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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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를 아시나요?

(제 이웃들은 모두 아신다는 걸 압니다만... ^^)

 

헐렁한 제 기준에 '김애란' 작가는 매우 유명한 거 같아요.

제가 어찌저찌해 모 SNS의 책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는데, 책 리뷰는 여타 글에 비해 공감이 떨어집니다. SNS 흐름에 맞는 글과 내용이 아니기 때문인데 <침묵의 미래> 글이 제가 쓴 90여 개 중 공감수 2위를 기록하니 그렇게 여겨지더군요.

90여 개 글이 평균 5개의 공감을 받았는데, <침묵의 미래>는 무려 36개의 공감이니 무척 큰 숫자에요.

공감 수가 적은 건 글의 감각이 떨어지거나 베스트셀러 책이 아니라 그럴텐데, 평균 6배 이상의 숫자는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되더군요.

"으아, 김애란! 정말 인기가 많구나!"

 

 

 

제가 쓴 글입니다.

"듬성듬성 정강이 털에 핑크색 팬츠를 입고 달리던 아비에서, 두근두근 아름이의 인생을 지나 말(言)의 존재와 가치를 묻는 김애란. 그녀의 발전이 놀랍도록 눈부시다. 게다가 언어의 존재, 가치, 운명을 사유하고 있다니! 그는 단순한 인기작가를 뛰어넘어 거장이 될지도.

오랜만에 읽은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의 이름이 아깝지 않다."

 

<달려라 아비>로 처음 만난 김애란의 글은 매우 깔끔했습니다. 떡 떨어지는 맞춤옷 같았어요. 군더더기 없는 글에 대한 인상으로 <두근두근 내 인생>을 만났는데, 느낌이 사뭇 다르더라구요. 잘 쓴 글에서 감동 주는 글로 변화한 거 같았어요.

작품마다 다른 느낌은 김애란 작가의 독자 저변 확대에 한 몫 했을겁니다.

 

이번에 만난 <침묵의 미래>는 대중 문화를 뛰어넘은 문학적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말(言)이 가진 고유한 의미입니다. 한 때 말과 한 몸이 되어 무리를 이뤘으나 대부분 사라지고 홀로 버려지죠.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는 '소수언어박물관'의 보호를 받습니다만, 소수언어박물관의 바램은 세계 곳곳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이죠.

박물관에 들어간 언어는 낮에는 '자신'인 척 하다가 해가 지면 '중앙'식으로 생활하며 점차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갑니다. 박물관이 고유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타 민족끼리 말 섞는 것을 금했음에도 불구하구요. (트릭이었겠죠)

결국 언어는 죽고, 화자를 잃어버린 의미는 지옥처럼 뜨거운 공장으로 호로록 빨려들어갑니다. 내세도 우주도 아닌 지옥처럼 뜨거운 공장으로요.

 

껍데기만 남은 '빈 말'이 횡행하는 시대에 대한 고찰...인 셈이죠.

독자는 사라져 가는 언어의 마지막 말을 듣는 영매 자리에 놓이게 되고, 이를 통해 언어의 존재와 죽음을 묵도하게 됩니다. 뻔한 이야기 흐름 대신 깊은 통찰과 문학적 표현의 남다름이 이상문학상 수상에 기여한 거 같아요.

 

김애란은 언어.문학의 가능성을 말하려 했을까요.

글쎄요.

이 작품에선 답이 보이지 않아요.

답 대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작가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권력이나 자본의 도구로 전락한 언어의 시대에, 언어의 본질에 대해 과감한 질문을 던지는 그는,

정말 인기작가를 뛰어넘어 거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그와 이 작품으로, 독자는 언어.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군요.

 

 

 

 

 

 

읽은 날  2013. 2. 1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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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여긴 쿠바야 - 우리와는 다른 오늘을 사는 곳
한수진.최재훈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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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했습니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남미의 명망있는 대통령 사망이라는 사실보다 쿠바가 퍼뜩 떠올랐어요.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으로 하루 2만 배럴이나 되는 석유를 쿠바한테 공짜로 공급하고, 쿠바는 의사, 교사, 운동 코치, 예술가들을 빈민가와 가난한 시골에 파견하거나 환자들을 쿠바로 데려와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나눔과 연대의 힘 - 중남미 PTA를 하고 있는 나라거든요.

(※ 중남미 PTA :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에서 시행 중인 '민중형 무역협정'으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의 대안적 지역통합 전략이다. FTA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PTA는 회원국 주민의 공공서비스 질 향상이 목표이다.)

차베스 대통령 사망이 중남미 PTA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입니다만.

오늘은 수도인 아바나 공항에 '온 인류가 (나의) 조국이다 (Patria es Humanidad)'란 멋진 문구를 달고 있는, 쿠바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괜찮아 여긴 쿠바야>는 저자인 한수진과 까밀로(최재훈)이 일반 여행자가 잘 가지 않는 구석구석을 누비며 쿠바의 본모습을 오롯이 기록한 책으로 쿠바의 일반 여행 안내서로는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날것의 쿠바를 만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 그들의 여행을 통해 본 쿠바의 역사와 현재가 인상적이었어요.

 

쿠바의 현재를 말하기 위해선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잠깐 소개할께요.

1492년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후 17세기 중반 영국군이 아바나 항구를 점령, 18세기 말 아이티에서 일어난 흑인 노예혁명으로 수천 명의 프랑스인들이 대거 쿠바로 쫓겨 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계급 구조를 바탕으로 1868년 10년 간에 걸친 1차 독립전쟁을 거쳐 1895년부터 시작된 2차 독립전쟁에서 스페인을 거의 몰아내기 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바로 코앞에 위치한 미국이 쿠바에 끼어들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쿠바는 사실 상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게 되지요.

그러다가 1959년 쿠바 혁명이 시작됐어요.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는, 까밀로 씨엔푸에고스와 체 게바라 같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젊은이들과 함께 부정부패로 국민의 미움을 받아온 독재자를 축출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합니다. 그러자 미국이 바로 침공, 실패로 끝나자 외교단절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추방, 40년 이상 제재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소련과 동구권 무역에 의존하던 쿠바는 1990년 소련이 해체되자 매우 큰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거의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다, 지금은 무상 의료와 교육을 하는, 부족하지만 자립이 가능한 나라가 됐다고 합니다.

 

쿠바의 젊은이들은 대학교까지 완전 무료로 교육받는 대신 2년 동안 의무적으로 사회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내가 흘린 땀방울로 병든 사람이 건강해지고 못 배운 사람이 읽고 쓸 줄 아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체 게바라가 꿈 꾼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었다네요.

그런, 게바라가 꿈꾸던 이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까요?

 

저자가 만나본 쿠바 사람들이 말합니다.

"혁명의 큰 뜻에는 동의해. 그리고 공짜로 배우고 무료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너희는 이렇게 다른 나라에 여행을 다닐 수 있잖아. 우린 그럴 수가 없어. 일단, 보통사람 월급으로는 비행기 표를 살 수가 없어. 여권을 받는 절차도 무지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든다구. 그리고 운 좋게 여권이 나와도 외국에서 초청장을 받지 않으면 쿠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그들 목소리에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근데 막상 가보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는 게 쉽지가 않아. 한국만 봐도 그래. 너희가 보기엔 우리가 부러울지 몰라도, 아침부터 밤까지 평생 뼈 빠지게 일만 하고 행복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

이 말이 쿠바 사람들 귀에 들릴.....까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에 충분한 생활은 가능하지만, 옷을 산다거나 여가를 즐길 수 없다....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상 교육과 의료 그리고 자립자족이 가능한 반면 여유를 즐길 수 없는 생활과,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여유....

어느 것이 더 좋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렵네요. 그저, 쿠바를 이렇게 만든 미국의 경제 제재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혁명의 1세대를 지나 요즘 쿠바 젊은이들은 리바이스 청바지에 비싼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서양 관광객들을 보면서 자신의 낡은 옷을 초라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비록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이상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도 당장 자신의 삶이 초라하다면...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해도, 쿠바는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온갖 공작과 음모, 혹독한 경제 봉쇄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또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어떤 나라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 문맹퇴치, 주거 같은 보편적 복지와 사회 안정을 이룩한 나라입니다.

결코 완벽하지 않고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지 않은 채 그래도 한 발 한 발 천천히 전진해나가는 사회는 세계에서 오직 쿠바 뿐이라는군요.

그래서 쿠바는 자본주의와 다른 대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푸른 유니콘'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최근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이상을 흠모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것에서 미래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근사하고 멋진 체 게바라의 '새로운 인간'은 쿠바에서 가능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만이 가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하겠지요.

그 새로운 미래에 쿠바는 분명, 멋진 영감을 주는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자의 친구 라몬, 윤종신을 닮았다고 해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읽은 날 2013. 2. 1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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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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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던 중학교가 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여중생은 대학생들의 데모가 원망스럽기만 했지요. 교실 창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콧물에 섞여, 공부도 안하는 한심한 대학생이란 이미지를 만들곤 했어요.

그 당시 대학생들이 왜 데모를 할까란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었네요.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서 저는 그저 착한 국민으로 육성되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모범국민으로 자라던 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고쳐 쓴 한국근대사>를 읽은 뒤였습니다. 교과서가 알려주는 세상과 역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책을 통해 접한 지식은 놀라움 자체였고 새로운 인식의 창이었어요.

사람의 생각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목숨을 겨누는 창 앞이라 해도 겉으로 바뀌는 척 할 수 있어도 감출 수 있는 속내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진정성 앞에선 다르겠지요. 이래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문명 이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나봅니다.

 

제가 태어나던 그 즈음부터 리영희 선생께서는 <전환시대의 논리 / 1974년> <우상과 이성 / 1977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1994년> 등의 책을 통해 억압과 부조리에 맞선 펜의 힘을 몸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선생의 책을 보며,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뜨고 영감을 얻어 후학과 제자로서 사회의 커다란 기둥이 되어 갔지요. 비록 한쪽에선 저처럼 진실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0년 12월 5일 리영희 선생의 부고를 듣고난 한참 후에야 이 책 <대화 리영희>를 만났습니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답게 리영희 선생 개인의 회고담과 사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습니다.

 

같은 환경, 같은 역사적 체험과 인간적 삶을 경험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반응 양식은 천차만별이잖아요. 이게 다 개인의 주체적 의식의 문제라 해도, 가끔 궁금해요. 그 주체적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고 달라지는지 말이에요. 리영희 선생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해서 모두 다 같이 그런 분이 되지 않는 이유가 말입니다.

완벽한 설명이 되지 않지만, 리영희 선생의 유년시절 두 명의 인물을 그 분의 원초적 잠재의식에 큰 영향을 준 거 같습니다. 바로 외삼촌과 문학빈이라는 머슴이지요.

 

리영희의 외삼촌은 정치.사상적 변혁을 겪은 뒤, 매제(리영희의 아버지)의 재산을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평생을 두고 오빠를 원망한 어머니 곁에서, 리영희 선생은 민족이 필요로 했던 혁명적인 지식인으로서 외삼촌을 기억하며 성장했다는군요.

 

또 한 명의 인물은 일자무식이었던 문학빈이란 머슴입니다. 그는 혁명가로 변신해 지난 날 상전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외할아버지를 두 번이나 협박해 독립자금을 뜯어가기도 하고, 결국은 총을 쏴 죽이기도 했다는 군요.

리영희 선생은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별개로 무지렁이 머슴 출신으로, 혁명가이자 독립투사의 계급적 각성과 사회혁명을 몸으로 실천했던 분으로 문학빈을 기억하시더군요.

(문학빈은 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에도 등장하던데요, 책을 통해 알게된 인물이 다른 책에도 등장하는 걸 보는 것도 독서의 묘미인 거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우리의 근현대사는 비록 모든 전진이 힘겹고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더디고 불만족스러웠다 해도, 미국이라는 음흉한 외부세력의 의도와 압력을 조금씩이나마 무력화해 나간 남한 국민의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가령, 미국정부의 '일본중심 아시아 후견체제' 수립에 암적인 존재였기에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고, 그 대안으로 철저한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독재 군부정권으로 박정희를 점 찍은 후 1961년 5월 16일 그에게 쿠테타 승인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지요.

충실한 대리인이었던 박정희가 쓸모없게 되자 미국은 또 다른 대체세력으로 전두환을 선택했습니다. 전두환이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을 잔인무도하게 탱크로 짓눌러버린 행위는 미국이 배후에서 모두 조종했구요.

이 모든 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정부가 애당초 해방 후 미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긴 세월에 걸쳐 한국국민 대중의 정치적 각성과 주권의식 고양으로 점차 미국의 농락과 공작이 감소되고 있는 형편이니, 그나마 감사를 해야겠지요.

 

어떤 민족의 역사에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절제의 현명함으로 움직여진 실례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지성인의 바람이나 요구와 전혀 무관하게 걸어가는 집단적 행동의 특징이지요.

게다가 어떤 이론도 형성됐을 때는 현실을 반영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데올로기화되면 현실과 객관적 진실로부터 유리되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정말 그게 사실이어도 의식있는 산 지식을 위해 생애를 바친 고 리영희 선생의 삶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수그려집니다.

비록 변치 않고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있어주실 리영희 선생이 계시지는 않지만, 선생의 사상은 계속 전해지고 발전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르는 이는 독서와 지식의 확장을 통해, 그리고 선생의 말씀대로 대중은 속일 수가 없고 역사적 평가는 한 개인의 인생보다 길게 남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입니다.

 

 

 

읽은 날 2011. 6. 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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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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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상태'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행복이란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고, 절대적이기보다 상대적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뉴욕타임즈 기자와 전국공영라디오 해외특파원을 했던 저자 에릭 와이너가 세계 10개국을 돌며 행복이 어디 있는지, 장소를 바꾸면 행복도 달라질 수 있는지를 얘기합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의 필수 요소라 생각하는 돈, 즐거움, 영적 깊이, 가족 등 한 가지 이상 갖고 있는 나라를 다녀온 여행 얘기를 합니다.

 

행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 느끼기도 하지만, 역사.문화에 따른 각 나라의 차이도 있는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인의 행복은 완벽함에서 오는 권태라고 합니다. 프랑스에 와인이 있고, 독일에 맥주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권태가 있습니다. 그들은 권태를 완벽하게 다듬어 대량생산해요. 규칙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을 권태라 표현할 수 있을까 상상가지 않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부탄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집단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비록,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지만 모두들 끊임없이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미국과 달리, 부탄은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도 역설적이게 행복하다고 합니다.

역사 상 매우 짧은 기간 안에 부유해진 카타르는 행복할 것 같지만 석유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구요. 사회전체의 질이 매우 열악한 몰도바는 행복은 커녕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여긴 몰도바야' 식의 체념이 사회에 깔려있고 오로지 불행밖에 볼 줄 모르구요.

태국은 재앙이든 행운이든 일어난 일을 그냥 받아들여요.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이 있고, 다음 생이 잘 안 풀리면 그 다음 생이 있으니까요.

영국은 어떨까요? 영국에게 행복은 대서양을 건너온 수입품입니다. 즉 미국산이라는 뜻이며, 미국산이라는 말은 어리석고, 유치하고, 철이 없다는 뜻이라네요.

 

이렇게 행복은 상황과 나라마다 모습이 다릅니다. 그것은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한가지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삶의 모습은 다양하니까요.

 

이 책 <행복의 지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아이슬란드'입니다.

잔혹한 기후와 고립된 위치로 죽음의 가능성을 포함하지만 죽음에 구애받지 않는 강한 유대감의 나라, 'Komdu soell' (행복하게 오다)와 'Vertu soell' (행복하게 가다)란 근사한 잇삿말을 가졌고, 실패를 메인코스로 생각하는 나라... 멋지더군요.

국왕이 나서서 국민행복지수를 챙기는 부탄보다, 행복은 실패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문화가 더 끌렸던 것은 그들의 유대감이 강해서 그랬던거 같아요.

이렇게, 아이슬란드는 오랫동안 이상향의 나라로 기억됐습니다.

 

요즘 <세계금융위기 이후>를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는 다름 아닌 제가 한동안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아이슬란드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지금 아이슬란드는 빚더미에 앉아 있답니다.

2007년 1월 GDP가 6만 달러가 넘는 유럽의 금융허브였고, 유엔 설문에서 살고 싶은 나라로 꼽히기도 한 '지상의 천국' 아이슬란드가 지금은 크로나 폭등으로 희망의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됐답니다.

한 때 외화대출로 집 사는 게 유행이었으나, 2008년 금융위기로 1달러당 65크로나 정도 하던 환율이 137크로나로 폭등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80%가 사라지고 물가는 치솟고, 실업은 급증하고... 평생 빚을 갚아도 다음 세대에 빚이 이전되는 구조라네요.

 

어쩌다 지상천국 아이슬란드가 이리 됐을까요.

이상향의 나라를 찾는 것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을 이상향으로 만드는 것에 관심있다 해도, 아이슬란드의 불행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에릭 와이너가 말하는 나라마다 다른 행복의 지도에 급변하는 세계 경제를 덧붙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음... 우리 대한민국의 행복의 지도는 어떨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행복 관련 수치는 대부분 나쁘잖아요.

우리 각자가 우리나라의 (개인이 아닌) 행복의 지도를 말한다면, 과연 어떨까 자못 궁금하네요.

 

  

 

 

지상의 천국에서 금융위기로 한순간에 추락한 아이슬란드가 이 책<세계금융위기 이후>의 시작이다.

 

 

읽은 날 2009. 10.  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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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엄마들이 꿈꾸는 덴마크식 교육법
김영희 지음 / 명진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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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거 같아요. <대한민국 엄마들이 꿈꾸는 덴마크식 교육법> 이라니요. 잘못된 이유는, 독자를 엄마로 한정시킨다는 점, 교육 외의 이야기 - 문화.역사.사회 배경 등 기본적인 내용도 제법 알차다는 점에서요.

 

이 책은 이웃을 통해 덴마크의 선행을 알게 되, 덴마크란 나라에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된 책입니다. 1943년 덴마크 사람들이 목숨 걸고 7천명이 넘는 유태인의 스웨덴 망명을 돕고, 전쟁이 끝나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들의 집과 재산을 지켜주었다는 내용은 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덴마크가 정말 그랬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그 저력은 무엇일까.... 알고 싶었습니다.

이 책 <덴마크식 교육법>을 읽으면 답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어요. 평범한(?) 좋은 부모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인지 완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덴마크는 분명 연대, 평등, 국민적 합의, 유연성이 뛰어난 나라였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직업에 따른 사회적 신분.보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인거 같아요.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평등한 사회다 보니 부모와 아이들은 굳이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경쟁을 위한 교육도 필요없는 것이지요.

 

엄마들이 꿈꾸는 교육법이라.... 일단, 아이들이 경쟁없이 충분히 잘 놀거란 예상은 했습니다만, 숲 속 유치원은 뜻 밖이었어요.

숲 속 유치원은 코펜하겐 부모에게 인기가 높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놔야 겨우 자리가 날까 말까라고 하는데요, 심지어 어떤 숲 속 유치원은 유치원 건물도 없이 매일 아침 숲 속 입구에서 만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오후에 해산하는 곳도 있다 합니다.

 

시험없고, 서열없고, 공부를 잘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부르기보다 공부 잘하는 편이라 부르고, 담임이 9년간 바뀌지 않는 거... 음, 뭐, 그렇군요.

그러나, 애프터 스쿨, 평민대학 부분에선 입이 떡 벌어집니다.

애프터 스쿨은 8~10학년 과정의 학생들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기숙학교로, 보통 1년 과정입니다. 청소년기에 다다른 학생들이 반항심이 생길 만도 하기 때문에 1년 여 동안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이 기간을 특히 학부모들이 더욱 반기는 이유는 애프터스쿨이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교육과정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미래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 다음 평민대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사이, 4개월에서 1년 과정의 기숙학교입니다. 대학 입학 전 혹은 사회에 나온 후라도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된다네요. 애프터스쿨과 평민대학은 모두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곳,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런 교육이 가능하게 된 덴마크 사회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열의식이 존재했는데, 1968년 학생 혁명이 분기점이 되어 평등의식이 급격히 확산되었다네요.

이보다 앞서 오늘날의 덴마크를 있게 해준 그룬트비 목사 영향이 더 클거 같은데요, 사실 19세기 무렵, 덴마크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와 벌인 전쟁에서 패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 북부의 곡창지대였던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지역들마저 프러시아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덴마크에 남겨진 땅은 북해와 발트 해에 접한 돌과 잡초만이 무성한 그야말로 황무지들 뿐이었죠. 경제는 파탄났고 사회는 불안했으며 국민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룬트비는 그런 덴마크인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삼애 정신을 기본으로 '국민의식 개혁운동'과 '농촌부흥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특히 그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기숙교육학교를 설립할 것을 주장했어요.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땅을 개척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데 성공하기 시작했고, 이런 모습을 보고 덴마크 국민들은 비로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실제로 덴마크의 근대화와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합니다.

 

이 두 가지만으로 덴마크의 연대.평등정신을 설명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앞으로 차차 다양한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최고 수입의 60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낸답니다. 높은 세금에 투덜거리면서도 꼬박꼬박 정확히 세금을 내는 이유는, 세금이 복지 혜택이 되어 투명하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이 너무 높다, 내기 싫다' 말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자기들 개개인이 복지국가를 지탱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장관이나 시장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해서 특별할 것도 없는 나라, 뛰어난 평등과 연대의식의 나라, 그 속에서 평등과 연대정신을 배우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커서 그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하는, 교육과 사회의 선순환 고리.... 정말 미치도록 부럽더군요.

 

우리 사회는 은근히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이란 말로 서열을 숨기잖아요.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뿌리깊은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 때문에 부모와 아이들은 기를 쓰고 자녀교육에 올인하구요. 진정한 교육이 힘든 것은 진정한 사회의 변화가 힘들어서 일거에요.

 

이 책은 저자가 덴마크에서 3년여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씌여진 것입니다. 분명 덴마크에도 단점과 문제점이 있을테지만, 그들이 가진 뛰어난 장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에요. 전, 단숨에 보쌈이라도 해서 훔쳐오고 싶지만, 가당치 않을테지요.

 

앞으로 덴마크와 북유럽에 대해 많이 알아가려 합니다.

사실, 자신이나 우리 나라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세계로의 탐방은 현재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리라 생각해요.

그것이 우리가 알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나쁜 꿈(경쟁위주의 교육, 차별사회)에서 깨어나게 해 줄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읽은 날  2013. 2. 2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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