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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탄생 - 창조, 발명, 발견 뒤에 숨겨진 이야기
케빈 애슈턴 지음, 이은경 옮김 / 북라이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창조물들을 만난다. 그게 책일수도, 음악일수도, 미술작품일수도 있고, 혹은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어 미처 ‘창조물’로 느껴지지 않는 각종 기술 및 발명품들도 결국 누군가의 창조물들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고, 나는 그 결과물들을 소비하는 사람일 뿐이다. 다만 궁금하긴 했었다. 그런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로 태어난 것인가, 혹은 뭘 어떻게 했길래 번개가 치듯 번쩍하고 영감을 받는 것인지. 부럽지만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는 무려 사물인터넷 (IoT: Internet of Things) 개념을 창시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그게 뭐?’ 할 수 있겠지만, 내 입장에선 처음 IoT 개념을 접했던 시기가, 뭐랄까 내가 드디어(?) 뒤쳐지기 시작했다고 느꼈던 때고,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다급했던 때라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이니 기대할 수 밖에.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창조는 비약을 일으키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한 다음 반복하는 ‘노동’이라는 것. 이것은 모차르트도, 칸딘스키도, 스티브 잡스도, 우디 앨런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를 떠 올리는 사람은 많아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를 밟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더 나아가 창조자들은 의구심, 실패, 조롱, 거절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면서 성공할 때까지 창조 작업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시작하고 (정말 시작이 반 인가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성실하게 나아가는 것이 창조의 비결(?)인 것이다.
그런데 단지 성실함이라는 것은 사실 알고보면 그 것에 온전히 집중함을 뜻한다. “분야와 관계없이 모든 창조적 삶에는 그 일에 얼마나 전념하느냐에 따라 성공이 좌우되는 시점이 찾아”오는데, 그 ‘전념’에는 커다란 대가가 뒤따른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대한 부분도 어렵지만, 정상적인 생활인(?)이라면 실현 불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각종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부분은 자기 의지로 어떻게든 헤쳐나간다 하더라도, 창조 작업이 생업과 연결되지 않는, 예를들어 회사생활을 하는 일반적인 가장이 어떻게 ‘완전히’ 창조 목표에 헌신할 수 있겠으며, 창조를 하기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회사생활’, ‘일반적인’, ‘가장’ 이라는 말은 단지 예를 든 조합이다. 이를 ‘가정주부’나 미혼자로 바꿔도, 회사생활을 사업으로 바꿔도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국 ‘넘을 수 없는 벽’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능력의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성실하게 창조에 몰두할 여건이 현실적으로 갖추어지지 않으니까. 물론 이건 나의 이야기로 내가 왜 창조할 수 없는가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현재 창조해내고 있는 것들 - 예를들어 회사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이라 쓰고 쥐어짜는 이라 읽는다) 각종 보고서들 – 에 대해서는 한번도 ‘창조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게 밥을 주고, 지겨워는 하되 매일같이 나름의 혼신을 다해 만들어 내고 있는 것들인데도.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의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다만 회사 얘기가 나온 김에, 이 책에서 얘기한 창조적인 조직과 관련한 장에선 깔깔거리고 웃었다. 우리회사도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을 쓰고, 뭐만 했다하면 회의가 잡히는 곳이니, 창조적인 나(?) 같은 사람이 답답할 수 밖에, 뭐 이래가면서. “내부 회의에서 진행되는 상당 부분을 가리켜 ‘계획’이라고 하지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 점에서 계획은 제한된 가치를 지닌다”라는 부분에서 특히나 공감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보니 이 책 자체도 굉장히 성실한 창조물이다. 주석과 참고문헌만 40페이지가 넘어가니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조사와 공부를 했을는지. 정말이지 IoT 같은 개념의 창시자도 책 한 권을 쓰는데에도 이토록 수고스러운 창조의 길을 걸었구나 싶다. 창조에 대해 얘기하지만, 사실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여러 자극을 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