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네버랜드 Picture books 026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5
로버트 브라우닝 지음, 케이트 그린어웨이 지음, 김기택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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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어릴 때 TV 애니메이션으로 보았고 책으로도 읽었다. 악기 중 간혹 그런 것이 있는데 피리의 음도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스산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TV 애니에서 흐르던 피리 소리도 그랬었다. 아이들을 피리 소리로 이끌어 어딘가로 향하던 그 발걸음, 그러나 결코 유쾌할 수만은 없다. 사내는 자신을 속인 이들에게 분노하여 복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야 그 후일담에 대해 상상하는 한계가 있었으나 지금에는 사내의 잔혹한 복수극이 가히 상상된다. 노예로 팔거나 어딘가 위험한 곳에 몰아넣어 죽였으리라.

일견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들릴 듯한 잔혹한 이 동화를 다시 인식한 건 사실 만화가 권교정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만화 때문이었다. 마을에 홀로 남은 아이의 고독과 피리 부는 사나이의 감춰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 동화를 소재로 한 만화는 많지만 '백설공주'를 소재로 한 권교정의 단편부터, 동화 이면의 슬픔을 탐색하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만화 때문에 새삼 인상이 깊었던 이 동화를, 우연히 회사 팀장님 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했다. 케이트 그린어웨이의 화려한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시인 브라우닝의 글은 세세한 배경까지 설명하고 있었다. 목판 인쇄치고는 그림의 화려함과 섬세함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번쯤 이 동화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림책을 접하고 감탄했다. 어린아이를 위함만이 아닌 어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그림을 즐기기에 어른이라고 마다할 일도 아니다. 만화 때문에 찾고 있었으나 그 많은 판본 중에 가장 그림이 아름답고 잔혹한 비극을 서술한 이 책이 참 기쁘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기쁜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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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Mr. Know 세계문학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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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포스터에 대한 영문학의 평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모리스'와 '전망좋은 방'이 읽어본 전부라선가 싶어 기회되는 대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볼 예정.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예전에 본 영화가 그리워서였다. 정작 영화가 한참 주목받던 무렵엔 시큰둥 하다가 5, 6년이 지난 어느날 TV에서 나오는 걸 보고는 '엇, 재미나잖아!' 했었다. 제임스 조이스와 헷갈려서 정작 원작 소설을 읽게 된 건 얼마 전이다(제임스 조이스의 난해함에 대한 무서운 이야길 하도 들어서).

기억 속의 조지는 좀 즉흥적이고 낭만적이고 젊음이 생생한 청년이었다. 웃음이 참 '싱그럽다'는 표현에 잘 어울린다는 인상이었고 주인공 루시의 남동생 프레디와도 싹싹하니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정작 루시에 대해서는, 배역을 맡은 헬레나 본햄 카터를 안좋아해서 어떤 캐릭터였는지 기억도 안났다. (헬레나는 머리 크고 목이 짧잖아, 개그만화 같아서;;) 작은 물 웅덩이를 뛰어다니는 남정네들의 모습을 보며 유쾌함을 느꼈던 기억도 난다.

영화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원작 소설을 읽으니 어라 싶은 게 한두군데가 아니다. 흐릿했던 루시양은 이제보니 주인공? 기억도 안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세실이 소설에선 금욕주의적인 우아한 청년? 그리고 활달한 인상의 조지는 정작 우중충 꾸리무리한 먹구름? 이거 참, 기억이란 자기가 인상깊은 것만 멋대로 조작해낸다니까.

소설은 영화만큼의 유쾌함이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영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었다. 루시를 바라볼 때의 조지 얼굴에 빛나는 생기가, 단순히 사랑에 빠진 청년이라서가 아니라는 것이나. 루시가 갈팡질팡 세실과 조지 사이를 오갔던 이유들. 세실과 루시 가족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 등등. 결국 소설을 읽고는 마음이 동해서 '전망좋은 방' DVD까지 구해 보았다. 원작 소설을 충실히 잘 살린 영화였고 결국 소설과 영화, 양쪽에 모두 뿌듯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 쪽에선 역시 백미인, 물 웅덩이(신성한 연목) 사건에서의 조지나 프레디, 비브 목사까지 하여 우거진 덤불 숲 사이를 뛰노는 총각들 모습이 눈부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원작에 충실하느라 여기에 끼지 않은 점이 유일한 아쉬움.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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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Maker
조앤 치니 지음, 황해선 옮김 / 영진라이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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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책이 과연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어느 블로그의 리뷰를 읽고 궁금하기에 구한 이 책은 '직장인의 멘토'라는 홍보문구가 과연 틀리지 않더라.

마침 퇴사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그간의 직장생활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 얄밉던 前팀장님이나 은근히 여직원은 낮게 대하는 팀 분위기 등등, 그 상황에서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서로 불쾌해서 눈도 안마주치는 상황이 되도록, 나는 과연 잘 판단한 걸까? 스트레스 덜 받고, 그렇다고 마냥 참지만도 않고, 할 말을 하되 그로인해 손해보지도 않는, 그런 현명한 직장인이 될 필요성을 느꼈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평정한 마음으로 현명한 판단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평정히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 싶었다.

우습지만 취업에만 연연하지 취업 이후의 생활에 대해선 별 안내를 받지 못했었다. 기껏해야 첫 직장을 잘 고르라는 둥, 적성에 맞는 일을 하라는 둥의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 정략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과중한 업무와 대인관계 트러블이 생길 때, 정신적으로든 입지로든 손해보지 않고 당당한 직장인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이 책이 직장생활의 모든 트러블을 해결해주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어떤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직장생활과 삶의 가치를 왜 접목시켜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자칫 푸념으로 끝나기 쉬운 '바빠서 자기개발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15분은 자기개발에 투자하라'고 실천 가능한 답을 내려준다. 홧김에 퇴사하려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이 업계가 싫고 이 업무가 싫고 이곳 사람들도 다 싫어지는 순간'이 올 때 퇴사를 결정하라고도 조언한다. 그리고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어버린 지친 직장인을 위로하며 퇴사 이후의 생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알려준다.

처음 20여장은 무거운 마음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글이 많아 밑줄 좍좍 긋고 포스트 잇을 덕지 덕지 붙여둘 정도였다. 직장 선배에게도 이만큼 시원하면서도 중심적인 이야길 듣기 힘들다. 현명한 직장인이 되어 자신이 열심히 한 일을 제대로 평가받고 그만한 보수를 받도록, 힘들 때 이런 책을 읽고 노력할 필요를 느꼈다. 아무리 스트레스 쌓이고 화가 나더라도 직장은 일 잘하고 현명한 사람이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거다. 불평불만만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더라, 심지어 화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로 퇴사할 뻔 했는데 막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를 준비할 수 있었다. 다른 많은 선배분들의 조언과 위로도 물론 큰 힘이 되었지만 이 책이 없었다면 나는 퇴사 마지막까지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을 거다.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 받는 이들에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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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cker 크래커 (CD 1장 포함)
토마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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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가 '남자친9' 이후 다시 모음집을 냈다. 2005년 하반기와 2006년 상반기에는 'toma show 다이어리'라는 귀여운 다이어리를 내더니 말이다. 다이어리를 잘 사용하지 않는 본인으로선 그림의 떡이었지만, 알콩달콩 꾸며서 쓰기에 좋은 구성에다 간간이 삽입된 그의 4컷 만화가 재밌더랬다. 다이어리 때문에 toma가 슬슬 그리워지던 참인데 딱 좋을 때 책이 나와줬다.

'남자친9'와 '선생님과 나'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번 'Cracker'를 보고 바뀐 부분을 금새 찾아냈을 거다. 우선 길쭉해진 인물들! 그리고 그 길쭉한 몸에 입혀진 스타일 좋은 옷들! 길쭉한 인물들의 움직임에 맞춰 간간이 보여지는 그럴싸한 배경들!

길쭉해져봐야 얼굴은 여전히 콩알만한데 그 콩알에 표정이 다 들어가는게 재밌다. 그리고 그 옷들이라니, 귀엽고 이쁘고 편해보이고 유행타지 않게 잘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옷들, 원색도 아닌 것이 편해 보이는 그 색감하며. 보는 내내 '앗, 이 옷 귀엽다! 앗, 이 가방 내 스탈이야!' 이러면서 봤다. 게다가 자취방을 보라, 벽지가 아닌 롤러를 페인트통에 푹 담궜다가 꺼내서 칠한 듯한 벽의 색깔. 화면에서 주인공들이 밥을 먹고 TV를 보고 맥주마시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는 거실과 방과 주방의 곳곳에는 적당히 루즈하게 만드는 배경이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이전 작품과 달라진 인물형에 맞춰 화면구성도 티나지 않게 바뀌어 있다.

내용으로 가자면 toma다운 이야기. '이성친구랑 같이 살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말. 전작 '남자친9'를 생각하면 소소한 일상과 함께 가끔씩 모락모락 피어나는 어떤 감정들을 감지할 수 있는 작품. 큰 소리로 깔깔 웃지는 않더라도 피식피식 웃으며 '이랬었지' 또는 '이런 것도 재밌겠네' 등등 편하게 공감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toma의 특징일 수 있을까나.

컴필레이션 앨범도 좋았다. 근래 즐겨듣고 있는데 작품의 분위기나 내용과도 잘 어우러진다. 처지지도 않고 튀지도 않고, 흥얼흥얼 따라부르기도 즐겁다. 음반사인 파스텔 뮤직은 2회인가 1회의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레이블상도 받았으니 컴필레이션 앨범 - 그것도 만화에 덧붙여진 거라 대충 모여진 건 아니라고 믿어도 된다. 이것저것, 이번 작품집은 한번 질러볼만 했다. 당신도 한번 질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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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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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임에서 알게 된 분과 문고본의 조그만 '흑거미 클럽'과 1979년판 '끝없는 이야기'를 바꿔 읽기로 한 적이 있었다. 곧 돌려주마고 서로 약속했건만 책을 빌리자마자 바빠져서 그 뒤 서로 연락이 끊겨버렸다. '끝없는 이야기'야 여러 번역본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다지만 '흑거미 클럽'은 그대로 묻히는 듯 했기에 무척이나 아까워했다. 물론 1979년판 '끝없는 이야기'는 정말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것이므로 본의 아니게 소유하게 되었다지만 어화둥둥 이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이 책이 다시 나와서 무척이나 기쁘고 반가웠더랬다. 비록 편집에서, 페이지를 아끼려는 때문인지 작가의 말을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냉큼 가져다 붙인 게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번역은 내가 처음 읽었던 어느 출판사인지도 기억 안나는 오래전 그대로였으니 그럭저럭. (번역이 잘 된지야 잘 모르니 넘어가더라도 역시 처음 읽었던 느낌이 최고인 듯 여겨지지 않는가. 그래서 '끝없는 이야기'도 처음 읽었던 1979년판이 갖고 싶었고)

내용에 대해서야 다른 리뷰들이 많이들 언급했을 테니 나는 빼고, 인물들의 쪼잔함과 소심함이나 난 체하는 모습을 언급하겠다. 읽고 읽고 또 읽었건만 여전히 인물들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기억력을 잠시 한탄해보며, 중년 남자들이 모여설랑 맛있는 식사와 맛있는 술 또는 담배를 나누고는 여자 못지 않은 수다를 즐기는 자리, 흑거미 클럽. 뭔가 의미심장해보이는 '흑거미'라는 클럽명칭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보면 이런 모습인 거다.

도대체가 물에 퉁퉁 부은 듯한 부푼 몸체의 시커먼 중년 남성들이 여자는 한 명도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음담패설도 아닌 지적 허영을 자랑하는 모임이라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 않은가. 음담패설을 나누려 모인다 해도 우습긴 하지만. 더군다나 이들은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것 치곤 농담 한마디 던진 걸로도 곧잘 삐져서 입을 삐죽이기 일쑤다. 꽤 비싼 식대를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으며 공부도 좀 했다들 싶은데 왜 이리도 이 중년들은 잘 삐지는 건지. 더구나 틈틈이 준비한 리머릭을 좀 읊으려 들면 귀를 틀어막질 않나, 오늘은 리머릭을 준비 못했다고 하니 잘 했노라 하는 걸 보라. 은근히 귀엽지 않은가?

추리 과정이나 결말을 다 알아버린 추리 소설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이 귀여운 중년 남성들 때문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작가인 아시모프도 포함된다. 자기 자랑을 하는건지 아니면 변명을 하려는 건지 슬그머니 '아시모프란 작가는 자기 책의 온갖 판본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네' 둥둥 해가며 끼어든다. (난 이 '슬그머니'란 말이 참 좋다, 구렁이 담넘어가는 뻔뻔함과 무안스러움이) 한동안은 눈이 맑아서 이쁜 중년 남성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는 만화가 권교정이 이걸 만화로 그려주면 쪼잔한 이들의 궁상맞은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괜한 망상도 품었더랬다. 그걸 바랄 수야 없겠지만 2편이나 좀 나와줬으면 싶다. 아시모프 노인의 잘난 척과 귀여운 으스댐이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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