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보이
가쿠타 미쓰요 지음, 이은숙 옮김 / 하다(HadA)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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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자녀 관계의 미묘함을 정밀하게 포착한 단편들"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는 [종이달], [공중정원]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1990년 [행복한 유희]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 세계를 인정받기도 했다.

 가쿠다 미쓰요가 쓴 8편의 단편을 한데 엮어 [마마보이]는 한 권의 소설집이 탄생했다. 연인들이 주고 받는 사탕의 단내를 색으로 옮긴 듯한 표지가 수상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꿈꾸는 듯한 아이의 표정만 선명하다. 엄마를 ‘엄마’로 묶어둔 채로 그 치마폭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나’의 얼굴이 아마 이런 표정일 것이다.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엄마를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으로 내세우지 못한다. [엄마를 부탁해]를 대표로 엄마에게도 딸로, 여자로, 한 인간으로서의 시간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잊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무수히 많다. 그런 연유로 이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엄마가 아니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와 나의 관계다.

 엄마라는 역할은 필연적으로 자식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식을 낳고 기르는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표다. 그래서 엄마는 절대 엄마 혼자서로 존재할 수 없다. 엄마는 점이 아니다. 엄마는 선이다. 한 여자라는 점과 그 여자로부터 태어나 자란 자식이라는 점 사이에 그려진 선이 엄마다. 자식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엄마라는 선도 달라진다. 가쿠다 미쓰요는 이 엄마라는 선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기민하게 포착한다.

 

 

 [마마보이]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인 <허공을 차다>의 엄마는 전통적으로 익숙한 엄마다. 남편과 자녀들의 오래된 물건을 보관하며 지내다, 치매가 들어 표표히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 버린 엄마. 여기에 등장하는 엄마라는 선은 가늘지도, 굵지도 않다. 그러나 아들의 기억 밑바닥에 이미 문신처럼 새겨진 어린 날의 시간들이 흥청망청 백수로 사는 아들의 일상 표면으로 때때로 올라온다. <빗속을 걷다>, <새를 운반하다>의 주인공들과 어머니의 사이는 좀 더 현실적이다. 쓸쓸하고 건조하다. 그러나 여전히 어머니들은 자기의 삶을 살고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의 삶에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자식들은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 책의 표제작인 <마마보이>나 <파슬리와 온천>에 등장하는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아주 미묘하고 집요하다. 이 작품들에서 비로소 ‘엄마가 자식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식이 엄마를 놓지 못하는 거 아니야?’라는 작가의 질문이 쟁쟁하게 들려온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에서 그 어떤 인물보다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내듯이, 우리는 엄마를 미워하거나 불편해하거나 이상해하거나 신경쓰는 만큼 엄마의 세계에서 분리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분리되지 못하고, 여전히 어딘가 어쩔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이 상태를 선택한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 아닌가?

 

 소설이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은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교훈을 준다거나 감동을 주는 것도 물론 소설의 좋은 역할이겠지만, ‘발견’은 생각하게 하고 오래 간직하게 하고 그러다가 그것을 내 삶에 투영시켜 보게 한다. 그래서 좋은 소설은 ‘발견’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나는 [마마보이]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좋은 소설의 위력을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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