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힘 - 내 삶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언어 컬러 시리즈
캐런 할러 지음, 안진이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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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알다. 보다. 잇다.>

 

컬러의 힘 The Little Book of Colour by 캐런 할러 Karen Haller (2019) #윌북

 

“색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내 감정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 감정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p. 11)

 

내게 ‘색상’(color)은 시간을 들여 눈여겨보거나 관심을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색 외에도 관심 쓰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색’을 온전히 인식하며 감동할 때는 바로 멋진 휴양지나 풍경 좋은 여행지에서뿐이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예배 설교에서 목사님이 색에 관한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보여 주었다.

 

평생을 색각 이상(색맹)으로 산 남자가 특수 안경을 끼고 비로소 온전한 색상들을 보게 되는 영상이었다.

그는 흐느끼고 통곡하면서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며 감격한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당연하게 존재하는 수많은 색상의 빛깔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색상을 전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색맹에 관해서는, 전혀 장애나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보이지 않아도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 이를테면 '언어나 상징'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은 모든 사물들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색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므로 색이 주는 효과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삶의 질이 향상하고 능률도 오를 수 있다.

색에 대해 알아보고, 내 삶에 알맞게 적용해 웰빙하자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색’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색의 의미, 색의 역사, 색에 관해 알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들.

저자 캐런 할러는 응용색채심리학 분야에 20년 간 몸담은 세계적인 권위자다.

먼저 이 책의 목차는 이와 같다.

1. 색의 역사 2. 색의 이해 3. 색과 마음 4. 색과 성격 그리고 색의 미래 (에필로그).

색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1장은 이것에 대한 이론적 근거들로 채워져 있다.

“색의 정체는 빛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색깔들은 태양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날아온 빛의 파장이다.” (p. 18)라는 색상의 기본 개념부터, 무지개의 원리로 색상을 구분했던 뉴턴의 이론도 소개된다.

“뉴턴은 색채가 물체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물체에 반사되는 빛의 성질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물체들이 제각기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은 물체가 어떤 파장을 가진 빛만 흡수하고 나머지 빛은 반사하기 때문이다.” (p. 20)

그녀는 다윈이 말했던 색채의 주된 쓰임새 3가지 (유혹, 위장, 경고)를 언급하고, 색채와 심리학을 연관해 이론을 정립한 철학자나 인물들을 소개한다.

(엠페도클레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렌, 아이작 뉴턴, 괴테, 칼융, 바우하우스, 엔젤라 라이트)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색각 장애에 관한 부분이었다.

색을 본다는 것은 눈에 들어온 빛을 뇌가 인식하는 것인데,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초록, 빨강, 파랑의 빛이라고 한다. (p. 22)

이 기관을 광수용기라 하며, 인간은 2개의 광수용기 (간상체와 추상체)를 갖고 있고, 추상체가 색채 지각을 처리한다.

거기서 추상체는 다시 3가지로 나뉘고 위에 언급한 색상들을 각각 담당한다.

재밌는 건, 개는 추상체가 2가지 종류밖에 없어서 색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추상체의 수가 색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좌우한다.

한 종류의 추상체는 100가지 정도의 색을 구별할 수 있으며, 2가지면 100을 제곱하여 일만, 3가지면 100의 세제곱으로 백만, 4가지 추상체는 수백만의 색을 인식할 수 있다.

4가지 추상체를 지닌 사람을 ‘사색자tetrachromat’라고 한다. (p. 43)

사색자의 반대에 선 것이 바로 색맹이다.

색맹은, “빛에 민감한 추상체가 빛의 서로 다른 파장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할 경우” 발생한다.

“추상체들이 각각의 빛 파장에 다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모든 파장을 비슷하게 인식하므로” 생기는 혼란 같은 것. (p. 44)

하지만 이제는 색 보정 안경이 나와서 그들도 선명하게 색을 보고 인식할 수 있다.

색을 단지 눈뿐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바로 공감각자 (synaesthete)들이다.


내가 아는 공감각자로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렌 그뤼모가 있다.

그녀는 모든 음을 색상으로 본다. (그런 능력이 없는 나로선 정확히 어떻게 보이는 건진 모르겠다^^;)

저자는 두 가지 유형의 공감각자를 언급한다.

자소공감각 (문자나 숫자를 볼 때 단어 전체 또는 요일이 고유한 색으로 보임).

그리고 엘렌 그뤼모처럼 음악의 음을 색으로 인식하는 색채 공감각이 그것이다. 스티비 원더, 칸딘스키 등도 공감각자다.

색의 원리에 대해서 잘 몰랐던 나는 그녀의 친절한 설명으로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후 소개되는 색의 문화적 의미, 국가별로 지칭하는 색의 차이점 또 설문지를 통해 나에게 맞는 색상 팔레트 등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색과 심리학을 연관해 설명하는 것은, 음악의 각 조성 (24개의 장조, 단조 sonority)이 지닌 특수한 상징을 곡에 연결했던 음악 기법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색은 좀 더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좀 다른 것 같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 집, 오피스 등의 환경 및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해답으로 색상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마찬가지지만, 색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은 내게는 좀 어려웠다. 당장 실현하기에 무리수도 따른다.

자신의 유형을 파악한 색상 팔레트대로 집안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은 비용이 들고, 과감한 결단이 아니면 힘들다.

의상에 관해서도 갖고 있는 옷들을 버리고 새 옷을 사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몸매와 얼굴이 받쳐주지 않으면 무슨 색을 입은들 빛이 나겠느냐하는 자조적인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질을 향상하고 품격 있는 삶으로 나가기 위해 색상이 맡은 역할은, 힘은, 크다는 것이다.

저자가 색의 기본이 되는 11가지 색상 (빨강, 분홍, 노랑, 주황, 갈색, 파랑, 초록, 보라, 회색, 흰색, 검정)을 하나씩 빼어 들어 우리에게 소개하는 과정은 집요하고 구체적이다.

마치 나를 위한, 오직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게 최적의 색상을 뽑아주겠다는 집념의 스타일리스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앞부분에 저자가 어릴 적 봤던 오즈의 마법사 얘기가 잠깐 나온다.

도로시가 보았던 세상이 적갈색에서 컬러로 전환되었던 장면.

그 마법 같은 현상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로시가 그걸 ‘느낌’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p. 10)

색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색은 나의 감각과 감정, 정체성을 잇는 천연의 가장 아름다운 빛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컬러의 힘’은 그 마법 같은 색의 세계를 내게 처음 알려준 책이다.


#컬러의힘 #윌북 #색채심리학 #색상 #thelittlebookofcolour #캐런할러 
 

색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내 감정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 감정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p. 11)

도로시가 그걸 ‘느낌‘이라고 말하는 게 좋았다. (p. 10)

모든 색은 각자의 신비로운 삶을 산다. by 칸딘스키 (p.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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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밀침침신여상 1~2 세트 - 전2권
전선 지음, 이경민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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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되어 기쁩니다. 포토카드 건도 일이 잘 해결되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이 잘 만들어져서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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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돌리 앨더튼 지음, 김미정 옮김 / 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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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 (2019)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2018) by 돌리 앨더튼 Dolly Alderton

 

<영국 쎈 언니의 독설- 와일드 연애, 인생, 요리>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나로 만들겠다고 내 몸을 바꿀 필요도 없다. 내 존재가 남들 눈에 보인다는 걸 믿기 위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믿기 위해 남자의 말과 시선, 평가는 필요하지 않다. 불쾌함을 외면하며 남성적 시각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런 곳에서 내가 살아 숨 쉬지 않기 때문이다.” (p. 282)

 

영국 런던의 스탠모어에서 태어난 돌리 앨더튼 (, 선데이 타임스 스타일 칼럼니스트 겸 베스트셀러 작가)이란 여성의 서른 살 연애, 인생 에세이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장르가 좀 독특하다.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와일드 와일드한 청춘을 보냈고, 실명 이름들이 거론되는데 그것이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사실인지 헷갈린다. 좋게 말하자면, 너무 리얼하고 진솔해서 당혹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에 훅 동화되고 있었다고나 할까.

 

여성의 위치에 대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페미니스트적 면모도 보이고,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의 소신도 보이고, 남자에게 목을 매며 안달을 냈던 10, 약과 술에 진탕 빠져 살던 20, 스스로를 진단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30대의 개과천선도 보인다.

 

아무튼 이 책 한 권 안에 서른 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돌리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과 깊이가 위트와 버무려진 책이다. 게다가 중간 중간 소개되는 그녀만의 요리 레시피는 알차기까지 하다.

 

띠지에 영국 아마존 에세이 부분 1, 내셔널 북 어워드 전기 부분 1위 등의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아니고 논픽션.

 

아무튼 그녀가 몸소 체험한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기까지의 처절함이 감동적으로 서술된 회고록이다. (감동적이라 하면 돌리 앨더튼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유쾌하게 읽고 이따금 뇌리에 떠올리면 될, 잘 놀던 선배 언니의 썰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나는 결코 살아보지 못할 인생을 대신 산 쎈 언니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

 

돌리의 십대 시절은 AOL의 추억과 함께 한다. AOL은 아메리칸 온라인으로, 지직거리던 전화선으로 연결해 통신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AOL의 주 목적이 바로 채팅과 인스탄트 메신저.

 

그녀의 최초 이성과의 관계는 이렇게 온라인 채팅으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그녀가 20대까지 데이트 앱에서 남자를 찾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채팅으로 얼마든지 편하게 접근하고 한 번에 많은 남자들과 연을 맺을 수 있는 편리한 방식들이 이미 그녀에겐 자연스러워졌기에, 그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방식으로 남자들을 물색하곤 했다. 원 나이트 스탠드라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이렇게 외로운 밤들을 지새웠다.

 

10대에 이미 부모 몰래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웠던 돌리는 그 시절의 혼란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10라는 사실만큼 싫은 게 없었다. 사춘기라는 게 죽도록 싫었다.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뭐가 됐든 남에게 기대는 건 질색이었다. (p. 37)

 

엑서터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돌리는 좀 더 자유를 만끽하고자 한다. ‘대책없이 악행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던 잠시나마 화려했던 시절이라고 스스로 얘기한다. 하룻밤에 대여섯 개의 파티를 다니고, 자신처럼 자유로운 친구들과 어울리며 만취해서 가 본 적 없던 장거리 여행도 충동적으로 다녀오는 등 그런 행위들을 해방에 이르는 위대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좋은 추억들로서 인생에서 두고 두고 말할 일화의 조각들이라고, 그래서 축적하듯 모으려고 했다고.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방향으로 내 몸을 사용하기를 거부했다. 우리들의 그 시절은 나름대로 짜릿했다. 나는 경험에 굶주렸기에 마음이 맞는 방랑자들과 갈망을 채워나갔고 그것은 우리 중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 집단정신이 됐다.” (p. 52)

 

돌리의 이러한 집단정신은 후에 그녀가 얻은 소중한 친구들로 그녀의 자산이 된다. 피보다 진한 우정과 연대로 보듬어주는 그들은 돌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일어설 힘이 되어 주었다. 게다가 작가는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돌리에게 이런 방황의 시간들은 그녀의 글에 진정성과 힘을 실어주게 된다. 어쨌든 그런 경험들로 이 책을 낼 수 있었으니, 그녀의 방황도 헛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10대도, 20대도 돌리에게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온 것은 연애와 취업이었다.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어 왔고, 그 중에 정말 사랑했던 남자와의 실연도 경험하며 거식증에 가깝게 자신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취업이란 전선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절망도 했다.

 

아마 20대들이라면 겪는 가장 큰 두 가지 문제가 아닐까. 연애와 취업.

 

나는 간절히 일자리를 찾았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어린 시절을 보낸 내 침실에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은 게 바로 일 생각이었다. (p. 101)

 

연애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전까지 돌리는 남자친구의 요구에 따라 소중히 여기던 머리도 쇼트커트로 자르고, 오직 그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상으로 자신을 맞춰나갔었다. 거기에 코카인을 흡입하고,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살아갔다. 자신이 남자를 꼬시는 유일한 방법은 담배와 화려한 화장, 허세, 과장뿐이라고 믿었던 가엾은 여성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점차 깨닫게 된다.

 

이런 밤들이 반복되자 나는 추억을 수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일화에 의해 내가 정의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설상가상, 남들도 내게 그런 모습을 기대했다.” (p. 119)

 

나를 부끄럽게 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건 자신을 귀하게 대하지 않아 자존감이 떨어지는 길임을 깨달았다.” (p. 121)

 

우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돌리는 가장 절친했던 친구 팔리가 근사한 남자와 진지하게 교제하는 것에도 불안감과 질투를 느끼게 된다. 친구가 애인을 사귀는 순간 모든 것의 순서가 바뀌는 것이 싫었던 돌리는 자신이 믿지 못하는 사랑이란 것을 하는 팔리에게 괴리감을 느낀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땐 번화가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읽지도 않을 책을 인터넷에서 주문하는 게 인생일까 의아해지는 시기”(p. 160)라고 생각하며, 익숙한 곳을 떠나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 여러 경험을 한다. (정말 낯뜨거운 경험^^:)

 

또한 소중한 이의 죽음을 겪기도, ‘자아라는 개념을 일깨워주는 상담사를 만나기도 하면서 돌리는 스스로를 바꾸기로 노력한다.

 

인생이 때론 힘들어 보이지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정말 단순하다. 분노로 가슴을 찢어 젖히고 겸손함으로 자존심을 부수라. 운명이 정해준 사람이 되지 말고, 당신이 바라는 사람이 돼라. 감정에 충실하라. 당신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 사랑을 받으라." (p. 193, 돌리가 인용한 누군가의 글)

나쁜 짓을 하던 이들에게 녹색 신호등이 되어주던 자신을 점검하면서 돌리는 강한 척 하지만 내면은 언제나 외로웠던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돌리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보게 할까 조종하려고 했던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녀의 텅 빈 내면과 화해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는 남자들이나 그 누구를 위해 살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 심장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나는 충분하다. 나는 충분하다. 이 말이 내 몸속을 스쳐가며 온 몸의 세포를 뒤흔들었다. 느꼈다. 이해했다. 그러자 이 말이 뼛속에 녹아들었다. 생각이 경주마처럼 질주하며 안에서 날뛰었다....

나는 온전하며 완벽하다.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넘치도록 충분하다.“ (p. 283)

 

돌리는 서른을 앞에 두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니 벌써^^:)과 시간부자였던 20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솔직히 토로한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버티면서 산다기보다 인생의 다음 구간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하며 후회 많던 이십 대를 발판삼아 좀 더 유연하고 성숙하게 서른을 맞이한다.

 

고작 서른의 나이인데 돌리가 경험한 세계는 연장자인 나보다 너무도 스펙터클하고 심오하기까지 하다.

 

지금은 성공적인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신이 꿈꿨던 어른의 모습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돌리 앨더튼.

 

그녀가 대신해 몸소 체험한 하드하고 와일드한 청춘의 인생사는, 인생이라는 똑같은 과제를 풀고 있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에게 행복을 제공하는 것만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당신의 행복은 자신. 자신을 사랑하여 쟁취하라!

 

사랑에 대해 아는 모든 것, 당신의 건투를 비는 쎈 언니가 인생으로 건넨 선물 같은 책이다.

문득 CharleneI’ve never been to me라는 팝송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나로 만들겠다고 내 몸을 바꿀 필요도 없다. 내 존재가 남들 눈에 보인다는 걸 믿기 위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믿기 위해 남자의 말과 시선, 평가는 필요하지 않다. 불쾌함을 외면하며 남성적 시각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런 곳에서 내가 살아 숨 쉬지 않기 때문이다." (p. 282)

"나를 부끄럽게 하는 행동을 계속하는 건 자신을 귀하게 대하지 않아 자존감이 떨어지는 길임을 깨달았다." (p. 121)

"인생이 때론 힘들어 보이지만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듯 정말 단순하다. 분노로 가슴을 찢어 젖히고 겸손함으로 자존심을 부수라. 운명이 정해준 사람이 되지 말고, 당신이 바라는 사람이 돼라. 감정에 충실하라. 당신은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 사랑을 받으라."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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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스페셜 에디션)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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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소년 소녀들이 바꿔놓은 세상의 형태, 사랑의 기적. 날씨의 아이’>

 

애당초 날씨란 건 하늘의 기분이야.” (p. 162)

 

<날씨>라는 소재로 신카이 마코토가 풀어낸 마법 같은 이야기 날씨의 아이는 탄탄한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는 먼저 영화로 접했고 첫 회차 관람 때 느낀 감정은 조금 복잡했다. 감독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다 자라버린 어른으로서, 남자 주인공 호다카의 범죄(?)가 납득이 안 되었고, 피도 안 마른 청소년들인 그들이 느끼는 절절한 감정이나 느와르 풍의 비장함 등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음악과 작화는 참 좋았다!

 

두 번째 보았을 땐 뭔가 느낌이 달랐다. 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끝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감정들이 가슴에 꽂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날씨의 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 두 번을 더 관람하고, 스페셜 굿즈 등을 사고, 이렇게 소설까지 읽으며 좀 더 깊이 작품을 마주해본다.

 

<날씨의 아이> 소설은 신카이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따라서 기본 뼈대는 영화와 동일하다. 다만 감독이 후기에 썼듯이, 글은 영상물과는 달리 색과 음악을 배제한 채 오직 단어와 문장으로 그려내기 때문에, 감독이 빚어내는 글은 그의 작화만큼이나 영롱하고 섬세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가 단지 훌륭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면모도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아마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다 알 것이다. 나오키 상 수상작에 버금갈 만큼 매우 유려하고 감성적인 필체로 그의 영화를 보듯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것을.

 

어떤 이는 <날씨의 아이>의 플롯이 그의 흥행작 <너의이름은>만 못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의이름을>을 갱신한 작품이라고 믿는다. 대기학, 기상학, 일본의 신화와 전설, 운명,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한데 펼쳐 놓은 감독의 팔레트는 저마다의 명암을 개성있고 다채롭게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날씨의 아이>는 호다카라는 소년이 페리에 올라 도쿄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호다카는 2년 전에 이미 도쿄에 다녀왔고, 거기서 아주 특별한 일을 경험했다. 그안에 소중히 간직된 한 소녀와의 기억이 그에게 소용돌이친다.

 

생각해둬야 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뭘 선택했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말을 전해야 하는지.

모든 것은-그래. 분명 그날 시작됐다.“ (p.12)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은 바로 소녀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소녀는 병든 어머니 곁을 간호하며 창 너머의 건물 옥상에서 빛웅덩이같은 것을 본다. 그 빛에 이끌려, 다시 푸른 하늘 아래에서 엄마와 함께 걷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옥상에 세워진 신전 토리이를 지나간다.

 

그녀는 그 토리이를 통과하며 기이한 경험을 한다.

 

자신은 바람이자 물이며, 푸르름이자 순백이고, 마음이자 기도였다. 기묘한 행복과 애절함이 온몸에 퍼졌다. 그리고 천천히, 이불에 푹 잠기듯 의식이 사라졌다.” (p. 18)

 

호다카는 그녀와 함께 보낸 그 여름을, 그녀와 세계의 형태를 바꾼 날들이라 믿는다.

 

2년 전 호다카는 아버지의 구타로 섬을 떠난다. 상처난 얼굴로 그가 늘 눈을 든 곳은 빛웅덩이처럼 흩뿌려진 빛 속의 도쿄였다. “언젠가 저 빛 속으로 가자.” (p.42) 그는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무서운 도쿄에서 버려진 고양이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며 굶고 있던 그에게 제일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그녀였다. 

 

"너 사흘 내내 그 수프가 저녁밥이잖아.“ (p. 43)

 

소년의 16년 인생에 제일 맛있는 햄버거를 선물해 준 소녀.

 

힘들게 도쿄에 왔는데 계속 비만 오네. , 이제부터 맑아질 거야.” (p. 90 - p. 91)

 

소년을 위로하듯 밝은 하늘을 선물해 준 소녀.

 

도쿄에 오니 어때?”

 

소녀는 묻는다.

 

그러고보니 이젠 숨막히지 않아요.”

 

그래! 왠지 내가 더 기쁘네. , 어서 먹어.”

 

호다카의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경험을, 지난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갱신한 것, 그리고 두 번 모두 같은 소녀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 (p. 114)은 어쩌면 하늘이 이어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호다카는 기도하는 순간 하늘이 맑아지는 일명 맑은 소녀인 히나와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시작한다. 의뢰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바람이나 기도같은 것에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지 않을까... 나는 말이야, 그 여자아이의 능력이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받아 세상에 전하는,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지.” (p. 135-136)

 

히나는 맑음 소녀의 일을 맡으며 자신의 삶을 기뻐하고 긍지를 갖게 된다.

 

불가사의한 일체감이 온몸을 채웠다. 나의 경계가 세상으로 녹아들었다. 자신은 바람이자 물이고, 비는 사고이자 마음이었다. 나는 기도이자 메아리였고 나는 나를 둘러싼 공기였다. 기묘한 행복과 간절함이 온몸에 퍼졌다.” (p.142)

 

사람들의 행복과 바람을 위하여 히나는 날씨가 맑아지길 기도하는 무녀가 되어 호다카와 의뢰들을 수행해 나간다.

 

특히, 진구가이엔 불꽃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게 날씨를 바꾼 히나는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진심으로 이 일에 감격하고, 호다카에게 고마워한다. 호다카는 생각한다.

 

날씨는 참 신기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히나 씨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p. 145)

 

하지만 날씨의 무녀는 스스로가 제물이 된다는 슬픈 운명을 떠안고 있었다. 하늘과 사람을 잇는 가느다란 실인 무녀는 인간의 간절한 소원을 받아 하늘에 전하는 존재로서, 자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루어야 했다.

 

진실을 마주하면서 두 소년 소녀는 절박해진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그 무엇도 더 주지 마시고 그 무엇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게 해 주세요. (226)“

 

이 대목이 영화에도 음악과 함께 흐르는데, 눈물이 났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하고 연약한 소년 소녀들이 이제야 서로를 만나 구원 받았는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팠다.

 

히나는 묻는다. “이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녀는 사라진다.

 

호다카는 사랑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믿으며 그녀를 찾아 뛰어 나간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그게 희망이든 동경이든 인연이든, 어쨌든 그것은 이전의 내게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당신이 준 용기가 지금 나를 이렇게 달리게 하고 있었다.” (p. 280)

 

 

가시 철조망에 얼굴이 찔리고 위험한 선로를 내달리고 경찰들의 포위를 뚫으면서까지 호다카는 그녀를 찾아야만 했다.

 

이제는 그녀 자신을 위해 기도하도록, 함께 살아가도록, 만들어야만 했기에.

 

<날씨의 아이>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품고 있다. 신카이 감독 초청 특별 상영회 때는 감독님이 샤이니의 종현을 언급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희생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체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도 보인다. 연약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과 용기도 보인다.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따뜻함도 보인다.

 

소설에는 영화에는 다루지 않은 성인들, 호다카의 말에 의하면 공평한 어른들인 나쓰미나 스가의 내면이 좀 더 다뤄져서 흥미로웠다. 스가는 마흔 살이 넘은 중년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미 알고 살아가는 영민한 인간이다. 그는 무엇이 소중한지 알고 있지만 순서를 바꾸지 못하는 별수 없는 어른. 그러나 호다카라는 소년을 만나며 자신 안에 잠들어 있던 순수한 양심을 깨우며 다시 한 번 맥동한다.

 

나쓰미는 현재 일본 청년을 대변한다. 취업을 앞두고 있으나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그녀도 호다카를 만나며 소년이 보여주는 용기와 열정에 도전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소년,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있을게. 너와 히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어른이. 아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어른이. 엄청나게 멋진, 케이 짱 같은 사람은 성에 차지도 않을,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슈퍼 어른이. 그러니까 너희는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p. 274)

 

비단 나쓰미뿐일까.

 

나 또한 호다카와 히나에게서 위로받았다. 그들로 인해 극장에서 펑펑 흘린 눈물은 꼭 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또 이 미쳐버린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비만 내리는 미래의 세상에 두려워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길 위해서.

 

그럼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근사하고 빛으로 가득해 있다.

 

이것이 날씨의 아이가 우리에게 전한 희망의 일기예보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그 무엇도 더 주지 마시고 그 무엇도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신이시여.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를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게 해 주세요. (p. 226)

소년, 내가 먼저 어른이 되어 있을게. 너와 히나가 동경해 마지않는 어른이. 아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어른이. 엄청나게 멋진, 케이 짱 같은 사람은 성에 차지도 않을, 아직 아무도 본 적 없는 슈퍼 어른이. 그러니까 너희는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p. 274)

당신이 내게 준 것은, 그게 희망이든 동경이든 인연이든, 어쨌든 그것은 이전의 내게는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당신이 준 용기가 지금 나를 이렇게 달리게 하고 있었다. (p.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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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일 -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스탠리 피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문장의 뼈와 살을 바르는 법>

 

문장의 일 -지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by 스탠리 피시/ 오수원 옮김

How to write a sentence-and how to read one

 

 

먼저 이 책은 내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단시간에 읽을 수 없는, 곱씹으면서 정독해야 할, 영문과 수업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을, 지적인 책이었다. (몹쓸 종속 형식 문장(?))

 

문장의일이라는 편안한 제목에서, 단아한 크림색 책표지에 빡빡하지 않은 내지의 여백에서, 나는 안심하며 느긋하게 책을 펼쳤으나 어느새 노트를 펼치고 필기하고 몇 번씩 문장들을 반복해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고뇌(?)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간 너무 가독성 좋고 재미 위주의 소설만 읽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문장의일은 문장의 검시관이라 할 수 있는 저자 스탠리 피시가 문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능하는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논증을 아주 집요하게 하는 책이다. 따라서 품격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집에 여러 권의 유명한 작문 책이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의 문장만을 해부해 접근한 책들은 본 적이 없었다. 건조하다면 건조할 수 있을 정도로 본질에 천착한, 한마디로 특이한 책이었다.

 

, 문장이란 무엇인지 이 인용구를 보자.

 

어느 날 길에 모인 명사들.

형용사 하나가 지나간다. 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명사는 충격과 감동으로 변화를 겪는다.

이튿날, 동사가 이들을 몰아 문장을 창조한다.

 

-케네스 코치, 영원히- (p. 33)

 

문장을 사랑하는 것, 그 사랑하는 마음의 시작이 바로 작가의 출발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문장을 이루는 것은 단어이며, 그 단어는 마구잡이로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관계에 따라서 제자리에 배치되어야 진정으로 힘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로베르가 말한 대로 딱 맞는 단어 (mot juste)'여야 한다는 것. 저자는 소설가 업다이크의 간단한 문장을 이용해 글을 입체적으로 살리는 문장의 힘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연습해 볼 것을 권유한다.

 

약속건대, 이 책을 통해 문장이 주는 기쁨과 문장의 기교, 좋은 문장을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을 드리겠다.” (p. 21)

 

원서가 영문이고 저자가 다루는 예도 영미 문학이기 때문에 우리와 잘 안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영어로 접하는 것이 어떤 면으로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을 수도 있다.

 

2장에 <스트렁크와 화이트에게 답이 없는 이유>는 내 유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스트렁크와 화이트는 미국 대학생들이라면 모두 읽는 ‘The Elements of Style (영어글쓰기의 기본: 국내 번역판 제목)'의 저자들이다. 나도 두 권이나 갖고 있고 번역본도 있다. 미국 대학교에서 리서치 수업할 때 반드시 필요한 교과서이다. 다루는 지침은 이 책 4장에도 설명된 것처럼 이와 같다.

 

문장을 짧게 써라.”

직설적으로 써라.”

잔뜩 쌓아놓은 절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말라.”

수동태를 피하라.”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지 말라.”

비유는 가능한 한 적게 쓰라.” (p.62)

저자는 이것들을 불행한 조언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글에는 맥락이 중요하고 이것은 목적과 함께 짝을 이루어 말이나 문장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성공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위의 지침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장이란 관점이나 강조점을 힘있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유학 때 작문을 내면 매번 교수들에게 혼이 났다. 물론 슬픈 이방인, 모국어가 아닌 자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작문은 내게 늘 어려웠다. 전공 실기에 매달리느라 바빴지 영문법이나 작문에 크게 시간을 쓰지 못했던 터였다. 리포트 내기 전에 원어민 친구들에게 체크를 받으면 그들의 질문은 대부분 같았다.

 

이건 누굴 말하는 거야?”

 

이건 갑자기 튀어나온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책의 저자가 그때 내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꺼내었다. 그러니까 맥락없는 문장들은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달력을 상실한다. 특히 한국식으로 된 영작문은 영미권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맥락의 차이를 저자는 평가 차원이라고 말한다. 즉 언설이 발생하는 특정 목적이라는 맥락. 예로 프랑스는 육각형이다.”라는 한 문장이, 보는 사람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고려해 옳은 진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틀린 진술과 상반되는 옮은 진술, 단 특정 상황, 진술을 읽거나 듣는 특정 당사자, 특정 목적과 의도 측면에서 옳은 진술의 문제다” (p. 64)

 

모든 언설이나 주장은 평가 차원과 관련해서만 발화되며, 평가 차원이 있어야만 문장이 가리키는대상이 비로소 시야에 들어온다” (65)

 

문장의 종류에 대해서도 논한다. 종속 형식 (Hypotaxis)의 문장, 병렬 형식 (Parataxis)의 문장, 또 풍자 형식의 문장이 그것이다. 각각의 형식은 당연히 효과가 다르다. 종속 형식은 문장의 요소들을 인과, 시간성, 그리고 우위의 관계로 배열한다고 말한다. 자유롭게 연상되는 것으로 딱히 방향 없이 문장을 끌어가는 병렬 형식보다는 좀 더 지적이고 고차원적인 문장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종속 형식은 논리적으로 배치되어 극적인 효과를 발하고, 병렬 형식은 느슨하면서도 흐르는 듯한 자유로움 속에 나름의 논리를 구축한다. 저자는 종속 형식의 모범으로 마틴 루서 킹 2세의 <버밍행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1963)>, 병렬 형식 혹은 구조의 예로는 선구자인 거트루트 스타인을 거론한다. (그녀는 글에 구두점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뒤에 하드보일드의 명장이자 투명하게 세공한 미니멀리즘의 거장 헤밍웨이 얘기도 놓치지 않는다.

 

그 다음 장인 첫문장에 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첫 문장은 압축성이 특징이다. 단시간에 많은 정보를 제시하는 일이 그 기능이다.” (179)

 

재밌게도 작가는 첫 문장의 각도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쏠렸다는 뜻인데, 즉 그것이 예상하는 전개 방향으로 이미 향했다는 뜻이다.” (p. 167)

 

첫 문장으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고요한 사색으로 시작하는 문장, 도전적이거나 공격적인 문장, 사물을 통해 기능하는 문장 등. 저자는 랄프 왈도 에머슨, 너대니얼 호손 등의 문장을 예시로 들어 첫문장의 기능을 설명한다.

 

마지막 두 장은 끝문장에 관하여, 그리고 글 자체가 자신이라는 숭고하고도 고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대표적으로 저자의 스페셜리스트인 존 번연을 예로 들며 내가 쓴 문장이 곧 나라는 사실을 신비롭고 성스럽게 풀어 나간다.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전부 다 파악하기 어렵다. 한 번으론 작가의 집요하고도 고귀한 신념을 깨달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번 읽으며 또 예시로 적용된 소설들을 펼쳐 읽어가며 천천히 습득해갈 때 빛을 발하는 책이라고 본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작가의 그 고매하고도 집요한 열정을 생각하면 한 장 한 장 쉽게 넘기기 미안할 정도다.

 

나는 소설들은 작가들이 떠오르는 상념과 영감으로 쭉쭉 써서 나중에 퇴고하면서나 고치는 줄 알았는데, 저자가 예로 들은 필립 로스나 레너드 마이클스, 존 번연 등의 영미 소설의 문호들의 글을 접해보니 그들의 문장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뜻과 목적을 위해 고심하며 배치된 견고한 구조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확실히 글을 잘 쓰는 교수님들의 글은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적확하고, 특정 강조되는 문장이나 단어에 포인트가 있었다. 마치 음악과도 같았다. 천천히 물 흐르듯 혹은 여리게 피아니시모로 가다가 딱 클라이맥스나 액센트를 치는, 어떤 선율의 흐름이나 리듬감 같은 것이 문장에 분명히 존재했다.

 

내 작문의 문제는 그런 특정 효과나 계산 없이 비논리적인 병렬 구조로, 맥락과 목적을 이탈한 채 썼다는 것이다. 글에는 분명히 맥락이 존재하고, 구조가 존재하고, 강조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비단 영문 작문뿐 아니라 어느 작문에도 해당하는 말 같다.

 

이 책을 진작에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문장의 힘을 알았다면, 내 글은 달라져 있을까? 적어도 문장을 보는 내 눈은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글쓰는 것을 사랑한다면, 이 책은 그 출발점인 문장을 사랑하게, 사랑해서 다시 보게 해 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도록 열어주는.

 

문장을 만드는 일은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고 이는 다시 문장을 감식하는 일이다.” (p. 25)

 

이제 천천히 다시 감식해볼까 한다.

#윌북 #문장의일

         

"문장을 만드는 일은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고 이는 다시 문장을 감식하는 일이다."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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