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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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사이다 같은 음료),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를 다룬 책. 당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고 좋아했던 간식 위주로 선정했는데, ‘달콤한 맛‘ ’부드러운 맛‘을 대체한 새로운 문명 디저트가 전통 간식 한과, 약과, 식혜 등을 밀어냈다는 역사적 포인트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해당 디저트를 언급한 소설 문장 및 신문 기사를 방대하게 인용하고 광고, 삽화 등 그림 도판을 두루 수록해서 굉장히 알찬 책이라고 느끼며 읽었다. 참고로 디저트의 어원은 프랑스어 ’desservir’. 식사 후에 식탁을 정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100년 전 디저트를 다룬 이 책은 누가 더 많이 먹는지를 겨루거나 맛집 찾기에 몰두하는 데서 벗어나 먹는다는 행위의 온전한 의미를 더듬어보려는 작업의 하나다. (들어가며)

〰이태준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다방을 즐겨 찾는 이들은 ‘특별한 사무적 소속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억압 아래에서 변변한 직장을 가지지도 못했고 또 가질 가능성도 없는 인물들이었다.

이 책을 읽을 땐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부터 먼저 골라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 로맨스의 상징이었던 초콜릿부터 고학생들이 돈을 벌기 위해 주로 팔았다는 만주(만두), 일본식 시럽 빙수까지. 특히 빙수에 관해 읽을 때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는데, ‘빙수당 당수‘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단것을 좋아했다는 어린이날 창시자 방정환 에피소드가 먼저 생각난다. 냉면도 좋아했던 방정환은 냉면을 먹을 때 냉면에 설탕 한 봉지(…)를 부어 먹었다 한다. 냉면을 가장한 설탕 국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단맛을 좋아했던 것이 동심을 유지한 비법이었나…!😇

〰1929년 8월 잡지 〈별건곤〉에 실은 “빙수”라는 글에서 방정환은 빙수를 먹을 때 오렌지나 바나나 시럽을 뿌려서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빙수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시럽이라고 한다. 당시의 빙수를 먹어보지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빙수당 당수의 말이니 신빙성이 높을 것이다.

연달아 소개되는 신문 소설 ‘선풍시대’의 한 장면도 인상 깊었다.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한 여주인공이 입맛을 잃은 채 병원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빙수점에서 홀린듯이 얼음 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상쾌해짐을 느낀다. ‘새밝안 이찌코를 보기 조케 뿌려논 빙수를 명순이는 정신업시 바라보앗다. 10전이면 한 잔을 사서 소원대로 먹을 수 잇겟지만 여자의 체면으로 참아 들어갈 수가 업섯다.‘ 여자 혼자 빙수점에 들어가는 것이 당시엔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빙수도 혼자 먹지 못한 채 답답한 가슴을 홀로 쓸어내려야 했을 명순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며…(망할 구시대 문화ㅡㅡ) 올 여름엔 명순 대신 망원 토마토빙수와 설빙 신메뉴를 맘껏 조지리라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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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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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선주민 다리아가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질문할 때 이 책의 저자 나스타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다가가서 붙들리고 멀어지거나 도망가요. 나는 돌아와서 붙잡고 번역해요. 다른 자들에게서 온 것을, 내 몸을 통과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을.” 결국 인류학은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인간의 몸으로 통과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인류학자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실천할 만한 작가 나스타샤 마르탱이 곰의 습격을 받고 죽음의 위기를 겪은 뒤 벌어진 삶을 서술하고 있다. 


나스타샤 마르탱은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서 선주민인 에벤인에 대해 연구하던 중 곰과 만났다. 곰은 이빨을 드러냈고 나스타샤도 곰을 쫓기 위해 위협했는데, 일순 곰이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을 물었다. 나스타샤는 곰에게 얼음도끼를 휘둘러 자신의 턱을 부순 주둥아리에서 벗어난다. 얼굴을 바꾸고 삶을 재구성하게 만든 끔찍한 사건을 가리켜 나스타샤는 ‘현실과 신화의 만남, 과거의 현재의 만남, 꿈과 실재의 만남’이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미에드카Miedka가 되었기 때문이다. 에벤어에서 미에드카는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에벤인들은 미에드카가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곰이라 믿었다. 그리고 곰이 평생 미에드카를 따라다닐 것이라고 믿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처럼 나스타샤는 꿈에서 곰을 보고, 곰과의 순간을 자꾸 되돌아 보고, 곰의 영혼을 느낀다.


〰내 머리는 마치 오래 사용한 공처럼 붉게 부은 흉터와 실밥 자국으로 가득하고, 나는 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예전 모습과 너무도 달라졌지만, 내 영혼의 기질을 이토록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다. 내 영혼은 내 몸에 각인되었고, 그것의 구조는 통행과 귀환을 동시에 반영한다.


특히 나스타샤는 제 턱이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료 냉전 현장이 되었을 때, 프랑스 지방 병원 사이의 기싸움으로 변질되었을 때 결심한다. 다시 에벤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피부, 머리카락, 이 세 개, 뼛조각 그리고 신경절을 잃게 만든 캄차카 반도의 숲으로 돌아가야 유일한 활로를 찾을 것이라고. 얼굴이 달라졌다고 흠칫하며 인사하기를 주저하는 프랑스 문명의 마을에선 우울하기만 할 거라고.


나스타샤는 ‘서구의 의사가 시베리아의 곰과 대화하는 영역’이 되어버린 몸을 ‘융합’의 지점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운명으로 해석한다. 해석의 실마리는 에벤인 바시아가 한 말에 있다. “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참지 못해. 그 안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이야.” 곰이 선물을 주어 널 살렸다는 다리아의 위로도 견디기 힘들었던 나스타샤는 자신을 가리키는 또 다른 에벤어 이름 ‘마추카’로서 깨닫는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내 눈동자를 통해 곰이 ‘그의 인간적인 면, 그 너머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라고, 나스타샤가 순순히 수긍할 때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상징하던 ‘세상의 경계는 파열’하게 된다. 이는 ‘더 멀리 함께 살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새로운 재료로 다른 경계를 재건설’하는 단초가 된다. 지금 우리가 자연과 동물을 바라볼 때 꼭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친구 이반이 순록 오십여 마리를 무참히 도축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스타샤는 ‘근대성의 일부가 되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라고 적었다. 나스타샤는 곰의 주둥아리에서 돌아오며 피를 흘렸다. 끔직한 피를 흘린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수수께끼 앞에 서 있다. 캄차카 반도를 떠나기 전, 나스타샤는 타자성의 깊은 어둠을 직면하고 에벤인 다리아처럼 삶의 불확실성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가오는 것들’을 근대적인 문체로 적어내려가던 인류학자가 감동을 받는 마지막 말에 나 역시 속절없이 감동받았다.


〰이것이 나의 해방이다. 삶이 주는 한 가지 약속. 불확실성.


메타포와 환상이 가득한 에세이는 학자가 쓴 티가 역력했지만, 그만큼 인문학 감성이 충만하고 타자성을 매력 있게 아우르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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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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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남서울미술관에서 ’건축의 장면‘이라는 전시를 보다가 친구들과 나는 문득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왜 우리 나라는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고 지역 특색을 유지하려 하지 않을까?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다가 챗지피티에게 바로 물어봤다. 커서가 깜박이더니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만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개발과 투자 때문이란다. 또한 구축을 어렵게 유지보수하기보다 개발 후 지어진 신축 건물을 선호하는 풍조 때문이라 했다.

나는 그때 한국인으로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마다 느낀 ‘조망이 재미없고 천편일률적인 환경‘이 슬펐다. 이 책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을 읽고 나니 그때의 안타까움과 허탈함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고 인간중심적이었는지, 가슴이 아플 정도로 깨우치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투자 가치라는 숫자 계산은 인간이 만든 인간의 건물 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서 같이 살고 있는 생태계 또한 거침 없이 무너뜨리고 있던 것이다. 책은 부제대로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한겨레21>에서 ‘나무전상서‘라는 제목으로 1년 10개월간 연재된 기사들을 엮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보호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책에 따르면, 울릉도 도동에 있는 향나무다. 2000~2500살로 추정된다. 검색했을 때 먼저 손꼽히는 나무들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나 부산시 기장읍에 사는 느티나무. 각각 수령이 1500년, 1300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한다. 책에서 처음 소개하는 안동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됐다. 700년 넘게 살았는데 임하댐 건설 문제 때문에 1990년 27억에 가까운 돈을 들여 상식(올려서 옮겨 심음)된 후로 혼자 서 있지 못한 채 사각 철골에 몸을 기대고 있다. 상식할 때 사람이 들어 올리기 위해 나무의 굵은 뿌리가 잘렸고 새로 난 뿌리의 지지력은 아직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 우여곡절의 시간을 지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처럼 버티고 있는 안동 은행나무의 사연을 듣고 나니, 이 나무가 양평의 은행나무처럼 1000살을 넘겨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국의 산림청을 비롯해 정부 산하 공원 관리소들은 생육 여건을 좋게 만든다, 인명 사고를 예방한다, 소음을 만드는 백로의 서식처나 생태교란종을 없애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 갖은 핑계를 대며 주기적인 강전정(가지치기)와 벌목을 기조로 하고 있다. 책에는 인간이 가늠도 하지 못하는 세월을 지내온 나무들이 너무 쉽게 사유화되고, 재개발 때문에 잘리거나 옮겨 심어지고, 트레일러 혹은 차도/보도블록 크기에 맞도록 강제되어 기형이 되고, 인기종에 밀려 온전하게 생육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례들이 이어진다. 혹은 고양 산황산의 골프장 개발, 가덕도 동백림 터널의 신공항 개항 계획, 우범기 시장의 전주천 프로젝트 등 존폐의 위기 앞에서 동식물의 서식지 전체가 풍전등화인 상황이다. 보고 있으면 인간의 욕심이 뭔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났다. 내 집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는 일이 가장 쉽게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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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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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은 연인을 따라 뉴욕에 왔다가 사랑을 잃고 도시의 외로움에 천착한다. 도시의 고독이 만든 예술, 예술이 바라본 도시의 고독에서 공통점을 찾고 위로를 얻는 그녀의 글은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들며 나의 고독 또한 들여다보게 한다. 그녀는 다음 예술가들을 이렇게 칭했다. 앨프리드 히치콕, 낸 골딘, 빌리 홀리데이, 장 미셸 바스키아,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헨리 다거,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 외로운 도시의 기록자들.

〰양날의 고독, 가까움에 대한 공포와 고립의 공포가 맞부딪친다.

도시의 인간은 친밀한 관계를 요구하지만, 어느 정도 친밀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고민이 길어지면 고독으로 이어지고, 고독으로 고립된 인간일수록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사회적 능력이 퇴화한다.(고 올리비아 랭이 인용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렇듯 고독/고립으로 퇴화한 인간을 도시의 이웃이 지켜보고 있다. 이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만드는 이의 영혼과 내면의 이야기로 빚어질 수밖에 없지만, 결국 공적으로 평가당하고 감상 당하는 물체에 불과하다는 모순적 속성과 닮았다. 그래서 올리비아 랭은 본능적으로 예술에서 아픔을 자주 달랬나 보다.

몇 주 전, 호퍼의 그림에 관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올리비아 랭이 호퍼의 유명 그림 속 인물을 파헤치고 호퍼의 인생사를 읊어주는 챕터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입구 없는 바에 갇힌 채 노출된 인물들처럼 호퍼의 인생에 갇혔던 또 다룬 예술가이자 아내 조. 자신의 작품 주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을 아꼈던 호퍼.

〰그는 고독을 대도시로 표현하며,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수많은 영혼이 공유하고 머무는 민주적인 장소로서의 고독을 그리지 않았던가?

호퍼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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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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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의 영화 <고백>을 인상 깊게 보고 원작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 소설을 읽는 건 영화에서 느낀 축축하고 음울한 인상을 확장하기에 좋은 경험이었다. 그래서 여지껏 미나토 가나에를 어둠의 스릴러만 쓰는 작가인 줄 알고 있다가, 이번 신간을 읽고 꽤나 놀랐다. 제목과 표지가 주는 첫느낌 그대로 ‘본격 등산! 힐링! 드라마!’가 주제인 연작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실제 작가의 취미가 등산이고, 《여자들의 등산일기》에 이어 두 번째로 쓰는 등산 주제의 소설이라고 한다.

〰계속하길 잘했어. 내가 선택한 산에 후회는 없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산에 오른다. 남편이 생전 가게에 걸어 놓았던 사진 속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서, 사라진 친구가 남겨둔 일정표대로 산에 올라 친구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서(그리고 그 친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산악 가이드의 꿈을 반대하는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서, 지금은 세상을 떠난 너희 아빠에게서 프로포즈 받은 장소가 이 산이었다고 딸에게 고백하기 위해서, 성차별을 딛고 화과자 가게의 장인 자격을 물려 받았지만 팬데믹으로 사업이 어려운 와중에 그럼에도 위기를 돌파해보자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무턱대고 산에 올랐다가 가슴 벅찬 풍경을 선물처럼 마주친 경험이 있는 터라, 등산을 통해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등산으로 유대감을 쌓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친구의 등만 좇아 무작정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헉헉 거친 호흡 소리도 잊고 눈썹에 묻은 이슬도 못 느낀 채 정상에 도착하곤 했다. 저질체력이지만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과 함께 정상에서 친구와 먹는 과자와 간식은 늘 꿀맛이었고, 그 순간 만큼은 정상에 선 모든 이들과 가는 실로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물론 이 기억들이 열 손가락 안에 꼽는 등산러…)

요즘 MZ세대의 대표 취미 중 하나가 등산인 만큼 시대를 반영한 힐링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일본 등산을 소재로 한 만큼 일본의 낯선 지명과 산봉우리 이름이 왕왕 등장한다는 것. 독서 집중력이 가끔 흐트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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