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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선주민 다리아가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질문할 때 이 책의 저자 나스타샤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다가가서 붙들리고 멀어지거나 도망가요. 나는 돌아와서 붙잡고 번역해요. 다른 자들에게서 온 것을, 내 몸을 통과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을.” 결국 인류학은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인간의 몸으로 통과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자신이 인류학자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실천할 만한 작가 나스타샤 마르탱이 곰의 습격을 받고 죽음의 위기를 겪은 뒤 벌어진 삶을 서술하고 있다.
나스타샤 마르탱은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에서 선주민인 에벤인에 대해 연구하던 중 곰과 만났다. 곰은 이빨을 드러냈고 나스타샤도 곰을 쫓기 위해 위협했는데, 일순 곰이 달려들어 그녀의 얼굴을 물었다. 나스타샤는 곰에게 얼음도끼를 휘둘러 자신의 턱을 부순 주둥아리에서 벗어난다. 얼굴을 바꾸고 삶을 재구성하게 만든 끔찍한 사건을 가리켜 나스타샤는 ‘현실과 신화의 만남, 과거의 현재의 만남, 꿈과 실재의 만남’이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미에드카Miedka가 되었기 때문이다. 에벤어에서 미에드카는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에벤인들은 미에드카가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곰이라 믿었다. 그리고 곰이 평생 미에드카를 따라다닐 것이라고 믿어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처럼 나스타샤는 꿈에서 곰을 보고, 곰과의 순간을 자꾸 되돌아 보고, 곰의 영혼을 느낀다.
〰내 머리는 마치 오래 사용한 공처럼 붉게 부은 흉터와 실밥 자국으로 가득하고, 나는 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예전 모습과 너무도 달라졌지만, 내 영혼의 기질을 이토록 가깝게 느껴본 적이 없다. 내 영혼은 내 몸에 각인되었고, 그것의 구조는 통행과 귀환을 동시에 반영한다.
특히 나스타샤는 제 턱이 프랑스와 러시아의 의료 냉전 현장이 되었을 때, 프랑스 지방 병원 사이의 기싸움으로 변질되었을 때 결심한다. 다시 에벤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피부, 머리카락, 이 세 개, 뼛조각 그리고 신경절을 잃게 만든 캄차카 반도의 숲으로 돌아가야 유일한 활로를 찾을 것이라고. 얼굴이 달라졌다고 흠칫하며 인사하기를 주저하는 프랑스 문명의 마을에선 우울하기만 할 거라고.
나스타샤는 ‘서구의 의사가 시베리아의 곰과 대화하는 영역’이 되어버린 몸을 ‘융합’의 지점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운명으로 해석한다. 해석의 실마리는 에벤인 바시아가 한 말에 있다. “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참지 못해. 그 안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이야.” 곰이 선물을 주어 널 살렸다는 다리아의 위로도 견디기 힘들었던 나스타샤는 자신을 가리키는 또 다른 에벤어 이름 ‘마추카’로서 깨닫는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내 눈동자를 통해 곰이 ‘그의 인간적인 면, 그 너머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라고, 나스타샤가 순순히 수긍할 때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상징하던 ‘세상의 경계는 파열’하게 된다. 이는 ‘더 멀리 함께 살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새로운 재료로 다른 경계를 재건설’하는 단초가 된다. 지금 우리가 자연과 동물을 바라볼 때 꼭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친구 이반이 순록 오십여 마리를 무참히 도축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나스타샤는 ‘근대성의 일부가 되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라고 적었다. 나스타샤는 곰의 주둥아리에서 돌아오며 피를 흘렸다. 끔직한 피를 흘린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삶의 수수께끼 앞에 서 있다. 캄차카 반도를 떠나기 전, 나스타샤는 타자성의 깊은 어둠을 직면하고 에벤인 다리아처럼 삶의 불확실성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다가오는 것들’을 근대적인 문체로 적어내려가던 인류학자가 감동을 받는 마지막 말에 나 역시 속절없이 감동받았다.
〰이것이 나의 해방이다. 삶이 주는 한 가지 약속. 불확실성.
메타포와 환상이 가득한 에세이는 학자가 쓴 티가 역력했지만, 그만큼 인문학 감성이 충만하고 타자성을 매력 있게 아우르는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