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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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모임에서 알게 된 분과 문고본의 조그만 '흑거미 클럽'과 1979년판 '끝없는 이야기'를 바꿔 읽기로 한 적이 있었다. 곧 돌려주마고 서로 약속했건만 책을 빌리자마자 바빠져서 그 뒤 서로 연락이 끊겨버렸다. '끝없는 이야기'야 여러 번역본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다지만 '흑거미 클럽'은 그대로 묻히는 듯 했기에 무척이나 아까워했다. 물론 1979년판 '끝없는 이야기'는 정말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것이므로 본의 아니게 소유하게 되었다지만 어화둥둥 이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이 책이 다시 나와서 무척이나 기쁘고 반가웠더랬다. 비록 편집에서, 페이지를 아끼려는 때문인지 작가의 말을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냉큼 가져다 붙인 게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번역은 내가 처음 읽었던 어느 출판사인지도 기억 안나는 오래전 그대로였으니 그럭저럭. (번역이 잘 된지야 잘 모르니 넘어가더라도 역시 처음 읽었던 느낌이 최고인 듯 여겨지지 않는가. 그래서 '끝없는 이야기'도 처음 읽었던 1979년판이 갖고 싶었고)

내용에 대해서야 다른 리뷰들이 많이들 언급했을 테니 나는 빼고, 인물들의 쪼잔함과 소심함이나 난 체하는 모습을 언급하겠다. 읽고 읽고 또 읽었건만 여전히 인물들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기억력을 잠시 한탄해보며, 중년 남자들이 모여설랑 맛있는 식사와 맛있는 술 또는 담배를 나누고는 여자 못지 않은 수다를 즐기는 자리, 흑거미 클럽. 뭔가 의미심장해보이는 '흑거미'라는 클럽명칭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보면 이런 모습인 거다.

도대체가 물에 퉁퉁 부은 듯한 부푼 몸체의 시커먼 중년 남성들이 여자는 한 명도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음담패설도 아닌 지적 허영을 자랑하는 모임이라니. 생각해보면 참 우습지 않은가. 음담패설을 나누려 모인다 해도 우습긴 하지만. 더군다나 이들은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는 것 치곤 농담 한마디 던진 걸로도 곧잘 삐져서 입을 삐죽이기 일쑤다. 꽤 비싼 식대를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으며 공부도 좀 했다들 싶은데 왜 이리도 이 중년들은 잘 삐지는 건지. 더구나 틈틈이 준비한 리머릭을 좀 읊으려 들면 귀를 틀어막질 않나, 오늘은 리머릭을 준비 못했다고 하니 잘 했노라 하는 걸 보라. 은근히 귀엽지 않은가?

추리 과정이나 결말을 다 알아버린 추리 소설을 읽고 또 읽는 이유는 이 귀여운 중년 남성들 때문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작가인 아시모프도 포함된다. 자기 자랑을 하는건지 아니면 변명을 하려는 건지 슬그머니 '아시모프란 작가는 자기 책의 온갖 판본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네' 둥둥 해가며 끼어든다. (난 이 '슬그머니'란 말이 참 좋다, 구렁이 담넘어가는 뻔뻔함과 무안스러움이) 한동안은 눈이 맑아서 이쁜 중년 남성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는 만화가 권교정이 이걸 만화로 그려주면 쪼잔한 이들의 궁상맞은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괜한 망상도 품었더랬다. 그걸 바랄 수야 없겠지만 2편이나 좀 나와줬으면 싶다. 아시모프 노인의 잘난 척과 귀여운 으스댐이 그리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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