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 -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
이창호 지음 / 라이프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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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처음 접한것은 군대시절이다. 군에 대해서는 오로지 적개심만이 출중했던 날들이다. 버스를 타고 왕복 두시간 가량 출퇴근을 했으니 더욱 심심했다. 그래서 조그만 입문용 바둑책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만만치 않았다. 돌이 사는게 이해가 안되었다. 책으로 독학 한다는 것은 요원했다. 어떤 절망을 맛보았다면 틀림없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 그리고 최고의 절망이었다.(현재까지는) 

그래서 그당시 바둑을  알았던 친구의 자취방에 드나들며 아홉점을 깔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석은 나랑 바둑 둘때면 꼭 소주를 옆에 두고 홀짝거렸다.  나는 당연히 그럴수 없었다. 아홉점을 깔아도 매번 지는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달이 흘러서(그렇다. 몇 달이다. 몇년은 아니다.)녀석과 맞두게 되었고 나중에는 오히려 녀석이 나에게 몇 점 깔아야 되는 지경이 되었다.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간 뭔가 역전이 된것이다. 이렇듯 하수의 세계는 뒤집힘도 쉽고 짧다.  

이 와중에 당연히 돌이 '산다'는 이치를 깨우쳤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기분은 참 묘했다. 아, 이런게 무엇을 깨우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 그야말로 샘솟는 희열! 돌이 산다는 것은... 아 말로는 설명할 재간이 없다. 하여간 옥집(가짜집)은 안되고 진짜집으로 두눈(집)을 내야 된다. 그래야 바둑이 된다. 이것을 모르면 바둑 못둔다. 

소집해제를 당하고 선후배들과 가끔 두기도 했는데 실력이 고만고만해서 기왕 실력이 늘거면 기원을 가보자 마음먹고 집근처인 D역  앞의 D기원을 처음 출입하게 되었다.

그곳은 고수 천국, 나보다 못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곳에서 소설가 복거일씨를 한 번 본적이 있다. 문인 쪽에서는 상당한 실력자라고 알고 있었다. 나도 바둑 두기 바빠서 이 분이 두는 판을 유심히 들여다 보지는 못 했지만 일종의 우쭐함이 있었다. 유명한 소설가가 찾아와 바둑 두는 곳, 나 또한 그곳에서 바둑을 둔다, 라는 정도의 우월감.

숱한 고수의 소굴이었던 그곳에서 내기를 해서 이긴적은 결코 없었다. 한 두번 이겼지만 곧 빈털터리가 되곤 했다.(그래봤자 소액의 내기 였지만)

내기 바둑을 두면서 세상 무서움을 뼈저리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가깝게 느끼곤 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의 진짜 급수는 몇 이란 말인가? 어쩜 이리도 철저히 속인단? 말인가. 그 속임의 끝에는 결국 진정한 실력이 있었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둑을 지고 집에 들어와 누우면 모두들 저리도 악착같이 사는데가 세상이구나, 겁난다고 할까, 그런 감정에 젖어있던 때가 많았다.  


바둑의 시초는 오래 되었고 예나 도로 대접받는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바둑은 게임, 오락이고 요즘엔 스포츠로 취급받고 있는듯 하다. 어쩌면 바둑은 이 모든것을 아우르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가벼운 것으로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있다. 기초를 터득하는게 좀 어려운 편이지, 한번 빠져들면 그 어떤 게임보다 재미있는데 바둑이다. 매번 똑 같은 판이 나올수 없는 게임. 그야말로 무궁무진이랄 수 있다.  

이런 바둑계에서 현재까지 세계대회 우승을 가장 많이한 기사가 이창호이다. 그가 십대때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여러번 보았는데, 초반에는 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꼭 역전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끝내기의 달인, 신산, 돌부처 이런 별명으로 불렀다. 한때 세계대회에서 승률이 90%에 육박했으니,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렇게 근 20년 간을 세계 정상에 있는 사람의 글이 여러모로 즐거움을 준다.(정리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이창호기사의 생각을 옮겨 적고 좀 다듬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보아온 그는 대개 교만하지 않고 진중하다. 겸손함이 몸에 배어있다. 인성은 그야말로 성인군자 수준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그를  잘모르는 측면은 있겠지만.  

승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바둑처럼 정신노동을 주로 하는 것은 드문편이다. 거기다 단 둘이 승부를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야말로 고독한, 개인의 정신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임이 아닌가 싶다. 이런 승부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으로써 그의 생각들을 읽다 보니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른 사람의 그것이 보인다. 정신수양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책 제목처럼 승리를 탐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이치는 어렵다. 그것은 일정 수준 이상일때나 통하는 얘기가 아닐까?  그것이 일반인과 다를터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는 영원히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없겠지만, 오늘도 가끔 내 마음을 다스려 주리라는 기대로 돌을 놓는다. '딱'. 그렇다, 딱 요만큼만, 돌 하나 만큼만 내 마음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 하나 만큼의 욕심이라면 죽을때 까지 누려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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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12 10:59   좋아요 0 | URL
올해 읽은 모든 리뷰 가운데 최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 백 아흔 아홉 개!!! 저는 바둑의 비읍짜도 모르고 어릴 때 시골 큰집에서 동갑 사촌이랑 오목이라도 둘라치면 열 번 두면 열 번 다 져서 사촌이 재미없다고 너랑 안둔다고 해서 울고 그랬지만 그래도 이 책은 꼭 읽어보겠습니다. 바둑 얘기가 아니고 인생 얘기인것 같아서요.

쉽싸리 2011-10-12 19:36   좋아요 0 | URL
바둑이 인생하고 비슷해요. 삶이 너무 다이나믹해진 측면이 강해진 것같긴하지만요. 좋은 교훈을 얻으시길...

루쉰P 2011-10-12 21:0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바둑을 두고 싶어 여러 번 도전했지만 책보고 하는 독학은 되지가 않더라구요. 여전히 바둑의 세계는 저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 하지만 바둑에 대한 몰입과 열정이 결국에 어떤 깨달음의 길로 간다니 참으로 매력적으로 끌리네요. 쉽싸리님의 리뷰를 읽으며 아, 바둑에서 저런 것을 얻을 수 있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전 글을 읽다가 그런 느낌을 받는데요. 아주 촘촘하게 짜인 것처럼 책의 내용이 빈틈없이 짜여진 것을 볼 때 아, 이렇게 쓸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며 놀랄 때가 많습니다.
어떤 길이든 그곳에서 일류가 되는 것 그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ㅋㅋㅋ 관리사무소의 일류라 대체 어떤 길인지...하하

쉽싸리 2011-10-14 07:0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어떤 단계를 지나야 바둑을 배울수 있는데요. 그런점에서 만만치는 않지만 길은 다양하고, 루쉰님의 열정이면 꼭 배울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일류가 되는 것이 가급적 자기만족에 국한되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엔 일류에 대한 기준이 넘쳐나죠. 더구나 모든 사람이 일류가 될수는 없으니까요...

꽃도둑 2011-10-13 10:55   좋아요 0 | URL
어릴 적 이웃에 사는 남자 어른들이 바둑두는 걸 지켜보며 자랐는데도 바둑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바둑은 남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세뇌(?) 당했나봐요.
그래서 오목하고 손가락으로 튕겨내는 게임만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바둑에 담긴 심오한 철학은 알 길이 없으니....
이 책이 도움이 될까요?...

쉽싸리 2011-10-14 07:10   좋아요 0 | URL
바둑을 다양하게 정의 해요. 단순한 잡기에서 부터 어떤 심오한 뜻이 있다 까지요. 저는 '바둑은 조화'라는 정의를 좋아 해요. 흑과 백이 어울려야 바둑은 이루어지죠. 너무 극단적이지 않아 좋구요. 조화롭게 사는게 매우어렵긴 하지만요.

2011-10-14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