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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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와 동의어였습니다. 

20대 때 만난 <상실의 시대>는 감동적이었죠. 

그 기억으로 <1Q84>를 읽어봤습니다. 

1권을 읽고 그만 읽으려 했는데, 2권이 절로 왔어요. 결국 3권을 사서 완독했습니다. 

그리고 욕 했어요. 

이런 시시한 연애소설 따위를 읽느라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구요. 

1,997 쪽이나 되다니욧! 500쪽 정도였으면 욕하지 않았을 거에요. 

어휴.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왜일까요?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의 시작을 찾아봐야 했어요.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상실의 시대>와 재회했습니다. 

 

다시 만난 <상실의 시대>, 좋았습니다. 

그가 왜 여전히 사랑받는 작가인지 알겠더라구요. 

아니, 이 책이 처음 나온 1990년대에 우리가 왜 그토록 열광했는지를 알겠더라구요. 

우리는 <상실의 시대>를 통해 자신을 보고 느꼈고, 그리고 희망을 가졌던 겁니다. 

 

이 작품은 일본의 1960년대 전공투 세대(국가 권력과 기성세대에 맞서 이상주의적 해방구를 건설하려 했던)의 시대상실 아픔을 매우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풍부한 표현력은 주인공과 등장인물을 둘러싼 시대 분위기를 현재로 소환시키고도 남아요. 

주인공을 둘러싼 등장인물이 10대, 20대 젊은 나이에 연이어 자살합니다. 주인공의 절친 기즈키, 나오코의 친언니, 하쓰미, 그리고 마지막 나오코까지요. '자살'이 시대 분위기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하루키는 밝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어요. 

이는 주인공의 선배인 나가사와, 레이코 그리고 뺴놓을 수 없는 미도리라는 인물 덕입니다. 

주인공은 중립적이구요. 

사실, 그럴 수 밖에 없군요. 

무겁고 암울한 시대 분위기에 둘러쌓였으나, 압사당하지 않고 결국 희망을 찾아내니 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생각났습니다. 

비슷합니다. 비슷해도 너무 비슷합니다. 

단지, 우리가 일본의 전공투 세대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어서일까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등장인물의 '자살'로 표현하는 건 어쩔수 없는 걸까요. 

주인공이 도시를 끝없이 걸으며 그들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 또한 말입니다. 

 

그러나 두 작품의 차이는 마지막에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주인공은 존재의 방황을 마치고 과거와 멋진 이별식을 치른 후 두근두근 가슴으로 도약대에 섭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멋지게 너와 함께 하겠다고. 

이와 달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겨우 한마디 하는 정도에요. 

이 한마디가 무에 그리 어렵다고 길고 긴 세월을 돌아, 겨.우. 

 

<상실의 시대>는 존재를 찾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구시대 재료가 아닌 현대의 재료로 잘 버무려냈습니다. 그런 새로움이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 같아요. 

이는 시대적 전환기 즉, 제2차 세계대전 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 가치관 변화 흐름에 상당히 부합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이 작품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치는 충분해 보입니다. 

최근작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요. 

 

 

 

 

다시 읽은 날  2013. 8.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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