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팀 대수술 (2)◆
'청ㆍ비ㆍ총'. 외교통상부에서 출세의 지름길로 통하는 코스, 즉 청와대 파견 근무자, 장ㆍ차관 비서관, 총무과(현 인사과) 출신들이 보직과 승진에서 유리 하다는 것을 지칭한 말이다.
실제로 현재 외교부 핵심 보직의 상당수가 '청비총' 출신이고 최근 인사에서도 이 말은 다시 한번 입증됐다.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외교부의 엘리트주의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본부 사무관들이 김선일 씨 납치 여부를 묻는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 아넘긴 것도 따지고 보면 뿌리깊은 엘리트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해석되기 때문 이다.
외교업무를 수행하는엘리트'에게 대민 서비스는 귀찮은 사족일 수 있다. 잘 해도 티는 안나고 '욕' 먹을 일만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대 교민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는 영사직은 기피부서다.
한 외교관은 "영사로 발령이 나면 대부분은 인사에서 '물먹었다'고 생각한다" 면서 "영사 업무는 인력은 부족한데 교민의 요구 수준은 너무 높아 잘해야 본 전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최근 외부전문가를 초빙하는 개방형 임용제 대상에 재외국민영사국장 을 포함한 것도 '뜨거운 감자'를 손에서 놓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영사업무에 대한 불만으로 현지 교민사회와 대사관이 대립하 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동남아지역 한 교민회 간부는 "기본적으로 영사서비 스는 수동적"이라며 "조력범위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처리하려 한다" 고 불만을 터뜨렸다. 특히 테러나 살인사건 등 사고다발지역에서도 영사서비스 가 예방보다는 사후 수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최영진 외교부 차관은 "영민한 직원들을 영사국에 배치하겠다"고 밝 히기도 했다. 또 영사국을 영사실로 승격하고 영사업무 담당 차관보를 신설하 며, 영사직에 인사혜택을 주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2001년 말에도 외교부는 중국에서 한국인 마약 사범의 처형 등으로 영사업무 전담 차관보 신설 등의 개선안을 내놨지만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반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관련 부서나 공관에는 근무 희망자가 집중되고 있다. 외교부 내에서도 엘리트 코스로 인정받는 워싱턴 대사관이나 북미국의 경우 특정대학 특정학과 출신이 아니면 지원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소수정예주의는 인력 수급에도 미스매칭을 야기한다. 북미국과 아태국은 항상 외교현안이 많아 과로를 호소하는 반면, 외교업무 비중이 낮은 실국들은 일손 이 남아도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지난 1~5월 진행된 외교부 혁신 컨설팅 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폼나는' 지역 근무만 선호하는 문제는 외교관 출발점인 외무고시에서부터 시 작된다. 2부시험 중 외국어 선택과목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어 등만 포함돼 있고 세계 5~10위권 사용인구를 가진 아랍어와 힌디어, 포르투갈어 등 은 아예 제외돼 있다. 외교관들이 중동지역 근무를 꺼리는 것도 위험지역이라 서 뿐만 아니라 언어ㆍ문화적 배경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비판에 대해 전ㆍ현직 외교관들은 외교부가 엘리트의식이 팽배할 만큼 ' 권력기관'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한 전직 외교관은 "영사업무 서비스가 부족한 것을 엘리트주의로 몰아붙여선 안된다"며 "속지주의 영향도 있고 예산도 부족 하고 여러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과장급 현직 외교관도 "외교부가 전반적으로 개혁의지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 지만 그렇다고 검찰이나 국정원처럼 권력기관 개혁 차원에서 보는 것은 억울하 다"고 말했다.
외교부 내에서는 대사급 30%를 외부에서 아웃소싱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역차별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고위 외교관은 "그런 논리라면 국방부도 외부에 별 30%를 떼줘야 할 것"이라며 직설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윤상환 기자 /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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