바흐 친필 악보가 불러온 비극의 동기는 돈인가 원한인가.

 

나는 이미 책을 편 이상, 사건이 벌어진 이상, 대체 범인이 누구고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알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읽었다.

 

마탈러가 사건을 수사해가는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마탈러를 중심으로 한 주변 형사들이나 뭐 공직자들도 나오고

 

희생자들 주변 인물도 다수 나오고 이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나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건이 궁금하지 마탈러의 동거인이 아이를 가진 소식을 전하거나 마탈러의 동료 형사가 다른 형사와 연인사이라든가 하는 이런 드라마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왜 작가는, 수사 사건에 자꾸 주변 인물들의 드라마를 섞었는지 읽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쓰는 사람의 마음이므로 ^^;;;; 독자는 그저 읽을 뿐.

 

범인과 동기를 알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욱 아깝다.

 

전쟁의 잔혹사 특히 히틀러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상실하고 오직 자신의 부와 안위만을 위해 움직였던 인물들을 고발하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추리물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어서다.

 

60년 전 수용소에서의 사건과 마탈러가 수사해 나가는 현재의 사건은 시간의 바닥 아래, 깊숙히 하지만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사건인데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느껴진다.

 

, 중간에 독자로서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래도 마무리까지 일단 다 읽고 나니 개운했다.

드라마 요소가 강한 추리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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