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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평점 :
이 책은 김포의 한 토착민의 재산권을 둘러싼 일련의 소송들을 대리한 변호사가 쓴 책으로, 무려 10여년 동안 20여번에 걸쳐 진행해 온 민,형사, 재정신청, 가처분 등에 대한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내 기준으로는 – 아니,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보아도 다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지만 – 소송거리조차 될 수 없어 보이는 사안인데, 얼토당토 않은 논리와 위증을 거듭하는 증인들의 진술에 힘입어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에서 패소까지 하게 되는 일련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저자의 차분한 필체에도 불구하고 현 사법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분노가 끓어오른다. 아니 그 담담함 때문에 분노가 더 증폭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건과 관련된 전, 후 사정과 각종 기록이 상세히 적혀있고, 필요한 경우 앞에 나왔던 판결문 등의 내용이 다시 옮겨져 있거나 정리되어 있어서 앞뒤를 뒤적이며 읽을 필요가 없던 것은 이 책의 장점이었으나, 대신 책의 분량이 그만큼 늘어난 것은 단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법률용어나 판결문이 쉽게 읽히지만은 않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국내 대기업과 만나고 협의해야 하는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구매니까 이른바 ‘갑’ 이고 그들은 ‘을’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물론 요즘은 구매라고 무조건 갑은 아니고, 꼭 대기업이 아니라도 팔면서 갑질하는 곳들, 많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 책을 읽으며 대기업을 상대로 오랜 시간 법정다툼을 벌여온 이 변호사,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사건 전체를 통하여 대기업 H건설에 우호적으로 흐르는 정서에 기가 막힐 뿐이다. 힘없는 변호사를 선임한 기을호의 처지가 처량할 뿐이다 (p.280)”라고 부분에서는 정말 울컥했다.
나아가 변호사씩이나 되는 사람도 인맥이 받쳐주지 않거나,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게 아니라면 그 세계에서도 힘든 것을 보니, 이 갑갑한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좀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변호사 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을텐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변호사업을 정리하겠다고, 더 이상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었고 두려웠다고 했을까. 그래, 그러고 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힘든 걸거야, 하면서.
“힘 있는 자에게는 여러모로 편한 세상이고, 힘없는 자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자체가 그러한 세상이었다. (p.264)”
이런 책을 쓸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서평을 보았는데, 정말이지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정말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