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형제애, 부성, 모성 사랑의 어지러운 형태를 정교한 언어로 직조한 소설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형제 안에서 서로 비교하고 비교 당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아주 가까웠던 형제가 점점 커가면서 성격 차이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인도의 복잡했던 역사의 단면을 조금 있다. 형의 미국 유학으로 형제는 더욱 멀어지게 되는데, 형의 미국 생활은 이주민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며, 꼬여가는 삶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형과 같이 이민 인도 여성의 모험, 그리고 여성과 아이의 관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나오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 나무랄데 없이 좋은 책이다!

인도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 소련의 정책, 인도의 반동 정부, 이 모든 게 다 똑같다. 미국의 눈치만 보는 것들이지. 이것들이 우리가 타도해야 할 네 개의 산이다.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의 목적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 이를 위해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려면 의회정치의 실내유희는 끝나야 해.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

수바시는 우다얀을 따라간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직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화가 났다. 자신의 내부에서 늘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넌더리가 났다. 자신이 존재감 없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우다얀의 뜻을 거스른다면 둘은 형제가 아닌 관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엄청난 책이다. 정말로... 조지 오웰의 한국 버전이다. 이 분이 직접 경험한 노동 현장을 기술한 건데, 마지막에는 격정적이 되지만 쭉 이 부조리한 사태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도 외국인 차별을 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반성은, 우리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에 물들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고 미치게 되는지 모든 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가혹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인권 침해 현장을 우리가 더이상 모른척 할 수 있을것인가. 이 책을 써주신 작가님에게 감사드리고, 이런 부조리를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다시 바다를 낭만과 신비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더 이상 하루에 열두 시간씩 통발을 쌓지 않아도 된 후였다.

항구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엇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 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기엔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선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무 문제없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 중 하나는 그렇게 정 많고 친절한 아저씨들이 정작 자기 배 막내의 고충 앞에서는 냉담했다는 거다. 어째서 사람들은 가장 나약한 부류에게 가장 힘든 일을 떠넘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난해진다는 것은 신병 훈련소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도 도무지 불만을 터뜨릴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고시 식당에서 일요일 아침에만 나오는 계란 프라이는 전날 미리 만들어뒀는지 차갑게 식어 마우스 패드로 써도 될 만큼 뻣뻣했다. 국에는 드물지 않게 쇠 수세미 조각들이 빠져 있었다. 고시원장은 전기요금과 화재 위험을 이유로 들어 전열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지만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돈사의 불결함은 돼지의 성장과 비례했다. 비육사는 자돈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내게 명령을 내린다는 걸 깨닿는 순간 몸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밝히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피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꺼릴 만한 일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 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 방식 말이다.

최저임금제가 노동자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한 환상이다. 최저임금은 궁극적으로 고용주들이 이 말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봐라! 뭐가 문제냔 말이냐? 나는 법대로 지불했단 말이다!" 그의 말 뒤에 생략된 문장은 ‘그 돈으로 먹고살건 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이다. 최저임금제란 정부가 고용주에게 발급해주는 연말 정산용 면죄부일 뿐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최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입버릇처럼 "그래도 힘들 땐 한국 사람밖에 없어"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바로 그 힘든 시기, 즉 낮은 보수, 긴 작업 시간,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편리하게 잊어버렸다.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공장일의 단순함에 질려버렸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정신에 모욕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견디기 위해선 계획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정신적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라야 했다. 이런 작업 뒤에야말로 창조적인 문화 생활이 절실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근방에서 문명의 흔적은 도로와 논뿐이었다. 덕분에 이곳 사람들의 여가 생활 역시 술 아니면 TV였다.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너문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탁현 아저씨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에 해고의 문턱까지 갔지만 재길 아저씨는 자신의 광기를 굽히지 않은 덕분에 한자리 꿰찰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야. 반사회주의 국가지. 뭐든지 오너 편에 서라고. 그래야 살아남아." 살아오면서 숱한 충고를 들어왔지만 ‘더 강하게 죄 지으라‘ 이것 말고는 쓸 말한 충고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남자들은 어린 세대의 존경이라는 열차에 무임승차를 해 왔는데 이제 그들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 당연한 권리 행사라도 하듯 식구를 때리고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후임병을 군홧발로 걷어찬 대가를. 피부 빛이 검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한 대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ㅇ로 새 아파트를 사고 자식들을 유학 보낸 대가를. 한 달에 이틀 휴일을 ‘허락‘해주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믿은 대가를. 일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스포츠 채널이나 뒤적거린 대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은 대가를, 자기의 잘난 애새끼들이 아빠 흉내를 내기 시작했을 때 바로잡지 않은 대가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의 20년전에 내신 저작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한국 비평이 전혀 녹슬지 않음을 보여주는 에세이다. 이 분처럼 성실하고 공부하고 올곧게 비판하시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왜 이렇게 사회가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답답하기도 했다. 

방대한 역사적 지식과 여러 문화권의 언어를 습득하여 구사하는 빼어난 문장력은 모든 글에서 빛난다. 이 분이 시각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보는 것은 마치 내 두뇌에 엄청나게 성능 좋은 컴퓨터를 머리에 달고 판단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 인간의 번뇌를 키우고 해탈의 순간을 늦춘다는 거죠

서유럽 내지 북유럽 사회에서 뭔가를 배우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열등감 같은 것을 느끼고는 저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무엇이든 모범적으로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것도 아마 재유럽 러시아인과 한국인의 공통점일 겁니다.

소비 자본주의는 일종의 ‘기생 체제‘입니다. 쉽게 중독에 빠지는 인간의 태생적인 약점에, 자본주의가 기생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 기생충이 불러일으키고 이용하는 중독들은 과연 그 숙주인 인류를 또 무슨 파국으로 이끌어갈까요?

사회의 과제는 구성원이 어릴 때부터 나쁘지 않은 도취의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컨대 독서삼매의 유쾌함을 일찌감치 학교교육에서 보여준다든가, 사랑과 섹스가 마음과 몸에 얼마나 좋은지 일찌감치 성교육 과정에서 가르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학교는 더 이상 사람을 ‘키우지‘ 않습니다. 학교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미래의 노동자에게 기초 교율 등을 가르칠 뿐이죠

열공에 ‘올인‘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은 뭘까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이 토론되는 문제는 ‘열공‘ 밑에 깔려 있는 단선적 신분 상승 열망입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죽도록 ‘노오오력‘하는 것이죠. 이렇게 낮고 높은 서열이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단선적입니다.

한국 사회는 유사 강간인 성 구매에 들일 금전적 여유는 있을 수 있어도, 정상적인 연애나 성생활을 유지할 만한 여유는 결단코 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페미들에 대한 혐오 하나로 자한당(현 국민의힘)에 투표하려는 한국의 젊은 중하위층 남성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들은 ‘xx 달린 사나이‘로서의 특권, 다시 말해 페니스 하나가 여태까지 한국 사회에서 보장해주었던 특권의 잠재적 상실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잘 묘사하셔서 정말로 이 일에 종사하시는 분인 줄 알았다. 에필로그를 읽으니 독일로 워홀을 떠나셨다고 한다.
직업의 세계는 항상 재미있는데 그 중에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운 것 같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형 음식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하게 관찰하여 만들어지는 것인지, 장인 정신이 들어간 멋진 작품인가를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종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가 책임자인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현대판 카프카 성이다. 

고분고분 하면서 나를 자르려고 하는 사람은 계속 피해야 한다. 노동에서 인간의 존엄은 왜 지켜지지 않는걸까? 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 반목하고 미워하고 괴롭게 하면서 살야아 하는가. 

너무 슬프지만 이것이 한국의 자화상이다.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무능하게 만들고 그래서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회사의 의도가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난다는 자신의 말을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듣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까운 사람들 틈에서 너무나 쉽게 갈등을 만들고, 무엇이 미움과 불만을 부풀리는지 아는 영악하고 지능적인 회사의 실체를 비로소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사람을 개 취급 하고 무시하고 병신 만들어서 좋지? 사람을 본척만척하고 유령 취급 하고 여기 있는 너희 다 똑같아.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고. 너희만 가장이야? 나도 가장이야. 왜 너희는 남아야 하고 나는 쫓겨나도 되는데! 밤마다 내가 여기 와서 얼마나 불을 지르고 싶었는지 알아? 그냥 확 불 지르고 다 같이 죽어버리는 건데. 너희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 너희들은 회사보다 더 나빠.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