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매드 픽션 클럽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뭔가 음습하면서도 비밀스러운 기운을 담고 비가.. 아니 태풍이 몰려온다. 하지만 렌과 가에데, 다쓰야와  

게이스케에게는  태풍보다 무서운 용의 형상을 한 바람보다 더 무서운 의심과 더 큰 불안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 이어 여러 인물들의 눈을 빌려 사건을 보게 하고 인물의 입을 통해 진술하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전작에 비해 주인공들의 마음에 더 날이 서 있고 어느 정도 존재했던 장난기가 판타지적인  

요소도 싹 걷혀져 있었다.
  
렌은 엄마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졸지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새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고 새아버지는 어머니를  

잃고는 하루 하루를 술로 보내며 동생과 렌에게 폭력마저 행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에데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고 새아버지를 죽일 결심을 하고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 한편 엄마를 잃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마저 병으로  

잃은 다쓰야는 새엄마가 친엄마를 죽였다고 믿으며 새엄마를 곤경에 빠뜨릴 짓만 골라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고  

있지만 형과 달리 게이스케는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용의 손은 붉게 붉게 물들고>는 묘하게 닮아있는 오누이 렌과 가에데, 형제인 다쓰야와 게이스케의 음울한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지다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유, 혹은 완전히 의도된 이유로 그들의 삶이 교묘히  

얽혀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용의 손은 불게 물들고>는 일반적인 추리 소설의 형식을 완전히 뒤집는 전개를  

보이는 듯하다. 사건이 일어날 전조를 충분히 보여주고 사건의 전말까지도 모두 보여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만큼. 하지만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것 자체도 흥미 진진하게 풀어내지만  

살인 사건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더욱 관심을 끈다. 조심스러운 전개의 일본 소설스럽게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일본 소설이기 때문에 조급함을 버리고 세세하고 미묘한 심리까지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나 인물들 사이에 소통의 부재로 만들어진 불신과 의심은 이 소설을 뼈대를 이루고 있는 감정들로 불안감을  

고조시키며 다가오는 태풍만큼이나 그들의 의심과 불안은 계획적이면서도 또한 우발적인 살인사건과 맞물려  

돌아간다. 물론 타이틀로 내세운 치밀한 복선과 놀라운 복선에 대한 만족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깔아  

놓은 복선들에 비해 사건의 해결이 너무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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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망나니, 억센 털의 러시아 고양이, 말썽꾸러기.. 등등 갖가지 별명을 보유하고 있는 제제는 다섯살답지
않게 무척이나 감성적이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다. 하지만 6개월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아버지와
삶의 여유없이 일만 하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에게 그 감성이 있을리 만무하고 언제나 제제의 행동을
꾸짖기부터 한다.

그런 제제는 어느 날 새로 이사간 집에서 자기 키만한 라임오렌지 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밍기뉴"라
이름을 지어주고는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사실 제제는 장난이 조금 심할 뿐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굉장히 예쁜 아이다. 동생 루이스를 챙기고 정성껏 돌보고 (다섯살짜리가 어찌나 책임감이
강한지..) 자신보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양보할 줄도 안다. 그런가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베푸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거절도 할 줄 아는 자존심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제의 예쁜 구석을 볼 줄 아는 건 밍기뉴와 제제
앞에 새롭게 나타난 포르투갈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씨 뿐이다. 제제의 좋은 면을 봐주고 상처 입고 슬프게도
나이에 비해 너무 커버린 제제의 마음을 진심을 담아 꼭 안아줄 줄 아는 둘도 없는 친구 '뽀르뚜가'말이다.


중학교때 방학이 시작되면 나눠주는 권장도서 프린트물에 꼭 끼어있었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지만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불과 5년전이다. 그 때 읽으면서 '음.. 권장도서가 다 이유가 있구나.. 이걸 이제야 읽다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자마자.. ' 이 멋진 작품을 잊고 있었다니...'하는 생각부터 밀려왔다.


그런 책이 있다. 마음이 피곤하고 지칠 때 읽으면 힘이 되어주는 책.. 굳이 무슨 자기 계발서나 심리서와 같이
대놓고 힘을 북돋아주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읽고 나면 그간 잠들어있던 감정 하나 하나가 물기를 받아
되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책을 읽고 나면 너무 좋아서 되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어린 왕자>와 쌍벽을 이룰만큼 좋은 이 작품을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묻는 건
아마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전부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질문일 것 같다.

 

- "뽀르뚜가!"

 

- "응"

 

- "전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시죠?"

 

- "왜?"

 

-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 곁에 앉아 '내 가슴 속에 행복으로 물든 즐거움의 햇빛이 있다'는 것을 누리고 있는 날

   흉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저 구절을 읽을 때면 왠지 저 글자들 사이사이로 따뜻한 햇빛이 비쳐나올 것만 같다. 나는 뽀르뚜가도 아닌데 저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을 뽀르뚜가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 저런 빛나는
구절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 작품이 좋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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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 한 서번트 이야기
캐슬린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렉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작은 아이의 뇌 속을 채우고 있던 혈종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태어나자마자 받아야했고 좌뇌와 우외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아서 심각한 운동 장애를
가지고 있다. 신체 중앙선을 기준으로 오른손은 왼쪽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왼손은 오른쪽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또한 세 살이 되도록 걷지도 못하고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도 못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예민한 렉스의 촉각과 청각은 주위의
조그만 소음과 약한 마찰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렉스는 또 다른 사람의
질문에 어떤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엄마와도 감정적인 교류를 하지 못하는 자폐아였다.


- 서번트란 자폐증이라는 뇌기능 장애와 동시에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렉스>는 이 렉스가 태어나서부터 열한 살이 되기 전까지의 삶을 그 아이의 어머니의 입을 통해
펼쳐낸 이야기다. 남부러울 것없는 커리어 우먼에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예쁜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던 캐슬린은 출산을 3주 앞두고 아이의 뇌 속에 혈종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이 계획하고 꿈꾸었던 그 모든 것들이 아기가 태어나자..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깡그리 무너져 버리기 시작한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선물이자 어쩌면 벌과도 같은 렉스를 안았을 캐슬린은 하지만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탈바꿈한 것 같은 기분에 한없이 허우적거릴만한 여유도 없이 렉스를 위해 렉스가 보다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모든 방면을 알아봐야했다. 더군다나 렉스가 세살이 되기 전에
더이상 그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한 남편이 떠나고 오로지 그녀와 렉스 둘만이 남아 세상에 적응하고
때론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책장을 펼치고부터 물밀듯이 쏟아지는 렉스에게 나타나는 여러가지 증상들때문에 나 역시 조금
혼란스러웠다. 조그만 아기에 불과한 이 아이에게 이처럼 여러가지 증상들이 모두 다 나타날 수
있다는데에 한번 놀라고 이 모든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지않고 용감하게 맞섰던 캐슬린의
모습에 놀랐다.
그녀는 사회에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의심어린 시선들을 오로지 렉스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해낸다.
물론 그녀도 처음엔 또래 다른 아이들에 맞춰 놓으려고 렉스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고 자신과 렉스를
제외한 모든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츰 차츰 시간이
지나자 렉스의 모든 행동들이 그저 모자라거나 자폐나 신체적인 장애에서 오는 모자람이라기보다는
이른 바 '렉스의 시간'이라 명명되어진 시간의 문제임을 깨닫고는 캐슬린은 렉스가 한걸음 한걸음씩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물론 자폐와 동시에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은 지닌 렉스의 재능에 놀라움과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엄마와 렉스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많이 다른 방식이지만 어찌됐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어느 무엇보다 감동스러웠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일은 어쩌면
평범함이라는 혜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렉스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고 우리가 그 흐름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렉스를
혹은 렉스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편견이라는 장벽을 깨뜨리고 나서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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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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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먹은 아들이 묻는다. 늘 같은 질문 "아빠 어디가?" 아빠는 대답한다. "집에 간단다."
1분 후 토마는 다시 묻는다. "아빠 어디 가?" 이미 열 번 이상 계속된 같은 질문에 아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평생 "아빠 어디 가?"라는 질문 밖에 못하는 토마와 부릉부릉 하고 차 소리 비슷한 걸 내는 것 외엔
아무 말도 못한 마튜는 작가 장-루이 푸르니에의 아들, 그것도 중증 장애를 가진 자식들이다. 작가
스스로 세상의 종말이라 명명하고 아이들의 장애를 주제 삼아 농담을 한다. 자신의 알콜 중독 아빠를
두고도 블랙 유머를 구사하던 그였으니 그 정도야 어떠랴, 작가의 주특기가 그거잖아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장애, 더군다나 자식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두고 무시무시한 농담을 하고 남들
얘기하듯 이야기하는 모습은 확실히 불편했다.

하지만 푸르니에의 농담은 남을 웃기기 위한 실없는 농담이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에게 남들이 당연한
듯이 살아내는 평범한 삶을 살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머리 속을 지푸라기로만 채우게 만들고
십대의 자식을 노인의 모습으로 만든 죄를 용서받고자하는 마음이나 반성이다.


<아빠 어디 가?>는 장 - 루이 푸르니에가 평생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읽을 일도 없을 아이들 마튜와
토마를 위해 쓴 글이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해서 구구절절 신파조로
최루성 폭탄을 떨어뜨려놓는다든지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과제를 두 번이나 선물하신 신에 대한
불같은 원망으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튜와 토마를 두고 이것이 다
하느님이 계획하신 일이며 감사히 내려주신 선물이라느니하며 감동 전차를 목적으로 한 틀에 박힌
멘트들을 날리지도 않는다.

그저 작가는 마튜와 토마를 키우면서 아빠로서, 한 남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절망과 좌절,
미약하게 나마 주어지던 희망을 보기 좋게 꾸미거나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작가 특유의
유머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물론 나는 결코 장애를 가진 두 아이의 아빠의 심정을,
공을 멀리 날리고 공을 주워달라고 하는 것 외엔 부모와의 소통 방법이 전무했던 마튜도, 아빠 어디 가?와
자신의 손 마르틴과의 대화가 일생의 전부인 토마를 모두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조차 부끄럽지만 적어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장애나 장애를 가진 아이와 부모에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칫 민감하고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모을 지도 모를 이야기를
때로는 과도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이야기하고 절망스러운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가의 재주와 그간
아이들을 키운 수고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주 힘차고 열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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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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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책 읽는 것도 방법을 배워야하나?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내가 배워왔던 건 책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었지 책 그 자체가 아니었기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작가 자신도 이러한 의문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이 들어가는 글 속에도 이렇게 얘기한다.

 

- 보통 사람들은 책을 읽는 방법을 굳이 남에게서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글을 읽는 행위와, 책이라는 형식으로 정리된 글을 읽는 행위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보다 유익하고 보다 즐겁게 독서라는 행위를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저자는 슬로 리딩의
실천을 제시하는데 슬로 리딩에 정반대에 있는 속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음.. 사실 속독은 중, 고등학교 때 시험 공부는 해야되고 시험 범위는 엄청나게 넓을 경우 자주 애용하던
독서법 중에 하나인데 당연한 거겠지만 시험이 끝나면 속독으로 인해 얻었던 지식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외에는 속독으로는 책 한 권을 읽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고 저자가 말하는 슬로 리딩 또한
내가 지향하는 독서법은 아니다.


작가가 말하는 슬로 리딩은 당연히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늦게만 읽는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읽지도 못하면서 책
욕심만 내며 조바심까지 냈던 내 평소 책읽기 습관에다 대고 콕 집어 충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았다.


현대 사회는 정말이지 책의 홍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고 읽어나면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한
개인이 일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책을 읽는 양에 목숨을 건다라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부질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차피 다 읽어낼 수 없는 노릇이니 양의 독서 (망라형
독서)가 아니라 질의 독서(선택적 독서)라는 방법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 한 권의 책을 뼛속 깊이 완전하게 맛보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창조적인 글읽기다.


작가는 슬로 리딩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것저것 제시하고 3부에 가서는 동, 서양의 작품들을 인용해
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슬로 리딩인가 하는 것을 실천해 보인다. 사실 그 전부터는 작가가 말하는 슬로 리딩이
참 좋은 방법이고 저렇게 하면 어떤 책이든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서 고금을 통해 제시되는 슬로 리딩의 실제를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들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을 얻기 위해 읽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게 선사될 즐거운 시간을 위해..
오로지 그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 읽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슬로 리딩을 할
경우 과연 책에 한껏 집중해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창 내용에 몰입해 있다가 갑자기 빠져 나와 모르던 단어들을 사전에 명시된 의미를 찾아보고 문장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야하고 장면 전환을 위해 등장하는 접속사나 긴장을 유발하는 대사들에 나까지
긴장하면서 대체 왜 이러한 장치들이 등장하는 것인가 과연 다음엔 어떤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일까.. 등등.
책을 쓴 사람만큼이나 읽으면서 머리를 써야하고 다각도로 책을 들여다보면서하는 독서가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물론 슬로 리딩은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라는 점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세상에 독서법이
오로지 슬로 리딩과 속독법인 것 같아보이는 작가의 시야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슬로 리딩의
장점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속독법의 문제점과 대비시켰다는 건 참 효과적이었지만 아직 책을 많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먼저 읽게 된다면 오히려 책을 어떻게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증이나
두려움이 생겨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질겁하고 책을
멀리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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