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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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던 중학교가 대학교 근처에 있었습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여중생은 대학생들의 데모가 원망스럽기만 했지요. 교실 창문을 닫아도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콧물에 섞여, 공부도 안하는 한심한 대학생이란 이미지를 만들곤 했어요.

그 당시 대학생들이 왜 데모를 할까란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었네요.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서 저는 그저 착한 국민으로 육성되고 있었던거 같습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모범국민으로 자라던 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고쳐 쓴 한국근대사>를 읽은 뒤였습니다. 교과서가 알려주는 세상과 역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책을 통해 접한 지식은 놀라움 자체였고 새로운 인식의 창이었어요.

사람의 생각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목숨을 겨누는 창 앞이라 해도 겉으로 바뀌는 척 할 수 있어도 감출 수 있는 속내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과 진정성 앞에선 다르겠지요. 이래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문명 이래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나봅니다.

 

제가 태어나던 그 즈음부터 리영희 선생께서는 <전환시대의 논리 / 1974년> <우상과 이성 / 1977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1994년> 등의 책을 통해 억압과 부조리에 맞선 펜의 힘을 몸소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선생의 책을 보며, 새로운 진실에 눈을 뜨고 영감을 얻어 후학과 제자로서 사회의 커다란 기둥이 되어 갔지요. 비록 한쪽에선 저처럼 진실을 모른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0년 12월 5일 리영희 선생의 부고를 듣고난 한참 후에야 이 책 <대화 리영희>를 만났습니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답게 리영희 선생 개인의 회고담과 사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습니다.

 

같은 환경, 같은 역사적 체험과 인간적 삶을 경험해도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반응 양식은 천차만별이잖아요. 이게 다 개인의 주체적 의식의 문제라 해도, 가끔 궁금해요. 그 주체적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고 달라지는지 말이에요. 리영희 선생과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해서 모두 다 같이 그런 분이 되지 않는 이유가 말입니다.

완벽한 설명이 되지 않지만, 리영희 선생의 유년시절 두 명의 인물을 그 분의 원초적 잠재의식에 큰 영향을 준 거 같습니다. 바로 외삼촌과 문학빈이라는 머슴이지요.

 

리영희의 외삼촌은 정치.사상적 변혁을 겪은 뒤, 매제(리영희의 아버지)의 재산을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평생을 두고 오빠를 원망한 어머니 곁에서, 리영희 선생은 민족이 필요로 했던 혁명적인 지식인으로서 외삼촌을 기억하며 성장했다는군요.

 

또 한 명의 인물은 일자무식이었던 문학빈이란 머슴입니다. 그는 혁명가로 변신해 지난 날 상전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외할아버지를 두 번이나 협박해 독립자금을 뜯어가기도 하고, 결국은 총을 쏴 죽이기도 했다는 군요.

리영희 선생은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별개로 무지렁이 머슴 출신으로, 혁명가이자 독립투사의 계급적 각성과 사회혁명을 몸으로 실천했던 분으로 문학빈을 기억하시더군요.

(문학빈은 이덕일의 <근대를 말하다>에도 등장하던데요, 책을 통해 알게된 인물이 다른 책에도 등장하는 걸 보는 것도 독서의 묘미인 거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우리의 근현대사는 비록 모든 전진이 힘겹고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더디고 불만족스러웠다 해도, 미국이라는 음흉한 외부세력의 의도와 압력을 조금씩이나마 무력화해 나간 남한 국민의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가령, 미국정부의 '일본중심 아시아 후견체제' 수립에 암적인 존재였기에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고, 그 대안으로 철저한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독재 군부정권으로 박정희를 점 찍은 후 1961년 5월 16일 그에게 쿠테타 승인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지요.

충실한 대리인이었던 박정희가 쓸모없게 되자 미국은 또 다른 대체세력으로 전두환을 선택했습니다. 전두환이 광주시민의 민주화운동을 잔인무도하게 탱크로 짓눌러버린 행위는 미국이 배후에서 모두 조종했구요.

이 모든 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정부가 애당초 해방 후 미국의 국가 이익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긴 세월에 걸쳐 한국국민 대중의 정치적 각성과 주권의식 고양으로 점차 미국의 농락과 공작이 감소되고 있는 형편이니, 그나마 감사를 해야겠지요.

 

어떤 민족의 역사에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자기절제의 현명함으로 움직여진 실례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지성인의 바람이나 요구와 전혀 무관하게 걸어가는 집단적 행동의 특징이지요.

게다가 어떤 이론도 형성됐을 때는 현실을 반영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데올로기화되면 현실과 객관적 진실로부터 유리되니,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정말 그게 사실이어도 의식있는 산 지식을 위해 생애를 바친 고 리영희 선생의 삶 앞에서는 고개가 절로 수그려집니다.

비록 변치 않고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있어주실 리영희 선생이 계시지는 않지만, 선생의 사상은 계속 전해지고 발전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르는 이는 독서와 지식의 확장을 통해, 그리고 선생의 말씀대로 대중은 속일 수가 없고 역사적 평가는 한 개인의 인생보다 길게 남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입니다.

 

 

 

읽은 날 2011. 6. 2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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