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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사회 / 과학 / 예술 분야 주목 신간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l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11-14

원제 The Social Conquest of Earth (2012년)

 

 

들어가는 말 고갱의 그림 앞에서 005

1부 ‘사회성’이라는 수수께끼
1장 인간 조건 015

2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2장 정복의 두 경로 023
3장 진화 미로의 모퉁이들 033
4장 도약의 거점 047
5장 진화 미로를 헤치고 061
6장 사회성 진화의 원동력 067
7장 인간 본성에 새겨진 부족주의 077
8장 전쟁, 유전된 저주 083
9장 탈주 101
10장 창의성의 폭발 111
11장 문명을 항한 질주 125

3부 사회성 곤충의 무척추동물계 정복사
12장 진사회성의 발명 137
13장 사회성 곤충을 진화시킨 발명들 149

4부 사회성 진화의 힘
14장 진사회성의 희소성 딜레마 165
15장 곤충의 이타성과 진사회성이 규명되다 173
16장 곤충의 대도약 183
17장 자연 선택은 어떻게 사회적 본능을 진화시켰는가 195
18장 사회성 진화의 힘 205
19장 새로운 진사회성 이론 225

5부 우리는 무엇인가
20장 인간 본성이란 233
21장 문화의 문턱 259
22장 언어의 기원 275
23장 문화적 차이의 진화 289
24장 도덕과 명예의 기원 295
25장 종교의 기원 313
26장 창작 예술의 기원 329

6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27장 새로운 계몽 351

감사의 말 368
옮기고 나서: 세월의 흐름과 맞선다는 것(이한음) 369
해설: 학문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최재천) 371
참고 문헌 383 / 도판 저작권 402 / 찾아보기 406

 

 

-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Edward Osborne Wilson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통섭(Consilience)>의 저자이고, 1979년과 1991년 퓰리처상 수상자.

- 진화 생물학을 바탕으로 인류학, 심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을 오가며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는 도덕,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의 기원을 밝혀내는 책.

- "이 책은 현존하는 최고의 통섭형 학자가 그의 학문 여정의 정점에 다가서며 내놓은 걸작이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또 읽을 책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국립 생태원 원장)

 

 

 

협동으로 만드는 먹거리 혁명 - 정크푸드가 넘쳐나는 세계에서
마크 윈 (지은이) | 배흥준 (옮긴이) | 따비 | 2013-11-15

원제 Food Rebels: Guerilla Gardeners And Smart Cookin’ Mamas (2010년)

 

 

한국어판 서문 7
 
옮긴이 서문 14
 
제1부 권위주의인가, 자유인가? 18
 제1장 우리 시대 먹거리 이야기 ─ 2020년 11월 어느 날 21
 제2장 미국 먹거리체계의 영혼을 위한 투쟁 34
 제3장 산업화된 먹거리체계 ─ 풍요부인가, 파괴부인가? 55
 
제2부 변화 이끌어내기 84
 제4장 모리스 스몰 씨와 클리블랜드 농업 88
 제5장 쇠고기 이야기 103
 제6장 젖소 이야기 117
 제7장 신은 나초를 창조하지 않았다 133
 제8장 건강한 학교에서 건강한 아이들이 자란다 157
 제9장 요리보다 한 차원 높은 관심 가지기 166
 제10장 식량주권 ─ 우리 식량에 대한 통제권 177
 제11장 음식시민이여, 단결하라! 195
 제12장 먹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 두 선지자와의 대담 213
 
결론 내부에 있는 열정 발견하기 224
 
참고 자료 24 

 

 

- 도서출판 따비는 약 3년 전부터 <식품주식회사>, <먹거리 반란>, <우리가 사는 곳에서 로컬푸드 씨 뿌리기>, <페어푸드> 등 공정한 먹거리 문제에 관련된 책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음.

-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의식주'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부터 정보화사회가 된 현재까지, 지구인의 의식주는 크게 잘못되어 왔다. 과학기술은 발전했을지 몰라도,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21세기인 지금도 마찬가지고, 단순히 몇몇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틀렸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들의 값싼 패스트패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3세계 약자들의 노동력 착취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저유가 시대의 혜택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외의 단독주택들과 도심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는 언제고 고갈될 수밖에 없는 화석연료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먹거리' 문제 역시 무척 심각하다. '웰빙'이니 '유기농'이니 말들은 많이 하지만, 이런 개념들조차 원래 가졌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저 장사치들의 수익창출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 "먹거리세계의 민주주의는 기업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먹거리 혁명’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살아 숨 쉬는 마을 만들기 - 미나미의료생협에서 배우는 협동과 돌봄
니시무라 이치로 (지은이) | 번역연구모임 연리지 (옮긴이) | 알마 | 2013-11-19

 

 

들어가는 글_활기가 넘치는 미나미의료생협
 협동하면 좋아요! | 미나미의료생협 병에 걸리다 | 미나미의료생협이 추구하는 것 | 미나미의료생협의 변천 | 조합원과 반 모임 | 서로 함께 봉사를 나누는 수많은 활동 | 5년 동안 조합원 119퍼센트 증가
 
1장 의료
 미나미생협병원 완화 케어
 미나미생협병원의 완화 케어 병동 | 마지막 콘서트 | 미나미생협병원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 이 순간을 소중히 | 하바타키회 |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목표인 환우회 |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만들기 |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답게 살 수 있도록 | 그 사람에게 맞추는 간호
 
가나메병원 장애인 의료
 가나메병원이란 | 장애가 있어도 즐거운 인생 | 마음이 병든 사람이 백배 더 아프다 | 오스트레일리아 유학 생활 | 장애를 장애로 느끼지 않는 사회로
 
2장 돌봄과 복지
 기마마텐구원
 생협 유유마을 기마마텐구원 | 시 짓기 | 좋은 경험을 저축하도록 장려하다 | 건강한 제니다이코 | 모두가 주인공 | 협동의 어려움과 협동의 위대함 | 우리 지역 도로는 병원의 복도 | 마을이 가지고 있는 돌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룹 홈 나모
 그룹 홈 나모의 탄생 | 개호도가 개선되다 | 첫 비행기 여행 | 돌봄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 재미있는 돌봄 노동 |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하다
 
3장 건강한 몸 만들기
 피트니스클럽 위시
 병원 내 피트니스클럽 | 반신마비지만 헬스를? | 꿈꾸던 다이빙에 재도전하다 | 나를 응원하기
 
워크! 걸어서 지구 한 바퀴
 걷는 것은 멋진 일이다 | 즐거운 걷기 | ‘모두 함께 걸어서 지구 한 바퀴’ 모임
 
지압으로 조합원 늘리기
 지압 모임에 주는 감사장 | 미나미의료생협의 병원 만들기 | 널리 퍼지는 지압 모임 | 혼자 사는 98세의 우사미 씨
 
외국인 무료 건강검진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 같았어요 | 외국인 건강검진을 기획하다 | 두 번째 건강검진 | 세 번째 건강검진 | 검사를 마치고
 
4장 지역 만들기
 생협 논비리마을
 생협 논비리마을이란 | 생협 논비리마을의 탄생 | 반 씨 남편의 병 | 황천길에 보내는 선물 | 생명과 마음의 연쇄 운동 | 돌봄의 척도
 
어린이 건강 증진 활동
 지·덕·체와 더불어 식을 | 아이들의 건강 체크 | 아이들의 자각 | 아이디어를 모아서 | 수상을 기념하는 축하 파티
 
서로 돕는 지역 만들기
 오카게사마 미나미 |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송 서비스 | 무엇이든 서로 돕기 사업 | 늘어나는 쓰레기 집 | 그 사람다운 인생 엔딩 계획
 
모두가 붉은 수염
 배우에게 받은 꽃다발 | 사카키바라 씨의 공연 관람 프로젝트 | 극단 젠신자의 보배로 | 모두가 붉은 수염
 
5장 생협 만들기
 미나미의료생협의 원점
 소중한 원점 | 환자에게 배운 것 | 협동으로 만들어낸 진료소 | 열정이 있는 집단 | 나 스스로의 힘을 믿고
 
조직과 경영
 지역 중시와 토론 | 경영 개혁 | 요구 추구에서 요구 실현으로
 
조직 풍토 만들기와 인재 양성
 사람에게 밀착한 조직 풍토 만들기와 인재 양성 | 오감 진료로 환자에게 다가가다 | 6성 의사 | 6성을 목표로 | 즐겁지 않으면 생협이 아니다 | 포기하지 않는 간호 | 어르신들이 웃을 수 있는 돌봄 서비스
 
나가는 글_협동하면 좋아요!
 로망 그 자체인 미나미의료생협 | 협동조합의 원점 | 미나미의료생협의 강점 | 미나미의료생협의 과제 | 협동하면 좋아요!
 
후기를 대신하여

 

 

- 번역연구모임 '연리지'는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안에 있는 모임이라고 함. 개인적으로 프레시안 언론 협동조합 조합원으로서 무척 관심이 많이 가는 번역모임이고 신간임.

- 바야흐로 지금은 '대안(代案, Alternative)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과 한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 Alternative라고 하면 기껏해야 음악분야에서 19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록' 붐을 떠올렸겠지만, 이제는 우리 삶의 전 분야에 걸쳐서 代案이 활발하게 생성·발전하고 있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교육과 의료 같은 필수요소에서도 대안학교나 대안의료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일들, 예를 들면 매일 세 끼 식사를 한다든가 병에 걸리면 수술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들이 요즘은 별로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의 상황만 봐도, 철저하고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루에 단 한 끼만 먹는 삶을 장기간 지속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생긴다거나 현대의학을 신봉했던 의료전문가들조차 병에 걸렸을 때 수술을 거부하고 다른 대체요법을 찾는 걸 그리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기저귀를 채우는 것조차, 대안육아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불필요한 행위로 간주하며 '기저귀 없는 육아'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단단히 마음 먹고 오로지 '대안'으로만 자기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채울 수도 있으리라.
대안이 나타나는 당연한 이유는 소위 말하는 '정통' 또는 '클래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기 때문일 텐데, 때로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와 새로운 기술 발달의 결합을 통해 대안의 생성과 발전이 이뤄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안언론'과 '대안의료'이고, 상당수가 협동조합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 "한국 의료생협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일본 미나미의료생협에서 찾는다 ... 미나미의료생협이 걸어온 길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 의료생협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아가 농협을 포함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기존 협동조합에도 참고할 만한 지침이 될 것이다 ... 인간이 만든 뒤틀린 사회에서 ‘협동’이라는 가치는 어쩌면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 탈핵 - 대한민국 모든 시민들을 위한 탈핵 교과서
김익중 (지은이) | 한티재 | 2013-11-04

 

 

추천사 김종철
책을 내면서
 
제1장 후쿠시마 핵사고
 제2장 핵사고의 원인
 제3장 원자력은 사양산업이다
제4장 핵발전과 재생가능발전의 경제성
 제5장 방사능과 건강
제6장 기준치가 무엇인가?
제7장 한국인의 피폭 경로
제8장 영원한 숙제, 핵폐기물
제9장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제10장 핵재처리
제11장 핵발전의 대안

 

부록1 저선량 전리방사선의 건강 위험
― 일반인을 위한 공개 요약본

 

부록2 일본산 수산물 수입량 및 방사능 측정 결과 공문
― 정보공개청구 회신

 

 

- 백 마디 말보다 동영상 하나가 더 낫다.

 

 

- 게르트 로젠크란츠의 <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와 함께, '탈핵' 원칙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 보고서 세트 (전2권) - 나는 99%다 + 516 공화국
박순찬 (지은이) | 비아북 | 2013-11-22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보고서 시즌 1 <나는 99%다>
 1장 재벌 천국, 서민 지옥 - 99%를 위한 나라는 없다
 2장 그들만의 대한민국 - 깽판은 권력이 치고 피해는 국민이 본다
 3장 삽질과 피멍 사이 -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니
 4장 미래를 위하여 -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장도리의 대한민국 생태보고서 시즌 2 <516 공화국>
작가의 말 - 치유의 자화상
 1장 MB의 추억 - 정산은 국민이 한다
 2장 대통령은 내 운명 - 18대 대선의 재구성
 3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권력 -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4장 피도 눈물도 없이 - 대한민국 1%가 사는 법
 5장 공공의 적 - 대한민국 보수의 품격
 6장 응답하라 99% - 죽은 서민의 사회
 7장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코리아 - 역사는 알고 있다

 

특별부록 - 박순찬 단편선

 

 

- 1995년부터 연재된 경향신문의 시사만화 <장도리>. 바야흐로 SNS 시대를 맞아 매일같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시사만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그날 그날의 장도리를 보는 게 하루 일과인 사람들도 많음. 이런 탁월한 교양만화는 알라딘 인문 / 사회 / 과학 / 예술 분야 신간평가단에서 반드시 리뷰해야 되지 않을까?

- "장도리의 네 컷 속에 들어 있는 건 '대 한 민 국' 이다. 시대의 자화상을 기록하는 박순찬은 우리 시대의 김홍도, 신윤복이다." 박시백 (만화가)

- 북 디자인도 무척 인상적이고, 특히 표지가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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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버트런드 러셀이 1937년에 쓴 <억압받는 자들의 미덕>이라는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어른들이 스스로를 위해 마련할 수 있었던 유일한 위한은 새로이 아동 심리학을 고안하는 것이었다. 전통 신학에서는 사탄의 수족으로, 또 교육 개혁가들의 머릿속에서는 신비롭게 윤색된 천사로 여겨졌던 아이들은 다시금 어린 악마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신학적 악마가 아니라 무의식에 지배당하는 과학적이고 프로이트적인 혐오 대상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카톨릭 수사의 가열한 꾸짖음을 들을 때보다 더욱 사악한 존재가 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오늘날의 교과서에서 아이들은 못된 공상을 꾸미는 데에 영특함과 고집을 발휘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과거의 사례 가운데 여기에 비교할 만한 것은 오로지 성 안토니우스의 시련뿐이다. 이 모두가 객관적 진리일까? 아니면 그저 어린 골칫덩이들을 두들겨 팰 수 없게 된 어른들이 그 보상으로 만들어 낸 상상일 뿐일까? 각 질문의 답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추종자들한테서 듣기로 하자."

 

미셸 옹프레가 쓴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이라는 <우상의 추락>을 읽은 다음, 개인적으로 딱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버트런드 러셀 에세이의 인용구 마지막 문장이다. "각 질문의 답은 프로이트 심리학의 추종자들한테서 듣기로 하자."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적합할지 아니면 정신분석학이라는 용어가 적합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상의 추락>은 프로이트 추종자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프로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과연 '우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미셸 옹프레가 '비판적 평전'을 쓰는 것의 의미 자체를 우선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저자는 꽤 긴 '서문'을 통해 자신에게 있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지만, 솔직히 프로이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공감이 잘 되지는 않는다.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일종의 '스토리'로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프로이트와 관련된 '디테일'을 이해하며 보는 건 아닌 것이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셸 옹프레에게 있어서 프로이트는 '내 우울한 청소년기를 견디게 해준 천재'인데 이 당시 그를 사로잡은 책 세 권은 니체의 <적그리스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라고 한다. 게다가 저자는 철학자이고, 철학교사이며, 50권이 넘는 책을 펴낸 저술가이다. 그러니, 쉰 살이 넘은 미셸 옹프레가 프로이트와 관련해 <우상의 추락>에 담은 내용들은 상당히 디테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상'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수준이 그렇게 낮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으면 그 나름대로 괜찮다. 하지만 그 디테일과 볼륨 때문에, 완전히 몰입하기는 사실 만만치 않다.

 

결국 <우상의 추락>은 소위 말해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이 되기가 쉬운 것이다. 아마 프로이트라는 한 인간과 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독자가 보면 참 훌륭한 만찬이 될 테고(단, '비판적' 평전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별로 그렇지 못한 독자에게는 좀 지루한 오찬이 되기 십상일 듯하다. 불행히도, 필자에게는 만찬보다는 오찬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상'의 의미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 우상이라면 흔히 말하는 '아이돌'인데, 여기서는 당연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아이돌일 것이다. 일단, 프로이트가 과연 아이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한 인물인가? 솔직히, 이것부터 좀 고민이 된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무시하면 추종자들은 대부분 동의할 테지만, 그외 사람들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이 한때 굉장한 유행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요즘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바로 그 아이돌 가수와 비슷한 의미라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와 동시에 아이돌 가수들과 유사한 특성을 가질 수도 있다. 팬들에게는 아이돌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소중하지만, 팬이 아닌 이들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는 <우상의 추락>에 나오는 디테일한 내용들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한 스토리상의 섬세한 설정처럼 받아들여질 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프로이트에 관한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상당히 버거울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셸 옹프레가 학자보다는 좀 더 작가적인 입장에서 전반적인 서술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정신분석에 대한 학술서가 아니라 프로이트에 대한 평전(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필자의 논평을 겸한 전기)이니까, 약간 그런 식으로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미셸 옹프레가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프로이트와 관련된 놀라운 디테일들을 읽으면서 잘만 구성하면 무척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저자의 서술을 보고 드라마틱한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너무 많은 인용과 직접적인 설명이 몰입에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기본 소재 자체가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설사 불가피하다손 치더라도, 일반 독자 입장에서 이걸 장점이라고 보긴 힘든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 이는 다른 책에서는 찾기 힘든 탁월한 '미덕'일 수 있다.

 

"스타나 아이돌은 대중의 욕망을 샤워처럼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대에 올랐을 때, 많은 대중들의 욕망을 대변해 줄 수 있다." -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

 

글쎄 프로이트 얘기를 하면서 이와 같은 인용을 하는 게 잘 어울릴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우상'에 관한 두 번째 논의는 '대중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고자 한다. 프로이트나 그의 정신분석학이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역시 대중의 욕망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텐데, 이에 대해서는 미셸 옹프레도 분명히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기를 참 많이 하지만, 마지막 결론 '변증법적 망상'에서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성공을 거두게 된 핵심 키워드 다섯 가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성(性)

2. 유럽문화의 공세

3. 종교

4. 역사적 분위기

5. 사상적 오해

 

사실, 이 다섯 가지가 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이후 얼마간 대중의 욕망을 대변한다. 당시 성 담론의 폭발은 물론이고, 1차 대전을 전후한 전세계적 유럽문화의 확산, 그럼에도 아직 종교적 관념을 전방위적으로 적용하는 것, 전쟁 이후의 혼란과 허무, 기존의 사상과 신념 붕괴 속에서 새로운 사상으로서의 지위 장악 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역시 역사적 맥락과 인류의 변화 위에서 발흥한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아이돌'은 어떻게 됐나? 시대가 변했고, 대중의 욕망도 바뀌었다. 이미 성(性)은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다뤄진 주제이고, 유럽 중심의 세계관도 꽤 옅어졌으며, 종교적 관념은 더이상 문제가 안 된다. 전쟁을 겪은 사람보다 겪지 않은 사람이 이제 훨씬 더 많으며, 마르크스처럼 프로이트도 지금은 기존 사상으로서 무수한 책 속에 그저 '존재'한다. 결국 대중적 욕망의 중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어쩌면 그래서 <우상의 추락>과 같은 책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프로이트는 그 이후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정신분석학 역시 전영역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을 읽지 않았다고 요즘 경제문제를 논할 수 없는 게 아니듯,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모른다고 심리 분석을 아예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조용필 음악을 전혀 안 들어 봤어도 아이돌그룹의 음악을 만끽할 수 있고, 고전영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어도 최신개봉작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다만 소위 말하는 '깊이'가 문제인데, 인간사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깊이를 달성하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단언컨대, 프로이트가 100년 뒤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대중의 욕망이 언제나 변화하듯이, 그 욕망을 대변하는 아이돌도 항상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상의 추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어쨌든 위시리스트의 맨 끝에 위치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추종자들에게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을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사유한 다음에 읽기에 좋고, 그외 사람들에게는 프로이트가 살았던 당대 학자들의 유산을 섭렵하고 난 다음에 모자이크의 빈 부분을 채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중요성이 느껴질 때 읽기에 좋다.

 

자신의 욕망을 대변해줄 아이돌을 굳이 처음부터 추락시킬 이유도 없으며, 아이돌 자체가 아닌데 굳이 추락의 관점에서 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우상의 존재 의의도 결국 우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니까 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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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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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의 행보를 보면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같은 영화에 등장해도 될 법한 이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서 '자유직 범죄학자, 범죄심리학자, 프로파일러, 범죄수사전문가, 작가,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그는 경찰관이었고, 경찰대학 교수였으며, 아시아경찰학회장을 역임했다. 넉 달 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이제 '자발적 백수'가 된 표창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 비겁한 남자!"

 

지승호. 13년차 전업 인터뷰어로서, 무려 서른 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냈다. 유시민, 장하준, 우석훈, 김수행, 박노자, 강신주, 김규항, 신성일, 신해철, 공지영, 양익준, 박원순, 김상곤, 정봉주, 이상호 등.. 그가 만나서 인터뷰하고 함께 책을 낸 인물들의 면면만 봐도 우리는 이 사람의 인터뷰집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걸 예감할 수 있다. 지승호는 우리 시대의 거울들을 제대로 비춰주는 또 하나의 거울인 셈이다. 영화로 치면, 잘 플로팅된 '액자식 구성'의 작품이 바로 그의 인터뷰다.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이번에는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을 만났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2013년 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지승호와 표창원의 한국형 범죄학 인터뷰집이다. 표창원이 진정한 개혁적 보수주의자로서 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이후 꽤 긴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기록이며, 다루는 소재나 내용이 그리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터뷰집이니만큼 비교적 편하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 | 지승호 (지은이) | 김영사 | 2013-10 | 반양장본 (448쪽)

 

 

이 책의 프롤로그 '비정한 공범들의 도시에 홀연히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는 인터뷰어 지승호가 썼고, 에필로그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는 인터뷰이 표창원이 썼다. 그럼 지승호가 프롤로그에서 직접 밝힌 <공범들의 도시> 기본 구상부터 한번 읽어보자.

 

"표창원 박사는 원래 연쇄살인이나 엽기적인 범죄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이자 범죄자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하는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유명하신 분이잖아. 범죄를 통해 본 한국 사회 진단, 한국 과학수사의 현주소,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 시스템의 개혁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묻고, 타고난 경찰 표창원이 답하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범죄 전반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신창원에서부터 오원춘까지, 자식 살해와 아동 성폭력, 묻지마 범죄부터 연쇄살인까지, 경찰대학 문제와 과학수사의 실패, 장준하에서부터 김광석·김성재까지, 경찰 내부의 문제와 정치 검찰 그리고 작년 대선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완전히 멘붕에 빠뜨린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인 대선개입 사건과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폭넓게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표창원의 강의와 방송 출연을 그동안 인상적으로 본 사람들은 <공범들의 도시>를 통해, 그가 다양한 한국적 범죄들을 과연 어떤 철학적 바탕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어떻게 진단을 내리고 있는지를 총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까지 그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고, SNS를 포함해 워낙 많은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에,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좀 혼란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 단련된 관찰자이자 기록자인 지승호의 도움을 받아 심각하지만 친절하게, 무겁지만 상세하게, 전문적이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명확하면서도 편안한 대화체로 말이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베테랑'이어서 그런지, 곳곳에 자연스러운 유머도 가미되어 있고 한없이 깊이 빠져들기보다는 중간 중간 독자의 숨통을 틔워주는 얕은 대화도 적절하게 등장한다. 그 덕분에 인터뷰집치고는 약간 볼륨이 있는 편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생각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가 지난해 연말 홀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크리스마스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지승호가 쓴 프롤로그 '비정한 공범들의 도시에 홀연히 나타난 정의의 사나이' 중에서.

 

암울한 현실과 근본적 고민, 불편한 진실과 정의를 위한 선택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3.8%가 '공정하지 않다'라고 답하고 있고,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 44%가 '10억 원을 준다면 징역 1년 정도 살 짓을 저지를 수 있다'라고 응답하고 있다.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우리 모두다."

- 표창원이 쓴 에필로그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중에서.

 

현대 사회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나 다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공범들의 도시>에서 표창원이 모범사례로 영국을 자주 언급하지만, 영국만 해도 이민정책의 전반적인 실패로 말미암아 자국 국민 3명 중에 2명이 '이민자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민자를 배척하고, 급기야 이민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미국 역시 말로는 자신들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뻐기지만, 실상 '백인·남성·기업인'으로부터 대부분 기부되는 정치자금 즉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편이다.

 

[출처: 고발뉴스 동영상 갈무리]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국은 유럽인들 사이의 농담 중 '경찰이 영국인이면 천국'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훌륭한 경찰 제도를 보유한 나라이고(요리사는 이태리인, 기술자는 독일인, 애인은 프랑스인),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을 가진 나라로서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고 범죄를 은폐하려고 하면 어떤 대통령이든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나라다. 어쩌면 그래서 영국이 이민자 폭동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빨리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고, 미국 역시 극소수 엘리트층의 정치기부금 지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 선거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선거 부정을 저지른 인간들이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고, 이를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경찰은 사건을 축소하기 바빴다. 불법 선거가 드러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혐의가 있는 정치인들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대한민국 정부 안팎을 뻔뻔하게 활보하고 있으며, 사건 은폐에 책임이 있는 경찰관들은 국회 청문회에 나와서까지도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니 표창원 같은 사람이 경찰대학을 박차고 나와서 지금도 수구 정치 세력과 거대 경찰 조직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 아닐까?

 

일반 시민이 보기에도 요즘 현실이 너무나 암울한데, '타고난 경찰' 표창원은 오죽할까.. 그래서 시민을 대표해 지승호가 묻고, <공범들의 도시>에서 표창원은 진정한 보수의 품격, 민주 사회의 품격, 국민을 위한 경찰의 품격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분명한 어조로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의 경찰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며, 여기에 등장하는 개별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적 범죄의 전체적인 그림도 웬만큼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표창원과 지승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고민도 보여준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뭘 하나 하나 바꾸려고 해서 바뀔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얘기가 자주 오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말도 무척 인상 깊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자기를 바쳐서 일해온 사람들 때문에'라는 말 자체를 언제까지 사용해야 될 것인가" 한마디로 각 개인의 노력이나 도덕성보다는,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와 감시체제가 잘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걸 제대로 못한 다음에 찾아온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보면, 그 필요성과 중요성은 금방 답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공범들의 도시>에서 지승호와 표창원이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게 사회 전체가 투명하게 되고, 가장 정점에 있는 정치권력이 불법이나 반칙 없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국민의 감시를 받고, 또 국민과 제대로 소통해야만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2012년 대선 과정에서의 부정 선거 사태를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유이고, 표창원이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알고 있음에도 경찰대학을 뛰쳐나오고 방송진행을 그만두면서까지 정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그는 지금 '백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터뷰 마지막에 표창원은 이렇게 다짐한다.

 

"저로서는 경찰과 범죄, 형사사법제도라는 것이 28년간, 경찰대학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열정과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은 분야니까요. 그걸 뭉뚱그려서 제가 얻은 한 가지의 단어는 결국은 정의거든요. 그 이외의 다른 이유나 명분,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상황이 어떻고, 안보가 어떻고, 이 모든 것들은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 길을 비켜줘야 된다. 정의만 제대로 바로 서게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제 삶은 거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완벽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정의'라는 수준이 확립되는 그런 사회가 되는 데 기여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이 거기에 출발점 내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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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사회 / 과학 / 예술 분야 주목 신간

 

 

디퓨징 - 분노 해소의 기술
조셉 슈랜드 | 리 디바인 (지은이) | 서영조 (옮긴이) | 더퀘스트 | 2013-10-04 | 원제 Outsmarting Anger (2013년)

 

한국인들은 평상시에 마치 화난 사람처럼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설사 마주치더라도 무표정하게 외면하는 게 보통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자기 앞가림하느라 정신없고, 혹시 누가 잘못을 하면 마구 비난하기 바쁘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아무리 잘 나가던 사람도 한 번 큰 실수를 저지르면 완전히 매장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분노에 차서 살아가고 있을까?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자신도 재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추천사에서 쓴 것처럼, "한국인들은 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 <디퓨징>은 분노를 엉뚱한 방향으로 풀어내려는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 - 거대한 대륙이 들려주는 아프리카 역사의 모든 것
존 리더 (지은이) | 남경태 (옮긴이) | 김광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3-10-07

원제 Africa: A Biography of the Continent (2013년)

 

처음에는 모두가 중국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남미, 또 얼마 전에는 인도가 주목을 받았다. 결국 중국은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슈퍼파워의 자리를 예약했고, 남미는 눈에 띄게 약진했으며, 인도 역시 요즘 잘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아프리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단언컨대, 앞으로는 세계인이 아프리카로 모여들 것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아프리카 평전'이다. 저자는 영국 태생이면서도 아프리카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다고 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자연사적 역사에서부터 사회적 환경까지 그 모든 것을 총망라해서 설명한다. 지질학, 지리학, 기후학, 고고학, 고생물학, 미생물학, 언어학, 인류학, 농업경제학, 기생충학.. 아프리카는 미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은이) | 박세연 (옮긴이) | 열린책들 | 2013-10-10

원제 Plutocrats: The Rise of the New Global Super-Rich and the Fall of Everyone Else (2013년)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듯이, 세계는 지금 '가난한 데다 미래도 없는 사람들과, 부유하고 낙천적이며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지구촌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단순히 슈퍼 리치들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사태를 완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플루토크라트, 부와 권력을 다 가진 글로벌 슈퍼 엘리트를 의미한다. 사실 이 책은 플루토크라트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선 이걸 읽은 다음에 자신의 철학에 따라 좌파든 우파든 마음이 가는 비평가의 글을 읽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일단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군지는 알아야 될 것 아닌가? 2012년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이자 2013년 국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뤄 대중의 이해에 기여한 세계 최고의 논픽션에 수여하는 <라이오넬 겔버>상 수상작.

 

 


패셔너블 Fashionable - 아름답고 기괴한 패션의 역사
데이비드 스태퍼드 | 캐롤라인 스태퍼드 | 바버라 콕스 | 캐럴린 샐리 존스 (지은이) | 이상미 (옮긴이)

투플러스 | 2013-10-15 | 원제 Fashionable (2012년) 

 

솔직히, 패션을 잘 모른다. 패션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서양 미술에 관심이 있으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으면 되고, 서양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를 읽으면 되는데, 패션을 알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매달 나오는 패션잡지를 무턱대고 구독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역사적인 내용을 먼저 살펴보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출판사가 '패션에 관한 최고의 교양서'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선택했다. 아름답고 기괴한 패션의 역사를 알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을 테고,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들과 자연스레 접목이 될 것이다. 그러면 각 사회와 패션에 대한 안목이 생기면서, 현재의 패션에 관해서도 나름의 관점을 확립할 수 있지 않을까?

 

 

 

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은이) | 한경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3-10-19

원제 1913 Der Sommer des Jahrhunderts (2012년) 

 

인류 역사를 보면, 특정한 시대에 특별한 위상을 가진 장소들이 있다. 17세기 초 카라치와 카라바조 시대의 로마나 18세기 말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베토벤 시대의 비엔나가 그렇다. 서양미술사에서 17세기 초의 로마는 굉장히 특별한 장소이고, 서양음악사에서 18세기 말의 비엔나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이와 비슷하게, 특정한 연도를 기준으로 특별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1787년 봄, 하이든보다 38살 어리고 모차르트보다는 14살 아래인 베토벤이 난생 처음 비엔나를 방문한다(서양음악사 최고의 두 작곡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만남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1956년 초, 재즈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이 만들어진다. 바로 위대한 두 천재 클리포드 브라운(트럼펫)과 소니 롤린스(색소폰)가 함께 녹음을 한 것이다(클리포드 브라운은 56년 6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접근법인가..

 

이 책은 1913년 유럽 사회의 풍경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나누어 그려나간다. <1913년 세기의 여름>에 등장하는 인물은 300명이 넘는다는데, 그 면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프란츠 마르크, 마르셀 뒤샹, 카지미르 말레비치, 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코코 샤넬..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1913년, 이들은 모든 문화 영역에서 사회적, 정신적 위기를 견디고 극복하며 모더니즘을 찬란하게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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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불평등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명백히 '불평등'하다. 그냥 막연히 주관적인 불만족의 차원에서 불평등한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실제로 포착하고 수량화하고 측정한 수치들의 결과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평등한 것이다. 이미 전세계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엄청난 양의 자료들을 축적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증거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전세계의 전문가를 동원해서 해마다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각종 통계 자료의 수치로도 객관적 불평등은 증명되고, 이러한 증거들은 단 10분 만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무수히 찾아낼 수 있다.

 

이제 이 세상의 불평등은 단순히 하나의 견해나 이론이 아니라, 분명히 실재하는 일종의 '사실'인 셈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나쁜 소식들이 날마다 줄을 잇고 있으며 상황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런 불평등은 5년 여 전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고 빈자들은 더 가난해졌다. 가난한 데다 미래도 없는 사람들과, 부유하고 낙천적이며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 전세계가 필사적으로 경제성장 근본주의를 밀고 나가고 있는데도, 빈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런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이것이 바로 지그문트 바우만이 학자적 양심을 걸고 모두에게 던지는 처절한 질문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은이) | 안규남 (옮긴이) | 동녘 | 2013-08-30
원제 Does the Richness of the Few Benefit Us All? (2013년)

 

 
<Does the Richness of the Few Benefit Us All?(소수의 부유함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가?)>은 2010년에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시대의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의 2013년작이다. 한국어판 제목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인데 불과 몇 달 만에 곧바로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걸 보면, 물론 책 자체가 얇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출판사가 보기에도 2013년의 한국 사회에 이것이 무척 중요한 질문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사회는 '양극화'가 극심하고, 또 올해에는 흔히 말하는 '갑을 문제'에도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했으니 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불평등의 심화는 사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전세계 인구 중 겨우 상위 20퍼센트가 생산된 재화의 90퍼센트를 소비하고 있는 반면 가장 가난한 20퍼센트는 불과 1퍼센트만을 소비하고 있을 정도로, 이것은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매우 심각한 화두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라는 질문이 한국인들에게 유독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최근 연이은 두 번의 정치적 선택 이후 한국에서 현재 급격한 소득 불균형과 중산층 붕괴가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최소한 4년 이상은 이런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10일 경향신문(상), 2012년 7월 23일 문화일보(중), 2013년 8월 20일 한겨레(하)]

우리는 오늘날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한가?
 
아무튼 불평등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적 현상인데,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새 책에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과연 우리는 정확히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먼저 정리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몇 가지 수치만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 헬싱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개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오늘날 전세계 인구 중에서 최상위 1% 부자들의 부의 총합은 하위 50%에 속한 사람들의 부의 총합보다 거의 2000배나 된다.

- 2011년에 미국의 억만장자들의 수는 1210명으로 당시까지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2007년에 3조 5000억 달러였던 그들의 전체 부는 2010년에는 4조 500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 약 30년 동안 하위 50% 미국인들의 평균 소득은 6퍼센트 증가한 반면, 상위 1%의 소득은 229퍼센트 증가했다.

- 1990년에는 영국 내 200대 부자의 목록에 들어가려면 재산이 5000만 파운드(한화 약 865억 원)정도 되어야 했는데, 2008년에는 이보다 무려 9배나 늘어난 4억 3000만 파운드(한화 약 7443억 원)로 급증했다.

- 전세계 최고 부자 1000명의 부를 모두 합하면 가장 가난한 25억 명의 부를 모두 합한 것의 거의 두 배가 되고, 전세계 최고 부자 20명의 재산 총합은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 총합과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인구 가운데 가장 빈곤한 10퍼센트의 사람들은 상시적인 기아 상태에 있다. 가장 부유한 10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의 가족들은 굶주림을 겪어본 일이 없다. 최하위 10퍼센트는 자녀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상위 10퍼센트는 자녀들이 이른바 '엇비슷한 친구들'이나 '더 나은 친구들'과만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수업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최하위 10퍼센트는 거의 언제나 사회보장도 없고 실업수당도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반면, 최상위 10퍼센트는 그런 수당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최하위 10퍼센트는 도시에서 날품팔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농촌에 사는 농부들이다. 그러나 상위 10퍼센트에게는 안정적인 월급이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최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거부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재산에서 나오는 이자 소득이 아니라 봉급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인류지리학자 Daniel Dorling <Injustice(한국판: 불의란 무엇인가, 2012)>,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재인용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으며 아직도 약 3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아동 노동·성 착취·강제 결혼 등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는데, 전세계 최고 부자 20명의 재산 총합이 가장 가난한 10억 명의 재산 총합과 같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지구상의 전체 인구 70억 명 중에 고작 20명의 재산이 말이다. 그리고 최근의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 이십 년 동안,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서는 상위 10%의 실질 가구소득이 최하위 10%의 실질 가구소득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며, 또 얼마나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짓인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런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우리의 선택, 우리의 생활방식, 우리의 삶의 궤적을 합작하는 자율적인 요소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운명'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격'이다. 운명은 현실적 선택지들의 범위를 결정하고, 인격은 그 범위 내에서 우리의 선택을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구조화된' 사회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구조화는 바로 확률의 조작으로 이루어져 있다(어떤 선택들의 확률은 훨씬 높이고, 어떤 선택들의 확률은 훨씬 낮추는 식으로 '보상'과 '처벌'의 배치를 재조정한다). 사회적 비용들은 개인의 저항을 매우 힘들게 만들고, 따라서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얌전히 굴복하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길을 시도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조정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이고 개인주의화된 소비자 사회의 주민인 우리가 인생이라는 게임의 전부 혹은 대부분에서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는 주사위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거나 혹은 이익을 얻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

 

다들 알다시피, 원래 운명은 우리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종류의 상황으로서 태어난 곳이나 부모의 사회적 위치, 태어난 시기처럼 우리의 행위와 관계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뜻한다. 방금 운명이 현실적 선택지들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태어난 아기와 짐바브웨에서 태어난 아기는 운명이 다르고 그래서 현실적 선택지들의 범위 또한 다르다. 그냥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다르다.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고, 짐바브웨는 세계 최빈국이다. 핀란드 아기는 전혀 생존의 위협 없이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짐바브웨 아기는 교육은 고사하고 아예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조차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가 흔히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그 선택 행위 자체의 확률마저 가진자들이 만든 사회가 조작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큰 선택일수록 선택될 확률이 낮은 건 당연하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현실적으로'라는 표현 역시 사회의 구조화가 반영된 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반해 행동하기가 극히 어렵다. 결국, 현실적인 선택지들의 범위뿐만 아니라 선택지들이 선택될 확률들의 분포 또한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영역에 속하는 셈이다.

[어떤 아이가 핀란드에서 태어나거나 또는 짐바브웨에서 태어나는 것은 본인의 노력 여하와 전혀 관계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구조화된 사회의 확률 조작으로 인해, 절대 다수의 핀란드 아이는 교육을 선택하게 되고 짐바브웨 아이는 생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며, 자연스러운 '운명'이다]

 

 
새빨간 거짓말, 그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이자 동료 학자 사이에서 즉각적인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 (the Guardian)"이라는 Zygmunt Bauman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불평등의 기반이 되는 '거짓' 전제들에 대한 반박이다. 다만, 불평등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역시 사회학자다. 단순히 경제학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아닌, 사회학적으로 쟁점을 정리하고 종합 분석하여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증거가 없이도 '명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암묵적 전제들 가운데 이 책에서 면밀히 검토"한 네 가지 거짓말은 다음과 같다.

 

1. 경제성장

2. 영구적으로 늘어나는 소비

3.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4. 경쟁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실'이 되어버린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어떤 식으로건 회피하지 않으며, 숙고나 의심·확인 없이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진 네 개의 쟁점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울러 가진자들이 경제적·사회적 조작을 통해 정치적으로 일반 대중의 믿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와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사회의 상층에 축적된 부는 다른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과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더 안전하고 낙관적이라고 느끼게 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하는 '낙수효과'를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낙수효과 역시 새빨간 거짓말인 셈이다. 그런데도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대로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부자들은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해진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 경악스러운 일은, 불평등의 직접적 피해자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건 소위 말하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수용'이고 어떻게 보면 일종의 '세뇌'일 수 있는데, 저자는 이 대목에서 쉽게 타협하지 않는 우리들 각자의 철저한 '사유'를 바라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으며 가슴 깊이 반성한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불평등에 관한 "이상과 현실, 말과 행위 사이의 간극"을 논하며 끝을 맺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연 이 사이의 간극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 스스로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신작을 마무리짓는다. 이 책은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 중에 한 명인 저자의 '정신적 모델'과 '현실에 대한 말의 영향력'을 논하고 있으며, 결국 맹목적인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바람에 따라 행위를 한다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아무리 희박해도 '현실적'이 되려고 계속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긴이가 말하듯이, 저자는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고 쉽게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비합리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논리가 초래하는 맹목으로부터, 타자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로부터 세계의 논리를 구원할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자유로울 운명을 타고 난 인간이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하나 이상의 길이 놓여 있을 것이며, 위에서 말했듯이 '선택'하는 동물의 자율적인 요소는 '운명'과 '인격'이다. 비록 이 세계에서 운명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격에 (지그문트 바우만이 바라기로는 철저하게 사유하는) 바로 그 인격을 통해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는 인격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격을 함양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격만으로 이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기부'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기존 사회의 '구조화'와 '세뇌'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불평등한 사회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을 보며 온갖 이야기를 하고 온갖 것을 읽고 생각하는 사람들, 불평등을 보며 음울하고 참혹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사람들, 파국이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 포기하지 않고 거듭해서 더욱 더 열심히 다른 삶의 방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 이들이 세뇌와 구조화를 거부하고, 철저한 사유를 하며 운명보다는 인격으로 선택을 하고,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각자가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 이를 테면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 1917~2013)이나 지그문트 바우만 같은 사람(온갖 이야기를 하는 사람), 또 끊임없이 <분노하라(Indignez Vous!, 2010)>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온갖 것을 읽고 생각하는 사람).. 바로 당신과 나.

 

"부자와 권력자에 대해서는 거의 숭배에 가까운 감탄을 표하면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은 경명하거나 무시하는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도덕 감정을 타락으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자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다."

-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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