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 - 자립·공존·연대를 위한 실험
장상미 지음 / 슬로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번역하신 분의 책이라서 관심이 갔다. 비정부기관에서 일하시면서 경력을 쌓다가 사귀던 파트너와 같이 살게 되고, 두분이서 공간을 빌려 자신들의 철학대로 운영해보는 일을 한다. 

부동산 구하기, 꾸미기, 누군가와 협업하기 등 삶에서 누구나 마주치는 일이지만 이 분의 경험이 특별한 것은 삶의 태도에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해보는 것. 좋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이처럼 가치를 따지지 않고 환대하는 공동체를 만날 때 비로소 사람으로, 도덕적 주체로 존재할 수 있다.

저자는, 출산과 양육이 개인의 선택이자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양육자 특히 여성의 삶에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독립적 삶을 산다는 것, 그러니까 자립이란 단지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혼자만의 방에 파묻힌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전체주의와 폭력의 문제를 사유했던 20세기 사상가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세 가지 근본 활동이 있는데, 근대에 접어들며 작업의 지위가 부쩍 높아졌다. 작업을 담당하는 주체인 제작인들은 인간을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도구와 기계를 만들어냈다. 그들이 만든 도구와 기계는 분업을 통해 생산을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높아진 생산성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기는커녕 더 많은 노동으로 밀어 넣었다. 노동의 결과는 오로지 돈으로 환산되며,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소비뿐이다. 결국,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이 소비하는 것만이 좋은 삶의 모델이 된다.

클라이넨버그는 1인 가구 급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노인과 약자들의 사회적 고립,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의 고립, 혼자 살면 아이가 없고 불행하고 외로울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진짜 모르겠다. 2022년 코로나가 이제 좀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전쟁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건지, 방지 할 수는 없는지 알고 싶었다.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말로이고 이것으로 타파해 나갈거라고 굳게 믿는 지도자가 있다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은 발악이라도 해봐야겠지. 무엇보다 이 작가의 사상을 구성하는 책 목록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


밀그램은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규칙을 놀랍도록 잘 받아들인다는 걸 파악했다. 새로운 권위자로부터 그렇게 하라고 지시받기만 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놀라울 만큼 기꺼이 타인들을 해하고 죽일 용의가 있었다. 밀그램은 이렇게 기억했다. <나는 너무도 많은 복종을 목격했기에 독일까지 가서 실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1990년 선거 이후 수립된 러시아 과두 체제는 지금도 계속 작동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장려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정치인에게 돈을 주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갑부들에게 다른 시민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발언권이 있으며, 따라서 사실상 투표권도 더 많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가게에 <유대인>이라고 쓴 독일인들은 실제로 유대인의 소멸 과정에 참여한 것이다. 멀뚱히 서서 지켜보기만 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표시를 도시 풍경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이미 끔찍한 미래와 타협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Post-truth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이 낱말을 올해의 낱말로 선정한 바 있다.

파시스트들은 일상생활의 작은 진실들을 경멸했고, 새로운 종교처럼 울려 퍼지는 구호들을 사랑했으며, 역사나 비판적 언론보다 창조적 신화를 더 좋아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행동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질문을 던진다. 냉소주의는 우리를 세상 물정에 밝고 유연한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제는 조롱이 주류이자 손쉬운 일이 되었고, 실제 언론은 불안하고 고된 일이 되었다. 그러니 현실의 일과 관련하여 적절한 기사를 직접 써보라.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 제공자와 관계를 유지하고, 기록을 찾아보고, 모든 것을 확인하고, 원고를 쓰고 고쳐라. 모든 것을 철저히 빠듯한 일정으로 해보라. 이런 일을 하는게 마음에 든다면, 블로그를 만들어 보라. 동시에 생계를 위해 그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라. 기자는 완벽하지 않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조금도 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언론 윤리를 고수하는 자들의 글은 그렇지 않은 자들의 글과 질적으로 다르다.

제국의회 화재 사건이 독재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한순간의 충격이 영원한 복종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본능적인 공포와 슬픔이 제도를 파괴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용기란 두려워하지 않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용기는 테러 경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즉 저항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항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생애 - 정찬 소설집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들이 쓴 문학책은 아예 들쳐보지도 않는다. 의식적으로 여성들이 쓴 책만 골라 읽고 있다. 그러던 중 정찬이란 소설가를 알게 되었다. 정희진 선생님 책에서 몇번 등장하여 눈여겨 보고 있었다. 처음 읽는 정찬의 소설집인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좋았다. 고통과 폭력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단편 소설집이다. 특히 1980년대에 자행된 고문으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설강화니 뭐니 하며 웃기지도 않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이 시국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에 있던 "폭력의 형식"이란 소설도 좋았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겪는 끔찍한 고통은 어디로 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소멸될까요? 고통은 소멸되지 모르지만 고통의 기억은 소멸되지 않아요. 고통의 기억은 몸의 어디엔가 숨어 있어요. 고통에 대한 원한 역시 숨어 있어요. 그 원한이 바깥으로 분출될 때 폭력이 발생하는 거예요. 폭력적 인간이란 고통에 대한 원한을 쉽게 노출하는 인간이에요. 야만적 사회는 고통의 기억을 자극해요. 폭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 P119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인간의 본질을 이기심으로 파악한 데에 있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이기심을 정교하게 조직한 자본가들은 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인간 세계는 언제나 아수라장이었다. 유토피아는 아수라장에서 잉태되는 꿈의 세계였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꿈만 꾸지 않았다. 꿈의 세계를 지상에 세우려 했다. 그는 인간에게 이기심의 기쁨 대신 공동체의 기쁨을 요구했다. 인간에게 그토록 엄격한 도덕을 요구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엄격한 도덕을 견디지 못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타락했고, 타락한 독재는 국가를 거대한 병영으로 만들었다. - P123

나이를 많이 먹어야만 늙은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삶이 어둡고 막막한 바다 위에 희미하게 떠 있는 몇 점의 불빛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늙은이다.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 서른에야 진단받은 임상심리학자의 여성 ADHD 탐구기
신지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중을 너무 못해서 혹시 나도 ADHD인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주의산만하게 굴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하는 내가 ADHD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냥 집중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ADHD를 여자아이에게 진단하지 않아 온 의학의 젠더 편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젠더라는 필터로 세상을 보지 않고 도대체 뭐로 볼수 있는가 싶다. 어디든 남자를 인간으로 간주하고 남자들이 만든 정상성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세상... 알면 알수록 지긋지긋하다. 

사기꾼증후군은 자신의 능력과 성공을 인정하지 못해 늘 남을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불편감과 제 실력이 탄로 날까봐 두려워하는 증상으로 ‘가면현상‘, ‘가면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내가 이렇게 잘될 사람이 아닌데...... 이런 성공을 쥐고 있는게 맞나? 다른 사람들이 내 빛 좋은 개살구에 속고 있는 거야. 언젠가 진짜 실력이 탄로 나는 날에는 내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되겠지. 난 완전 사기꾼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ADHD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이 올바르게 내린 결정이나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확신하지 못한다.

ADHD 진단 기준에 포함된 증상의 주제가 남성의 전통적 성역할과 일치되는 ‘목표지향적‘ 활동이나 ‘성취‘ 등에 취중되어 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성성의 유무가 진단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여성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투의 정치학 도란스 기획 총서 4
정희진 외 지음 / 교양인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젠더 이슈는 겨우 이대남(이라고 쓰고 이십남이라고 읽음)의 삐뚤어진 의식에 맞춰 다뤄지는 이 시대에, 정치할 거면 이 책부터 읽고 시작하자.

...진보 진영 남자들이 남성 연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타자화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라 사계를 꼽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이다. 다소 경박해 보이는 것 자체가 새로운 쿨한 진보의 모습으로 소비되었고, 이를 통해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남성의 세계에서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어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 여성의 세계에서 섹슈얼리티는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만 의미를 지닌다.

"아버지(master)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오드리 로드의 이 말은 삶을 갱신하고 싶은 모든 인간이 처한 조건일 것이다. 금지된 말,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 나를 억압하는 말 속에서 그 말들을 어떻게 부수고 새로운 언어로 말할 것인가. 자기 언어가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이것은 생존의 화두다. 나를 적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말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일상의 고민이다. 여성의 말하기는 긴장과 협상의 연속이다. 많은 경우 모든 지력을 동반해야 하는 감정 노동이다.

여성주의는 누가 남성이고 누가 여성인가를 정하는 권력의 소재를 밝히는 사회 운동이다.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 다툼에서 여성의 피해를 강조하는 사유가 아니다. 흑인과 백인은 대립하는가? 부자와 빈자는 대립하는가? 그렇다면 유토피아일 것이다. 억압과 피억압, 지배와 피지배, 착취와 비착취 구도를 ‘대립‘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표현하는 발상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는 거의 모든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의 몸에 행사해 온 무한 접근권(강간, 낙태, 추행, ‘구애‘......)이 임계점을 넘어서 터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몸에 대한 ‘거리감‘, 즉 인권 의식이 희박하다.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 다르고, 상호 접근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극단적으로 다른 상태에서 이제까지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권력화 해 왔다.

성폭력(gender based violence)은 한 남성의 소유물인 여성을 다른 남성이 훼손한 문제로 간주된다. 성폭력을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가 아니라 남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로 변질시키는 남성 사회의 전략은, 여성을 곤경에 빠뜨리는 젠더 체제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 법정에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관련한 질문 내용은 가해자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위력 행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궁금하지 않다. 대신 피해자의 대응이 의문시될 뿐이다. 피해와 피해 이후의 신문. 약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