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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ㅣ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5
토머스 모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웃을 통해 소개받은 '정치와 대중' 관련 책 중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골랐습니다. 읽기에 만만해 보여 선택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고작 272쪽인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1. 토머스 모어, 그는 어떤 사람인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이자 부유한 대지주였으나, 법률과 변호사를 야유하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며 돈을 경멸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답니다.
모어는 헨리 8세와 두터운 신임관계 였다는데요, 헨리 8세가 왕비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앤 불린과 결혼을 시도할 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해
1534년 앤 불린에게서 태어난 자식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계승률'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헨리 8세에 의해 런던탑에 감금,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답니다.
2. 이해를 위해
유토피아 : 그리스어 ou(없다는 의미, 영어의 no)와 topos(장소라는 의미, 영어의 place)를 합쳐 만든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책이 출간된 후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네요.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 : 토머스 모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입니다. 라파엘은 히브리어로 '신은 병을 고친다'라는 뜻이며, 히드로다에우스는 그리스어로 '넌센스'라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책의 내용
1부, 2부가 있습니다.
1부는 가공의 인물 라파엘과 토머스 모어의 대화를 통해 좋은 정치가 안되는 이유, 가혹한 처벌에도 왜 범죄가 줄지 않는지, 빈곤층을 양산하는 사치 풍조, 사유재산 제도 폐지, 재화의 공정한 분배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2부는 라파엘이 토머스 모어에게 '이상향의 나라' 유토피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유토피아의 제도
ㅇ 모든 시민은 농촌생활을 2년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ㅇ 동일한 언어, 법률, 관습, 제도를 갖춘 54개의 대도시로 구성, 걸어서 하루면 모두 도착할 수 있는 정도의 섬
ㅇ 회의와 토론을 통해 결정되는 행정 제도
ㅇ 인구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ㅇ 개인의 손실은 국가가 떠안는다
ㅇ 모두 함께 일하고 모두 같은 옷을 입는다 : 집과 옷 때문에 노동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ㅇ 하루 여섯 시간만 일하고 그 외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ㅇ 짐승 도축 등 거칠고 힘든 일은 노예가 담당
ㅇ 시민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용병으로 대체
ㅇ 모든 물자가 풍부하고 균등하게 분배됨
ㅇ 값비싼 옷은 경멸받고, 금(gold)은 불쾌한 단어임
ㅇ 거들먹 거리거나 위압적인 태도가 있다면 영원히 관직을 받을 수 없다
ㅇ 계약보다 애정에 의해, 언어보다 감성에 의해 조약을 맺는다
ㅇ 개인은 욕심.탐욕이 없고 국가는 개인이 탐내지 않는 부로 개인을 완벽히 보호한다
4. 감상
하나, 데쟈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1516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모어의 희망, 기대, 한숨은 500여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더군요.
왕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올바른 정치를 못하며, 왕 주위에는 간신이 득실댑니다. 사치스럽고 게으른 사람은 군인이 되고, 그 위에는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귀족이 있다며 탄식합니다.
1부 내용 중 라파엘은, 비참하도록 빈곤한 현실이니 좀도둑을 교수형 시키지 말고, 사태의 원인을 개선하라 직언합니다. 이렇게 직언한 충고도 이상한 절차에 의해 애초 의도가 완전히 변하는 일도 있다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렇다보니 라파엘은 현실세계 정치를 완.전.히. 떠난 재야의 인사가 되었다지요. 그러면서 모어에게 자기가 살았었던 '유토피아' 얘기를 전합니다.
하나, 16세기 사회.문화적 맥락을 더듬으며 읽는 퍼즐같은 재미
처음 유토피아는 반도였답니다. 유토포스라는 인물이 이곳을 정복해 도시를 만들었다는데요, 이 말은 신이 아닌 인간의 지성, 이성, 힘으로 만든 곳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적은 시간의 노동력만으로 물자가 부족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수요보다 공급 부족에 시달렸던 시대의 한계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고 있는데요, 당시 사회에 악을 끼치기도 했던 종교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글과 문장 사이사이 16세기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찾아 읽는 재미가 마치 퍼즐같아 좋았습니다.
하나, 타인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모어의 유토피아에서조차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노예(범죄자 or 전쟁 포로)가 담당하며, 전쟁은 '용병'으로 대체합니다. 유토피아인들은 얼마나 많은 짜폴레타에인(용병)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든 상관치 않으며, 용병들은 유토피아가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네요.
이렇듯 인간적이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토피아 시민'만 가능합니다. 이 말은 인종과 국가.민족을 떠난 인.간.으로서의 평등은 '유토피아'에서도 불가능하단 뜻이에요.
실제, 오래 전 고대 그리스에서 찬란한 과학문명이 발달한 것도 '노예'가 있어서 가능했다지요. 뿐만 아니라 지금 동남아 등 국가에 흔한 '메이' (하녀라 불릴 수 있으며, 극도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합니다)도 있구요.
'유토피아'에서조차 인간 그대로의 평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씁쓸한 일입니다.
하나, 돌직구보다 비유와 은유의 힘이!
모어는 '정치 소설'의 힘을 빌어 자신의 이상을 설파했습니다. 기존 흔했던 문학작품 형식과 다른 참신함에 많은 이가 <유토피아>를 주목했고, 그 덕에 '유토피아'가 고유 단어가 된게 아닌가 싶어요.
대놓고 돌직구를 날렸다면, 아마 영향력이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석훈의 <1인분 인생>이 떠올랐어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 될까.... 고심하는 그에게 '문학'이라는 카드를 내밀고 싶지만, 소설은..... 어지간한 열정으로 쓸 수 있는게 아니니 어려운 일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맨날 돌직구만 날리니, 재미와 감동이 떨어진단 말이죠.
기대를 하지 않은 덕에,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로부터 넘치는 독서의 기쁨을 선물받았습니다.
여전히 '유토피아'는 없지만, 여전히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 꿉니다.
이게 사람의 숙명인가 봅니다.
읽은 날 2013. 6. 30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