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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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북살롱에 뽑혀서 발대식도 하고 마라탕도 먹고 왔다! 발대식 때 받은 책 《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는 소매업과 상품기획을 연구하는 저자가 미국의 작은 가게를 들여다보며 그들의 생존 전략과 특징을 설명하는 경제경영서다. 뒤늦게 택배로 받은 《세상 친절한 경제 상식》과 함께 미래북살롱 활동 첫 도서로 읽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주로 단골로 갔던 카페나 인상적이었던 문화 공간, 레스토랑, 마트, 서점 등 다양한 ‘작은 가게’들이 등장한다. 이 공간들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 단골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지속해왔는지 분석하기에 앞서 저자의 진솔한 경험이 에세이처럼 서술되기 때문에 금세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나도 가보고 싶다고 느낀 가게도 여럿 있었다. 이를 테면, 저자의 아픈 몸을 소화시킨 쌀국숫집 ‘저스트포’, 40년 동안 소도시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잡아온 인디 가수들의 성지 ‘블루 노트’, 아는 사람만 아는 케이크집 ‘빌라베체 케이크’, 쾌활한 여주인이 있는 ‘지나유의 아시안 비스트로’가 그랬다.(음식점이 많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다^^...) 특히, 동네 서점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에덴스에 위치한 애비드 서점의 시 낭송회나 컬럼비아 다운타운의 중고 서점 옐로우 독의 이야기 시간에는 꼭 한 번 참여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저자는 작은 가게의 유리한 점 중 하나가 ‘제3의 장소’로써 기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3의 장소’란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본인의 저서 《아주 좋은 공간》에서 강조한 개념으로, ‘집과 직장 외에 가장 친밀하고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즉, 나에게 있어 소탈하고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저자가 소개한 작고 오래된 가게들은 나무 코인이나 포인트 카드 같은 로열티 프로그램, 고객의 대소사를 파악하는 세심함으로 단골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제3의 장소가 되어주었다. 그렇기에 대형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나에게도 ‘제3의 장소’가 있다. 바로 집 근처 1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한 ‘마을상점 생활관’이라는 북카페이다. 생활관은 조용하고 친절한 부부가 운영하고 있고, 소소라는 강아지가 직원으로 일한다.(?) 커피 및 음료를 판매하고, 책도 판매하고 이웃들의 물건을 위탁판매 해주기도 한다. 또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거나, 안산의 인디 가수들의 공연을 진행하는 등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봐왔던 젊고 신선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북카페가 집 근처에 생겼단 걸 알았을 때 그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무엇보다 생활관은 펫 프렌들리 카페라서, 강아지를 산책하다가 목이 마를 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바로 저번 주 토요일에도 생활관에서 미래북살롱 책을 읽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강아지 사진을 찍다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관계 맺음. 결국, 우리가 거대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에게 있다. 친밀한 관계가 그 가게를 궁금하게 하고, 그 가게를 찾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면서 매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가게들 같은, 생활관 같은 가게들이 집 근처에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책을 읽는 내내 사진이 없어서 아쉬웠다. 저자가 사진을 따로 기록해두지 않았거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책 속에 사진을 넣지 않은 듯하다. 일러스트로는 설명이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가게들의 이미지를 구글링해봐야 겠다.(칼디스의 나무 코인 실물 보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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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키우는 예쁜 누나 - 올려놓고 바라보면 무럭무럭 잘 크는 트렌디한 다육 생활
톤웬 존스 지음, 한성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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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한 뒤 이틀 째 되던 날, 회사 행사 때문에 꽃가게에 들렀다. 그때 실장님께서 입사 동기와 나에게 다육이를 사주셨다. 나는 황금술통 선인장을 골랐는데, 내 이름을 따서 '황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황설이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 (T_T) 죄책감으로 집어들고 내내 황설이에게 미안해하며 읽었던 책 《선인장 키우는 예쁜 누나》를 소개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패러디한 제목과 감각적인 색깔의 양장 표지가 첫인상부터 눈에 띄는 책이다.


 쌤앤파커스 리뷰단 3기를 통해서 읽게 된 이번 책은 일러스트레이터 톤웬 존스가 50가지 다육식물을 일러스트로 소개한 실용서다. 가지각색의 다육식물들이 어떤 별난 특성을 지녔는지, 어떻게 가꾸고 스타일링하는 것이 좋을지 설명하고 있다. 톤웬 존스는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있는 마조렐 정원에서 선인장을 만나 지친 마음을 위로 받은 뒤 다육식물에 빠졌고, 결혼할 때 식장을 선인장으로 꾸미고 다육식물로 부케를 만들 만큼 다육식물을 사랑하는 작가라고 한다.


 난 여태 다육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다. 내 손 안에 들어온 다육이들은 늘 얼마 못가 시름시름 앓다 죽기 일쑤였다. 나처럼 저승의 손길을 가진 사람들도 무리 없이 키울 수 있는 몇 개의 다육식물을 톤웬 존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성미인, 조비바르바 글로비페라, 낚싯바늘선인장. 그리고 이부인이라는 다육식물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사무실의 책상을 좋아한다고 했다.


​ 다육이의 특성을 설명한 문장들이 참 귀엽다. 이를 테면, 십이지권 하워르티아가 '아이돌 센터' 같다고 하거나, '불독이나 샤페를 키우고 싶었지만 키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부다템플이라고 하는 식이다. 그밖에도 재밌는 설명들이 많으니 평소 관심있던 다육식물은 어떻게 그려졌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 인상 깊었던 사진들 몇 개를 아래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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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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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앤파커스 리뷰단 3기를 통해 읽게 된 6월의 두 번째 책. 비주얼 머천다이저(이하 VMD)로 일해온 이경미, 정은아 저자가 '취향 저격의 공간'을 만들려면 어떻게 공간을 기획하고 꾸며야 하는지 디스플레이부터 외관 디자인, 소품, 향기, 음악, 조명, 촉감, 배치, 동선, 스태프 등 사소한 디테일을 설명한다. 그리고 공간 브랜딩 체크리스트를 친절하게 정리해준다. 사진으로 공간을 기억하고 사진을 위한 공간을 찾아헤매는 SNS 시대에 딱 걸맞는 책,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다.


 책은 공간 디자인 항목을 총 3가지로 구분하여 장을 나눴다. 1장에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영역인 시각적 요소를 다루고, 2장에서는 보이진 않지만 소비자의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3장에서는 새로운 비주얼과 진화된 공간 브랜딩으로 사랑받았던 브랜드와 공간을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그 이유를 밝힌다.


 우선, 저자들의 직업이 낯설고 독특하다고 느꼈다.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 저자의 에필로그에 따르면, 마케팅실에서 해왔던 업무들이 마케터, 광고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웹디자이너 등 세분화되면서 전문화될 때 브랜드의 비주얼 및 판매 활성화를 위한 스타일링과 디스플레이 그리고 브랜드 공간 콘텐츠 구성을 기획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즉, 오프라인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어필하는 일이 저자들의 몫.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혁신 이후,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자인이 강조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비주얼' 파트가 생겨났다고 하는데, 공간 브랜딩의 앞선 역사를 슬쩍 듣는 재미가 있어 에필로그까지 쉴틈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어서, 내가 가봤던 장소들을 책을 통해 다시 추억팔이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독특한 입구를 설명할 때 등장한 자판기 커피나 장프리고, 전시 갤러리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경험을 나누는 인덱스 서점과 땡스북스, 1970년대 신발공장의 모습을 업사이클링한 합정 카페 앤트러사이트, 향기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러쉬와 교보문고 등이 그랬다. 내 인스타그램 속 프레임에 곱게 놓인 공간들이 그 당시 내 눈에 그리고 내 친구들 눈에 왜 예뻐보였던 건지, 왜 사진으로 남기고팠던 건지 그 이유를 속시원히 지식으로 얻었다. 끌리는 비주얼과 촉각과 후각, 미각까지 사로잡는 특정 소품, 그리고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는 복합문화살롱의 역할까지! 이제 공간은 스마트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다각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다!


​ 마지막 패키징까지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다. 따라서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숍 '슬로우 하우스'가 자연주의적 공간 콘셉트에 걸맞게 나뭇잎 패키징을 선보인단 건 새삼 신선했다. 도쿄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들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일부러 찾아가 보고픈 공간들이 더 생겼다. 1970년대 초 정미소로 사용되던 공간을 2011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인더스트리얼 무드의 시초가 된 성수동 카페 '대림창고', 전문 큐레이터가 직접 전시를 기획한다는 성수동의 카페 '월서울', 컬러를 테마로 내부 디스플레이를 정기적으로 교체한다는 성수동 가죽 잡화 브랜드 '페넥', 작은 공간을 나눠 소비자의 동선을 탁월하게 디자인한 삼각형 제주도 서점 '만춘서점'. 이젠 플리마켓(기존에 운영 중이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태)과 팝업스토어(공간을 벗어나 한시적으로 외부 공간에서 이루어지거나, 공간 안에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각인되는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게 되었으니 작고 소중한 부스들과 디스플레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더 세심하게 여러 번 살펴보게 될 듯하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보(V)이는 모(M)든 것을 디(D)자인 하는 사람'으로 20년 간 일해오면서 특히 2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는 '콜라보레이션'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공급자 위주의 방식에서 소비자 관점의 방식으로 콘텐츠와 공간이 전환되고 있다는 점.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맞춤화되는 공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디자인 감각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선보일 공간들도 무궁무진하다. 소비자로서 앞으로 내가 겪을 공간들이 벌써 기대가 되고 설렜다. 또 어떤 공간들이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될까. 



공간의 본질은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있습니다.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가?‘가 메시지이고, 콘셉트이며, 브랜딩인 것입니 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을 객관화하는 과정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공간에 담는 것입니다. 이는 거대한 기업이나 프랜차이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골목 어딘가에 있을 작은 가게에도 필요한 것이 브랜딩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즈노 마나부가 말했듯이 브랜딩을 위해서는 ‘보이는 방식을 컨트롤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소품 하나가 마지막 인상을 결정짓습니다. 제가 아주 예전에 방문했던 일본의 한 작은 중고서점 입구 테이블에는 작은 명함 도장과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곳의 잔상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작은 매장을 둘러보고 나가면서 그곳의 명함 도장을 직접 종이에 찍어 가지고 나가니 그곳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함께 공간이 저를 배웅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명함은 소소한 행복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렇듯 작은 소품들을 통한 경험이 바로 공간을 구성하는 디테일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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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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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역시 여름에는 가볍게 쉽게 금방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이 제격이다. 습한 기운을 몰아내는 밤바람을 맞으며, 이따금씩 팔과 허벅지에 달라붙는 벌레들을 때려죽이며 이 소설집을 뚝딱 읽었다. 미스터리 소설집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후루룩 책장이 넘어갔던 구라치 준의 소설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나는 작정단3기 활동 덕분에 읽게 되었다. 처음 읽는 구라치 준의 소설이자, 제임스 엘로이의 논픽션 《내 어둠의 근원》 이후 오랜만에 읽는 으스스한 장르의 책이다.


 책은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명 작품을 패러디한 단편으로 시작해 살인 사건을 추리하는 본격 미스터리, 고양이가 힌트를 던져주는 일상 미스터리, 부드러운 두부를 흉기로 의심하는 바카미스(일본어 '바보'와 '미스터리'를 합친 말로 황당한 트릭을 쓰는 미스터리 장르를 일컫는다.)가 섞여 있다. 아래는 단편 각각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해보았다.



 <ABC 살인>

 빚에 몰린 주인공이 부모님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도가야'에 사는 동생 '다카시'를 죽이려 묻지마 살인을 이니셜 살인으로 탈바꿈한다. 'A' 지역에 사는 'A', 'B' 지역에 사는 'B', 그리고 'D'로 이어지는 동생과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C' 지역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C'를 죽인 주인공. 일전에 일어났던 묻지마 살인사건은 주인공에 의해 이니셜 계획 살인이 되지만, 주인공이 동생을 죽이려고 한 날 수많은 'D' 지역에 사는 수많은 이니셜 'D'가 죽임을 당한다. 살해 욕망을 가진 자들이 주인공의 계획에 편승했던 것.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사내 편애>

 인사관리 시스템이 MFM라는 컴퓨터로 대체된 지금, 평범한 주인공은 마더컴이라 불리는 MFM에게 편애받고 있다. 그에 사내 직원들이 모두 주인공에게 잘 보이려 애쓴다는 이야기. 심지어 마더컴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직원 마리코에게 고백을 강요하여 주인공을 곤란하게 만들고, 주인공은 결국 회사를 그만둔다.


​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헌데 이 여성의 사체에는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었으니, 바로 입에 커다란 대파가 꽂혀있다는 점과 여성의 머리맡에 케이크 세 개가 놓여있었다는 점. 담당 경부와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다 범인이 피해자의 스토커 '사이가'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파와 케이크는 어쩌면, 그녀가 생전에 정말 좋아했던 케이크와 싫어했던 파로 그녀의 성불을 저지하려 했던 장치로 쓰이지 않았나 짐작한다.


 <밤을 보는 고양이>

 휴가를 내고 할머니 집에 내려온 주인공은 매일 밤 공중을 쳐다보는 고양이 '미코'의 이상 행동을 감지한다. 주인공은 고양이의 이상 행동이 '냄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리해내고, 부정수급 때문에 엄마의 시체를 뒷마당에 유기하려고 했던 아들의 범행 현장을 잡아낸다.


​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태평양 전쟁 말기, 공간전위식 폭격장치(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순간이동 자살 폭탄이나 마찬가지다.)를 실험하는 실험실에서 한 이등병이 후두부를 맞고 쓰러진 채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그리고 이등병 주변에는 두부가 흩어져 있고, 아무런 흉기도 발견되지 않는다. 사건을 목격하는 주인공은 이 사건에 스파이 암살 기관의 소좌가 연관되어 있고 이등병은 미국쪽 스파이이기 때문에 살해당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사건을 덮으려는 대위와 소좌 그리고 반쯤 미친 과학자에 의해 사건은 황당무계한 실험의 일시적인 성공에 의한 사고라고 매듭지어진다.


​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기업 연구소에서 밀실 사고가 발생한다. 연구소 실장이 물이 든 양동이에 머리를 맞은 것.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구라치 준의 전매특허 캐릭터인 '네코마루 선배'가 등장해 해답을 이끌어내는 네코마루 시리즈물 중 하나다.



 이 작가는 결말에서 반전을 꾀하는 장치를 좋아하는 듯하다. <ABC 살인>에서 주인공이 본인도 'D' 지역의 'D' 이니셜을 가진 사람이라고 깨닫는 장면이나, <사내 편애> 속 주인공이 이직을 결심한 회사에서 전 회사와 달리 마더컴의 일방적인 배척을 당하는 장면이나,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에서 패전의 기운을 예상하는 주인공의 암담한 혼잣말 장면처럼 반전을 통해 문득 으스스한 감정을 되돌아보게 했다.


 금세 읽어내린 구라치 준의 소설집은 미스터리는 좋아하지만 호러는 싫어하는 내게 있어 딱 적당하게 맛있는 팝콘 공포였다. 잠 못 이룰만큼 선을 넘어버리지 않아서 좋고, 여름밤의 시원함도 음산함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소설이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표제작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보다 첫 단편 <ABC 살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떤 범죄도 허용되는 끔찍한 12시간을 그린 영화 <더 퍼지>처럼 'C 살인 사건' 이후 기다렸다는 듯 목줄 풀린 사냥개들처럼 뛰쳐나가 'D 살인 사건'을 찾아 헤매고 살인을 시행했을 이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소름이 돋았다.


 역자 말에 의하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어라'는 말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지하게 구는 고지식한 사람'에게 쓰는 일본의 관용어라고 한다. 즉,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의 살해 현장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누워서 떡 먹다가 죽었거나, 종잇장을 맞들었더니 죽은 현장이나 마찬가지인 셈. 역자 말은 이렇듯 모르던 비하인드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끝까지 읽는 재미가 있다.

이리하여 세 부류의 생각은 의외의 형태로 일치했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상사인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부하직원을 책임지는 건 이제 사양이다. 컴퓨터에게 맡기고 싶다."
"아아, 컴퓨터라면 인건비가 안 들 텐데."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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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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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혜남과 정신과 전문의 박종석이 함께 쓴 심리학 도서.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에세이만큼이나 쉽고 가볍게 쓰인 인문 도서였다. 우울증부터 조울증, 공황장애, 번아웃 증후군 , 허언증 등 다양하고 익숙한 정신질환들을 소개하고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전문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해당 정신질환마다 몰입력 있는 가상의 스토리와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해 전문의의 설명을 돕기도 한다.


목차를 봤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정신질환은 연예인들의 투병을 통해 들어본 바 있는 '공황장애'와 SNS 시대에서 부각되고 있는 '허언증'이었다. 또한 <혼밥의 우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외로움'도 궁금했다. 읽어보니 공황장애가 생각보다 굉장히 흔한 질환이라는 점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합병증을 불러올 수 있는 무척 위험한 질환이라는 점, '외로움'을 다스릴 땐 혼자인 스스로가 정말 괜찮다고 느끼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보아야한다는 점 등 배울 지식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목차는 '조울증'과 '우울성 인격'을 다룬 부분이었다. 조울증의 속 조증과 울증의 지속 기간이 하루, 짧게는 반나절인 줄 알았던 나는 가상의 인물 박대리를 통해 조증과 울증의 지속 기간은 보통 6개월이며 조울증은 그러한 장기간의 전투임을 처음 알았다. 나의 잘못된 지식을 새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서인지 유독 인상 깊었다. 이어서 '우울성 인격'이 인상 깊었던 까닭은 '우울성 인격'을 설명하는 문장이 참 아프고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든지, '자학적이며 우울한 사람들에게 인생은 짐이다'라든지 우울성 인격을 앓고 있는 이가 내 주변에 있다면 꼭 끌어안아주고픈 표현이었다.


 아래 적어둔 문장도 '우울성 인격' 목차에서 나온 문장이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도 느낄 수 있다는 김혜남 작가의 긍정적인 역설에 깊은 공감과 응원의 힘을 덧대고 싶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도 느낄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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