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더 - 역경을 성공으로 뒤바꾼 평범한 영웅들
세라 테이트.애나 보트 지음, 김경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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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워낙 어릴 때의 일이기도 하고, 수영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난 이후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그 전의 어려움들을 다 덮어버려서다. '내가 처음에 어땠더라?' 회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똑똑히 기억나는 한 가지는 물을 정말 많이 먹었다는 것. 처음에는 수영을 배우러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수영장 물 먹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물 밖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니 물 속에서 코와 입으로 얼마나 물이 들어오던지, 물 속에서 켁켁 거리는 내가 뱉어내던 물거품이 수경 위로 부글부글 올라가던 모양은 아직도 기억난다. 하도 물을 먹고 나오니 수영장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지칠 수가 없었다. 수영장 셔틀버스 좌석에 늘어져서 앉아있다가 집에 가까워질 때는 거의 곯아떨어져 있기 일수였다. 재미는 하나도 없고, 음파음파는 느는 것 같지도 않아서 힘만 들었던 시간들, 아마 그때 힘들다고 그대로 수영 배우는 걸 그만두었다면 수영이 주는 재미를 지금처럼 즐길 수가 없었겠지.


우리는 세상을 사는 법을 거의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났고,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 실패하는 것이다. 자밀은 실패는 성공의 할부금이라고 믿는다. “성공의 대가는 언제나 전액 선불로 치러야 하는 고통입니다.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반드시 실패와 성공을 긍정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거듭해서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책 164쪽, 9장 모든 길은 실패를 거쳐간다.



사람이란 이미 익숙해진 일에선 실패를 할 수 없다. 내가 이미 능숙하게 혹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원만하게 해내는 일들을 하다가 벌어지는 건 실패가 아닌 실수다. 실패는 낯선 일을 시도할 때 일어난다.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려 할 때, 늘 해왔던 방식이 아니라 처음 해 보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할 때, 우리는 실패한다. 어쩌다 운이 나쁜 사람만 실패하는 것도, 운이 좋은 사람은 실패 없이 바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성공은 반드시 실패를 거쳐간다.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실패를 겪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린 실패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실패했다는 것, 내가 뭔갈 망쳤다는 것, 내가 오늘도 오답을 찍었다는 건 내가 이대로 영원히 실패자로, 오답자로 남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반대다. 오늘 실패한 만큼 나는 성공에 가까워졌다는 것.


책 [리빌더]는 우리가 실패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뿌리부터 전환시킨다. 이 책은 우리가 실패라고 부르는 상태, 나도 모르게 찾아온 슬럼프의 진짜 정체를 밝히고 그런 압박감과 우울감의 상태에서 시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멘탈관리법을 제안한다.

사실 한 두번의 실패는 큰 타격이 없다. 문제는 실패가 연이을 때 나타난다. 5번을 실패하고 나면 급격히 소심해지는 자신을 보게된다. 10번을 실패하고 나면 이제 우울감에 빠지고 그 상태로 50번 정도 실패하고 나면 내가 나 자신에게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된다. 남모르게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남탓을 하며 마구 원망을 해보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집 안에 처박혀 은둔하기도 한다. 이미 마음은 폐허가 되어 있고 빛나던 의지와 기세는 화석이 된지 오래. 그때 그 슬럼프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행동해야 할까?

이 책 [리빌더]가 그 질문에 정답이 될 순 없다. 내 인생에서 정답은 결국 내가 찾는 거니까.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정답을 찾을 수 있는지를 제안하는 나침반 역할은 톡톡히 할 수 있으리라 싶다. 광고업계의 거물이라고 소개된 저자 두 명은 좌절을 딛고 일어난 경영자, 리더, 학자 등 사회 지도층이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경험담으로부터 우리가 실패와 슬럼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과 '진실'을 가려내고, 그들이 성공적으로 다시 일어서는 데에 도움을 준 실제적인 실천 도구들을 정리해 이 책에 실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미국 대법관이 말한 것처럼 어떤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당시에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진짜 영향은 대개 훨씬 더 나중에 드러난다. 때로 계획에서 틀어진 일이 나중에는 제 방향을 찾고 더 많은 결실을 안겨주기도 한다.

책 18-19쪽


뻔한 책인줄 알고 읽었는데, 이 책을 읽기 전과 다 읽고 난 지금, 나 자신부터가 내가 해온 실패와 현재 빠져 있는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아직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서지 않았는데도 몇 주가 나를 지치게 해던 우울함이 가셨다. 그렇다고 '그래, 내일부터는 잘 될거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리빌더]는 창의성을 가로 막는 비관주의도 경계하지만 답없는 낙관주의 역시 비관주의 만큼이나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다만, 현재 내가 서 있는 지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나에게 필요한 자세를 이 책의 내용을 빌어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책이 가진 진짜 유익함은 실패와 슬럼프를 바라보는 시야를 교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변화와 성장, 성공에 대하여 하게 되는 여러가지 오해와 착각들을 전략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바꾸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에너지가 가득찬 시간이어야 능률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리빌딩은 한 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인생 전체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라는 사실 등 잊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는 사실들을 일깨워준다. 언젠가 슬럼프로 지쳐 있을 때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은 멋진 책이다.





"성공의 대가는 언제나 전액 선불로 치러야 하는 고통입니다.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면 반드시 실패와 성공을 긍정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거듭해서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과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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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스트 랜드 - 쓰레기는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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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책 [웨이스트 랜드] 198쪽


나는 중고거래 앱으로 쇼핑을 자주 한다. 거긴 마치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 같은 곳이다. 화장품, 의류, 신발, 가방 등 몇 번 사용하지 않아 거의 새 거나 다름 없는 중고품 뿐 아니라 새 제품도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나는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을 키워드로 걸어두었다가 '00~' 하고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들여다본다. 앱으로 들어갈 때마다 같은 물건은 없다. 날마다는 물론, 매 시간, 매 분마다 새로운 물건들이 나타난다. 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건들이 다 어디서 온 걸까.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까지만 판매하고, 안 팔리면 정리 예정입니다.' 라는 설명이 달린 온갖 물건들. 거래가 되지 않은 물건들은 아마 내년 이맘때 쯤엔 쓰레기장에 가 있으려나. 정말 황당한 건,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버리고 나서 우리는 또 그 만큼 혹은 그보다 많은 양의 물건들을 사들인다는 사실. 누군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살아갈수록 나는 느낀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는데, 그걸 고칠 수가 없다는 것. 인간은 다들 미친 것 같다.


자본주의 속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이제야 나는 자본주의의 끝이 뭔지 알 것 같다. 막대한 부, 빛나는 풍요, 윤택한 삶, 이런 건 자본주의의 끝에 없다. 거기 있는 건 오직 쓰레기뿐. 썩지 않은 채로 지구의 물과 흙과 공기, 나아가 사람의 근육과 피와 지방 속에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있는 쓰레기만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언제나 쓰레기를 버려왔지만,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버린 적은 없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된 가장 최근인 2016년에 전 세계적으로 20억 1천만 톤의 고형 페기물이 버려졌다. (중략) 나라가 부유할수록 더 많이 버리며, 개발도상국이 더 부유해질수록 문제는 가속화된다. 2050년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쓰레기 배출량이 13억 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남반구의 저개발국이 여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책 15~16쪽


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잘근 잘근 분해되어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 빛도 들어가지 않는 해저 깊은 곳에도 비닐봉지가 나뒹굴고, 다른 것들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의 혈액 속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지구 인구의 10%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지만, 가격 상한선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부러 멀쩡한 농작물을 버린다. 그걸 아는 기업과 개인들은 침묵한다. 그래야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산업 폐기물과 핵폐기물, 중금속.....이건 아주 암울한 SF 영화보다 훨씬 더 무섭고 침울한 이야기다. 과연 우리는, 2024년의 지구를 살고 있는 이 70억 명이나 되는 인간들은 그동안 저질러 놓은 난장판을 치워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이 책 [웨이스트 랜드]의 저자의 말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이 난장판 처리를 맡길 것인가? (책 390쪽)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는 물론 우리 후손들에게조차 이 난장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방법도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웨이스트 랜드]는 쓰레기의 시작과 끝을 추적한 책이다. 아니, 끝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쓰레기엔 끝이 없다. 오직 시작만 있으니. 저자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 재활용의 현실은 어떤지, 의류를 비롯한 중고품은 어디로 가는지를 취재했다. 방구석에서 키보드로 두드린 게 아니라 인도, 가나, 미국 등 각종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는 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거기 사람들로부터 듣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들을 썼다. 쓰레기를 이렇게 총망라해서 추적한 책은 처음이거니와 쓰레기 처리의 진짜 현실, 정말 우리가 처해 있는 사실 그 자체를 생생하게 보여준 책도 [웨이스트 랜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 삶의 그림자 속에서만 있었던 쓰레기가 결국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 삶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는지, 처절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개인의 삶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양도 많지만,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 산업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활 쓰레기를 묻을 수 없어 쓰레기가 산이 되어버린 인도의 실상만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는데, 산업 쓰레기는 심지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알 수도 없다는 게 우리의 현재다.

저자는 쓰레기에 대해서 취재하고 난 이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 플라스틱은 가능한 적게 사고 적게 쓰고, 재활용품을 씻고 분류하고, 개인 컵과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사용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개인으로서의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한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희망이 아니라 무력감, 내지는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들었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개인의 노력은, 어쩌면 우주의 먼지보다 더 작은, 아무런 효과도 성과도 내지 못하는 아주 미미하고 미비한 것 아닌가.


전 세계적으로 산업 폐기물이 정확히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진실은, 우리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주 인용되는 추정치에 대해서는 모든 폐기물의 97퍼센트가 가정이 아닌 산업에서 배출한 것이라고 한다. (중략)

이것이 쓰레기에 관한 현실이자, 반드시 알려져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가정의 재활용률에 집중하고, 요거트통을 닦고 병을 수거하는 데 모든 노력을 들인다 하더라도 폐기물은 대부분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도 전인 '상류'에서 생겨난다.

책 380-381쪽


나는 지구가 아주 큰 별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나라, 드넓은 땅,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땅 속. 그런데 곳곳에 쓰레기를 파묻고 있는 인간들의 현실을 보고 나니, 이젠 지구가 아주 비좁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파묻은 쓰레기 위를 딛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추산도 못하면서. 시간도, 공간도 무한한 자산이 아니다. 시공은 재활용이 안된다. 시간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고 공간은 무엇을 채우면 그걸로 끝이다. 썩지 않는 쓰레기가 1년에 20만 톤이 넘게 지구를 차지해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시공이 쓰레기로 꽉 차서 인류가 더이상 사용할 시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께, 유튜브에서 어떤 환경운동가의 영상을 봤다. 그는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그 어떤 정부와 기업도 적극 나서서 현재의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책망했다. 기존의 체제를 깨부수고 먼저 진보하는 권력은 없다. 그래서 시대를 바꾸고 세상의 틀을 부수는 건 시민들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바닥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갠지스 강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 책 330쪽


재활용, 리필, 순환경제까지 마케팅 전술로 활용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개인의 노력은 정말 미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저 한 문장이야 말로 이 책 속의 탁하고 압도적인 어두움 속을 가르는 단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의 의지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쓰레기 문화를 바꿔가자는 공동의 의지, 그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인식의 변화. 재활용을 철저하게 하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우리들이 해나가는 일의 가장 본질은 이 의지를 다지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리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앞으로 30년 동안은 옷을 더 만들 필요가 없어요. 만들어진 옷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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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 - 아이와 교감하는 영어 그림책 학습법
오로리맘 지음 / 넥서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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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영어유치원이 있다. 금발의 외국인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건물 입구를 드나드는 모습을 종종 본다. 아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부모님과 함께 등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리곤 금발의 선생님 앞에선 영어로 인사를 한다. 퇴원하는 길에도 마찬가지겠지. 방금 전까지 영어로 이야기하던 아이들이 퇴원을 하는 그 길부터는 한국어로 말한다. 나로서는 아이들이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미취학 아동의 나이서부터 생활의 일부로 영어를 받아들인다면 아무래도 당연히 영어라는 기술을 보다 수월하게 습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물론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전체가 영어라면 당연히 영어를 깨치는 속도도 빠를 터이나 그러려면 정말 영어권 국가로 이민이라도 가야 한다. 그러기가 어려우니 사정이 허락하는 부모님들은 수백만원의 비용을 대서라도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과연 그 길 밖에 없을까? 최초의 언어인 제1언어를 깨우치기 시작하는 나이, 그러니까 0~3세 나이의 영유아라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이중언어'의 사례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그러나 한국인 부모의 자녀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면서 한국어와 영어를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부모의 무리한 욕심은 아닌가? 아이에게 부작용은 없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답하는 이 책 [0~3세 영어 말문을 트는 결정적 순간]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 책은 오로리를 낳고 돌보는 엄마이자 영어 교육에 몸담았던 교육자이자 학자로서의 저자의 도전을 담은 기록, 이중언어 습득에 대한 실험이자 경험을 오롯이 기술한 보고서다.


0~3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관심만 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읽어보면 유익하기까지 할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아마 유익하다는 말로는 모자랄 수도 있다. 빠듯한 시간을 내어 일하면서도 아이와 끈끈한 소통을 유지해가는 노하우가 들어 있다) 그러나 영어 습득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유익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좋은 영어그림책을 고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풀어놓고 그에 따라 선별한 그림책까지 소개하니, 영어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좋겠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몸이 자라고 나이에 따라 소속과 행동 양상이 바뀌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아이는 끝없는 소통을 통해서 성장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태어난 이후부터 계속 주변 사람과 사물을 통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 즉 가정과 사회와 나라 전체의 사람과 문화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 한다. 소통이 없으면 습득도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정 개월수가 지나면 어떤 아이라도 자연스럽게 제1언어를 내뱉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양육자들과의 소통, 긴밀한 교감이 없으면 언어는 쉽게 트이지 않는다.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소통의 도구를 체득하고 그 기술을 익혀가는 시간이자 그 언어에 담겨 있는 해당 사회의 문화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막 한국어를 깨치기 시작한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되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다. 나의 말에 상대가 반응을 보이고 상대의 말에 내가 반응이 있어야 살아있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한국어든, 영어든 양육자와의 규칙적이고 따듯한 소통은 아이가 효과적으로 언어를 익히도록 해준다. 또한 언어는 문화의 일부다. 아이가 교과서에 나오는 경직된 언어가 아니라 또래의 영어권 아이들과 같이 살아 있는 영어를 익히려면 아이에게 영어권 문화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도입에서 '마더구스'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출발한다. 그리고 이에 기반하여 왜 영상이나 다른 매체가 아니라 그림책으로 영어를 가르쳤는지도 이야기한다. 사람의 뇌는 연상을 하고 상상을 한다. 그림책 앞에서 아이는 눈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엄마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받아들인 시청각의 자극은 아이의 머릿속에 남아 연상과 상상으로 이어진다. 이 연상과 상상의 작용은 아이가 그림책을 보지 않을 때에도,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에도 계속 힘을 발휘한다. 엄마와 함께 읽은 그림책 속의 일들이 아이가 혼자 노는 동안 아이에게 장난감이 되어주고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는 아이와 엄마 사이의 긴밀한 대화의 소재가 된다. 이러한 그림책의 역할은 영어가 아닌 한국어 그림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림책 활용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으나 아이가 영상에 익숙해지기 전에 그림책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유아들에게 영어를 교육했던 경험과 저자 본인의 탐구, 실제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서 엄마로서 체험한 실전 육아의 경험치가 한데 어우러져 이 책이 나왔다. 손에 쉽게 잡히고 편하게 읽히는 책 한 권이지만 이 내용이 완성되기까지 저자의 평생에 걸친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처음 영어를 접했던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체험한 것들이 오로리에게 영어 그림책을 가르치는 노하우가 되었고 오로리는 지금 자연스럽게 영어가 되는 아이로 성장하는 중이다. 어려운 도전에 나서서 그 도전에서 얻은 것들을 아낌없이 공유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오로리에게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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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의 국어책 - 글쓰기가 쉬워지는 문법 공부!
이재성 지음, 이형진 그림 / 들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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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국어를 '공부'한다는 게 마뜩치 않았다. 이미 읽고 듣고 말하고 쓰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인가? 의사도 충분히 소통하고 있고 읽지 못하는 책도 없고 쓰지 못하는 것도 없는데 도대체 국어를 뭘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그래서 국어 수업 시간은 늘 지루했고 국어 시험은 꽤나 만만했다. 하아.... 그렇지. 뭘 모르니까 이런 생각을 했다. 다들 이런 철없고 멍청한 시기를 한번쯤 보내면서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국어를 이토록 만만하게 보던 잼민이는 그래서 언제 어른이 되었냐고? "세상에, 맙소사! 국어가 진짜 어려운 거구나!"하고 화들짝 놀라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 국어를 대충 쓰면서 어른 흉내를 내다가 형편없는 자기 자신의 국어 능력을 마주하곤 황급히 겸손해졌다고 해야 맞겠다.


누구나 자신의 모국어를 깊이 공부해야 한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언어는 곧 그 사람 자신이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언어는 영적인 것이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규모가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크기가 되는 것이다. 언어를 열 평 정도 밖에 못 쓴다면 그 사람 즉, 그의 정신과 영혼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도 열 평 정도이겠고 만 평 규모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크기대로 넓고 깊은 세계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난 이후에, 그러니까 더 이상 국어교과서가 없는 나이가 된 이후에는 무엇으로 국어를 공부할까?


서점에는 국어를 더 잘 하고 싶어하는 성인들을 위한 다양한 책들이 있다. 특히 글쓰기 안내서는 정말 정말 말도 못하게 많다. 최근에는 특히 글쓰기 관련한 책들이 더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이 SNS에 자기 매체를 한 두개 이상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 시대이니, 자기표현 즉 글쓰기를 효과적으로 잘 하고 싶어하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 그러다보니 별의별 글쓰기 비법들이 다 등장하고 이 중에 진짜 괜찮은 책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맛집 중 최고는 원조다. 2006년 초판 1쇄를 출간한 후 국어 문법책으로서의 최고 입지를 다져온 [4천만의 국어책]이 이번에 전면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5천만의 국어책]이 바로 그 책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기본은 문장이다. 문장은 글을 이루는 최소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문장을 잘 쓰기 위해서 문법에 집중한다. 좀더 정확한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단어와 소리에 관한 규칙도 다룬다. 저자가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할 때,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흐름과 예시 등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재처럼 쉽고 직관적이다.



360페이지가 넘는 도톰한 책이지만 무척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일단 정말 재밌다. 문법을 주제로 한 책이기에 다소 어렵고 복잡한 내용이 독자의 발목을 잡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법을 세밀히 안내하는 내용은 친절하고 일러스트는 유쾌하다. 문법 설명이 이어지는 문단을 징검다리처럼 밟아가다 감초같이 나타나는 일러스트들을 보면 이해도 더 잘된다. 내 경우에는 띄어쓰기를 설명하는 부분을 특히 정독했는데,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 볼 예정이다.


책 맨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랑말랑하고 쓸모 많은 국어 문법책'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문구에 100% 동의가 된다. 이렇게 쓸모 많은 국어 문법책을 이제야 만났다니!!! 4년 전에 교원자격증 과정을 공부했는데, 그 때 이책을 곁에 두고 공부했다면 당시에 느꼈던 문법 이해의 어려움을 이 책이 많이 덜어주었을텐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만나 얼마나 다행인가.

글이 짧을수록 문장은 더 중요하다. 정확하고 정교한 문장,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오늘이라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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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 아이가 있는 미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1
정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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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라고?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나는 어차피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안 할거라 출산율이 마이너스를 찍어도 별 상관 없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이 책을 적어도 3번 이상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와 아무런 연관이 없이 살고 있지만 초저출산율을 걱정 하고 있는 사람 역시 이 책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출산율이 왜 공포인지, 이 출산율이 알려주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부실과 실패를 이 책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은 대한민국이 마주한 이 위기를 기회라고 말한다. 정부의 태도, 복지 정책,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변혁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회인 것이다. 복지, 교육, 노동 등 개인의 일생의 변곡점마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없다면 출산율 반등도 없다. 0.6 출산율은 단순히 청년들의 결혼, 출산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개인이 만족하고 안심하며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나라라는, 사회 전반의 총체적 부실의 결과가 출산율 0.6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초저출산의 원인들을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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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 시대에서 아이는 자산이었다.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건 경사였고, 여성이 목숨을 걸고 낳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사회에서 아이는 투자의 대상이다. 이제 부모는 아이의 양육 부담을 지지만 아이는 노인이 된 부모의 여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아이를 기르는 데에 필요한 비용은 크게 늘었는데 그 비용은 회수가 안 된다. 여기서 돈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돈 하나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니다.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기를 수가 없다. 정확히는 부모가 맞벌이로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다. 여기서 교육(돌봄)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매우 긴 나라다. 무려 OECD 주요국 중 1위다. 일하는 시간이 제일 긴 나라. 그러니 아이를 돌볼 곳이 없는 현실이 더욱 치명적이다. 엄마의 독박육아를 해결하고 아빠의 정당한 육아휴직이 사회의 당연한 문화가 되려면 노동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그간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란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더이상 정부를 신뢰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정부가 '출산은 좋은 일이니 이렇게 하시오.'라고 이끈다고 해서 개인이 정부의 리드에 따르는 시대는 갔다. 개인은 개인의 행복이 최우선이다. 정부가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 체제를 펼쳐놓지 않으면 개인은 절대로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도전도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비용, 교육, 노동문제가 절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근데 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비용 부담이, 교육 과정이, 노동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도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출산의 주체는 여성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출산과 육아가 여성을 불리하게 만드는 현재의 인식이 계속된다면 제아무리 제도와 정책 지원이 쏟아져도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남성들의 주도권이 여성들에게 넘어갔다는 의미에서 신모계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신모계사회는 독박 육아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이 선택하는 현실적 대안일 뿐 부계 혈통주의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부계혈통주의는 공고하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내 성을 주지 못하는 이 생활을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것, 그만큼 가부장적 사회, 남자 중심 사회, 부계혈통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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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출산을 불러온 여러가지 원인 중에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하는 것을 '비용 문제''성평등'을 짚어낸 저자는 이 책에서 개선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출산율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사회 전반의 개혁과 변혁을 통하여 출산율 반등을 달성한 서유럽 국가들의 선행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는 복지 지원을 혼인 중심 가족이 아닌 아이 중심 가족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결혼한 부부를 기준으로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미 있는 집, 아이가 몇 개월 뒤에 태어날 집 등 아이를 기준으로 복지 지원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아와 초등학생 돌봄을 통합하는 일이나 아빠의 돌봄 참여 확대 등도 함께다.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국가들은 짧게는 70여 년, 길게는 10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이제서야 막, 문제 해결에 나선 입장이다. 어떤 뉴스들은 '저출산 해결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정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뭐 대단하게 쏟아부은 건 또 아니라고 실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진짜 쏟아부어야 하는 건 지금부터인 것이다. 복지 정책에, 교육과 노동 환경 개선에, 성평등 인식 개선에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들여야 하는 건 이제부터다. 그리고 막대한 투자와 오랜 지원을 쏟아야 하는 것은 정부와 공공 기관만이 아니다. 개인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개개인도 저마다 투자와 지원에 나서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가장 시급한 두 가지 중 하나인 '성평등'은 정부의 시책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혼이자 미혼인 내가, 출산과 육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가 이 책을 굳이 애써 읽고 공부하는 이유다.

 

개인이 변하지 않으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전체의 일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일터와 사회, 내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를 바꿔놓을 일이다. 그러니 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려면 구성원 전체가 같이 고민해야 맞다.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공공기관은 공공기관의 역할을,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개인은 개인의 역할을 다하면 바꿀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그 역할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한다.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06년부터 시행하였다. 기본계획에 기반하여 도입한 정책들이 소용없다는 속단은 금물이다. 가족정책 영역을 돈, 시간, 서비스로 나눠 세 영역에서 모두 예전에는 없던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러한 복지제도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서유럽 복지국가가 짧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길게는 19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100여 년 넘게 구축해온 복지제도를 우리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20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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