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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평점 :
"앞으로도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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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라 유, 서점대상 시상식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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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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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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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해 어떤 소재도 사용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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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달’은 작가의 양심에 의문을 갖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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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는 이 소설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의 재미 없다는 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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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읽고 난 뒤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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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메인 남주가, 그것도 선인의 포지션인 그가 페도필리아로 나오는 것은, 그리고 미화되는 것은, 이거 문제의 소지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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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껏 엽기적인 일본 소설을 많이 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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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를 강간하는 ‘게르마늄 라디오’, 신생아에게 몹쓸짓하는 ‘애쉬베이비’, 여성의 자궁을 도려내고 시체 일부를 소유하는 ‘살육에 이르는 병’ 등 구제불능의 사이코도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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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소설에는 현실과 괴리를 둔 사이코 혹은 환자들로서의 경계가 분명했고, 어느 작가도 그들을 미화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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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내게 정말 불편했던 이유는 작가가 단지 페도필리아 남주를 그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품 인물들을 자기 마음대로 (불온한 방식을 꾀하면서까지)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을 마치 ‘상식을 파괴한다는’ 고귀한 미화로, 옹호로, 마치 사랑이 전부 구원해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세상에 소외받고 상처입은 이들이 서로의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는 이 소설의 강렬한 내러티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도 위험한 결론으로 감성적 포장되는 것도.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감정 또한 (부분 부분 일본 특유의 감성적 묘사로 아름다울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정돈되지 못한 것도 작가의 필력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등장인물은 9살의 초등학생 가나이 사라사와 19살의 대학생 사에키 후미라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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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거부하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초등생 사라사는 세상을 냉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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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엄마에게 버려져 이모에게 길러지고 거기서 치명적인 일을 겪으며 가족이란 것에 마음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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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기 싫던 아이는 매일 놀이터에 앉아 여자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남자 후미를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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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했던 후미가 먼저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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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올래?”
그 말이 따뜻한 빗물처럼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p.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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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얼굴이 참 예쁘네. 눈은 길게 쌍꺼풀 졌고 입술은 얇다. 무엇보다 코가 완벽했다.“ (p.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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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는 어른 여자 안 좋아해?
“응 안 좋아해.”
“그럼 어느 정도로 작은 아이가 좋아?”
“대략 중학생 정도까지?”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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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후미의 페도필리아적 성향을 설명하는 부분이 소설에 종종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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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후미가 가진 ‘소아성애’ 병력은 작품의 메인 모티브와 다름없고, 후미에 대한 (후미는 상냥한 미청년이다) 미화는 곧 페도필리아의 미화로 연결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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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를 순정 만화 남주처럼 묘사하는 것도, 15년 뒤에 서로 재회하는 매우 진부하고 클리셰적인 방식도, 두 사람을 위해 다른 인물들을 돌연 쓰레기로 만드는 것도, 그다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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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성애 부분을 빼고도 다른 부분들의 필력이나 구성도 그다지 훌륭하지가 않아 소설로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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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러한 텍스트들에서 작가는 '소아성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소아성애는 자기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성적으로 충동을 억제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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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다. 후미가 바라는 모습이 되어. 후미가 하고 싶은 걸 전부 같이 하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면 해라. 몸을 만지고 싶다면 만져라. 안고 싶다면 안아라.”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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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라는 인물은 완벽한 사람이지만 단 하나의 치명적 결함으로 인생을 망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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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페도필리아 혹은 페도필리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다소 구차한 변호도 말미에 어스름이 드러내지만, 이미 소설 전체의 골자이자 갈등이 되는 ‘페도필리아’의 존재감이 너무도 크고, 거기에 이 소설이 지향하는 ‘서로의 구원자’란 느낌도, 설득도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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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 두 사람의 눈물겨운 애틋함의 연출은 도리어 거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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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즐겁게 읽어주세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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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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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직원들이 뽑은 2020년 서점대상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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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대 일본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오가와 요코 등이 쌓은 금자탑에서, 무라타 사야카가 만든 균열을 비롯해 나기라 유의 함몰에 이르러 점점 아득히 멀어져만 간다
(2020/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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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상일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좋아하는 배우 마츠자카 토리가 후미를, 히로세 스즈가 사라사를 맡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토리는 소설 원작 영화에 자주 주연을 맡는다. 이시다 이라의 원작 '렌트'의 영화 '콜보이'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