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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를 읽다 - 법정 스님으로부터
고수유 지음 / 씽크스마트 / 2016년 3월
평점 :
나는 책 욕심이 별로 없다. 책은 내 서재에 꽂혀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두루 지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아니면 굳이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서재에는 나한테만큼은 꼭 필요한 책들이 조금 있다. 거기에는 삽화가 아주 아름다워서 종종 들여다보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도 있고 매년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열어봐야 하는 동화도 있다. 나와 주파수를 잘 맞춰주는 아니, 내가 주파수를 맞추기에 아깝지 않은 그런 책들 중에 법정스님의 책들이 몇 권 있다. 언젠가, 다른 이에게 줘야겠다 싶어 정리하기 전에 잠시 열어보았다가 그렇게 앉은 채로 한 권을 다 읽어버렸던 적이 있은 뒤로, 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내 책장에서 치워버리는 일을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읽어도 이 책은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구나, 확인한 이후로 말이다.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어떤 깨끗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어깨를 때리는 죽비처럼, 이것은 마땅히 맞아야 할 이야기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 있다. 물론 삶을 조망하는 건전한 가치관과 세계관, 이해와 박애와 포용의 정신 뭐 이런 모습들에서도 배울 점을 많이 보지만 나는 그보다 진정한 ‘무(無)’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표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법정스님의 삶에 놀란다. 개인주의의 탈을 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생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 내 밥그릇, 내 가족 등 내 것을 초월한 법정스님이 참 멋있다.
인간이란 자궁 밖으로 나와 호흡을 얻어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의 굴레에 묶인다. (사실 자궁 안에서부터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관계 아래 속박당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와의 관계. 누군가는 인간이란 이 관계 속에서 진짜 ‘나’가 되고자 나아가는 존재라고도 했다. 그러나 진짜 나가 되려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나를 초월해야만 한다. 이 단계가 참 알쏭달쏭하고 때로 버겁고 가끔 무섭다.
종교의 진수를 체험하려면 종교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모든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말씀은 누구나 명심해둘 가르침이다.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야지, 종교의 노예가 되어서는 진정한 종교인도 사람도 되기 어렵다.
184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성직자로서, 본인이 귀의해 있는 종교와 종단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이라는 말에서 나는 소유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소유를 넘어설 수 있다는, 나라는 존재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나를 초월할 수 있다는,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읽는다. 입으로만 저렇게 살았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저런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구도자였기 때문에 나는 2016년 오늘도 법정스님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무소유를 읽다]는 지은이(고수유)가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가르침들을 모아 정리하고 각 주제에 대한 해설(단상)을 곁들인 책이다. 법정스님의 말 뿐만 아니라 그를 되새기며 존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또다른 구도자의 성찰까지 곁들여 있다. 이게 좋은 사람도 있겠고, 별로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겠으니 일단 관심이 생긴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꿈결 같은 봄날의 한 때, 눈은 꽃에 두고 발은 진흙탕 위에 둔채 구도(求道)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스님은 극락에 가도록 복 빌어주고 시주나 거둬들이는 기생충으로, 절간은 관광 수입이나 노리는 호텔로, 불교인은 역사의식을 상실한 허약자로 돼버렸다. 이처럼 한국 불교가 변질된 것은 사회의 안녕보다 교단의 안녕을 희구해온 사이비 불교 성직자 때문이다.
81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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