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따뜻하다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쥘리 마로 지음, 정혜용 옮김 / 미메시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만큼이나 탁월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독특한 파란색 머리카락에 눈이 사로잡히고, 마음이 흔들리다, 인생을 걸어버리는 그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하는 비주얼에 마음이 동하지만 결말은 역시 영화 쪽이 좀더 취향이다. 클레망틴이 죽는 건 너무 비극적이잖아. 


 사랑밖에 세상을 구원할 수 없는데 사랑을 하는 게 왜 수치스럽냐고 반문하던 엠마의 물음과, 처음으로 클레망틴에게 사랑한단 진지하게 고백하는 침실 장면, 클레망틴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엠마가 바닷가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인상적으로 연출됐던, 엠마와 클레망틴의 새벽 아웃팅 장면. 벌거벗은 두 여자와 뜨악한 부모님이 자아내는 새벽의 소란은 아무런 소리 묘사 없이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게이 친구 발랑탱 너무 스윗해!

…널 사랑해, 열정적으로… 널 사랑해, 평화롭게…
아마도 이런 게 영원한 사랑이겠지. 이렇게 평화로움과 불길함이 뒤섞인 게.

엠마…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지. 사랑은 무척 추상적이고 감지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야. 사랑은 우리에게 달려있어. 그걸 느끼고 겪는 건 우리니까. 만약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잖아. 그러니 사랑도 그럴 수밖에 없어.

사랑은 불타오르고, 수명을 다하고, 산산조각나고, 우리를 조각내고, 다시 살아나… 그러니까 우리를 다시 살려내. 사랑은 아마도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를, 사랑은 우리를 영원하게 만들어…

우리가 깨워 불러낸 사랑은 우리의 죽음을 넘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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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자의 사랑
에릭 오르세나 지음, 양영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내게는 이름도 낯선 프랑스 작가 '에릭 오르세나'. 이틀 간격으로 이혼을 하게 된 아버지와 아들이 '불가능한 사랑의 유전자'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조상을 거슬러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스토리가 낯선 작가의 이름을 압도할 만큼 흥미로워 보였다. 위즈덤하우스 서평단을 신청한 뒤 운 좋게 당첨이 되었고 책을 받은 지 3일 만에 책을 읽었다. 초반부는 '구구절절한 설명으로 말장난을 치는 문체'가 와닿지 않아서 잘 읽히지 않았는데 소위 '쿠바에서 살아남기' 대목부터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뒷부분은 언제 다 읽어버렸는지 헷갈릴 정도로 쏜살같이 읽었다. 에릭 오르세나는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은 저서가 소개된 바 있고 <식민지 박람회>라는 소설로 공쿠르 상을 수상했으며 여전히 왕성한 저작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의 석학이라고 한다. 확실히 이름값 하는 작가의 유쾌한 소설이다. 


 책은 짧은 프롤로그와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주인공 에릭과 에릭의 아버지가 1975년 6월 말 각각 28살, 50대의 나이에 이틀 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랑의 유전자'에 관해 의문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1부에서는 주인공 에릭과 에릭 아버지의 캐릭터를 자세히 보여주며 이들이 이룩한 사랑의 실패를 다룬다. 독서를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뜨개질을 잘하는 할머니 밑에서 글쓰기 재능을 키운 에릭은 작가가 되었고 아이들 어머니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의 여자와 연애 이력을 가졌다. 클라크 게이블과 닮은 외모를 가진 에릭 아버지는 명망높은 엔지니어 집안에서 태어나 혼자 동떨어진 재능을 갖고 태어난 죄로 학업적, 사업적 실패를 겪었고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레이싱, 조정 등의 취미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에릭의 엄마를 포함해 다수의 여자들과 헤어졌고,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다. 이런 방식의 캐릭터 설명이 이어진 뒤, 서로의 연애 행적에 의문을 품은 부자(父子)가 '불가능한 사랑의 유전자'에 대해 해답을 구하던 도중 꺼낸 쿠바의 조상님 이야기가 1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2부는 '불가능한 사랑의 유전자'의 대를 끊기 위해 유년시절 지냈던 고향 숄레로 돌아간 아버지와,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내 이자벨과 함께 거짓 사랑 편지를 쓰는 에릭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가득하다. 마지막 3부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쿠바 조상님의 말년 이야기와, 에릭이 아버지의 장례식 때까지 했던 거짓 사랑 이야기를 대응시키며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 이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에릭의 독백과 더불어.


 이 책은 에릭 오르세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 '에릭 아르누'의 이름, 직업, 사는 곳, 형제 관계, 필명의 유래 등 캐릭터를 이루는 디테일 대부분이 작가 에릭 오르세나의 것과 닮아 있다. 허나 어디까지 작가의 실제 인생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파악하기 힘들 만큼 소설은 수많은 디테일을 열거한다. 주인공의 삶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삶,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아버지가 들려주는 증, 증, 증조 할아버지 이야기들은 모두 그럴 듯한 구색을 갖춘 채 봇물처럼 쏟아져나와 특색을 보인다. 그리고 특색을 이루는 '디테일들'이 유머로 작용해 독자의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디테일들'은 중요도나 정보 제공의 측면에선 하나같이 하잘 것 없는, 시쳇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이다. 그러나 특색 있는 TMI로 가득찬 이 장편 소설과, 에릭이 아버지에게 거짓 편지로 써낸 사랑 이야기 간의 공통점을 독자가 깨닫게 되는 순간, 독자는 종국에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공통점의 단서는, 아버지의 애인 프랑수아즈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에릭에게 하는 말 속에 있다. 프랑수아즈는 에릭이 거짓으로 편지를 작성해 보내는 걸 아버지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덕분에 나도 아주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고백하건대, 부친은 꽤 일찍부터 아들이 보낸 편지를 나한테 읽어줬거든. 소설가라서 그런지 자넨 정말로 사랑 얘기를 잘도 꾸며대더라고! 시시콜콜한 디테일도 맛깔스럽고……." 여전히 사랑에 실패하고 있는 에릭과 그런 에릭의 모습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줬던 아버지의 인생은 어쨌든 평화롭고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단순히 사랑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럴 듯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즐거웠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럴 듯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 '쿠바 조상님'을 빼놓을 수 없다. '쿠바 조상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머다. 아버지가 에릭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알려준 쿠바 조상님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쿠바로 이주한 이들 부자(父子)의 조상 아오우구스틴이 주인공이다. 양복쟁이 아오우구스틴이 쿠바 친구들의 장난으로 흉쇄유돌근에 병이 있다고 진단 받는 장면부터, 카페 '콘솔라시온' 테라스에 매일 두시간 씩 머무는 처방을 받아 쿠바 미인들을 흘끔흘끔 훔쳐보는 스케쥴을 갖게 됐다는 전개, 아오우구스틴의 아내(에릭의 증, 증, 증조 할머니)가 아오우구스틴이 테라스에 머무는 시간동안 그의 피아노 선생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막장 절정까지 도통 예측불가능한 일들 투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정을 깨뜨리지 않았다며 다소 어이없게 맞이하는 조상님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불가능한 사랑의 유전자'이든 '연적의 피아노에 얽힌 사연'이든 애초부터 '이야기' 그 자체가 중요한 쟁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에릭 오르세나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쿠바 조상의 이야기와, 에릭이 지어낸 가짜 사랑 이야기와, 작가 본인이 지어낸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맛깔스러운 이야기가 불러오는 따뜻한 힘'을 역설한다. 결국 작가는 그저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창작에 대한 작가의 털털한 가치관이 깊이 느껴져 참 마음에 들었다.


 소설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문장으로 가득 찬 표지도 깔끔하니 예쁘지만, 표지를 벗기면 더 크게 에곤 쉴레의 그림이 드러나는 책 앞면 디자인이 개인적으로 참 예쁘다. 책장 안에 넣어두고 있다가 간간히 표지를 벗기고 책 안을 들여다봐야겠다. 위즈덤하우스의 출판사 도장이 찍힌 부분도 소장 가치가 느껴져 기쁜 마음에 사진으로 남겨둔다. 에릭 오르세나가 필명을 따온 소설, 줄리앙 그라크의 <시르트의 바닷가>도 어서 읽어보고 싶다.


"글쓰기와 뜨개질은 쓰임새도 동일하단다. 둘 다 사람들한테 온기를 주는 행위니까. 언젠가 네가 처음으로 낸 책을 서점 진열장에서 보게 될 때, 잊지 말고 할머니한테 감사드려야 한다."
"만일 그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일이라면 어쩌죠?"
"그래도 할머니한테 감사해야지!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보다 더욱더 감사를 받아야해."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오. 무슨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계속 하라는 말. 자네 거짓말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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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60822_sff

처음 코니 윌리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를 알게 됐던 알라딘 이벤트. 기억해두기 위해 링크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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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를 본 지 꽤 되었는데, 읽은 지 근 6개월 만에 독파했다. 그만큼 자주 지지부진해져 힘들게 읽었던 책이다. 아무래도 결말을 알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하지만 루가 윌에게 처음 면도를 해주는 장면, 윌이 루 생일선물로 꿀벌 스타킹을 주는 장면, 윌의 전 여자친구 결혼식 습격 장면이나 휴가를 떠난 곳에서 천둥을 바라보는 장면 등 좋아하는 장면들에선 푹 빠져서 읽곤 했다.


 영화를 볼 때는 윌이 루에게 대뜸 유산을 남기고 떠나는 결말에 대해 황당하다 못해 크 무진장 부럽다! 느꼈지만, 책을 통해 더 세세한 사정들, 감정들을 목도하게 되니 이건 이거대로 좋은 결말이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됐다. 특히 윌이 루에게 쓴 마지막 편지가 나를 굉장히 설득시키더라.


 읽는 내내, 과거 '건강한 육체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사랑했던 윌이 '휠체어로 규정된' 현재의 스스로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과 그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존엄사를 다뤘던 여러 영화들도 재차 떠올리게 됐는데, 난 그때나 지금이나 존엄사를 희망하는 윌과 같은 사람들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내가 지금 당장 손가락 하나가 없어져도, 귀 한 쪽이 없어져도 겪는 수치심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텐데 윌은 오죽했을까. 경마장 장면에서와 같이, 네이선과 루의 도움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흙탕물에 질척이는 휠체어 바퀴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그 무력감은 얼마나 끔찍한 것일까. 윌과 같은 사람에게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인내였을 거고, 삶이 그 힘든 인내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분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책을 보고 나니 영화가 꽤 잘 만들어졌던 것 같다. 사운드 트랙도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기회 되면 영화도 다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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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장에 있어서 구매하기가 망설여지거나, 단지 표지 때문에 살까 말까 고민 중인 리커버 특별판 책들. 전자의 이유 때문에 사지 못하고 있는 책들이 많다. 특히 <멋진 신세계>의 표지는 정말 소장하고 싶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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