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가모브 - 창세의 비밀을 알아낸 물리학자
조지 가모브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조지 가모브,    원제 : My world line>

 

많은 위시리스트에서 '조지 가모브'가 눈에 들어온 건 이름이 주는 울림과 270페이지 분량 덕이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처럼 649p, 두껍고 쉬 넘어가지 않는 책을

읽은 다음에는 가독성이 편한 책을 찾기 마련이다.

 

이 책 <조지 가모브>의 원제는 My world line이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것은 상대론적인 4차원 시공연속체를 지칭한다. 이 4차원

시공 속에서는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각기 하나의 점으로 표시된다.

이러한 점 또는 사상의 열이 하나의 세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점 하나, 사상 하나...이런 것이 모여 하나의 세계선을 형성한다....아름답고 근사하다. 왠지 나

또한 세계선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블로그 글을 올리는 작은 행위가 커다란 세계선을

형성한다. 그저 보다 아름다운 세계선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지루해 할까봐 '전기적으로 상당히 중요할

지' 모르는 많은 일들을 누락했다는 점이다.

"이 책에 포함된 이야기의 대부분은 저녁식사가 끝난 후 벽난로의 이글거리는 불꽃 앞에서 친한

친구들에게 들려줄 법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이야기하는 사람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거운

그런 종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말대로 즐겁고 유쾌하다.

 

과학자답지 않게 그는 가벼운 스케치도 잘 그린다. 데생에 관해 환상을 가지게 된 건 보통의

<여행의 기술>덕인데,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떄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 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 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간혹 보이는 그의 스케치와 '(인공 장애물) x (자연 장애물) = (상수) 라는 공식'을 만든 그의

얘기는, 사물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관찰력과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가 수상술(手相術) 얘기를 할 떄는 깜짝 놀랐다. 언제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내 손금이

그의 손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양손의 옆 쪽에 나 있는 두 개의 손금은 대개는 끝이 한데 합쳐지지만 내 경우에는 끝까지

벌어져 있다. (한쪽 손에서 이런 손금이 나타나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양쪽 손이 모두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쩜! 양 손 모두 그런 게 나랑 똑같다!

행여, 내가 모르는 근사한 얘기가 나올까 엄청 기대를 했건만, 그와 그의 부인의 손금이 내 것과

같다는 것만 확인해 적쟎이 실망했다. 그래도, 멋진 울림을 주는 글을 쓴 과학자의 손금과 같다니,

뭐 나쁘진 않다.

 

아마도 이 책의 장점은 역자가 말한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싶다.

"스타니슬라브 울람은 그의 과학 활동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로 아마추어리즘을 들었다.

가모브는 이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과학이 아마추어리즘이었고, 그가 살았던 시대가 아마추어리즘

이 통용될 수 있는 시대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유난히 장학금 얘기가 많이 나온다. 덴마크 왕립과학아카데미의 칼스버그 장학금,

록펠러 장학금, 구겐하임 장학금...그가 받은, 받을 뻔한 장학금인데, 이런 장학금 덕에

아마추어리즘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것이 철저히 수익 vs 비용인 지금과 달리 아마추어리즘이 통용됐던 시대에 살았던 그의

자서전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 전설이 된 마리퀴리 부인이 가모브를 위해 "내일 당장 제가 랑쥬반에게 이야기를

해드리겠어요!" 하기도 하고, 격주 금요일마다 아인슈타인을 만나기도 했던 가모브.

어쩜 아마추어리즘이 통용되던 시대는 이미 전설이 된건지도 모르겠다.

 

조지 가모브 (조지 가모프) : 1904~1968 러시아 태생의 미국 이론물리학자. 물리.우주.생물분야에 걸쳐

연구했으며 대표적인 업적은 원자의 방사성 붕괴에 대한 설명과 우주의 기초로 전개된 은하의 형성 과정에 대한

선구적인 업적을 들 수 있다. (최근에 우주 모든 곳에 널리 퍼져 있는 복사[우주배경복사]의 발견, 그리고 그

복사의 온도가 절대온도 약 3도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1948년에 가모브가 약 1백억 년 전에 일어난 빅뱅의

잔존물에 대해 했던 예견을 확인해 주고 있다.) 또한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DNA의 분자 구조를 발견한

후, 가모브는 네 종류의 기호로 이루어진 세 가지 문자 부호가 생명 과정의 전개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제창했다.

 

 

 

읽은 날 2012. 2. 2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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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새끼입니다 -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 정철의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개새끼입니다,  정철>

 

"엄마, 이렇게 욕 해도 돼?"

"으응, '나는' 이래잖아. 자기한테 욕하는 건데 뭘." (아. 정말 그럴까?)

 

얼마 전 이웃블로그 (바람처럼 자유롭게)에서 이 책 <나는 개새끼입니다>을 알게 됐다. 1년에

3권 읽을까 말까한 남편 손에 쥐어줬는데, 재미있게 읽고 있다. 남편에게 책 읽으라고 주는

일도, 받아서 읽는 일도 매우 드물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블로그 뇌진탕(http://cwjccwjc.blog)의 주인장인 정철의 책이다.

"요즘 제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블로그에도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 한달 남았습니다.

 블로그관리 엉망일지라도 너그럽게 용서 바랍니다."

 

라고 말하는 그, 서둘러 리뷰 올리는 나.

그렇다. 이 책과 이 리뷰의 정체성이다. 한달 남았다.

 

그는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답게 신선하고 짧은 문장으로 우리 가슴을 노크한다.

촌철살인의 문장. 몇 개 소개한다.

 

다람쥐

미안하네.

요즘엔 자네까지 미워 보이네.

(한 나라 대통령의 별명이 쥐라는 사실은 슬프다 못해 화나는 일입니다.)

 

이완용

나는 조국을 팔아먹었을지언정 백성들의 건강을 팔아먹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나를 재평가해 달라.

 

낙하산

줄 타고 내려온 우리를 비난하지 마라.

 

우리는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중력의 법칙에 충실했을 뿐이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너희들이다.

감히 중력의 법칙에 맞서려고

한 계단 한 계단 착실히 밝고 올라오는 너희들이다.

 

형님

형님으로 살았다.

이제 형을 살아야 한다.

(2011.12. 이상득의원 보좌관 구속)

 

그는, 나는 왜 서둘러 '한달'이라 하는 걸까?

 

코끼리

풋!

 

이름이 재미있어.
코끼리라니.

 

우리끼리
너희끼리
이런 데 쓰는 끼리를 코에 붙였어.

 

코는 코끼리 살라는 뜻인가 봐.

 

입이 먹는 것 부러워하지 말고.
눈이 보는 것 궁금해하지 말고.
손이 쥐는 것 만지려하지 말고.

 

코는 코끼리만 살라는 뜻.
그냥 냄새만 맡고 살라는 뜻.

 

세상은 끼리끼리 사는 거니까.
99%가 감히 1%를 넘보면 안 되니까.

 

그런데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그렇다면 네 몸집을 내려다 봐.
그 거대한 몸집을.

 

너흰 99%야.

 

 

정철은 우리에게, 또는 저~기 우리에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문어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길 팀을 족집게처럼 집어낸

점쟁이 문어에게 대한민국이 물었다.

 

대한민국의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

제발 자네가 점을 좀 쳐주게.

옐로카드와 레드카드 수없이 받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 대통령 또 나올까봐

아슬아슬 조마조마 아주 미치겠네.

어때? 실력발휘 한번 해주지 않겠나?

 

나를 띄엄띄엄 봤군.

나는 사지선다형은 못 푼다네.

답을 딱 두 개로 압축해서 가져오게.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시옷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소원성취하세요.

 

모두가 시옷으로 시작하는 한마디입니다. 이렇게 시옷으로 시작하는 말에선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납니다. 사람도 시옷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人이 시옷을 닮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

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이렇게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 셋을 한데 모아놓은 세상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너와 나, 당신, 남자, 여자, 각자가 그리는 '사람 사는 세상'은 다를지 모른다.

역방향만 아니라면, '사람 사는 세상' 같은 방향이라면 우리,

내리는 곳 따지지 말고 두 말 없이 합승하자.

우리가 외롭지 않게, 우리가 무섭지 않게.

 

정말, 그래보자.

음.....그러실, 거죠?

 

 

읽은 날  2012.3.1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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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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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1,  리처드 파인만>

 

얼마전 조지 가모브의 <조지 가모브, 원제: My world line>를 읽었다. 조지 가모브는 1904~1968

활동한 과학자이다. 독자에 대한 배려 넘치는 자서전을 읽다보니, 리처드 파인만의 자서전이

생각났다.

비슷한 시기 (1918~1988년)에 활동했다는 점, 아인슈타인 등 전설이 된 과학자와 함께 했다는

점,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참가한 점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상당히 다른 자서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조지 가모브>가 기억하고 싶은 자서전이라면, 파인만은 기억나는 것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서전이다. My world line - 조지 가모브를 위해 리처드 파인만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를 다시 꺼내 읽었다.

 

책 표지, 그의 웃는 얼굴이 환하다. 책 추천한 이의 표현대로

"수수께끼 해결에 대한 악착 같은 의지, 남을 약올리는 장난기, 겉치레와 위선에 대한 불 같은 증오,

자기를 앞서려는 사람을 앞서는 재주 등과 같은 그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은 엉뚱하고..."

란 표현이 잘 맞는 표정이다.

 

그는 열두어 살 때 모든 것의 시작인 실험실을 가졌는데, 그 실험실은 커다란 포장용 나무 상자였다.

그 상자 안에서 전압이 달라지는 실험을 하고, 단순한 도난 경보기도 발명하고, 이어폰을 확성기와

라디오의 증폭기에 연결해 家內방송을 하는 등, 모든 것이 시작됐다. 고작 커다란 포장용 나무 상자인

실험실이지만 열두어살 꼬마 아이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과학자가 되는, 그 위대한 시작이 됐던

것이다. 어린 시절 각자만의 소중한 아지트, 몰입할 꺼리, 그러고 보면 꽤나 중요하다.

 

대공황 시절, 그는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는 꼬마'로 유명(대공황으로 수리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수리공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해지는만큼 과학자의 소질 - 끈기와 문제를 수수께끼 놀이로

보는 것 - 을 키워나갔다.

이론이 아닌 실제 생활 속 과학이라서인지 기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다. 가령,


"'운형자의 곡선은 어떤 방향으로 돌려도 가장 아랫부분의 접선이 수평이 되게 만들어져 있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운형자를 들고 이러저리 돌리면서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가장 낮은 점에 수평으로 대어 봐서 접선이 수평임을 확인했다. 미적분 시간에 모든 곡선이

최소점(가장 낮은 점)에서의 도함수(접선)가 0(수평)이라는 것을 '배워' 놓고도 모두들 이 '발견'에

흥분했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해함으로써 배우는 것 같지 않다."

 

이렇게 외치는 파인만을 보니 <생각의 탄생>이 생각나기도 했다.

본질을 이해하며 기존 관념대로 생각하지 않는 그는, 친구의 방문을 몰래 떼어 놓기도 하고,

작은 개미 한 마리도 세심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언어장애우들 댄스 파티에 홀로 초청받아

가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아인슈타인 이름만 익숙했던 3여년전과 달리 화이트 헤드, 폰 노이만, 닐스 보어 이름이 눈에 띄어

기쁘기도 했지만, 왜 기억하는 것도 없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지 재차 확인하게 됐다.


"위대한 수학자 존 폰 노이만과 함께 일요일마다 산책을 같이 했다. 우리는 협곡을 거닐었는데,

베테와 밥 바커도 자주 같이 갔다. 이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폰 노이만은 나에게 흥미로운

사상을 제공했다. 그것은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폰 노이만의 충고로 아주 강한 사회적 무책임감을 가졌다. 이런 자세를 가지니 전보다

훨씬 행복했다. 그러므로 나에게 행동하는 무책임의 씨를 뿌린 사람은 바로 폰 노이만이다!"

 

비록 닐스 보어가 '예, 맞습니다. 보어 박사님 이라고밖에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르다'한

파인만이라 하더라도,

'아주 강한 사회적 무책임감을 가졌음'을, 그런 자세로 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말하는 리처드 파인만.

나는 그가 별로다.

그가 농담을 잘 한다 해도 그것이 무책임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파인만씨, 농담 잘 들었어요! 라는 말 외에는.

 

  

다시 읽은 날   2012.   3.  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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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 혼자가 아니어서 행복한 우리 이웃들의 인생이야기, 개정판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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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은행맨, 증권맨, 보험맨, 이 중에서 증권맨이 가장 싫다.

그들은 쉽게 들뜬다. 시장의 과욕을 수익률로 여긴다. 손실은 얘기 안 하고 수익난 것만 이야기 한다. 손실로 가망이 없어도 소위 '한 방!'에 바늘 눈꼽만큼의 희망을 억지로 연장한다.

주식시장이 자본주의의 화려한 꽃이라지만, 그들은 화려하게 보이는 꽃만 쫓는 부나방이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녹는 이카루스 날개를 가졌다. 그들은 개미다. 힘없는 개미다. 태양과 거리를 조절하지 못하면 날개가 녹거나, 조절 하더라도 힘이 없어 당한다.

간혹 여왕개미가 되는 경우, 매우 아주 엄청 드물지만 있긴 하다. 그래서 그들은 욕망을 멈추질 못한다.

시장의 잘못 있다. 그러나 투자보다 투기를 하는 이들, 악순환이다.

 

주식시장, 직접금융의 메카이다. 정보가 공개되고 누구나 주주가 될 수 있고 기업은 자금을 직접 조달한다. 채권자 되기 보다 주인 되는 시장이다.

화려한 꽃 주식시장에 외국인, 기관, 개인이 모여 든다. 외국인과 기관은 냉철한 머리와 막강한 자금, 눈코입 없는 네모반듯 얼굴을 가졌다. 네모반듯 강철 얼굴과 심장을 가졌다.

개인은 언제나 포커페이스에 약하다. 욕망, 탐욕의 얼굴과 공포의 심장이 있음을 상대방에게 간과당한다.

시장은 거기 있을 뿐이나 그 시장에 뛰어든 수 많은 욕망과 공포를 가진 그들.

그들로 시장은 출렁거리고 더 욕망하게 되고 더 공포를 느끼게 된다.

 

욕망과 공포로 출렁대는 시장, 견디기 어려운 고충과 힘듬을 해소해야 한다.

술과 기이한 그들만의 문화로. 때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여러 유형들.

'마바라'라 불리는 정말 증권맨들. 다르고 틀리다 생각한다. 다르고 틀려, 이해하기 싫어해 한다.

 

이래서 '박경철의 책<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지 않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런 일도 있지,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니고, 그렇지만 어처구니 없다.

선입견, 무섭다.

무서운 선입견이 깨지게 한 그의 글이다.

 

"그때부터 나는 의료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비슷한 일이 몇번 반복되고, 그때마다 의사로서의 소신과 제도에 복종해야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규범 사이에서 일종의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결국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를 시작한 지 1년만에 스스로 옷을 벗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당장 최소한 일주일에 한 명씩 내 환자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던 끔찍한 상황이 없어졌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피를 말리는 상황도 없다. 또 피고름이 묻은 속옷을 버리고 매일 속옷을 사 입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상황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시골의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주식투자 전문가이자, 경북 안동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박경철이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병원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따뜻하고 놀라운, 크고 작은 이야기를 엮었는데, 그 중 정신이 아픈 할머니가 손자를..... 가장 충격 받았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관통하고 있는 그의 질문, 큰 울림이 되어 가슴 속에서 메아치 친다.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표정이 심각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병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찬 가을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웃음을 잃지않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근사한 카페에서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표정들이 대개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 골목에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돼지 막창을 굽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
이것도 분명 인간에게 주어진 정신적 엔트로피의 문제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열역학법칙에 따르면, 폐쇄계에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면 결국 그만큼 쓰레기가 쌓이므로 외부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결국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은 어떨까.  소위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들의 포로가 되어 ‘고상한 척’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신에너지의 고갈로 뇌 속에 찌꺼기만 쌓여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솔직하게 노동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성적’이라는 이름의 ‘어색한 노동량’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으로써 뇌 속 기쁨의 센서가 낮게 세팅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행복의 총량은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일까."

 

근사한 카페, 코냑, 이성(주식투자의 직관 포함해)으로 해결해야 할 대단하고 복잡한 문제들의 포로, 정신에너지 고갈.

행복의 총량을 따져봐야 함은 비단 그들만의 일은 아닐 터.

오늘도 하루종일 PC 앞에 앉아 머리와 눈으로만 일하며 '솔직하게 노동하고 사는 사람들'을 소망해 본다.

평균보다 많은 이성적인 것과 평균보다 많은 고상한 척.

아, 이.런.

 

 

읽은 날   2010. 4. 28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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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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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자아실현'과 '그냥'사이 어디쯤 우리는 각자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다. 박카스의 청춘에서 우루사의 직장인을 거쳐 케토톱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열정적인 존재가 되곤 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라', '네 일에 열정을 쏟아 부어라', '쫀쫀하게 돈 따위에 연연하지 마라',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우리는 꿈을 꾼다. 스스로 꾸기도 하고 강요받기도 한다. 그 꿈 너머에 덫이 있어 우리의 꿈을 인질삼아 우리 노동을 공짜와 다름없이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있음을 알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남이 뭐라 하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네 삶을 값지게 살라 한다. 우리 부모는 열심히 일만 하는 개미세대였다면 우리세대는 베짱이가 시대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여기에 베짱이의 역설이 있다. 부지런하거나 재능이 넘쳐 흐르지 않으면 베짱이는 베짱이 대우도 못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베짱이는 개미보다 더 지독하게 일해야 한다. 이것이 자아실현이다.

 

TV각종 오디션 프로에 멘토가 넘쳐 난다. 멘토는 그들이 가진 힘으로 위로를 멘티에게 건넨다. 멘티는 여전히 예의 긍정으로 가능성을 꿈꾸며 삶이 가능한 공간으로 상상한다.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다.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좌절했기 때문이다', '네가 어리석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멘토는 멘티의 힘인 반면, 사회를 가리는 판타지다.

 

몇년 전 등장한 '긍정 산업'이나 개신교 일각에서 몰아 붙이는 '긍정 교리'가 넘쳐 난다. 긍정의 힘, 분명 있고 힘 또한 세다. 그러나 긍정의 힘으로 부정되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 불평하지 말고 네 안에서 찾으라, 자신의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마침내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사회는 '보호'되고  대신 사.람.이 폭로된다.

 

카이스트 사태 - 징벌적 장학금이 있다. 평균에 가까운 학점. 그러나 이 '평균'은 '중간은 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균은 곧 탈락이다. 그리고 탈락은 징벌로 이어진다. 패자에게는 일말의 기회가 없는, 아니 기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에게 모독과 치욕감을 준다.

열심히 살아왔고 살던 이에게 사회는 뿌듯함 대신 굴욕감을 준다. 나를 보호해 주리라 여겼던 사회는 오히려 나를 배제하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서점가에 자기계발서가 인기다. "이게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문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네 문제이니 네가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위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한 친구는 이것이 '뽕'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 처음 책을 사 읽을 때는 그대로 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대로 할 수도 없고 그대로 해도 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면 다시 마약을 찾듯이 다른 자기계발서를 찾게 되고 결국 책장 가득히 자기계발서만 채우게 된다."

 

저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몰입, 열정, 변화...숱하게 들어온 얘기다. 그 단어의 매력에 대해 알지만, 숨어있는 꼭두각시 인형 조종자가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다.

자살로 내몰려진 학생들, 말하지 못하는 고통으로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겪는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호소할 수 없는 사람은 상처 받지 않은 듯 숨기며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같은 학생들에게조차도 묻혀 버린다.

어쩜, 지금 대학생들은 부모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사는 동네 등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위치가 정해져 동시대인으로 체감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장례식 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 학생들의 하소연을 듣다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이 삶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노무현의 죽음에서 이들이 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꼬라지'였다.  지금 여기 살아가는 우리들의 궁상맞고, 망가지고, 팍팍하고, 초라하고, 강퍅한 모습을 슬퍼했다. 우리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비극을 보았다."

 

우리는 개미처럼 살자고 버는데 벌다 죽을 지경이거나, 베짱이처럼 가다가는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다 굶어죽을 지경이다. 그저 소소하게 개짱이처럼 살아갈 있기를 바랐을 뿐인데, 정말 어쩜 우리는 그의 장례식 우리의 비극을 것일지도 모른다.

가진 없이 태어나 주먹으로 정당하게,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을 뿐인데 결국...

우리가 알던 삶은 끝났다.

 

우리가 알던 , 우리가 꿈꿔 왔던 삶이 끝났음을 우리도 안다. 그의 장례식날 우리는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은...희망을 말하지만 냉소한다. 그래서 대안이 뭐냐고. 어쩌자는 거냐고. 얘기 한번 해보라고. 들어, 보겠다고.

머리를 뒤로 빼고 팔짱 낀채 싸늘하게 말한다. 그래, 어쩌자고!

 

" 말은 정말 대안을 찾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는 말인지에 대해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상당히 공격적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수동적인 말이다. 대안이 자기 손에 구체적으로 주어질 경우에만 자신은 움직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는 자기가 나서서 대안을 생산하고 실천해보겠다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나는 요즘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심을 품게 되는 다른 이유를 하나 발견했다. 우리 삶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꼼꼼하게 자기감정을 이입하며 알아보고 살펴보려는 태도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서는 발견할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의 저자는 말한다. 대안을 찾기보다감하자고. 동시대인임을 알아가자고.

경제가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경고에 대해 '누가 그걸 모르나요?' 라고 어깨 한번 으쓱하며 대꾸하지 말자고. 세상을 향해 짱돌을 던지는 사람들만이 사회에 대해 증언할 있는 아니다. 우리 모두 김진숙 지도위원처럼 투쟁할 없다. 비록 삶은 비루하여 세상과 맞설 용기는 없다 하더라도 용기를 사람들에게 의리를 저버리지 말자.

그리고 권력에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무력할 밖에 없었는가를 드러낼 있다.

 

"‘사마귀 유치원 우리들 모두가 불쌍해졌다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대신 시대를 싸늘하게 풍자한다. 그래서 공감은 한층 격이 높다. 사람을 옹호하고 사회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감은 시대를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미디어 이야기나 정치적인 현상을 보고 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공감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삶에서는 별로 공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나뿐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을 느끼자. 그것을 느꼈을 세상과 부딪칠 있는 용기를 있다. 쫄지 않을 있다.

공감, 동감. 적선을 하는 쪽이 동감이고, 거지와 자신 사이에 공통의 운명 같은 것을 직감하고 공포를 느껴 외면할 수도 있는 쪽이 공감이다.

'시대의 어둠' 보는 동시대인이 되자. 동료 (시대의 어둠을 보았기에 운명까지 함께할 있는 사람) 되지 못할지언정 공감, 하자.

 

아무리 세상이 망한다 하더라도 내 옆에 누군가가 나와 함께 망해가는 세상을 견뎌내고 있다면 얼마든지 신날 수 있다. 내 삶을 응원해주는 동료, 너의 삶을 공감해주는 나.

 

우리 삶을 바꾸려 하지 말자. 다만 우리 삶을 옹호하자. 무엇보다 비참하지만 이 비참함을 같이 껴안을 동료가 있다면 삶은 위대하다. 아니, 삶은 끈질기기에 위대한 것임을! 이 삶의 끈질김에 충실하자.

 

한진중공업 - 김진숙 위원과 희망버스

 

※ 1577-6406은 대리운전 전화번호, 이 번호를 이용하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후원할 수 있다.

 

 

읽은 2012. 1. 26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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