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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500여 페이지 짜리 책 두 권, 텍스트가 빼곡하게 차 있는 이 책을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짧게나마 서평을 쓰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읽었지만 사실은 내가 제대로 읽긴했나 싶은 부분.
처음 읽을 때는 거의 전투모드로 ‘읽어 내느라’ 힘들었지만, 두번째에는 기본적인 스토리는 파악된 상태로 읽는 것 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읽었다. 물론 이름에 대해서는 여전히 헤매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죄와 벌’은 인간에게 죄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로 인한 형벌 – 꼭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외적인 형태의 형벌뿐만이 아닌, 내적 상태까지도 – 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사실 책 전반에 걸쳐 대사나 상황설명이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 문체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 새 이야기에 몰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야기는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가 전당포 노파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그의 여동생 리자베타를 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가 처해있는 상황이 극도로 궁핍한 것은 알겠지만서도 그게 꼭 왜 살해로 이어지는지 딱히 공감을 못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 샌가 그의 행각이 들킬까봐 같이 조마조마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의 심리변화에 덩달아 내 마음도 널뛰고, 증거가 없어 완전범죄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조여들어오는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등장할 때마다 내가 라스콜니코프가 된 듯 한 느낌이다.
그가 살인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가난함은, 사실 일정부분 작금의 현실을 보는 듯 하다. 특히 소냐에게 밝히는,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보다보면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심리상태만큼은 지금이라도 다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힐링’을 논하던 시절이라면, 두 번째로 읽은 2015년은 헬조선과 흙수저까지 언급되는 때이므로. ‘죄와 벌’이 연재되었던 것이 1866년이라는데, 2015년 지금의 대한민국은 도대체 얼마나 다르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라스콜니코프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라스콜니코프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괴로움으로 몸무림치는 것의 일부였지만. 다만 소냐의 죄에 대한 관념 에 따르면, 더군다나 그것이 이기심의 발로에 의한 것이라면 설령 라스콜니코프가 아무리 괴로워 한 들, 발각되지 않는다 한 들, 죄는 여전히 죄인 것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며 또다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내심을 발휘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일독해야 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