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퀴르발 남작의 성 - 최제훈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얼마전 <금요일밤의 미스터리 클럽>이라는 일본 소설을 읽다가 읽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하고 던져버린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헨젤과 그레텔><신데렐라><빨간 모자>를 비롯한
동화를 모티브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연관 지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인데. 아홉 개의 살인 메르헨
이라는 그럴 듯한 부제가 아까울 정도로 이야기 자체의 반복이 내내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클럽과는 달리 아홉개의 사건(사실 뒤에 두 사건까지는 못읽었으니까 패스하고)은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 또한 전혀 신선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아 내 돈 주고 샀더라면 정말 아까울
뻔했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퀴르발 남작의 성>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는 왜 일본 소설 이야기나 하는 건가하고 생각하겠지만
<퀴르발 남작의 성>을 빛내기 위해 깔아놓은 포석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퀴르발..>
역시 <금요일밤..>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나 등장 인물들을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의 질은 <금요일밤..>이 최악이라면 <퀴르발 남작의 성>은 최고라 할 만한다.


- 퀴르발 남작의 성

 
 이 이야기는 어린 아이를 잡아 먹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퀴르발 남작이라는 인물에 관해 그야말로
 다각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추적하는 이야다. 얼마나 다각적인가하면 퀴르발 남작을 리메이크한
 일본 영화를 소개한 잡지 서평, 그 영화에 대한 컬트 소녀라는 닉네임의 블로거가 올린 글,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일어난 일과 유사한 사건을 보도하는 한국 뉴스, 울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는 민담 식으로
 펼쳐지는 퀴르발 남작의 괴담 등등 단편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을 단지 몇 장 읽고 확 싫어하게 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단 몇 장을
 읽고 푹 빠지는 일일텐데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면 가능하다.

 

- 셜록 홈즈의 사건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이후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실제와 허구의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엮어내고 아서
 코난 도일 식의 사건을 만들어내며 또 한 편의 셜록 홈즈 외전을 만들어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셜록
 홈즈의 정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 그녀의 매듭 & 그림자 박제


  두 편 모두 조금은 음침하면서 앞선 두편에서 보여지던 유머러스한 면이 조금은 절제된 작품이다.
 <그녀의 매듭>은 제목과 달리 전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그녀의 이야기가 어지럽게 펼쳐지고 <그림자
 박제>는 다중 인격이라는 어쩌면 문학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를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쎈 표현들도 서슴치 않는 면을 보여주기도 해서 과연 셜록 홈즈를 재창조했던 그 사람의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색다른 면모를 보여줘서 다음에 이어질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


  제목만 딱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마녀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밝힌다. 구성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퀴르발 남작의 성>과 마찬가지로 심층적인 인터뷰(온갖 전설
 적인 인물들의 출현이 가득하다), 옛날옛적부터 전해내려오는 자료들의 발췌 등 정말 이 한편을 다 읽고
 나면 마녀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을만큼 마녀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이 이어진다.

 

-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 괴물을 위한 변명


  아.. 여기까지 너무 많이 썼더니 조금 귀찮아진다.. 음 어쨌든..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라는 말장난같은 제목의 작품은 나중에 기억하면 그다지 기억에 남아있을만한
  작품은 아닌 듯하다. 여기에 나오는 작품들 중에서는 소재면에서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나 모두
  식상한 면이 있고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이 나와 음.. 과연 이 작품을 뺐다면 <퀴르발 남작의 성>
  이라는 표제에 완벽한 작품들만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인류사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재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을 이리저리 꼬투리를 잡아내고 따지는
  작품이라 해야 말이 될 정도로 원작에 대한 딴지 걸기가 목적인 평소 딱 내스타일의 작품이었다.

 
- 그리고 대망의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이 작품으로 말하자면 "마리아..."와 "괴물을.."을 끝으로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살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출현했던 모든 인물들이 나와 마치 축제라도 벌이듯이 떠들썩하게 한바탕
  놀고 있는데 어찌나 인물들을 잘 엮어놓았는지 한글자 한글자 읽어나가는 게 얼마나 아깝게 느껴지던지..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가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이 너무나 기다려진다는 말이 너무 식상하게 느껴져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 중에 하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제훈 작가의 차기작은 정말 기다려진다. 또 하나 제발  이 작가만큼은 다작하는 작가였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우리나라 작가는 차기작이 거의 1~2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되니..

[한국소설] 좀비들 - 김중혁

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무려 2년을 기다려왔던 김중혁의 차기작이고 작가 또한 2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서

쓴 소설이 <좀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참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가독성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를 하자면 물론 높은 점수를 주고도 싶지만 마치 살아있음에도

시체인 좀비들처럼 이 작품 역시 좀비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단락 단락을 똑똑 끊어놓고 읽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그 단락들이 모여

한권의 책이 되면 실체는 있으나 육체 안에 뜨거운 피는 없는 좀비처럼 껍데기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요근래의 김언수, 천명관 등 오랜만에 신작을 낸 작가들의 작품이 나오고 <컨설턴트>나

<어둠의 변호사>같은 일본 추리소설못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뛰어난 구성의

작품들을 몇 번 만나고 나니 작품을 대하는 내 눈높이가 부쩍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연이어 더 재밌는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구도 커져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김중혁의

<좀비들>은 참 기대 이하다.

사실 김중혁의 필력이라하면 나를 사로잡았던 단편 <악기들의 도서관> 한권만으로도

증명이 가능한데 얼마전 읽었던 김연수와 대꾸 형식으로 써나간 <대책없이 해피엔딩>에서도

위트있는 문체와 깔끔한 구성이 그의 장편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놓았다.

그렇다면 존재만으로도 너무 예쁠 수 있었던 <좀비들>의 문제가 과연 뭘까.

일단은 이야기의 짜임새가 엉성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안테나 감식반이라는 직업,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주인공 형의 LP판, 비밀에

둘러싸인 듯한 고리오 마을.. 그리고 무엇보다 좀비들의 출현이라는 아주 특이하고 재미

있을만한 요소들이 많이 모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국에서 봇물처럼 제작되고 있는

<무서운 영화>시리즈나 온갖 것들이 다 모인 패러디 영화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좀비들>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 역시나 대체로 너무 전형적으로 뻔하다거나

혹은 너무나 뜬금없어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첫 장편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하더라도 작가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넘어왔을 때

버리고 왔어야 할 것들과 새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단편에서 보여줬던 그 감성마저 잃어버린 채 장편으로 돌아온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소설] 설계자들 - 김언수

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봤던 기억이 난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낮게 깔리듯 시작되는 이병헌의 나레이션. 마치 이어지는 총소리들과 난자하게
펼쳐질 피의 향연 따위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나무인지 나의 마음인지
조용히 물어오며 시작되는 오프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도 왠지 시 한 편을 읊조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지금 <설계자들>을 만났다.

 
킬러들, 비정한 그들의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세계, 탄생만큼이나 흔하게 존재하는 죽음들의 행진이
펼쳐 질 거란 기대와는 달리 <설계자들>은 설계자들 뒤에 존재하는.. 아니 설계자들 앞에서 그들이 (얼마
전에 읽었던 컨설던트와는 거의 정반대 선상에 서있는 이야기이다.) 만들어낸 끔찍한 죽음을 실제로 그려
내는 킬러들의 너무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비정하면서도 소박하고, 치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순. <설계자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순이 된다.


수녀원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래생은 도서관의 주인인 너구리 영감 손에 맡겨져 성장한다. 말이 좋아 맡겨진
것이지 래생은 학교는 근처에도 못가봤을 뿐만 아니라 몰래 책을 읽다가 너구리 영감에게 들켜 칭찬은 커녕
혼만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열일곱살때부터는 킬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킬러계(?)에서는 나름 베테랑
축에 들지만 워낙 숫기없는 성격에 항상 자신을 무시하는 너구리 영감을 시작으로 한 래생의 간소한 대인
관계 탓에 대체 무엇이 래생을 살아가게 만들까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내일같던 어느 날 전직 장군이었던 노인을 원래 설계와는 달리 처리하면서
너구리 영감의 제자이자 라이벌인 한자의 뜻을 거슬린 래생, 한술 더 떠서 킬러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추 역시 설계를 어기고 목표물을 살려주는 잘못을 저지르고 한자가 고용한 킬러 이발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며 래생 역시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이렇게 1년이 되풀이되던 오늘 같았던 래생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설계자들>을 읽고 있으면 많은 기억들과 수많은 모순된 감정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래생 來生. 이름부터 다음 생을 기약해야할 것만 같아 왠지 슬픔이 밀려오다가도 전작 <캐비닛>에서 보여
졌던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턱 하니 나타난다. 아슬아슬한 래생의 삶이 그 유머에 오버랩되자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리 긴 래생의 여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 스펙터클한 래생의 삶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긴
호흡을 한 번 하고 책을 읽어나가야만 했다. 길게 숨을 쉬지 않으면 이미 너무 깊게 래생에게 동화되어
버린 내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것이 김언수 작가의 힘이다.
몇 마디하지 않고도, 화려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아도 미약하지만 강한 몸짓, 유머러스하며 가볍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 누르듯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캐비닛>이 워밍업이었다면 <설계자들>은 김언수의 힘찬 도약이라 말하고 싶을 만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 도진기

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ㅣ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현직 판사로 재직 중인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점에 사실 처음엔 의아하기도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판사라 하면 어딘가 고리타분한 면이 있기도 하고  

또 한국형 스릴러라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어색함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의 변호사"라는 다소 낯선 주인공 고진은 악마와 가까운 어둠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음지에서 바라보며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고 마치 긴다이치 코스케와 같은 직관력과 그럴 듯한 

가설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보여주는 여느 변호사와는 다르다는 어둠을 

지니고 있는 변호사였다. 따라서 당연히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지도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 출석할 일을 더군다나 없다.  

또 한 명 홈즈 곁을 지키고 있던 왓슨처럼 고진의 곁을 지키며 고진의 다소 황당한 추리력과 

행동력을 조율하는 역할로는 경위 이유현이 있다.  

어느 날 남광자의 의뢰를 받고 언덕 위에 붉은 집으로 찾아간 고진은 "남성룡"과 "서태황 두 집안이 

기묘한 동거를 하는 중이다. 그저 유산 상속이라는 문제인 줄만 알았던 사건은 남성룡과 서태황  

두 집안에 오래전부터 얽혀있던 살인 사건과 기묘한 관계가 드러나고 연달아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며 자꾸만 꼬여간다. 과연 과거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들과 현재 극도로 불편한 그들의 관계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증이 더해감과 동시에 날카로운 고진의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현직 판사라는 명함은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님을 이 책 한권으로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코넬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는 추리 소설들을 엮어냈다면 도진기 또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탄탄한 이야기를 엮어내며 수많은 등장인물들 간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꼼꼼하게 서술해 나가며 사건의 해결만큼이나 개인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재밌었다.  

특히나 이 책은 특이하게도 책 중간에 범인이 드러나는 부분을 봉인시켜놓아  평소보다 책 읽는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는 효과를 낳기도 하는데 물론 깔끔한 제본 상태에 신경을 쓰는 나로써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일단 그리 깔끔하지 않는 모양새를 보이니까)이기도 했지만 그 시도 만큼은 색다르긴 했다. 

그리고 여느 미스터리 소설이나 탐정 소설에서 주인공과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의 사이가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이었다고 한다면 <붉은 집 살인사건>은 탐정에 해당하는 고진과 사건의 해당 인물들이 보다 밀도있는  

관계를 맺으며 사건의 해결조차도 어둠의 변호사다운 설정에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점은 칭찬하고 싶다. 

컨설턴트 - 임성순

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ㅣ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컨설턴트>의 주인공을 킬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인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사람을 살해하는 킬러다. 그것도 그의 범행 일체가 전혀 드러나지도 않고 심지어 그 누구도 죽음 자체에  

단 1%의 의심도 갖지 않게 만드는 유능한 킬러. 그는 그 옛날 pc 통신이 유행하던 때 추리 소설을 올려 조금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로 회사에 초대를 받게 되는데 그 회사의 주된 임무가 바로 청부 살인이었고 주인공은 예전 글솜씨를  

발휘해 회사에서 가져온 "킬링 시나리오"대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죽음을 자세하게 연출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죽음은 자살을 할 이유가 100가지는 되어 보이는 사람의 자살이나, 충분히 심장 발작의 가능성을 가진  

이의 심장 마비와 같이 살인이라는 단서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죽음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식으로 제 손으로 누군가의  

숨통을 끊어놓지도 않고, 시간이 가도 절대 경찰의 포위망도 좁혀 올 일이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의외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가 거기에 있다. 지나치게 무료한 킬러의 일상과 대비되는 회사 내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살인 일정들이 무심한 듯 교묘하게 교차되어 보여지는데서 오는 긴장감말이다.

 

게다가 너무나 일상적인 죽음을 설계한다는 모티브 자체가 어쩌면 내 주위에서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죽음들에 대한 의심을 파생시키기도 하고 책보다 더 나아가 뭔가를 상상할 여지를 주고 있다는 점 또한 작품을 좀 더  

흥미롭게 읽어갈 만한, 말 그대로 꺼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고귀한 생명을 임의로 조작하고 있다는 내용에 다소 도발적이고 묵직한 주제가  

주인공의 개인적인 사정과 얽히면서 신선함을 읽고 조금 진부해져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특히 주인공이  

충격적인 시련에 빠지면서 갑자기 콩고로 떠나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책 속의 다른 책을  

읽고 있는 것만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과연 그 장면이 필요했을까. 주인공의 각성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 꼭 콩고여야만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스릴리 영화를 볼 때의 흥미진진함과 죽음의 시나리오와 실제 죽음이 맞물려 돌아갈 때는  

추리 소설의 아귀가 맞는 듯한 쾌감이 느껴져 콩고라는 자그마한 옥의 티 정도는 너그럽게 용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