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얼어붙은 인간을 한 번 더 되살리는 빛과 열은 어디에 있는 걸까.” (282)

내가 묻고 싶다.

미우라 시온 작가여, 2편에서 얼어 붙은 내 마음은 어떻게 하죠.

마호로 역 시리즈 2편 ‘마호로역번지없는땅’은 평하기 어려웠다.

먼저 총평하자면,

1편에 비해 재기 발랄함이나 스토리텔링의 부재, 매력 없는 문체들에 아쉬움이 크다.

내 추측인데, 작가가 처음부터 시리즈를 노리고 이 작품을 시작한 것 같진 않다.

노렸다면 2편이 이런 빈약한 구성을 취했을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3년 뒤 출간한 2편은, 전작에 소개된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독립된 에피소드를 갖거나,

다다와 교텐을 관찰하는 누군가의 3인칭 관찰자 시점, 다다가 3인칭 관찰자가 되어 교텐을 관찰하는 시점 등이 섞여 있다.

근데 스토리가 별로 재미가 없다. 따라서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가독성과 흥미가 줄어든다.

무엇보다 각 에피소드가 진부하고 표면적인 데다 교텐의 소시오패스적인 기행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과하다는 것도 장벽이었다.

1편에선 나름의 기행도 정의롭게 보였던 교텐이었는데.

1편에서 내가 높이 샀던 것은 미우라 시온 스타일의 재기 발랄함과 세련되게 가공한 엔터테이닝 요소였다. 그래서 가벼운 대중소설임에도 작가의 저력을 믿었다.

2편에서는 그런 요소를 찾기 어려웠다.

공감대 상관없이 제멋대로 혼자 춤추는 분홍신의 질주랄까.

먼저 첫 에피소드 ‘반짝거리는 돌’은 한마디로 이해 불가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자기 친구에 대해 갖는 질투심이 그 정도인가 할 만큼 (차라리 살인이 낫지) 놀랐고, 거기다 교텐의 상식 밖의 행동은 웃어넘기기 힘들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전통적인 방식의 ‘피카레스크’다.

1편에서 초딩을 상대로 마약 거래를 시켰던 일명 ‘사탕장수’ 호시가 주인공이 되어 꽤나 낭만적이고 상식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내 선에선 이해 불가.

“나쁜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호시가 착한 것은 엄마가 소중히 키워주었기 때문이야.” (86)

그 외에도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두 개의 세계에서 미묘한 줄다라기를 하는데, 작가가 ‘선’이라고 믿는 것이 내게는 ‘선’이랄 수 없다는 것,

작가가 상식의 선을 흐리면서 납득시키려는 것들이 내게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 이러한 충돌이, 결국 이 소설과 나를 분리시킨 것 같다.

1편에선 작가가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2편에선 1편의 성공에 자신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로 압박을 느껴 고민을 했던 것인지 ‘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깊이 없는 야쿠자 얘기에 무게를 둔다든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정도의 야쿠자 얘기가 아니면 성에 안 참;) 진부한 연애담을 위해 전쟁 시대를 가져온다든지.

아무래도 이 소설의 비장의 카드는 개성 넘치는 남자 ‘교텐’일 텐데, 그마저도 시원찮다.

작가가 특별한 애정을 쏟는 남자, 교텐.

소위 ‘상처남’인데, 다다가 백색의 우울함을 지녔다면 교텐의 우울함은 아주 어두운 흑색이다.

그런 심연을 품은 채 태연하게 웃고 떠들다가 돌변하는 그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이 교텐을 관찰하는 부분에선 늘 측은함과 연민 등이 묻어난다.

“오랜 고생 끝에 어른이 된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나는 편이 좋다. 현실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괴로움이 그를 들볶을 일이 이제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157)

이런 교텐을, 마호로 심부름 센터를 어떻게 수습할지, 3편에서 작가의 저력을 기대한다.

책을 덮고 나는, 이런 명랑 만화 같은 소재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써낸 요시다 슈이치나 오츠이치 등의 작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런 류의 글에 더욱 빛을 발하는 남자 작가들의 천장에, 미우라 작가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점일 게다.

궤도에 올라 성실히.

“심부름센터 일이 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이 사람은 어딘가로 가겠구나 하고 느낀 탓이다. 그렇다고 동정한 것도, 자선을 베풀 생각으로 의뢰한 것도 아니다. 남편을 비롯하여 오카 부인의 아들도 아버지도 친척도 모두 단순명료한 남자들뿐이어서 복잡한 그늘을 드리운 다다에게 흥미가 생긴 생긴 것이 주된 동기였다.” (148)



p.s.


작가가 교텐이 과거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 복선으로 암시하나, 내겐 소시오패스의 기질로써 뚜렷이 보여 이해가 쉽지 않았다. 교텐의 행동들은 미치광이와 다를 바 없는데 평범한 듯 살아가니 더 문제로 느껴진다. 전문적인 치료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바, 교텐의 시점이 전혀 나오지 않은 채 그에 대한 전적인 연민과 측은함을 독자에게 요구하니 2편은 구성면이나 설득력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얼어붙은 인간을 한 번 더 되살리는 빛과 열은 어디에 있는 걸까. (282)

오랜 고생 끝에 어른이 된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나는 편이 좋다. 현실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괴로움이 그를 들볶을 일이 이제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157)

심부름센터 일이 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이 사람은 어딘가로 가겠구나 하고 느낀 탓이다. 그렇다고 동정한 것도, 자선을 베풀 생각으로 의뢰한 것도 아니다. 남편을 비롯하여 오카 부인의 아들도 아버지도 친척도 모두 단순명료한 남자들뿐이어서 복잡한 그늘을 드리운 다다에게 흥미가 생긴 생긴 것이 주된 동기였다. (1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