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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책 일부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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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인 김초엽 작가는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상기한 두 개의 단편과 함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감정의 물성」,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의 5개 단편이 하나로 묶여 이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되었다.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읽기도 전에 많은 질문이 들었던 작품이다. 이 책을 들고 독서모임에 갔던 날 다른 회원들도 물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가정법이에요 아니면 질문이에요, 아니면 다른 뭐예요?”
나는 슬픔이지 않겠냐고 답했다.
“아직 다 못 읽어서 속단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면, 내년이 오지 않는다면. 이 말들의 뒤에 꼬리처럼 달리는 것들 아닐까요?”
표지가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이어서 더욱 슬펐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다른 속도로 가자!‘고 외치면 그건 청춘만화다. 이미 제목에서 우리가 쉽게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상상도 못할 애를 써도 도달할 수 없는 그곳에 대한 염원이 보였다. 꿈은 간절히 바라도 꿈일 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의 공식을 아마 안나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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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과학자다. 그는 장거리 우주비행이나 의료계에 필요한, 완벽한 냉동수면 기술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남편과 아들이 먼저 행성 슬렌포니아로 이민을 떠났고 그녀 역시 연구를 마치는 대로 슬렌포니아로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슬렌포니아로 가는 항로가 폐쇄되고 더 이상 지구에서 슬렌포니아로 우주선이 뜨지 않았다. 우주 항법이 혁신적으로 발달하면서 이전의 항로들과 항법은 경제성을 이유로 사장되고야 만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빚은 생이별의 세월에 안나는 자신이 계발한 냉동수면 기술로 맞섰다.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면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온 것이다. 이미 남편과 아들은 죽고 없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안나는 노인이 되었다. 이제 ‘운이 좋다면 같은 곳에 묻힐 수도 있겠지’라는 아련한 기대뿐인 안나에게 기술의 진보란 무엇일까?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거실에 무심코 켜둔 텔레비전의 독백이 심상치 않다. 안나에게 아니, 나에게 마치 반박을 하듯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떠든다. 5분마다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는 이 시대에 인간의 삶은 이전과 다르게 얼마나 윤택해졌는지를 돌아보라고 나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그래? 그렇다면 왜 릴리는 지구를 떠나 낙원을 만들어야 했을까? 왜 데이지는 시초지로 떠났을까? 왜 그 많은 순례자들은 낙원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을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이 책의 가장 첫 번째 작품이자 나로 하여금 단박에 이 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주인공인 데이지는 친구 소피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사는 세계의 탄생 비밀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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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와 소피가 태어나 성장한 마을은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온하고 안전하다. 갈등이나 혐오, 전쟁 같은 것들이 거기에는 없다. 그 마을에 어른은 적고 아이들은 많다.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열여덟 살이 된 아이들은 순례자가 되어 이동선을 타고 떠났다가 1년 후, 귀환하여 비로소 어른으로 인정받는다. 데이지는 이 성인식의 기이한 점을 발견한다.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이 있다는 것. 심지어 돌아온 순례자 중 하나가 ‘그곳에 두고 온 것’ 때문에 절망하듯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한 후 데이지의 의문은 증폭된다. 대체 순례자들이 어디로 떠나는지, 그곳에서 그들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왜 순례자들은 그곳으로 떠나야 하며 어떤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지. 데이지는 세계의 진실을 알기 위하여 가장 금지된 공간, 금서 구역으로 들어가 이 마을을 만든 릴리와 올리브의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릴리 다우드나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유전병 사전 진단이 일반화된 2035년의 지구에서, 그러나 릴리의 부모는 가난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유전병을 그대로 가진 채 태어나 멸시와 혐오를 감수해야 했던 릴리는 성공한 과학자로서의 삶을 접고 잠적했다가 인간배아를 조작하는 바이오해커가 되어 나타났다. 릴리는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인간배아를 개조하여 병도 없고 결점도 없는 명석한 인간을 배출했다. 아마 그것이 이 세상에서 고통과 슬픔을 지우는 길이라고 그녀는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릴리의 행위는 세상을 더욱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완벽한 개조인간들은 도심에, 개조되지 못한 인간들은 외곽으로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던 중 아이를 갖고 싶어진 릴리는 그녀 자신에게 주고 싶었던 지성과 아름다움과 매력을 모두 유전자에 새겨 넣어 딸을 배양했다. 그러나 릴리의 아이에게도 릴리와 같은 유전병이 발견되었다. 그때 릴리는 결정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을 만들기로. 그건 얼굴의 흉터나 얕은 경제력이 멸시와 혐오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세계, 데이지와 소피의 마을이었다.
릴리는 딸 올리브에게 무균의 낙원을 선사했으나 올리브의 선택은 엄마의 마을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엄마가 마을을 만든 이유를 알게 된 올리브는, 마을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반드시 떠나 시초지인 지구를 순례하도록 순례의 관습을 만들었다. 그리곤 그녀는 마을을 완전히 떠나 지구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엄마인 릴리는 무균의 낙원을 꿈꾸었으나 딸 올리브는 사랑과 연대가 없다면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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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거, 살기 좋다는 건 무엇일까? 몸이 편안해지고 안전해지고 윤택해지면 우리는 행복한 걸까? 만약 그것을 행복이라고 규정한다면 아마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이 소설과 같은 현실을 살게 되고야 말 것이다. 모든 결점을 제거한 신인류가 태어나 신처럼 군림하는 동안, 경제 논리에 밀린 사람들은 쓰레기로 취급을 받고 이 세계는 분열되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별이 되고야 말리라. 그래서 올리브는 보호가 보장된 마을이 아닌, 지구로 돌아와 투쟁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을 위하여 이 지구를 바꾸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마을의 다른 아이들 역시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연대하는 아름다운 생을 보내기를 바랐으리라. 비록 그것이 단단한 벽을 두드리고 거대한 파도에 맞서고 까마득한 벼랑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격동이라고 해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작품들의 배경은 미래이고 우주이지만 이 소설만큼 우리의 현실을, 사람의 본성을 절묘하게 그린 작품들이 또 있을까.
4차산업혁명으로 우리의 삶은 점점 현란해진다. 대신 빈부격차와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급증한다. 김초엽 작가가 책에서 쓴 ‘지성의 황금기를 보는 것 같은’, 마치 과학이 치트키가 되고 기술의 진보가 핑크빛 미래의 보장책으로 등극한 지금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기술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이 편의 속에 인간성이 매몰되어 버리면 우리는 불행해진다. 행복을 손에 쥐기 위하여 우리가 띄워야 할 것은 빛의 속도로 가는 우주선이 아니다. 불통과 억압, 차별과 외면이 도사리고 기술의 진보가 이것들을 심화할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하여, 서로로부터 분실되고 분리되지 않기 위하여 시선이 필요하다. 공존하고 공생하기 위하여 보듬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SF소설을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너머 도전까지 받는 것인가 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온기와 시선으로, 김초엽은 굉장한 소설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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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책 181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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