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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용기 -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청춘 사용법
혼자 걷는 고양이 지음, 김미경 옮김 / 다온북스 / 2016년 1월
평점 :
몇년 전에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청춘에세이를 읽은 후, 기분이 아주 안 좋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청춘에게 위로니 격언이니 뭐니 늘어놓는 책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런 책들은 물론,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읽고 나면 기분이 영 좋지만은 않다. 누군가 댓글로 '청춘이 왜 아파야 합니까? 청춘은 벅차야 합니다'라고 적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막막함, 절박함, 소외감을 오롯이 감당해야만, 그러면서 끊임없이 아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만 청춘이라고, 희망과 소망 뿐 아니라 실망과 절망과 통한까지도 나에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도 서점에는 비슷한 류의 청춘 에세이들이 계속 출간된다. 장사가 되서 출간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저자의 뚝심 혹은 출판사의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내 알 바도 아니고.
그런 내가, 처음 이 책의 출판사 소개글을 읽고 나서 진지하게 궁금했다.
한국인 저자가 지은 청춘 에세이가 넘쳐나는 판국에 중국에서까지 이런 류의 책이 번역되어 넘어올 필요가 있나?
그랬다. 이 책은 혼자 걷는 고양이라는 중국인 블로거의 에세이를 엮어낸 책이다. 어떤 전문분야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고 순전히 청춘들에게 하는 말을 엮은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고, 회사 생활을 고민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적합한 이야기들. 나의 주책맞은 선입견은 본문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이 뻔한 내용을 늘어놓는 별볼일 없는 책이라고 판단을 내려버렸다.
참으로 저자와 출판사에 죄송하게도 솔직히 책을 실제로 읽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업수이 여기고 있었다는 걸 털어놓아야 겠다.
인생의 비장한 진리가 아롱아롱 꿰어져 있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제 막 30대가 된 사람이다. 아직 그런 이야기를 쓸만큼의 연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저자가 우리 또래라는 것.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닌 그저 평범한 길을 걸어온 흔녀라는 것.
이렇게 적으면 또 이런 의문이 들겠지? 흔녀가 내놓은 조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냐는?
글쎄,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적어도 다른 독자들은 나와 같은 (위에 적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생각보다 꽤 재밌고 기대보다 유익하다.
저자는 아파도 견뎌라! 뭐 이런 조언을 하지 않는다. 저자 자신조차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걸어가야 할 길이 많다고 털어놓는 사람이니 애초부터 '어른이 하사하는 조언'같은 게 이 책에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권위자로서 무게감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는 쪽이 아니다. 혹한의 어느 밤, 소주 한잔을 사이에 두고 단소리 쓴소리를 번갈아 건네는 대학 선배 쪽이다. 바라는 게 너무 많다거나 쉬운 건 하나도 없으니 기대하지 말라거나 하는 돌직구를 서슴없이 날린다. 인생에 어려운 일을 당장은 요리조리 피해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니 직면하라고, 네가 부모님한테 뭘 받았느니 어쩌니 한탄하기 전에 20살을 넘긴 이후 네가 부모님한테 해드린 건 뭐가 있냐고 물어온다.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가 얄밉거나 불쾌하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어려움의 과정을 저자 본인이 걸어왔고 또 동시대를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친구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또 너무 가볍지 않게, 뻔한 이야기 같지만 뻔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목차만 주르륵 읽어보아도 저자의 건전한 가치관과 노력이 우러난다.
출판사에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중간 중간 주요 메시지들에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다. 목차를 보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골라읽거나 본문을 읽으면서 하이라이트 된 부분을 집중해서 읽는다면 어렵지 않게 책 전체를 금방 읽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의 고민이란,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사람사는 곳은 매 한가지. 우리 또래의 고민이란 결국 진로와 직업, 연애와 결혼 그리고 마침내는 나 자신, 이런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10대에 겪었어야 할 사춘기를 겪지 못하고 20살을 맞았다. 아이의 정신과 성인의 신체라는 불협화음은 결국 뒤늦은 그래서 더 험난하고 고달팠던 사춘기를 겪게 만들었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를 매 해 매 달 고민했던 20대를 보내고 나니 그래도 20대보다는 조금 자란 정신으로 30대를 맞았다. 그런 후에 지난 십 년을 돌아보니, 나는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색하고 분석하면서 20대를 보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감사했다.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의문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여전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되는 나이라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가꾸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20대를 보내는 저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우리는 박수 받아도 된다. 그리고 이 내용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도 박수 받기를.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20대들이 스스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고, 머리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을 탐구하고 가꾸기를 응원한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격려와 채찍을 보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