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하에서 국가정보원으로
선거에 의한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라는, 안기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혁명적 상황’ 속에서 출범한 이른바 ‘국민의 정부’의 안기부 개혁은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8년 2월25일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3월5일 제22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취임한 이종찬은 ‘작지만 강력한 정보기관’을 표방하며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으로,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써온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部訓)을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院訓)으로 바꾸고, 총원의 11.1%를 줄이는 등 조직과 기능을 대폭 개편했다. 국정원은 이종찬 초대 원장에 이어 천용택·임동원·신건 4명의 원장을 맞이했다.
4명의 원장 중 이종찬 초대 원장은 정규 공채 1기 출신으로 누구보다 국정원을 잘 아는 처지였지만 ‘손에 피를 묻히는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이원장은 안기부 개혁이라는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비밀정보기관 조직의 생리상 거부감이 큰 외부 인사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외부에서는 이것을 ‘거물 정치인’인데다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으로서 ‘인력 풀’의 용량이 큰 그에게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내부에서는 ‘점령군’쯤으로 간주했다. 특히 수십 년간 지속된 폐쇄 조직을 개방형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을 포함한 그의 행보는 종종 ‘정치적 행보’로 인식되었다.
이종찬 원장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육사 16기 이원장 동기생 천용택 2대 원장이 맨 먼저 한 일은 외부 출신 차장을 내보내고 내부인사들로 보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선회하는 것을 의미했다. 상당수 직원들은 이런 조처에 내심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6개월을 지나야 업무의 대강을 파악할 수 있는 국정원을 맡아 이제 막 일을 시작할 때쯤인 7개월 만에 대통령 정치자금과 관련한 실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
군인, 외교관, 관료를 거치는 동안 외교·안보·통일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전략가인 임동원 3대 원장에 대한 평가는 매우 양극적이다. 임원장 부임 당시 대공정책실장을 지낸 국정원 간부 K씨는 당시 이렇게 평가했다. “임원장은 국정원장으로서는 전무후무하게 외교·안보·통일 분야를 두루 섭렵한 분이다. 이런 분이 원장으로 오기는 처음이다. 앞으로 국정원의 업무 특성상 중요한 군 및 청와대와의 조화로운 업무 협조와 내실 있는 조직 운영이 예상된다.” 국정원 조직의 골간이 해외정보·국내보안·대북 분야를 각각 담당하는 1·2·3차장제로 3분된 것에 비추어 사실 임원장의 경력은 중정·안기부 시절을 포함한 역대 국정원장 중 최적임자였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안팎에서 모두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가장 흔한 비판은 DJ ‘햇볕정책’의 전도사인 임원장이 대북분야만 챙기고 국내보안 쪽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힘은 생산 정보의 질량(質量)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임원장 체제에서 국내파트는 해외·대북 파트보다 과거에 비해 힘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때문에 적극적인 정보수집활동을 선호하는 국내 I.O.(정보관) 가운데 상당수는 임원장의 조직 운영방식에 비판적이었다. 이런 비판은 여당 쪽에서도 컸다. 최근 여권에서 발생한 정풍 파문 때 민주당의 한화갑 최고위원은 이런 말을 했다.
“과거의 여당은 확실히 행정부보다 우위에 있었다. ‘관계기관대책회의’를 공공연히 열고 ‘안가’회의 결과를 발표했고 행정부에서 시행했다. 당에서 국정운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대처했다. 우리는 민주국가의 모범을 보이느라고 정보기관과의 유대가 끊어졌다. 당과 그런 협의가 없다. 정보를 솔직히 모른다. 정보는 청와대와 정부가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가 나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여당의 현주소고, 과거와의 차이점이다.”
한최고위원의 발언은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지 정보기관과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당 내, 특히 동교동계 구파 내에서는 여당에 일절 정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국내정치 정보수집활동 자체를 현저하게 위축시킨 임원장의 조직운영 스타일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임원장 재임중 동교동계 구파로 권노갑씨의 측근인 K 전 의원의 기조실장 부임설이 끊임없이 나돈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다음은 중간간부 S씨의 증언이다.
“K 전 의원이 여권 실세의 힘으로 기조실장으로 오려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실세가 기조실장은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가신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의를 받은 대통령께서 임원장에게 ‘K 전 의원을 기조실장으로 쓰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물었는데 임원장이 ‘정치인 출신 외부 인사가 그 자리에 오면 줄 대기 등 내부 부작용이 커진다’고 완곡하게 거절해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임원장이 외풍을 막은 것은 평가해야 한다.”
임원장의 조직 운영 및 인사가 가져온 작지만 중요한 변화는 그가 원장으로 부임할 때 외부 인사를 한 명도 데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관행은 신건 현 국정원장으로 이어졌다. 신원장은 단신으로 입성했을 뿐만 아니라 전임 원장이 임명한 비서실 직원을 아무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게다가 신원장은 1차장(최명주, 전북 출신), 기조실장(장종수, 강원)을 내부 인사로 발탁해 기존의 김은성 2차장(서울, 원적은 전남), 김보현 3차장(제주)과 함께 차장급 간부 전원을 내부 인사로 보임했다(기조실장은 1급이지만 정무직이기 때문에 통상 차장급으로 간주한다). 차장급 4명 전원을 내부 출신으로 보임하기는 국정원 40년 역사상 처음이다. 다음은 이번 인사에 대한 국정원 간부 Y씨의 평이다.
“이번 인사를 계기로 앞으로 차장까지 외부 인사가 원내에 들어오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공채 출신 원장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원장 대망론’까지 조심스럽게 점칠 만큼 정치적 중립을 이뤘고 이제 그럴 만한 연륜도 되었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앞서의 중간간부 S씨는 “현행 법체계에서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은 정보의 최종 사용권자인 대통령과 운영권자인 원장의 의지에 달렸는데 현 대통령은 정보기관이 적법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정보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과거와 달리 정권안보가 아닌 국가안보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국정원이 정권안보와 국가안보를 혼동하지 않는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다면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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