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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평점 :
“우리는 어떤 시간을 거쳐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긴 시간 인류가 경험한, 선사와 현대를 잇는 본질과 현상을 열린 마음으로 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옛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실제 그들과 같이 호흡해보면 어떨까?” (p. 19)
창비의 인문학 신간 도서인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은 고분벽화와 암각화 연구 권위자인 울산대 전호태 교수의 강의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가 대학 졸업반 전공 강의 혹은 석사 연구 강좌로서 다룬 엄청난 강의들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러기에 상당히 딱딱하고 현학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물론 책의 수준은 높다.) 저자는 아트앤테크놀로지 전공생인 아들 진석 (실제 아들 이름은 혜준이라고 함)을 가상으로 내세워 그의 질문에 대답하고 덧붙여 설명하며, 또 소설 형식으로 친근하게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책의 처음과 끝이다.
이 책의 목차는 매우 세부적이고 섬세하다. 책 말미의 각주는 또 다른 책 한 권을 뽑아낼 정도로 풍성하고, 소개된 참고 자료를 더듬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몹쓸 일본 컬쳐 등의 영향으로 원래 신화나 전설 등에 관심이 조금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내가 아는 수준이 굉장히 얕고 부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정도만 알면 충분했던 내 원시적인 역사 수준은, 구석기 시대의 핵심적인 발견은 불이며, 신석기 시대에는 그릇 즉 ‘토기’였고, 그 안에 사상과 신의 존재를 담기 시작했다는 것. 돌을 깨기 시작하는 인간에서 돌을 갈고 다듬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경이로움 등으로 새로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 그 시대에는 최초의 발견이었고, 시대를 바꾼 ‘문명’이 된 것이다.
“깨는 것과 갈고 벼리는 것 사이에 시대의 경계가 그어졌다.” (p. 50)
“토기는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도 특이한 것이다. 자연에 없는 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첫 사례다.” (p. 53)
청동에 관해서도 ‘신의 돌’ ‘하늘의 돌’이라고 칭하며, 돌을 갈던 인간이 이제는 달구고 녹이고 끓이는 기술을 발휘하게 되고 이로써 청동 집기 등을 만들어 신께 제사를 하게 된 것,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 차별이 발생하고 제도화가 되면서 국가가 출현하게 된다는 점도 책은 말한다.
여신의 존재도 비중 있게 다룬다. 생명, 다산, 재생 등의 상징인 여신이 신석기 시대를 지배했다면 (그것은 그들의 동굴 생활과도 관련), 청동기 시대에는 하늘의 남신이 지배하여 여신은 땅으로 밀려나는 듯 입장이 바뀌게 된 배경 설명 등도 흥미롭다.
특히 재밌게 읽은 부분은 ‘샤먼’과 ‘신선’ 파트였다.
우리에겐 ‘무당’으로 알려진 샤먼의 역사, 사라지게 된 배경, 철학적 고찰에 이어, ‘삼생삼세십리도화’ 등으로 관심을 갖게 된 신선들의 이야기 예를 들면 그들이 옥을 먹거나,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생것을 섭취한다는 것, 또 불사약 제조법 등 좀 덕후스럽고 트리비얼한 얘기들이지만 그런 것에 전문가의 설명이 덧붙여져 책의 격 있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 분의 인터뷰를 따로 찾아보니 평소에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을 즐겨 보신다고 한다.^^
이 책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주를 이룬다.
역사 만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신화와 사상과 종교를 잇대어 들여다본다.
정답을 주는 게 아닌 각자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생각들의 창에 자신을 투영해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신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듯, 그렇게 스며든 신의 존재와 그에 반응하는 인간의 공존의 얘기다.
단지 ‘생각’들을 엮은 책이 아닌, 깊고 성스러운 인류의 궤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것이 내게 도착한 생각들.
#창비 #고대에서도착한생각들 #전호태 #인문학 #역사 #국사 #신화
"깨는 것과 갈고 벼리는 것 사이에 시대의 경계가 그어졌다."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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